걸으면 건강하다···한양도성 힐링 성곽길따라 역사탐방 나들이

2021. 8. 27. 16:46☎청파산행과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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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으면 건강하다···한양도성 힐링 성곽길따라 역사탐방 나들이

 

2020년도 처음 중국발 괴질 코로나19로 인하여, 벌써 2년여째 발이 묶여 두문불출 하다 시피하고 살았다. 처음 코로나19 괴질 소식을 접했을때는 “6·25 한국전쟁당시 집단 발생했던 염병(장티프스) 만큼 무섭게 생각을 했다.

 

당시(1950) 엠병에 걸리면 노약자들은 거의 살어남기 힘들었다. 우리 가족 8명중 나만 빼고 모든 식구가 다 엠병에 걸렸었다. 그 바람에 나는 식사도, 생활도 가족과 떨어져 따로 해야 했었다. 그때 내 나이 7살인데, 안타깝게도 그때 막내 여동생을 엠병으로 잃어버린 아픈 기억이 있다.

 

그렇게 엠병만큼 무서운 코로나19에 대해 벌써 2년여를 정부 통제만 믿고, 순응하며 살었다. 그런데 이젠 정부가 발표하는 무슨 무슨 명령, 지침이 그리도 많은지, 하나같이 신뢰에 의심이 가는 수준이다.

 

그것은 바로 정부 지침, 명령, 발표들이 어떤 데이터나 근거, 또는 통계등 이력에 따른 것이 아니라, 하나에서 열까지 그냥 그때그때 생각나는데로 주먹구구식 명령이다.

 

일례를 들면 벌써 2년여째 정부가 서민생활을 압박하며 코로나 강경책을 써왔는데, 무엇하나 나아진 것이 없다. 또한 나아진다는 기대나 방역에 대한 성과 또한 아무것도 없다. 아니 오히려 성과는커녕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그 어떤 뾰족한 대책이나 대안없이 오직 명령으로만 일관하고 있다. 그 명령이 어느만큼 형식적이고 위선적이냐면 예를 들어 낮 시간에 6명이 식당엘 갔을 때, 네명 이상은 절대 안되기 때문에 식사를 하지 못한다. 그런데 웃기는일은 그럼 4명이 식사하는 좌석 옆에 또 다른팀 몇 명이 식사를 하면 그것은 묵인이 된다.

 

이게 말이나 되는가. 아니 일행이 아닌 다른 사람들이 옆에 앉으면 코로나 세균이 전염을 안하고, 일행 6명이 한자리에 3명씩 나누어 앉으면 코로나 세균이 위험해 안된다는 것이 말이나 되는 이야기냐. 그 명령을 국민들이 신뢰하고 무조건 지키라고 엄포다. 안들으면 신고해서 벌금 내고 범법자 만들겠다고......,

 

그바람에 6명이 식사를 못하고 돌아서야 했다. 식당 주인에게 3명씩 앉겠다고 사정을 해봤지만, 식당 주인왈 그러다 누가 신고 하면 벌금 물고 영업 못한다며, 오히려 우리에게 사정을 한다. 그냥 돌아가 주시라고...세상에 이게 말이나 되는

 

이게 오늘에 대한민국 정부가 자랑하며 서민죽이기에 혈안이 된 K방역의 실태다. 그런데도 쥐 죽은 듯 근 2년여를 정부가 시키는데로, 순한 양이 되어 따랐다. 그런데 실상을 돌아보니, 지금까지의 통제는 구실에 불과 했다.

 

한 마디로 정부가 서민(소모임) 길들이기를 통해, 영락없이 공산주의 연습 시키는 것 같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생각해보자. 얼마전 유럽에서 선수생활을 하는 손홍민 선수가 뛰는 축구 경기에는 수 만명이 스타디움을 가득메운 상태에서 마스크도 쓰지 않고, 경기 관람을 하며 응원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런데 유럽의 코로나 발병율은 우리나라 수십배도 넘는다. 하지만 유럽은 서민생활 활동 반경을 우리나라처럼, 압박하며 소상공인(서민) 죽이기에 앞장서지 않는다. 적당히 생활속 코로나19 극복 정책으로 가는 것 같다.

 

에라 골치아프다. 말해봐야 쇠경읽기. 더 이야기 하면 무엇하냐. 이젠 참을만큼 참았다. 설혹 코로나 걸린다고해서 다 죽는것도 아니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죽기는 마찬가지다. 그냥 방구석에 쳐박혀 있다 죽느니, 차라리 싸다니며 산그리매, 그림이라도 보고 피톤치드 향이라도 맡으며 죽는 것이 훨 났다.

 

서둘러 걸망(배낭)을 주섬주섬 챙겨메고 집을 나선다. 어디로 갈까. 이왕 나서는길 기왕이면 창덕궁이라고 했다. 이참에 남대문(숭례문) 거쳐 서울성곽길 역사탐방 나들이나 한번 하고 오자. 맘먹고 지하철 1호선을 타고 서울역 하차해 남대문부터 서울도성길 탐방에 나선다.

 

서울 숭례문(崇禮門)

 

서울 숭례문은 1396(태조 5) 축조된 서울도성의 정문으로, 1398(태조 7) 2월에 준공되었다. 그 뒤 1448(세종 29) 개수공사가 완료되었으며, 1961년부터 1962년 사이에 실시된 해체수리 때 발견된 상량문(上樑文)에서 1479(성종 10)에도 대대적인 중수공사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 건물은 정면 5, 측면 2칸의 중층건물이며, 화강암으로 구축한 홍예형(虹霓形: 무지개모양)의 누기(樓基)와 마름석축으로 이루어진 기층의 중앙에 홍예문이 있으며 판문에 철갑을 씌운 두 짝의 문이 달려 있다.

 

석축기단 윗면에는 전돌로 쌓은 여장(女墻: 성 위에 낮게 쌓은 담)을 돌리고 동서 양쪽에 협문을 한 개씩 두어 계단을 통하여 오르내릴 수 있게 하였으며, 문의 앞뒤 여장 밑에는 석루조(石漏槽)4개씩 설치하였다. 기단의 양측에는 원래 성벽이 연결되어 있었으나, 1908년 길을 내기 위하여 헐어내어 현재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건물 내부의 아래층 바닥은 홍예의 윗면인 중앙간만이 우물마루일 뿐, 다른 칸은 흙바닥으로 되어 있고 위층은 널마루이다. 기둥은 모두 굵직한 두리기둥인데, 기둥뿌리에 나직한 하방(下枋)을 걸고 기둥머리에는 키가 큰 창방(昌枋)을 걸었다. 창방과 기둥 위에는 널찍하고 두툼한 평방을 돌리고 그 위에 공포를 올렸다.

 

공포는 기둥 위쪽과 건물의 앞뒷면 중앙간에는 네 개씩, 다른 기둥 사이에는 두 개씩의 공간포(空間包)를 올렸고, 양 측면에도 두 개씩의 공간포를 올렸으며 내외포(內外包)가 모두 이출목(二出目)이다. 위층에는 기둥 사이의 중방(中枋)과 창방 사이에 작은 창()이 나 있다.

 

공포는 외삼출목칠포작(外三出目七包作), 내이출목오포작(內二出目五包作)이고 천장의 가구(架構)는 연등천장이다. 지붕은 아래위층 모두 겹처마로 사래 끝에는 토수(吐首)를 씌우고 추녀마루에는 잡상(雜像)과 용두(龍頭)를 올려놓았으며, 용마루 양끝에는 취두(鷲頭: 매머리 모양의 장식)를 올린 우진각 지붕으로 되어 있다.

 

또한 최근의 수리 결과, 원래는 팔작지붕이었으며 아래위층의 살미첨차의 하향을 막기 위한 헛공아가 후세의 첨가물임이 밝혀져 제거되었고, 공포 사이의 포벽(包壁)도 토벽(土壁)으로 내외면을 단청하여 연화 또는 당초문 등이 그려져 있었다. 그러나 이 역시 후세의 공작임을 알게 되어 제거되었다.

 

한편 편액의 필자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지봉유설(芝峰類說)에는 양녕대군(讓寧大君)이 쓴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성문의 예자(禮字)는 오행에 배치하면 불[]이 되고 오방(五方)에 배치하면 남쪽을 지칭하는 말인데, 다른 문의 편액이 가로쓰임이나 숭례문이 세로로 쓰여 있는 것은 숭례의 두 글자가 불꽃 염[]을 의미하여 경복궁을 마주보는 관악산의 화산(火山)에 대하는 것이라 한다.

 

숭례문은 서울에 남아 있는 목조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것이었다. 그러나 2008210일 오후 840분 쯤에 발생한 화재로 숭례문의 2층 누각의 90%가 전소되고, 1층 누각의 10% 미만이 소실되었다. 다행히 기반 석축은 화재사고로부터 안전하였다. 화재 이후 20102월 착공식을 거행하고 숭례문복구공사 작업을 시작하였다. 복구공사는 약 3년의 기간을 거친뒤 201354일 복구기념식을 거행하고 시민에게 공개되었다.

 

서울한양도성(사적제10)

 

한양도성은 조선왕조의 수도인 한성부의 경계 이자 도성을 방어하기 위해 쌓은 수도 성곽이다. 1994년 한양으로 수도를 옮긴 후, 1396년 두 차례에 걸쳐 전국적으로 인력을 동원하여 성을 쌓았다. 이후 15세기 세종(연간) 18세기 숙종(연간) 19세기 순조(연간)에 걸쳐 여러 차례 대규모로 수리 및 보수공사가 이뤄졌다. 특히 세종 연간에는 토성을 석성으로 고쳐 쌓으면서 18.6km의 전구간이 석성으로 로 완성되었다. 한양도성은 조선왕조 전 시기에 걸쳐 지속적으로 성벽을 고쳐서 쌓았기 때문에 다양한 축조 방식과 성돌의 형태를 살펴볼 수 있다. 남산 자락에 한양도성은 1925년 조선 신궁이 세워지면서 상당 부분 허물어 졌는데, 2013년에서 14년 발굴조사를 통해 1~4m 깊이에 땅속에 묻혀 있던 기단석 부터 1~5단의 성벽이 드러났다. 조사 결과 원래 한양 도성의 높이는 6m 추정되고 있다. 이 구간에서 발굴된 성돌은 그 높이와 크기 모양이 매우 불규칙하고 다양하게 남아 있어, 한양도성의 조선왕조 전 시기에 걸쳐 계속해서 고치거나 새로 쌓아올린 흔적을 한눈에 볼 수 있다.

 

한양도성 축성에 사용된 구조물 흔적

 

한양도성 축성에 사용된 구조물 흔적 성벽을 쌓을 때, 임시로 나무 기둥을 박았던 구멍의 흔적이다. 지름은 15 ~ 40cm 정도이며 깊이는 최대 55cm 이다. 이 구멍들은 2~3개씩 짝을 이루며 성 벽과 나란히 발견되는 것이 특징이다. 일부 구멍에서는 나무 기둥에 밑둥도 남아 있었다. 남산 한양도성유적지에서는 총 137개의 기둥 구멍이 발견되었는데, 구멍 흔적 보호를 위해 모두 보존 처리하였다. 일부는 관람객들이 볼 수 있도록 노출하고, 나머지는 모래를 채워 다시 땅속에 묻었다.

 

남산 백범광장

 

남산 백범광장(南山 白凡廣場)은 서울특별시 중구 회현동 남산에 있는 광장이자 공원이다. 광장의 이름은 백범 김구(1876 ~ 1949)의 아호인 백범(白凡)을 본따왔으며 실제 백범 김구 선생의 동상이 있다.

 

남산에 있는 광장이자 공원으로 1969년 백범 김구 서거 20주기를 맞이하여 김구선생동상건립위원회의 주관으로 조각가 김경승, 민복진이 조각하여 1969823일 백범 김구의 출생일인 823일에 동상 제막식을 열면서 김구 선생상이 세워졌고 이 때부터 백범광장으로 명명하였다.

 

이곳은 원래 이승만(李承晩) 대통령의 동상이 있던 자리였다. 4·19혁명 이후 이승만 대통령의 동상을 허물고 19688월 백범광장을 조성했다.

 

광장의 규모는 너른 잔디에 백범 김구선생상과 부통령을 지낸 성재 이시영상이 있으며 바로 옆으로 서울 한양도성 남산 성곽이 있고 위로 안중근의사기념관과 서울특별시교육청 정보연구원이 있다. 아래로 내려가면 신라의 명장 김유신상이 있다.

 

한때 이 곳은 일제가 세운 조선신궁이 있던 자리였으며 일제가 패망하고 광복을 맞으면서 조선신궁이 철거되고 그 자리에 안중근의사기념관 등이 들어섰다.

 

남산N타워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공간적 중심이자 상징적인 랜드마크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2005년 남산서울타워의 타워층을 N서울타워로 개칭하며 개보수하여 새로운 개념의 문화공간으로 재탄생하였다. 현재 남산서울타워는 소유자인 YTN이 사용하는 ‘서울타워플라자’와 임대자인 CJ가 사용하는 ‘N서울타워’로 구분되어 있다. 남산의 자연과 21세기 첨단기술이 만들어내는 절묘한 조화로움을 제공하는 휴식공간이자 문화복합공간으로 이용되고 있다.

 

명칭 유래

남산서울타워의 타워층인 N서울타워는 New Namsan을 축약해 나타낸 이니셜 ‘N’을 통해 새로워진 서울타워에 대한 기대감 및 새로움과 서울의 새로워지는 문화적 트렌드를 부각시키려는 브랜드 이미지를 도입하였다. 글로벌한 트랜드에 맞추어 보다 젊어지고 새로워진 역동성을 표현하였다.

내용

서울 남산전파탑을 가리키는 것으로, 남산타워라고도 한다. 대지 8,456㎡에 연건평 1만 5378㎡에 이르며, 해발고도 479.7m 상에 위치해 있다.

탑 자체의 높이는 236.7m로 세계에서 모스크바타워(해발고도 537m) 다음으로 높은 탑이다. 1969년 8월 동양·동아·문화방송 등 3개 민영방송국이 공동으로 종합전파시설 및 관광전망대 시설허가를 받아 1975년 8월 완공하였다. 준공 3개월 뒤 체신부가 인수하여 보안상 일반에게 공개하지 않다가, 1980년 10월부터 공개되었다. 2000년 뉴스 전문 텔레비전 방송국 YTN이 인수한 후 2005년에 개보수하여 타워층을 “N서울타워”(정식 이름은 “YTN 서울타워”)로 개칭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현황

1초에 4m로 이동하는 초고속 엘리베이터로 전망엘리베이터홀에 이르면, 서울 전역은 물론

동쪽으로는 양평 용문산, 서쪽으로는 인천 앞바다와 남인천항, 남쪽으로는 남한산성, 북쪽으로는 멀리 개성(開城) 송악산(松嶽山)까지 파노라마로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디지털전망대에서는 최첨단 미디어 장비를 활용한 디스플레이로 서울과 남산에 관한 다양한 문화정보 컨텐츠를 제공하고 있다.

그 외에도 테디베어뮤지엄, N레스토랑, N쇼핑 등의 볼거리와 먹을거리를 제공하는 편의시설이 갖추어졌으며, 최근에는 젊은 세대를 겨냥한 마케팅으로 이벤트N을 통한 음악회와 러브페스티벌, 사랑의 자물쇠 행사 등이 연중무휴 기획되고 있다.

새로운 세기, 새롭게 변신한 N서울타워는 남산에 위치한 팔각정과 서울성곽, 식물원, 케이블카 등과도 산책로로 연결되어 시민과 관광객에게 서울의 자연과 문화경관을 조망하며 즐기는 휴식공간이자 문화복합공간이며 서울의 상징으로서 발돋움하고 있다.
자료출처 : 『한국관광자원총람』(한국관광공사, 19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