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 보약이다··· 운해타고 풍악 울리며 덕유산 100여리길 1일 종주

2021. 8. 30. 12:47☎청파산행과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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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jry_HVULUE8

 

덕유산 향적봉(香積峰:1,614m)

 

최고봉은 향적봉(香積峰:1,614m)이다. 덕이 많고 너그러운 모산(母山)이라 하여 덕유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경상남도 거창군과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安城面설천면(雪川面)의 경계에 솟아 있으며, 북덕유산(향적봉)과 남덕유산(1,507m)으로 나뉜다.남덕유산은 경상남도 거창군·함양군과 전라북도 장수군 경계에 솟아 있다. 두 산봉 사이의 약 20구간에는 해발고도 ,3001,400m의 소백산맥 주맥이 북동남서 방향으로 뻗으면서 경상남도와 전라북도의 도 경계를 이룬다.

 

주봉우리인 향적봉을 중심으로 무풍면(茂豊面)의 삼봉산(三峰山:1,254m)에서 시작하여 대봉(1,300m)·덕유평전(1,480m)·중봉(1,594m)·무룡산(1,492m)·삿갓봉(1,410m) 등 해발고도 1,300m 안팎의 봉우리들이 줄 지어 솟아 있어 일명 덕유산맥으로 부르기도 한다. ·서 비탈면에서는 황강과 남강 및 금강의 상류를 이루는 여러 하천이 시작되어 낙동강 수계와 금강 수계의 분수령 역할을 한다. 식생은 250여 종의 식물과 116종의 조류, 446종의 곤충류, 19종의 어류, 95종의 거미류가 서식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계곡은 총 8곳이 있는데, 특히 북동쪽 무주와 무풍 사이를 흐르면서 금강의 지류인 남대천(南大川)으로 흘러드는 길이 30의 무주구천동(茂朱九千洞)은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진 명소다. 무이구곡(武夷九谷)을 비롯한 구천동 33경과 칠련폭포(七連瀑布용추폭포(龍湫瀑布) 등이 장관이고, 안성계곡·송계사계곡·산수리계곡 등도 명소로 꼽힌다.6월 초순에는 20의 능선과 등산로를 타고 펼쳐지는 철쭉 군락이 볼 만하고 여름이면 시원한 구천동계곡이 피서객들로 가득 찬다. 또 가을에는 붉게 물든 단풍이, 겨울에는 눈에 덮인 구상나무와 주목, 바람에 흩날리는 눈보라가 장관이다.

 

구천동을 지나 향적봉을 약 3남겨 둔 곳에는 천년 고찰 백련사(白蓮寺)가 있다. 이곳에는 매월당부도(梅月堂浮屠:전북유형문화재 43), 백련사계단(전북지방기념물 42), 정관당부도(靜觀堂浮屠:전북유형문화재 102) 등의 문화재가 있다. 19752월 일대가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산이 보약이다···운해타고 풍악 울리며 덕유산 100여리길 1일 종주

 

3년전 겨울이다. 파주 감악산 산행중 낙옆이 덮힌 빙판에서 넘어지며 다리가 꼬여 무릅을 크게 다쳤다. 그후 며칠 지나면 났겠지 하며 일주일가 지났다. 그런데 낫기는 커녕 통증이 점차 더 심하다.

 

마지못해 10여일만에 정형외과 진찰을 받으니 X-rays 상에는 골절되거나 다친곳이 명확히 나타나지를 않는다. 그런데 담당 의사왈, 이제 나이가 있어 잘못하면 평생 고생할지 모른다며, 앞으로 산행은 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나는 안다. 의사는 생각없이 환자 보호 차원에서 한말인줄......, 그렇지만 그 의사 말 한마디가 나에겐 큰 충격이었다. 그것은 바로 지금까지 내가 이만한 건강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은, 산행을 했기 때문인데 그 산행을 하지 말라니, 청천병력 같은 소리다.

 

이제 그 판단은 나에게 달렸다. 의사의 말을 믿고 산행길을 포기하고 살것인가. 아니면 내 의지로 이 역경을 이겨내 보란 듯이 살것인가. 심각하게 고민을 했다. 그 최종 결론은 내 비록 산행을 하다 앉은뱅이가 된다 하더라도 내 인생에 산행 포기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나는 보란듯이 다시 걷기운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보철 무릅 보호대를 착용하고 다시 산행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절룸바리 다리를 끌고 산행을 했다. 결과 하느님 아니면 산신령님이 도우셨는지, 일정 기간 지나자 나의 다리는 다치기 전보다 더 튼튼하게 느껴질 정도로 완치가 되었다.

 

그후 감사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한국의산하에 산행기도 게제했다. 이어 온라인상에서 서로 댓글, 답글을 주고 받으며 산우정도 돈독히 쌓았다. 그중 통영에 살며, 한국의산하에 산행기를 게제해온 부부 산꾼, 이수영님이 7월 4~5일에 덕유산 종주를 계획하고 실천에 옮기려다, 민들레 태풍으로 예정된 산행을 포기했다는 산행기를 읽었다.

 

그래서 대신 장군대산 산행을 다녀온 후, "고놈의 민들레 때문에.. ♠ 장군대산 ♠ (월아산)" 산행기를 보며, 혼자 의미있는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산행기 댓글에 덕유산 종주 계획은 당부간 미루었다, 내가 운해님, 풍악님과 덕유산 종주를 계획중인데 우리와 함게 합동으로 덕유종주산행을 하자고 댓글을 달았다.

 

그러자 이수영 아우께서 단 답글 내용이 "형님..잘 알겠습니다. 언제쯤 가실 의향이신지요? 형님도 아시다시피 제가 성이 이가라 성격이, 급해 한번 간다고 하면 미루는 성격이 아니라서요. 늦어도 다음 주 연휴때 (17-18일)까지라면 기다리겠습니다. “하지만 그 후라면 먼저 다녀 올테니 양해해 주세요."라는 답글을 보았다.

 

그 바람에 운해님과 덕유산 종주 일정을 상의하니 무조건 OK다. 이렇게 계획된 덕유산 종주는 운해님과 친구 3명, 그리고 풍악님, 불암산님, 또 김학준님외 1명, 또한 대구의 코스모스님 여동생 보리님, 그리고 내친구 김봉묵님, 이수영님 부부를 포함 13명이다.

 

이제 출발 이틀이 남았다. 그런데 ‘가는날이 장날, 시집갈 달에 등창’ 난다더니, 하필이면 남덕유 종주를 코앞에 두고 기상청 일기예보가 수시로 바뀌더니, 전국적인 호우 경보로 바뀐다. 이런 기상 악조건 상황에서 배낭을 꾸리는 나를 본 아내가 한마디 한다.

 

‘당신 완전히 산에 미친사람 같다. 그렇게 산이 좋으면 이번에 산에가면 아예 산에서 살라고 한 소릴한다.’ 쩝! 길떠나는 남편에게 너무하단 생각이 들어 나도 한마디 하고 싶다. 그러나 애써 꾹 참는다. 내가 오죽이나 미웠으면 아내의 입에서 저런 소리가 나왔을까. 생각 하며 나를 반성한다.

 

반격대신 마침 이날이 제헌절이라 온가족이 모처럼 다 집에있다. 그래서 기분 전환겸 가족 외식이나 하자고 하니, 뾰롱통했던 아내의 얼굴에도 해맑은 손자 아이도 두손을 들어 환호한다. ‘야! 신난다.’ 내친김에 차를 달려 고깃집을 다녀오니, 온가족이 한 목소리로 비 많이 내린다는데 조심해서 다녀 오시라고 손을 흔든다.

 

부평역에서 오후 7시 일행들을 만나기 위해 나서는 발길이 날아갈 듯 가볍다. 이제 바램은 우리의 산행지 덕유산 지역은 제발, 비가 피해 지나기만을 바라며 마음에 기도를 한다. 그런데 나의 기도발이 먹혔나 보다. 전국적으로 내려졌던 호우경보, 주의보, 특보들이 모두다 해지 되었다는 소식이다.

 

그러다 보니 시간 맞춰 부평역앞에 모인 일행들 너도, 나도 하나같이 기분이 업되어 반가운 인사를 나눈다. 그리고 내친김에 부평역전 인근 선술집에 들어, 술국 한그릇 시켜놓고 막걸리 사발 가득히 채워 덕유산 무사종주를 위한 건배를 든다. 여기 저기 사방에서 원샷하는 벌컥벌컥 소리가 막힘이 없다.

 

이날 우리를 덕유산 육십령까지 운전해 주실분은, 한국의산하에 명품 산행기를 게제해 오신, 고석수님이시다. 그러다 보니 일행들 원더풀(wonderful)소리가 차안 가득하다. 산이라는 공통 분모가 분위기를 띄웠다. 그런데다 대구의 코스모스님 여동생 보리님이 시원하게 냉장 시켜온 더덕주가 한 순배씩 돌고 나니, 차안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형님, 아우, 동생 사이로 바뀌며 나는 졸지에 큰 엉아가 되었다.

 

그 과정에 일행들은 마치 오래된 인연처럼 녹익은 분위기다. 문제는 내가 환갑, 진갑이 지난 나이다 보니 산행중, 혹시 일행들에게 누를 끼치게 되지 않을까 염려가 된다. 그런데 아무것도 모르는 일행들은 나를 산행 경력이 대단한 사람처럼 추켜세우는 바람에 입장이 난처하다.

 

그 바람에 어영부영 일행들이 권하는 몇잔의 술을 마셨건만, 정신은 오히려 더 맑아지는 기분이다. 그런데 이때다. 통영에서 참가하는 이수영 아우에게 전화다. 이때 시간이 밤 10:30분이 넘었다. ‘형님 어디쯤 오세요. 조심해서 잘 오세요.’ 하고, 그러면서 자신은 벌써 “육십령고개 조할머니 식당”에 도착했다는 전화다.

그 사이 우리 일행을 싫은 차는 육십령고개 언덕을 오르는데, 차창밖으로는 부슬부슬 비가 내린다. 밤 11시다. 그런데 육십령 휴계소 조할머니 식당(05-963-0610)에는 밤중에도 훤하게 불이켜 있다. (이곳 식당은 주로 백두대간 종주 하는 사람들이 많이 이용을 한다고 한다.)

 

일행들이 차에서 내리자 먼저와 기다리던 이수영 아우 부부께서 반갑게 우리 일행을 맞이하며 인사를 한다. 나는 지난번 한국의 산하 의상봉 산행때 아우를 만나고, 오늘이 두 번째다. 그런데 마치 친형제지간 혈육처럼 서로 서로 얼싸안고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이어 식당으로 들어가 좌정 하고나니, 수영 아우 내외분께서 우리 만남을 위해 정성으로 준비하여 오신 선물을 내놓으신다. 스치로폴 박스에 얼음을 가득 채우고 통영의 명물 횟감을 가득 장만해 오셨다. 그러다 보니 일행들 너도 나도 한마음 한뜻이 되어, 회무침 안주에 13명의 일행들이 “덕유산 1일종주” 안전 산행을 건배를 든다.

 

이어 풍악 아우가 또 이수영 아우와 첫 대면을 하게되면 드린다고, 준비하여온 더덕주(大)병을 내놓아, 자정이 다된 시간인데도 육십령고개 조할머니 식당엔 건배, 위하여 소리가 메아리가 되어 밤하늘에 퍼져나간다. (참고로 이수영님과 풍악님은 자칭 사제지간 사이이다)

 

한창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그런데 이때다. 이날 덕유산종주 산행대장인 불암산, 운해의 덕유산종주 작전명령은 예정 시간보다 40분이나 당겨 발령이 났다. 그 바람에 육십령 고개 사나이들의 우정이 밤새도록 이어질 것 같던 분위기가 마치, 현역 시절 5분대기조 출동 명령처럼 갑자기 작전 개시다.

 

비는 지속해서 내린다. 밖은 칠흑같은 어둠이 깔렸다. 일행들은 각자 판초우의, 비옷, 배낭커버를 씨워고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뒤이어 2004년 7월 18일 00:20분 덕유산 1일종주 산행 시작되었다. 그러다 보니 불과 몇 분전까지 왁자지껄 하던 입담들이, 꿀먹은 벙어리가 되어 긴장감이 흐른다.

 

당시 분위기가 얼마나 엄숙하고 비장했는지, 내 경우 영락없이 35년전 현역때 환영이 다시 살아난 것처럼, 갑자기 다리가 후들거리고 이빨도 절로 딱딱 부딪는다. 일행들을 보니 새까만 밤이 되어 자세히 볼 수 없지만, 헤드랜턴 불빛에 비친 일행들이 하나같이 하얗게 질려 있다.

 

출정에 앞서 운해와 불암산 대장둘이 산행 장비 검열을 하는데, 얼마나 꼼꼼히 보는지 다리가 후들 거린다. 그런데 정작 산행 대장인 불암산님 복장을 보니, 그 엄숙한 순간에도 파안대소가 터지고 말았다. 해드랜턴으로 불암산 대장 하체를 비추니 이건, 판초우의도 아닌 앞치마를 입고 이마에는 헤드랜턴을 쓰고 거기에 특수칼라 안경까지 썼는데, 그 모습이 내눈엔 영락없이 완전 독일군 취사병 모습과 흡사하다.

 

ㅋㅋㅋ 그 모습이 하도 우스꽝 스럽다. 그래 ‘어이 불암산 아우 지금 우리 데리고 독일군 밥하러가는거야?’ 하고 물으려다 비위 잘못건드리면 산행길 내내 고단할 것 같아 애써 참는다. 그래 불암산 보다는 한결 부드러워 보이는 운해에게, 아니 불암산 복장은 뭐야. 하고 물으니 운해님 왈, ‘저 치마는 오늘 우리 일행을 육십령까지 데려다 주고 돌아간 고석수 님께서 다년간 산행을 하며 빗길 산행을 하며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 사용해온 치마라는 것이다.

 

운해님에게 치마에 대한 설명을 듣고, 불암산을 선두로 덕유산종주가 시작되는데 칠흑같이 어두운 밤길에 숲이 얼마나 우거졌는지, 6척 장신 풍악님의 키를 훨씬 넘는다. 그러니 단신인 나는 완전히 숲에 묻히워, 멀리서 누가 보면 영락없이 두더지가 땅속 기어다니는 상황을 상상할 정도다.

 

선두에서 불암산 아우가 치마를 입고 빗물을 털어내며 지나기에, 후미 일행은 한결 편안한 상황이다. 선두로 걷다보면 불빛보고 달려드는 불나방, 거미줄, 우수수수 떨어지는 낙수 세례를 혼자 감당하며 “묵언수행(默言修行)” 희생을 하는 불암산님께 고개가 숙여진다.

 

사나이 의리가 무엇인지, 한국의산하가 맺어준 인연 때문에 묵묵히 일행들을 위해 봉사하는 불암산, 운해 아우의 마음 씀성이가 더욱 빛난다. 두분 고맙습니다.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