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보라속 死鬪의 7시간...관악산 남북능선 종주산행

2021. 3. 1. 15:26☎청파산행과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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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9YCDNqyakBE

눈보라속 死鬪7시간...관악산 남북능선 종주산행

 

116일 전국적으로 폭설이 내렸다. 때문에 18일 까지도 하늘이 잔뜩 찌프렸다. 그런데 또 하늘이 꾸물거리는걸 보면 아무래도 눈이던, 비가되던 한 바탕 할 것 같다. 18일은 내 생애 가장 절친한 친구, 후배들과 관악산 남북능선 종주 산행이 약속 되었기 때문이다.

 

관악산은 그동안 여러본 산행을 했다. 그러나 남북종주는 처음이다. 산행에 참가하는 일행들(김봉묵, 김용섭, 노승안, 윤도균)은 나에 절친 마음에 벗들이다. 그런데 자꾸 날씨가 꾸물대니 117일 오후부터 일행들에게서 몇 차례나 전화가 온다. ‘형님 내일 비 올 것 같다는 둥, 눈이 많이 내릴 것 같다는 둥, 날씨가 상당히 추울 것 같다는 둥 하면서......,’

 

전화의 내용을 유추해 보면 산행을 미루던지, 취소 하자는 의미가 내포 되어있다. 그러나 나는 이유 불문 무조건 go. 나중에 딴소리 하기 없기다. 모임(먼동회) 연장자인 내가 밀어붙이는 바람에 더 이상의 전화는 뚝이다.

 

작전 명령 111809:00시 정각까지 사당역 6번 출구에서 만나는 것이다. 그러자 마음착한 친구와 동생들 더 이상의 언급을 회피한체 묵언수행이다. 그런데 이때 마침 외사촌 여동생의 전화다. 말결에 내일 관악산행을 한다고 하니, 외사촌 여동생도 동행 하겠다고 한다. 모처럼의 동생 부탁이라 거절이 쉽지 않다. 거기다 여동생 친구 한 사람 더 추가다. 그 바람에 어영부영 6명이 산행을 하게 되었다.

 

문제는 여동생들은 산행 경험이 별로인 사람들이다. 그런데 예정된 남북종주 구간은 경험이 많은 산꾼들도 5~7시간 소요될 정도다. 하지만 도심 산행이니 여차해 문제가 생기면 곧바로 하산하면 된다. 만약의 경우 비상사태가 발생하더라도 사람들 래왕이 많은곳이니 큰 걱정은 없다.

 

18일 아침 사당역 6번 출구에서 일행들을 만나 산행을 시작한다. 어 그런데 입장료받는곳에 사람이 없다. 그바람에 운좋케 입장료 안내고 무사통과 산행이다. 그런데 호사다마(好事多魔)”라 했던가. 산행 시작 20여분도 안되어 찌프린 하늘에서 눈발이 날리기 시작이다. 어제 저녁 일기예보에선 분명 18일 오전 개임이라고 예보를 했다.

 

난감하다. 폭설 아냐 그보다 더한 기상악화가 온다 하드라도, 남자들 끼리면 별 문제 없는데 여자들이 동행 하고 있으니 문제다. 그렇다고 지레겁먹고 포기하는것도 우수운일이다. 에라 모르겠다. 모든 것은 운명이다. 일단 강행 산행이다. 친구와 나는 선두에서 일단 치고 나간다.

 

그래도 걱정되어 힐끔힐끔 뒤를 본다. 그런데 다행히 여동생과 함께 하는 일행(승안,용섭)이 들이 초등학교 동창생이라 초보 산꾼들을 잘 보호를 하며, 뒤를 따른다. 그런데 문제는 산넘어 산이다.’ 눈이 너무 많이 내린데다 암릉구간이다 보니 얼음위를 걷다시피 한다. 가던길을 멈추고 아이젠을 착용 한다.

 

과정에 슬쩍 외사촌 여동생을 살피니 덩치도 큰데, 힘이 드는지 얼굴이 수수팥떡 해먹다 불낸 사람처럼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얼핏 보면 영락없이 해장술 몇 잔 한 것 같다. 걱정이다. 그 바람에 산행 속도를 한 템포 늦춰 보조를 맞춰 서행 산행이다.

 

느림보 거북이 산행을 하며 가는데 낮은 능선위 군사 작전용 진지에서, 세상에 목로주점을 차려놓고 쪼껍대기술을 판다. 시간은 아직 11시가 채 안되었다. 분위기가 묘하다.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찬 관악산 등산길에 선술집을 만났다. 그러자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지 못한다.’라고 일행들이 해장 한 잔하고 가자고 배낭을 내린다.

 

갈길은 구만리인데, 변수를 만났다. 그렇다고 안된다고 하면, 한 소릴 들을것 같다. 몇 해전만해도 나이 들었다는 소리 들을때 농담으로 스쳐넘겼다. 그런데 정작 환갑나이를 지나니, 꼰댕이 소리가 유쾌하지 않다. 어쩔 수 없이 조껍때기 술 한 잔에 들이키고 나니, 뱃속이 놀랬는지 짜르르 하다.

 

문제는 예상했던 것보다 엄청난 눈이 내리고 있다. 그런데다 산행 코스가 암릉구간이라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한다. 그런데 더 웃기는 일은 조껍대기 해장술에 간땡이가 부었나보다. 암릉위를 요리조리 잘도 뛰다시피 하는데도 겁이 안난다. 오히려 눈보라 입에 받아먹으며 콧노래 산행을 한다.

 

수년간 많은 산행을 했다. 그런데 이날처럼 수도 서울 도심에서 발목을 덮을 정도의 심설산행은 처음이다. 좋다 정말......, 더 좋은건 그 산행길이 늘 내가 함께하고 싶은 마음에 벗들과 함께하기 때문이다.

 

연 주대 정상에 가까워 질 수 록 더 세찬 눈빨이 내린다. 그바람에 위험구간에 설치해놓은 로프에 눈이 얼어, 완전히 얼음 동아줄이 됐다. 자칫 방심하면 큰 낭패를 보게 될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겁 없이 자신의 생명을 동아줄에 운명을 걸고 매달린 일행들이 대단하다. 남자들은 이해가 되는데, 산행초보, 여자들은 기겁할 일이다.

 

남들보다 덩치큰 외사촌 동생이 더 걱정이다. 그렇다고 내 체격으론 어쩔 수도 없다. 암릉을 오르는 인파를 기다려 오르다 보니 속도는 거의 거북이 수준이다. 나와 친구가 먼저 올라 일행들에게 전화를 하니 어랍쇼, 통화도 안된다. 그런데 이때다. 동생과 함께한 아우들이 두 여인들을 동반하고 능선위로 올라오는 모습이 보인다. 퓨휴 이제 안심이다. 내 평생 서울 도심 산에 오르면서 이렇게 스릴 산행은 난생처음이다.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찬 관악산 암릉을 오른, 일행들 몰골이 말이 아니다. 땀과, 눈빨이 녹아내려 범벅이 되어 보기좀 뭣할 정도다. 생과 사의 마치 사선을 넘은 자랑스런 탐험대 모습으로 연주대 정상에 올랐다.

 

정상에 오르니 눈빨은 더 휘날린다. 얼마나 많이 쏟아지는지 카메라가 누수될 것 같아 사진을 찍을 수 없을 정도다. 체력소모가 심했다. 이 위기를 극복하려면 먼저 일행들에게 요기를 시켜야 한다. 서둘러 식사할 장소를 찾는다. 어렵게 소나무 밑을 다가서니 벌써 다른 산꾼들이 엉거주춤한 모습으로 식사를 하고 있다.

 

어쩔 수 없이 우리는 그분들게 자리를 일부 양보 받어, 걸망에 챙겨간 간식으로 허기진 배를 보충한다. 그러자 다소 몸이 풀리는데 갑자기 일행들이 단체로 제안을 한다. 남북종주산행은 어려우니 연주암 거쳐 과천으로 하산하자고......, 그런데 리더인 내 입장에선 자존심이 허락지 않는다.

 

새해 첫 좋은 사람들과의 산행인데 포기라니, 말도 안되는 소리다. 나혼자 맘속으로 땀흘리지 않고 고생하지 않고 얻는 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아우들과 섣불리 마음을 열어 이야기했다간 마음약한 내가 그들의 구애 수렁에 빠져들것이 뻔하다. 에라 모르겠다. 이럴땐 무언의 행동이 최후의 선택이다.

 

군말없이 나 혼자 연주암 능선을 따라 성큼성큼 앞서 나간다. 그러자 일행들도 어떨 수 없이 뒤를 따른다. 아마 속으론 저 형 고집 더럽다며 따라올것이 뻔하다. 그러나 춘향이 한번 먹은 맘 변할 수 없는 것처럼’, 나도 한번 먹은 관악산 남부능선 종주 산행계획을 중도 포기 한다는 것은 내 사전엔 없는 일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등산객들이 대부분 산행을 포기하고 하산을 한다. 그 모습을 보니 강행을 주장한 입장에서 걱정도 된다. 이유는 솔직히 관악산 남북종주 코스를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알고있는 상식이라면 한국의 산하 산행기 게시판에서 남북종한 선답자들의 산행기를 참고했을 뿐이다.

 

그런데 한치앞을 내다 볼 수 없을 정도로 눈이 내리니 난망하다. 그런데다 안양쪽에서 연주대 방향으로 오는 사람들은 한 두 명 정도는 보여도, 우리처럼 종주 하기위해 안양 유원지 방향으로 산행을 하는 산꾼들 모습은 전무후무 하다. 무엇보다도 걱정인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눈발이 더 거세 지더니, 방금 앞으로 간 사람들 발자국도 보이지 않을 정도다.

 

그러다 보니 눈에 홀린 사람들처럼 방향을 잡지 못하고, 왔다리 갔다리 알바 산행이 이어진다. 그런데도 일행들은 겁도 안나는지 아니면 나를 믿기 때문인지, 한명도 당황하거나 허둥대지 않고 오히려 눈 산행을 즐기는 표정이다.

 

점심은 하산해서 안양 유원지에서 먹기로 했다. 때문에 모두들 점심을 안싸 왔다. 다만 나만 만약의 경우를 생각해 김밥 두줄을 챙겼는데, 어쩔 수 없이 가던길을 멈추고 그 김밥을 나누어 먹는다. 그러다 보니 일면에선 아침 해장결에 조겁때기 술 한잔찍 먹은 것이, 오히려 추위속 악천우 산행에 도움이 된다.

 

고생 끝에 낙이있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법이란 말이 있듯이 고생고생 개고생하며 이어진 관악산남 북종주산행도 정확이 7시간 반만에 산행을 모두 마쳤다. 그리고 귀가를 위해 반시간여 안양시내로 향하다, 오수 5시넘어

 

이렇게해서 우리들의 관악산 남부능선 종주 산행은 정확하게 7:30분 동안의 눈과의 사투를하며 아름다운 추억의 이름으로 산행을 끝내게되고 다시 30여분간을 전철을 타기위하여 안양 시내 방향으로 걸어 나오다, 오후 5시 지나 점심으로 꽁보리밥에 두루치기 찌게를 안주 삼어 몇 잔의 이별주를 나눈다.

 

그러자 일행들이 이구동성 한목소리로 한창 눈 쏟아져 내릴땐, 혹사나 하는 생각에 두렵기도 하였으나 완주 하고나니 두고두고 잊지못할 추억을 간직하게 되었다고 서로 격려 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 이것으로 2003 송년 산행을 마무리 하고, 2004 새해 만복을 기원하며 '먼동회' 산행을 맺는다.

 

관악산(높이 629m) 위치 서울특별시.경기도 과천시,안양시

 

관악산(높이 629m)은 1973년 관악구가 영등포구에서 분구되면서, 명산으로서 산 이름이 구의 명칭이 되어 관악구의 상징이자 자랑이 되고 있으며, 관악구 문화유산의 대부분이 관악산에서 비롯 되었다. 1968년에 건설부 고시 제34호로 도시자연공원으로 지정 되었으며 오늘날에는 수많은 서울 시민들이 즐겨 찾는 휴식처로 서울의 명소가 되었다.

 

합천 가야산과 산세가 더불어 석화성(石火星·바위가 불꽃이 타오르는 듯한 형상) 형상으로 꼽히는 관악산(冠岳山)은 서울 남부(관악구, 금천구)와 경기(과천시, 안양시)를 가르는 산줄기로, 대도시와 위성도시를 끼고 있어 찾는 이들이 매우 많고 그로 인해 등산로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여러 가닥으로 나 있다.

 

곳곳에 드러난 암봉들이 깊은 골짜기와 어울려 험준한 산세를 이루고 있는 관악산은 산의 규모가 그다지 크지 않고 도심에서 가까워 누구나 하루 일정으로 산에 오를 수 있는데 봄에는 관악산 입구 쪽으로 벚꽃이 만발하고, 철쭉이 필 때는 철쭉제가 열리기도 한다. 봄철에 무리지어 피는 철쭉꽃과 여름의 짙은 녹음과, 계곡 깊은 곳에 동폭포, 서폭포의 물소리가 장엄하고 가을에는 단풍, 겨울에는 설경이 명산 관악의 면모를 자랑하고 있다.

 

관악산 정상에 아슬아슬한 벼랑 위에 자리잡고 있는 연주대(戀主臺)는 관악산의 모든 등산로가 집결하는 곳이다. 관악산의 기암 절벽 위에 석축을 쌓아 터를 마련하고 지은 이 암자는, 원래 신라의 승려 의상대사가 신라 문무왕 17년(677) 이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관악사를 건립할 때 함게 건립한 것으로 의상대라 불렀다고 한다. 관악사와 의상대는 연주암과 연주대로 이름이 바뀌었는데, 그 내력에 대해서 두 가지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하나는 조선 개국 후 고려에 대한 연민을 간직한 사람들이 이곳에 들러 개성을 바라보며 고려의 충신,열사와 망해버린 왕조를 연모했다고 하여 연주대라 불렀다는 이야기고, 또 하나는 조선 태종의 첫 번째 왕자인 양녕대군과 두 번째 왕자인 효령대군이 왕위 계승에서 멀어진 뒤 방랑하다가 이곳에 올라 왕위에 대한 미련과 동경의 심정을 담아 왕궁을 바라보았다 하여 연주대라 이름지었다는 이야기다. 두 이야기 모두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내용인데, 이것은 연주대의 주변 경관이 워낙 뛰어난 절경인데다 한 눈에 멀리까지 내려다 볼 수 있는 위치여서 붙여진 전설로 생각된다. 현재의 건물은 세 평 남짓한 맛배지붕으로 조선 후기에 지어진 것을 최근에 해체,복원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