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2회] 민들래 태풍雨속에 부산갈메기 “새한솔산악회” 관악산 산행

2021. 8. 20. 20:43☎청파산행과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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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민들래 태풍속에 부산갈메기 새한솔산악회관악산 산행

 

내가 한국의 산하에 산행기를 게제 시작한 후, 온라인을 통해 알게 된 부산의 새한솔산악회(회장 : 이두영님) 2004. 7.4일 서울에 위치한 관악산으로 원정 산행을 온다는 소식이다.

 

그런데 내 경우 그동안 새한솔산악회 몇몇 회원님들과 각별한 우정을 쌓아온 터다. 그래서 이번 새한솔산악회 관악산 원정산행에, 나도 합동산행을 하기로 하고, 늘 나와 함께 산행을 해온 몇몇 산친구들에게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뜻밖에 여러 친구들이 합동산행에 동참 하겠다는 연락이 왔다.

 

그런데 산행 하루전날인데 문제가 생겼다. 그것은 다름아니라 우리나라 남부지방 일대를 쓸고 지나간 태풍 민들레의 영향으로, 산행 전날부터 전국적으로 많은 비가 내리더니 산행 당일 아침까지도 엄청난 양의 비가 내린다. 이 상태에서 과연 산행이 가능할 것인가. 걱정이 태산이다.

 

답답한 마음에 산행날 새벽 6시 새한솔산악회 서디카님께 전화를 하니, 그렇지 않아도 그 문제를 놓고 의견 타진 중인데, 7시 정도 되어야 최종 결정을 날 것 같다며, 결정 나면 여부를 알려 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710분 되자 연락이 온다. 관악산 산행을 예정대로 강행하기로 하였다고.

 

연락을 받고 나와 함께 새한솔산악회와 합동 산행을 하기로 한, 운해 님, 권경선 총무님, 풍악 님, 최종환님, 그리고 성호 장인환님께 연락해 오전 11시까지 사당역 5번 출구에서 만나기로 하고, 주룩주룩 비가 쏟아지는 상황에서 우산을 받고 집을 나선다.

 

그런데 평소 웬만해선 나 산행 떠날때 군소리 한다던 아내가, 나를 부르더니 여보 당신 너무하는 것 아니냐?’ 며 한소릴 한다. 그러나 이미 여러 사람과 약속이 되어 있는데, 아내의 말에 등에 메었던 배낭을 내려놓을 수 없는 일이다.

 

아내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집을 나서 부평역, 송내역에서 운해님, 풍악 님, 고운 최종환님을 만나, 전철을 타고 가며 아내 이야기를 하니, 어쩌면 네 남자 하나같이 집에서 좋은 소리 못 듣고 도망치듯 나왔다는 이야기다.

 

어쩌다 요즘세상 남정네들 신세가 이렇게 볼품없이 전락해 버렸는지, 한심한 생각이 든다. 그런데 문제는 탈출까지는 좋았다고 치자. 그러나 다시 저녁에 집에 들어갈 때, 어깨 축처진체 꼬리 내리고 들어가는 남정네들 모습을 상상하니, 그 모습이 영락없이 울 밑에선 봉선화다. 그남자들의 측은지심(惻隱之心)이 자꾸 걸린다.

 

남정네들의 의리를, 아낙들은 모른다. 여성들이 알고있는지 모르겠는데, 가정이 건강하려면 뭐니뭐니해도 부부 사이가 서부전선 이상 없어야 한다. 집을 버티고 있는 어느 한쪽이 흔들리면 그 집이 온전 하겠는가.

 

그래서인지 저래서인지, 내 경우는 예를 들어, 아내가 어디 출타를 할때는 그 어떤 일이 있어도 일체 노코멘트다. 그것은 가시는 걸음걸음 즈려밟고 다녀 오시라는 내면의 뜻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맥락에서 볼 때, ‘민들레 태풍우속에 산행을 나서는 남정네들 가슴은, 화재 현장에 출동하는 119 소방대원과 같은 것이다. 건강한 체력, 건강한 가정을 지키기 위하여 고생불문하고 산행을 나서는 것이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일행들과 사당역 5번출구에 도착했다.

 

약속장소엔 벌써 서울에 사는 한국의 산하권경선 총무와, 나의 고향 후배 성호 아우가 먼저와 우리를 반긴다. 나는 서둘러 새한솔 서디카 아우에게 어디쯤 오는지 확인 전화를 한다. 아직 대전이라며 앞으로 한 시간여 더 가야 도착 할꺼라고 한다.

 

그러다 보니 일행들 비도 그을 겸 일단 이른 시간이지만, 어디가서 해장이라도 한잔 하며 기다리자는 제안에, 누구 한 사람 이의 없이 전원 만장일치 OK. 그렇게 식당에 들어 간단한 메뉴를 시키고, 각자 배낭에 준비해온 특식을 내놓는다.

 

그런데 풍악 아우는 나 만나면 대접하려 했다면서, 알싸한 맛이 나는 홍어회와 고급 더덕주를. 성호 아우는 포도주 네 병과 치즈를 내놓다.

그러다 보니 옛 유행가 노래말처럼, ‘비 오는 날은 공치는 날이라더니 어영부영 해장술 한잔. 두잔, 몇 순배가 뱅글뱅글 잘도 돌아간다.

 

그런데 이때다. 서디카 아우에게서 전화가 온다. 막 서울 돌케이트를 통과했다고······, 우리는 서둘러 자리를 정리하고 폭우 속에 천리 빗길을 달려 도착한 새한솔산악회회장님과 회원님들을 만나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곧바로 산행을 출발이다.

 

이 시간도 비는 계속 세차게 쏟아진다. 그런데도 아랑곳 하지 않고 망설임도 없이 바로 산행 출발하는 것을 보면, 부산팀이나 수도권 사람들이나 산사나이들 마음은 오직 하나 산밖에 모르는 것 같다.

 

이날의 민들레 태풍우속에 이어진 관악산 산행은 관악산 정상찍고, 서울대 방향으로 하산하여 자연공원 일주문을 나서는 것으로 산행이 모두 끝났다. 이어 새한솔 산악회원님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귀향 시간 때문에 간단히 선술집에서 새한솔산악회 회원님들께, 서울 막걸리 대접을 하고 아쉬운 작별이다.

 

그리고 남은 일행들은 전국 구경꾼대표 김정목님의 차를 타고, 신림동으로 이동해 2차로 호프를 하고, 잘가시오. 잘 있어요. 아쉬운 작별을 하며 귀가 한다. 그런데 부평팀 고운 최종환, 운해, 풍악, 그리고 나는 다시 전철로 송내역에 내려, 또 다시 풍악님 뒤풀이 턱으로 한잔 더 하고, 다음 주 711일 천태산 산행때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며 각자의 일상으로 간다.

 

관악산 개요

 

관악산은 예로부터 불의 산(火山)이라 하여 조선 태조가 궁터를 지금의 경복궁 자리로 옮길 때, 무학대사가 이곳은 관악산과 마주 보이는 자리로 관악산의 화기가 궁을 눌러서 내우외환이 끊이지 않을 것이라며 반대했지만, 정도전의 남쪽에 한강이 가로질러 있어서 영향이 없을 것이라는 주장을 받아 들여 지금의 경복궁을 창건하였다 한다.

 

그후 태종때 왕자의 난, 세조의 왕위 찬탈, 임진왜란, 병자호란, 그리고 경복궁에 발생한 수차례의 화재가 발생한 것을풍수지리설로 해석하는 이도 있다. 대원군은 경복궁을 재건할 때 관악산의 화기를 누르기 위해 경복궁 정문인 광화문 앞에 바다의 신으로 상상의 동물인 해태 조각상을 만들어 세웠다.

 

관악산 연주대는 고려가 망하자 남은 유신 열 사람이 관악산 절에 숨어살며 경복궁을 바라보며 통곡을 했다 하여, 임금을 사모한다는 뜻으로 연주대(戀主臺)라 불려 지게 되었다 한다. 이성계가 연주암을 중창한 뒤, 태종의 두 아들인 양녕대군과 효령대군은 태종이 왕위를 셋째 충녕대군(세종)에게 물려줄 뜻을 알고 관악산에 입산하였다 한다.

 

예전에 관악산을 삼성산이라 부른 것은 신라의 고승 원효,의상,윤필이 이 산에서 세 승려가 일막,이막,삼막의 세 암자를 짓고 따로 수도하여 득도하였다 하여 붙여진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임진왜란때 일막,이막은 소실되고 삼막사(三幕寺)만 남았다는 것이다.(산림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