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8. 9. 17:12ㆍ☎시작법논리와전략☎
1. 상징의 정의와 기능
상징(象徵 symbol)의 “symbol"은 ”조립한다‘, “짜맞추다’라는 어의를 가지는데, 그리스어의 symbllein에서 유래한다. 그리스어의 symbolon은 부호(mark), 증표(token), 기호(sign)라는 뜻이다. 이런 어원적 의미로 보면 ”대신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우리 국어사전에는 ”어떤 관념이나 사상을 구체적인 사물이나 심상을 통해 암시하는 일, 또는 그 사물이나 심상“이라고 정의된다. 곧 그 자체로서 다른 것을 대표하는 사물일체를 상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상징은 특정한 숫자, 분자식, 기하학의 도표나 도형 등 어떤 관념이나 생각, 형상 등을 대표하는 기호를 말하고, 혹은 국기, 상표, 학교나 단체의 배지, 십자가, 교통신호 등 같은 제도권 집단에서 쓰는 제도적 상징이 있다.
문학창작에서 상징은 위의 기호적 상징이나 제도적 상징도 가져다 쓰지만 특히 문학적 상징의 사용에 깊은 관심을 갖는다. 상징은 그것을 매개로 하여 다른 것을 알게 하는 작용을 가진 것으로서, 작가들에 의해 부여된 고도의 정신 작용의 하나로 쓰여지기 때문이다.
문학적 상징은 우선 심상(이미지)의 일종으로 본다. 그러나 일반적 심상이 구체적, 감각적 사물을 환기시키는 낱말이라면 상징은 그런 사물이 가리키는 또는 암시하는 또 다른 영역을 나타낸다. 가령 '장미꽃'이라는 낱말이 하나의 구체적이고 감각적 인상을 시리는 데에서 그친다면 그것은 심상이고, 이 장미꽃이라는 심상이 '정열'같은 것을 암시하면 상징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곧 내적 상태의 '정열'을 외적 기호화로서 '장미꽃'을 상징이라고 하며, 이를 바꾸어 말하면 '불가시적인 것을 암시하는 가시적인 상징이라고 하며, 이를 바꾸어 말하면 '불가시적인 것을 아시하는 가시적인 상징'이라고 말할 수 있다. 물론 여기에는 동일성의 원리가 작동된다.
여기에서 불가시적인 것은 원관념이고, 가시적인 것은 보조관념이 된다. 비유에 견주하면 상징은 비유에서 원관념을 떼어버리고 보조관념만 남아있는 형태이다. 가령 "조국의 하늘에 비둘기는 날아왔다"라고 할 대 '비둘기'란 보조관념은 '평화'라는 원관념을 암시할 뿐 문면에 나타나지 않고 불가시적으로 숨어 있는 것이다.
이렇게 상징은 원관념이 드러나지 않은 형태이다. 그런데 상징은 어떤 사물을 이해시키는 작용을 한다. 가령 빨간 신호등은 건너가지 말라는 것을 의미하고, 초록색이나 흰 십자가는 병원이 있음을 의미한다. 또 상징은 사상이나 욕구를 가리키는 작용을 한다.
2. 상징의 성격
1) 동일성(同一性)의 상징
상징에는 비유와는 다른 도 하나의 동일성의 원리가 적용된다. 우선 상징은 그 본질상 원관념과 보조관념이 하나의 완전한 결합체로 "조립한다. 짜 맞춘다" 와 같이 일체성을 이룬다.
비유에서 원관념과 보조관념은 이질적이면서도 유사성을 근거로 하여 결합된다. 따라서 유사성으로써 차이를 표현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상징은 그 본질상 원관념과 보조관념이 하나의 완전한 결합체가 된다. 다만 원관념이 숨고 보조관념만 작품에 나타나는 것이다.
바퀴는 정직하다
어느 바퀴살 하나가 꾀부리지 않고
있는 힘 다해 제 길을 간다
진창이 있어도
목 노라는 칼날이 있어도
두려워 않고 간다
굴러가는 바퀴를 보고 있으면
주춤거리는 나의 세월도
용서된다
바퀴처럼 향할 용기가 아직은
남아있기 때문이다
맹문재 <바퀴>전문
위 맹문재의 시에서 바퀴는 일차적으로 '용기'를 상징한다. 용기와 동질의 것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정직성'이나 '진정성'도 내포한다. 나아가 바퀴는 돌고 돌아 원점으로 돌아가는 원(圓)의 구체적인 모습이 되기도 한다. 가장 철학적이고 가장 원초적인 것을 의미하는 다의성도 드러낸다.
눈은 살아 있다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
마당 위에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詩人이여 기침을 하자
눈 위에 대고 기침을 하자
눈더러 보라고 마음 놓고 마음 놓고
기침을 하자
<중략>
기침을 하자
젊은 詩人이여 기침을 하자
눈을 바라보며
밤새도록 고인 가슴의 가래라도
마음껏 뱉자
김수영 <눈> 부분
김수영의 <눈>은 '젊은 詩人'에게 말을 건내는 청유형의 대화체 형식을 띠고 있다. 화자는 아침에 아직 녹지 않은 눈에서 그 눈이 살아 있다는 생명을 느낀다. 화자가 기침을 하고 싶은 이 욕망은 바로 살아 있는 하얀 눈으로부터 촉발된다. 이 시에서 '눈'은 '내리는 눈[雪]과 '사람의 눈'[目]이라는 중의적인 표현으로도 이해된다. '내리는 눈'은 순수에 대한 지향의 의미이다. '사람의 눈'은 현실에 대한 비판적 시선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떠올릴 수 잇다. 기침은 가슴에 고인 가래를 뱉는 행위를 통해 인갓의 속물성, 허위성, 비굴성을 깨끗하게 씻어내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눈을 향하여 기침을 하는ㄴ 행위는 비굴하고 속물적인 가식의 일상 속에서 잃어버린 자신의 영혼과 육체를 되찾는 행위이다. 또한 이는 눈의 순수함. 차거움, 신선함을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세계의 더러움과 속된 것을 씻어내자 라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2) 다의성(多義性)의 상징
상징의 반쯤 드러냄의 속성 때문에 독자마다 상징적 이미지에 대한 반응은 다양해 질 수 밖에 없다. 다시 말해서 하나의 상징은 여러개의 원관념을 환기할 수 있다. 상징은 여러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알레고리와 구별된다. 알레고리는 원관념과 보조관념의 관계가 1:1이지만, 상징의 그것은 多 : 1이다.
새는 울어
뜻을 만들지 않고
지어서 교태로
사랑을 가식하지 않는다
포수는 한 덩이 납으로
그 순수를 겨냥하지만
매냥 쏘는 것은
피에 젖은 한 마리 傷한 새에 지나지 않는다.
박남수 <새> 부분
위 시 <새는 문명 비판적인 자세로 자연과 서정의 파괴를 따끔하게 고발한다. 새는 포수의 총부리에 희생되기도 하지만 새의 순수함을 어쩌지 못한다. 인간의 비정함이 삶의 순수성을 어떻게 파괴하는지 날카롭게 지적한다. 여기에서 '새'는 자연의 순수성을, 총은 문명의 잔인상과 야만성을 상진하는 이미지이다.
혁명은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돕는
의사와 같은 것이다
혁명은
핀셋이 필요하지 않을 때는
그것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노동자들이 핀셋을 요구할 때는
망설임 없이 사용한다
체 게바라 <핀셋> 부분
체 게바라의 <핀셋>은 핀셋이 가지고 있는 성질, 곧 딱 필요한 부위만을 골라내는 성질, 가령 불의나 부정, 억압에 대항하기 위해 솎아내는 대상으로서의 상징은 다의성을 지닌다.
노향림의 <배꼽>이란 시에도 상징의 다의성이 드러난다. '배꼽'은 생명의 성소, 혹은 고향, 본래면목(本來面目) 등을 상징하고 있다
3) 암시성(暗示性)의 상징
상징의 존재 양식이 본래적으로 원관념이 숨고 보조관념만 제시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에 상징은 감춤(침묵)과 드러냄(담화)의 양면성을 필연적으로 지닌다. 암시성은 무언가 감추려 하고 동시에 드러내는 이중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시의 반투명성(translucence)을 드러내는 한 요소가 되고 있다. 하나의 동양적 의미의 여백을 가진 드러냄이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김수영 <풀> 부분
김수영은 노출의 시인이다. 김춘수와 비교하여 춘수의 시는 감추려 하는데 (감추려 하는 사실까지를 감춘다) 반해서 수영의 시는 '벗기려'한다(벗기려는 사실까지 벗긴다). 그는 그의 체험 세계를 시적으로 변용시키기보다 야유, 풍자, 탄식의 형식으로 드러내는 시인이다. 그러나 시 <풀>은 이 드러냄의 시인을 배반한다. 여기서 드러냄은 절재되어 있다. 아니 감춤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 조화는 이 작품의 리듬이 빠른 템포로 흐르면서 역동성과 주술성의 어떤 오묘한 맛을 내고 잇는 데서 발생한다. 특히 풀이 바람보다 빨리 눕고, 일어난다는 반복되는 논리적 모순성과 융합되어 이 시의 리듬은 한층 짙은 주술성을 느끼게 한다. 이 주술의 리듬 속에 풀은 민중을 감추고, 바람은 그 민중이 살고 있는 실존적 상황을 감추고 있는 상징의 의미를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나아가 <풀>에서 노래되는 중심 이미지느 '풀'과 '바람'이다. 이 두 이미지는 시 속에서 대립적인 관계에 있다. 이렇게 두 이미지가 대립적인 관계에 있는다는 점 외에 시인은 '풀'이 무엇을 상징하며, '바람'이 무엇을 상징하는가에 대해 어떤 언급도 하지 않는다. 그 어떤 언급이 없는 이런 우연적 상징의 시는 우리에게 상상과 감동을 준다. 그래서 이런 시의 구성은 상징과 상징 사이에 구조적 역동성이 드러나야 한다. '비를 몰아오는 바람 / 풀'(1연), '늦게 움직이난 바람 / 빠르게 움직이는 풀'(2연0, '빨리 눕고 늦게 일어나는 바람 / 빨리 일어나는 풀, 빨리 울고 늦게 웃는 바람 / 늦게 울고 빨리 웃는 풀'(3연)의 관계로 나타난다.
4) 문맥성(文脈性)의 상징
일반적인 심상이나 비유는 한편의 시에서 부분에 작용하는 기능을 가진데 반하여, 상징은 작품 전체에 작용하는 기능을 가진다. 상징은 전후 문맥(文脈)에 의존해서 탄생되는 것이다.
무엇에 반항하듯
불끈 쥔 두 주먹들이 무섭다.
그녀의 젓무덤처럼 익어
색만 쓰는 그 음탕함도 무섭다
꺽어버릴 수가 없다.
모르는 척 팽개칠 수도 없다
아프다 너무 아프다
맞붙어 속삭이는
저 노오란 비밀의 이야기가 아프다
타오르는 불길 속에
마구 벗어던진
그녀의 속옷같은 잎들의 눈짓
오-눈짓이 무섭다
저들은 무엇을 외칠 것만 같다
불끈 쥔 주먹을 휘두르며
일어설 것만 같다
저들은 무엇을 외칠 것만 같다
무섭다 세상 모든 것이 무섭다
익을대로 익은 내 생각의
빛깔도 무섭다.
정의홍 <참외> 전문
착상이 매우 기발하고 흥미롭다. 시인은 매우 효과적으로 급박한 호흡과 격정적 어조를 구사하여 독자에게 어떤 극한상황의 위기감을 환기시키고 있다. "불끈 쥔 주먹", "젖무덤", "그녀의 속옷" 등 비유적인 이미지들은 단독으로서가 아니라 작품 전체의 문맥 속에서만 비로서 이런 위기감이 탄생 되는 것이다.
3. 알레고리(Allegory)와 상징
알레고리란 비유법의 일종으로 풍유(諷諭)로도 번역된다. 표면적인 이야기나 묘사 뒤에 어떤 정신적인 혹은 도덕적인 뜻이 암시되어 있는 비유법이다. 상징과 같이 알레고리라는 수사상 원관념이 숨어있다. 하지만 상징과 알레고리는 다른 점이 있다. 상징이 원관념과 보조관념의 관계가 통상 1 : 多의 관계라면 알레고리는 1:1의 관계를 형성한다는 점이다.
『장자』(莊子) 알레고리의 보물창고이다. 또 성경에도 많은 알레고리가 등장한다. 가령 "부 자가 천국에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 속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와 같은 말씀에서도 드러난다. 특히 알레고리는 역사적, 시대적 삶의 의미를 효과적으로 표현하는데 사용된다. 미적 가치보다는 당대의 삶의 문제에 더 무거운 가치를 둔다. 알레고리의 가치는 삶의 가치다. 그만큼 알레고리는 볼래 교훈적 성격을 띠고 있다.
껍데기는 가라.
四月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대기는 가라.
東學年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중략>
껍대기는 가라.
漢拏에서 白頭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신동엽 <껍데기는 가라> 부분
이 작품의 중심 이미지인 "껍데기"는 '역사의 부조리와 허구성'의 알레고리다. 주도적 이미지로써 시인은 민족 주체성의 순수성을 절규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 작품에서 역사를 보고 이 역사 속의 삶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알게 된다. 이렇게 알레고리를 통한 시의 가치는 삶의 가치이며 윤리적 가치이다.
마지막 연은 이런 상징적 의미를 가장 투명하게 보여주는 부분이다. 즉 우리의 국토를 "한라에서 백두까지"라고 말함으로써 분단의 비극적 현실 상황을 정면에서 다루고 있다. 이것은 동서 냉전의 부산물로 시작된 분단의 비극이 결국은 동족 간의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거쳐 고착화되었음을 상기 시켜주는 한편 반드시 극복해야 할 민족적 과제임을 일깨워 주는 것이다. 아울러 "모오든 쇠붙이"라는 표현을 통해 현실 상황을 힘의 논리를 앞세운 무력으로 규정함으로써 4월 혁명을 무너뜨리고 등장한 군사 독재 정권을 비판하는 한편,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은 참다운 의미의 '인간 세상'이 도래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노래하고 있다.
이 시는 시대적 상황 앞에서 순수의 열정으로 이런 현실을 강하게 거부하고 있는 참여시이다. 현재 있는 것에 대한 강한 거부는 미래에 있어야 할것, 즉 정의, 자유, 민주에 대한 강한 신념으로 표출된다. 이렇게 사상의 모든 사물이 확정된 정신적 의미를 갖추고 있다고 믿었던 과거에는 알레고리를 즐겨 사용했다. 하지만 복잡해진 현대 사회에서는 막연하고 불확실하고 암시적인 것에 가치를 느껴 상징을 즐겨 사용한다.
내 詩에 대하여 의아해하는 구시대의 독자 놈들에게→ 차렷, 열중쉬엇, 차렷,
이 좆만한 놈들이……
차렷, 열중쉬엇, 정신차렷, 차렷, ○○, 차렷, 헤쳐모엿!
이 좃만한 놈들이……
헤쳐모엿,
(야 이 좃만한 놈들아, 느네들정말 그 따위로들밖에 정신 못 차리겠어, 엉?)
차렷, 열중쉬엇, 차렷, 열중쉬엇, 차렷……
박남철 <독자놈들 길들이기> 전문
위 시는 독자들에게 가차 없는 욕설과 야유를 퍼붓고 있다. 하지만 시인이 독자들을 향하여 욕설을 하고 우롱하는 것이 아니다. 이 시의 알레고리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시인에겐 분노를 느낄 것이고 자존심이 상할 것이다. 이 시는 1980년대 신군부 정치에 대한 저항의 표시이다. 그러니가 국민을 마치 군인들을 훈련시키듯이 길들이려는 정권에 대해 저항의식으로 풍자하려는 의도가 강하게 깔려 잇는 굿이다. 군대에서 쓰이는 용어 "좆만한놈들이"라는 속어가 바로 알레고리 역할을 한다.
알레고리에 의한 시는 확장된 비유로서 1:1의 관계를 갖는 단순성의 시라고 했다. 그래서 작품 밖의 비문학적 의미가 명백하게 작품에 간섭한다. 단테의 <新曲>, 번연의 <천로역정>, 그리고 <이솝우화>, 오웰의 <동물농장>, 김만중의 <구운몽> 등이 알레고리의 대표작이다. 나아가 <성경>의 숫자 12,그리고 13도 알레고리이다. 김지하의 <오적>이 의미하는 대상도 알레고리라고 할 수 있다.
4. 상징의 종류
1)개인적 상징(Personal symbol)
시인이 독창적으로 만들어 낸 상징으로 참신한 문학적 효과를 나타내므로 창조적 상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하나의 작품속에서 단일한 상징이나 어떤 시인이 자기의 여러 작품에서 특수한 의미로 즐겨 사용하는 상징이다. 개인적 상징은 한 시인의 문학적 상징으로 사용되며 전후 문맥 속에서 필연적으로 어떤 의미를 암시하게 되고 또 그 의미는 개인의 수용 각도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 모호성을 지닌다.
늦은 밤에 모여 앉았습니다
수박이 하나 놓여 있고요
어둠 속에서 뒤척이는 잎사귀,
잠못드는 우리 영혼입니다
발갛게 익은 속살을 베어물 때마다
흰 이빨이 무거워지는 여름 밤
얼마나 세월이 더 흘러야 할까요
넓고 둥근 잎사귀들이 펴져나가
다시 뿌리의 상처를 어루만질 때까지는요
오랜 헤어짐을 위하여
둥글게 모여앉은 이 자들이
아버지, 바로 당신의 식구들입니다
구광본 <식구> 전문
뒷 연의 "넓고 둥근 잎사귀들이 펴져나가"에서 '잎사귀'는 식구들의 '영혼'을 의미하는 상징, 곧 개인적 상징으로 쓰여진 것이다. 여름밤 큰 수박 한 통을 평상 가운데 놓고 식구들이 둘러앉는 것만으로 정겨운 풍경이다. 그 "어둠 속에서 뒤척이는 잎사귀"인 "잠못드는 영혼"들은 더운 줄 모르고 삶의 위안을 받는다.
눈보다도 먼저
겨울에 비가 오고 있었다
바다는 가라앉고
바다가 있던 자리에
軍艦이 한척 닻을 내리고 있었다
<중략>
바다는 가라앉고
바다가 없는 海岸線을
한 사나이가 이리로 오고 있었다
한쪽 손에 죽은 바다를 들고 있었다
김춘수<處容斷章> 1의 Ⅳ 부분
김춘수는 바다라는 이미지를 많이 사용한다. 그의 바다는 우리가 공유할 수 있는 바다가 아니다. 그 시인 나름의 어떤 특수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바다다. 그는 말한다. "바다는 炳이고, 죽음이기도 하지만, 바다는 도한 회복이고 부활이기도 하다. 바다는 내 幼年이고, 바다는 또한 내 무덤이다" 라고 했다. 그러니까 김춘수의 시에서 '바다'라는 상징은 작품마다 특수하게 의미를 부여하여 사용한다.
개인적 상징은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되는 한용운의 시 <님의 침묵>에서 의 '님'의 이미지, 인간의 본질적인 열망을 암시하는 유치환의 시 <깃발>에서 '깃발'의 이미지 등이 이에 속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개인적 상징은 보편성이 없는 만큼 난해해지기 마련이다.
2) 대중적 상징(public symbol)
시인은 사적(私的)으로 특수한 의미를 가지는 개인적 상징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타인과도 공유할 수 있는 보편적인 상징도 쓰기도 한다. 여기에서 시인의 시적 개성은 확대되어 객관서응ㄹ 띤다. '인습적 상징, 제도적 장징, 자연적 상징, 알레고리성 상징, 문화적 '전통의 상징'이라 불리는 것이 모두 이에 포함된다. 가련 '하늘'을 '신성한것', '별'을 '이상', 벽'을 '질곡'으로 생각하는 것이 자연적인 상징이다. 그리고 국기나 상표, 휘장 등도 어떤 사상이나 이념을 표상하는데, 이러한 제도와 관련된 사람에게만 의미가 있는 상징이 대중적 상징이다.
쫓아 오던 햇빛인데
지금 敎會堂 꼭대기
十字架에 걸리었습니다.
尖塔이 저렇게도 높은데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
종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데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라다가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처럼
十字架 許諾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윤동주 <十字架> 전문
윤동주의 시에서 '十字架'는 예수, 기독교를 상징한다. 곧 처음 1연에서 쓰인 "十字架에 걸리었습니다"의 '십자가'는 일반적인 뜻을 지니는 이른바 대중적 상징, 제도적인 상징이다. 이에 비하여, 3연에서의 "十字架가 許諾 된다면"의 '십자가'는 윤동주의 개인적 사상을 반영한다. 곧 '역사의 부름에 응해서 스스로를 희생'하겠다는 식민지 청년인 윤동주 자신의 민족의식과 자의식에 관계된다. 또한 교회당의 '십자가'가 '기독교적 속죄와 희생'을 드러내는 것은 인습적 상징에 해단된다.
3) 원형적 상징(archetypal symbol)
원형은 역사나 문학, 종교, 풍습 등에서 수없이 되풀이 된 이미지나 모티프 혹은 테마이다. 동시게 그것은 인류에게 곡 같거나 유사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런 반복성과 동일성이 원형적 상징의 분질적 속성이다. 문학에 있어서 원형의 연구는 비교인류학과 심층심리학의 이론으로부터 도움을 받고 있다.
(1) 원형적 이미지
모든 인간에게 유사한 의미나 반응을 환기하는 심상으로, 개별적 의미나 정서를 초월한다. 가령 역사와 전통이 다른 어느 나라에서도 '장미'는 애인이나 애인의 아름다움 혹은 사랑을 나타내는 말로 계속 사용되어 오고 있다. 또 '거울'은 노인의 이미지로, '봄'은 청춘의 이미지로 사용되고 있다. 대표적인 질료로 물, 불, 흙, 공기 이미지의 경우 원형적 상징으로 굳어져 모든 인간들에게 유사한 의미와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제삿날 큰집에 모이는 불빛도 불빛이지만
해질녘 울음이 타는 가을江을 보것네
저것 봐, 저것 봐
네보담도 내보담도
그 기쁜 첫사랑 산골 물소리가 사라지고
그 다음 사랑 끝에 생긴 울음까지 녹아나고
이제는 미칠 일 하나로 바다에 와가는
소리 죽은 가을江을 처음 보것네
박재삼 <울음이 타는 江> 부분
위 시에 등장하는 '불빛, 물, 강, 바다'는 원형적 이미지다. 불빛은 창조,, 격정을 상징하며, 물은 탄생, 죽음, 소생, 정화와 속죄, 풍요와 성장의 상징이며, 융에 의하면 무의식의 가장 일반적인 상징이다. 바다는 모든 生의 어머니, 영혼의 신비와 무한성, 죽음과 재생, 무궁과 영원, 무의식 등을 상징한다. 강(江)도 역시 죽음과 재생, 시간의 영원한 흐름, 생의 순환의 변화상등을 상징한다.
(2) 원형적 모티브
원형비평에서의 모티프(motif)는 호소(話素)라고 변역되는데, 잊혀지지 않는 이야기의 알맹이(이미지, 사건, 행위)를 가리킨다. 따라서 작중 인물의 행위를 유발하는 원인인 동기(動機) 또는 동기부여(動機附與)와는 구별된다. 이 모티프의 원형으로서 성년식(成年式 inutif), 통과제의(通過祭儀, rites of passagoat)의식 등이 있다.
나는 왕이로서이다. 나는 왕이로소이다. 어머니의 가장 어여쁜 아들
나는 왕이로소이다. 가장 가난한 농군의 아들로서...
그러나 시왕전(十王展)에서도 쫒기어 난 눈물의 왕이로소이다.
<이하생략>
홍사용 ,나는 王이로소이다> 부분
홍사용의 <나는 王이로소이다>는 한 인간의 성장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인간은 요람기에서부터 죽을 때까지 자신에게 의의 있는 타인과의 끝없는 만남 속에서 자기의 전체성(identiy)을 형성해 간다. 개인의 아이텐티티의 형성은 세계인식(世界認識)과 자기인식(自己認識)에서 이루어진다. 이것은 인류학적 개녀의 initition(成年式, 入社式)이다. 바로 개인의 성장과 정은 아이텐티티의 형성 과정이요. 융의 용어로 말하자면 개별화 과정이기도 하다.
원시적인 문화의 가장 중요한 의식(儀式)은 유아기로부터 성인에 이르기까지, 그리하여 성인사회의 충분한 구성원이 될 대까지 여러 과정을 중심으로 집중되어 있다. 초심자의 자구력 테스트, 종족에 대한 충성심, 성인사회의 힘의 유지를 위한 제반 의식 등이 통과제의(通過祭儀)이다.
속죄양(贖罪羊)의 모티프는 예수가 모든 인간의 죄를 뒤집어쓰고 희생됨으로써 인류에게 구원을 가져다 준 것처럼 식민지 시대의 비극적 현실을 자기희생으로 초극하려는 시인의 승화된 의지를 상징하고 있는 시에서 이를 엿볼 수 있다.
(3) 융(C,G, Jung)의 원형
융은 인간의 정신 구조에서 원형을 찾았다. 그에 의하면 인간이 타고 난 정신의 세 가지 구성 요소는 그림자(shadow), 영혼(soul), 탈(persona)이다.
그림자는 무의식 자아의 어두운 측면이고, 영혼은 인간의 내적 인격, 내적 태도로서 인간이 자신의 내부세계와의 관계를 맺는 자아의 한 측면이다. 이것은 다시 애니마(anoma)와 애미무스(animus)로 양분된다. 탈은 인간의 외적 인격, 외적 태도로서 외부세계와 관계를 맺는 자아의 한 측면이다.
아래의 시는 자아의 어두운 측면으로 shadow가 작품에 투영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식민지시대의 유치환과 이육사 시 등 몇몇 시인을 제외하고 대개 여성을 화자로 내세우거나, 여성적 발상법을 보여주고 있는 데 이들의 시에서 애니마가 작품에 투영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고향에 돌아온 날 밤에
내 白骨이 따라와 한 방에 누웠다.
어둔 방은 宇宙로 通하고
하늘가에선가 소리처럼 바람이 불어온다.
어둠 속에서 곱게 風化作用하는
白骨을 들여다 보며
눈물짓는 것이 내가 우는 것이냐
백골이 우는 것이냐
아름다운 魂이 우는 것이냐
志操 높은 개는
밤을 세워 어둠을 짖는다
윤동주 <또 다른 고향> 부분
윤동주의 시에서 어둠을 원형적 의미에서 혼돈, 악, 우울의 의미로, 바람을 인식의 의미로 추정한다면, 어둠과 바람이 결합한 시적 배경은 '혼돈, 악 우울의 인식'으로 해석할 수 잇다. 여기에서 "白骨"은 그림자를 상징하는 원형적 이미지다. 반면에 "아름다운 魂"은 영혼 도는 애니마의 원형을 상징하고 있으며, 話者인 '나'는 탈의 원형을 상징하고 있다.
5. 상징적 표현의 방법
1) 작품 전체가 하나의 상징을 이루는 경우
이 유형의 시에서는 제목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런 유형의 시를 지을 경우 지나치게 애매하고 무분별한 개인적 상징의 덩어리를 만든 나머지, 그 작품이 상징적 여운을 주는 작품이 아니라 그저 난해하기만 한 작 작품이 되어버리지 않도록 조심할 일이다. 상징과 비유의 차이가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 전체성과 부분성에 차이가 있다고 할 대, 작품 전체가 하나의 상징을 이루는 유형으로 시를 창작해 보는 훈련은 가장 중요하면서 효과적인 습작 방법이다.
공중에 떠나니는
저기 저 새요
네 몸에는 털 있고 깃이 있지
밭에는 밭곡식
논에는 물벼
눌하게 일거서 수그러졌네
禁山 지나 적유령
넘어선다
짐 싫은 저 나귀는 너 왜 넘니
김소월 <옷과 밥의 자유> 전문
위 시는 김소월 자신의 현실인식을 보여준 시인데, 시 전체가 상징을 이루고 있다. 곧 일제치하에서 자유를 빼앗기고 살아가는 우리 민족의 슬픈 현실을 "네 몸에는 털 있고 깃이 있지"라는 표현에 담아내고 있다. 그리고 "짐실은 저 나귀"에서 보듯 우리 민족은 구속된 상태, 고난의상태에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따라서 시적 자아의 열망은 "털이 있고 깃이 있는 새"에 대한 부러움을 통해 잘 나타나고 잇다. 결국 이 시는 '새', '곡식', '나귀'를 바라보는 관찰저로서 등장하는 시적 화자의 "옷과 밥과 자유"를 상실한 절망감과 탄식을 그려내고 있다. 시인은 우회적이고 간접적인 표현을 통해 '새'에서 '옷'을, '곡식'에서 '밥'을 '나귀'에서 '자유'를 유추시키는 의도적인 구성 방법을 취하고 있다.
映畵가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
일제히 일어나 애국가를 경청한다
삼철리 화려 강산의
을숙도에서 일정한 群을 이루며
갈대숲을 이륙하는 흰 새떼들이
자기들끼리 끼룩거리면서
자기들끼리 낄낄대면서
일렬 이열 삼렬 횡대로 자기들의 세상을
이세상에서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갔으면
하는데 대하나람 대한으로
같이 보전하세로
각각 자기 자리에서 앉는다.주저않는다.
황지우 <새들도 세상을 뜨는 구나> 전문
시인이 바라본 1980년대는 억압과 절망으로 가득한 곳이자 탈피하고 싶은 공간이다. 이 작품은 그러한 현실 인식을 토대로 강압적 현실 상황에 대한 좌절감을 풍자적 수법을 통해 보여 주고 있다. 영화 관람할 대 상영되는 애국가의 가사와 영상에 초점을 두고 패러디한 이 시는 시대와 현실의 왜곡된 면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이 시에서 "흰 새떼들"이 어디론가 날아가는 모습은 생생한 영상의 한 장면으로 제시된다. 그러나 그 이미지 속에는 화자의 숨겨진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가는 새들처럼, 우리도 "한 세상 떼어 메고" 날아가고 싶은 곳은 아마도 이상과 희망의 세계일 것이다. 그러나 다시 각각 자리에 주저앉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현실을 벗어날 수 없음을 암시한다. 따라서 "자기들의 세상"을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가는 새들의 이미지는 이상과 희망을 상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시는 내면적 이상의 열망과 현실적 삶과 갈등을 날카롭게 그려내고 있다.
2) 의도적으로 상징적 의미를 환기시키는 경우
비유와 상징의 차이는 상징이 보다 더 근원적인 사고에 접근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유형의 시를 창작할 경우, 시 쓰는 이는 상징적 사건의 창착보디 시어가 갖는 상징적 의미의 창조와, 그러한 시어가 작품 전체의 흐름 속에서 상징적 재문맥화 작용에 어떻게 기여하는가를 신경 써야 한다. 하나의 시어가 사전적, 일상적 의미로서가 아니라 상징적 의미로 쓰여질 때 재문맥화 작용이 이루어진다. 일상적이고 흔한 소재를 상징적 시어로 승화 시킬 때 오히려 상징의 확산과 상승적 확산 작용이 일어날 수 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대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 <꽃> 부분
이 작품은 전후의 아픔 속에서 실존적 자기 물음이 팽배해 있던 1950년대에 나온 작품이다. 본디 "꽃"이 주는 보편적 의미는 아름다움이나 화려함일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의 꽃'은 존재론적 완성의 의미로 쓰여진 것이다. 꽃이라는 의미망을 벗어나, 다시 말하면 꽃이 갖고 있던 상징적 의미가 전이, 확산을 거쳐 새로운 의미 차원의 생산이 이루어진 것이다. 서정주의 <국화옆에서>도 상징으로 이루어진 좋은 예이다. "국화"는 우리의 고전 시가에서 지조 있고 절재하는 선비의 상징으로 인식되어 왔으나, 이 시에서는 원숙한 40대의 여인으로 상징되고 있다.
이렇게 상징 시어가 고정된 의미를 탈피하여 확산과 상승작용이 일어난시로 황동규의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라든ㄴ가 신동엽의 <껍데기는 가라>에서도 드러난다.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
자전거 유모차 리어카의 바퀴
마차의 바퀴
글러가는 바퀴도 굴리고 싶어진다.
가쁜 언덕 길을 올를 때
자동차 바퀴도 굴리고 싶어진다.
길 속에 모든 것이 안 보이고
보인다. 망가뜨리고 싶어 지는 어란 날도 안 보이고
보이고, 서로 다른 새떼 지저귀던 앞뒷숲이
보이고, 안보이다. 숨찬 공화국이 안 보이고
보인다. 굴리고 싶어진다. 노점에 쌓여 있는 귤,
옹기점에 엎어져 있는 항아리, 둥그렇게 누워 있는 사람들,
모든것 떨어지기 전에 한 번 날으는 길 위로
황동규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 전문
개인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거대한 사회 조류에 대한 시인 의식(意識)이 "바퀴"라는 한 물체를 통하여 삶의 진실성과 당위성을 부각시키고 있다. 굴러가야 할 바퀴처럼 삶의 세계도 당연히 굴러가야 할 것임을 강조하는 시대적 아픔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곧 '바퀴'라는 상징적 물질을 채택하여 '굴리고 싶은 마음(1연)을 드러내고, 나아가 시상을 심화하여 '정체된 모든 것을 굴리고 싶은 마음(2연)으로 이상을 향한 욕망의 운행을 보여준다. 바퀴는 구르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고 그 본성은 역동적인 운동성이다. 그래서 현실 사회에 대한 비판적 의식의 화자는 바퀴가 지닌 암시적이고 상징적인 의미를 통하여 역동적으로 살고 싶어하는 소망의 표현을 의도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3) 심층적 의미구로서 상징이 쓰이는 경우
찔레꽃 하얗게 몸서리
몸서리친다
벌떼들 달려들어 창날 번뜻이는 한낮
더는 한 발짝도 다가설 수 없이,
독기 오른
수없이 엉킨 뿌리들이 잎잎이 떠받친
너 무등(無等)의, 산 하나
가슴 후려치며, 벼락치며 물소리가
오월 하늘 짙푸르게 얼리고 있다.
류재희 <무등에게> 전문
이 시에서 "찔레꽃", "벌떼", "창날", "뿌리", "무등", "오월", "얼리고' 등은 하나의 비유이면서 동시에 상징체계를 이룬다. 그것은 표층적 의미에서는 찔레꽃 피는 오뉴월의 풍경이자 무등산의 정경이다. 찔레꽃 피고 벌떼게 날고 하는 모습이 초여름 자연의 아름다운 정경을 지시하는 듯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경은 "창날 번뜩이는", "독기 오른", "엉킨 뿌리들이 잎잎이 떠받친", "무등의, 산 하나", "후려치며", "오월의 하늘", "얼리고"와 같은 은유와 상징의 연쇄체계에 의해 즉물시로서의 표층적 단순성을 벗어나서 심층적 의미구조를 이루게 된다. 그것은 아마도 "무등"과 "오월"이 상징하는 80년 5월의 광주민주항쟁과 비유적 상징체계를 이루는 것으로 풀이 할 수 있다. 그만큼 이 시는 내용성과 표현성이 탄력 있게 조화도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한 마디로 비유는 기성 의미 영역을 확대하는 방법론에 있다면, 상징은 정신의 내면 구조를 심화하는 방법에 해당한다.
4) 원형적 상징을 응용하는 경우
원형(arhetype)이란 원초적 이미지를 듯하며, 창조적인 환상이 자유롭게 펼쳐지는 곳이면 어디서나 역사과정 속에서 반복되며 가장 보편적인 상징이 될 수 있다. 융(C,G,Jung)에 의하면 원형을 사용하는 시인은 그 자리신의 목소리보다 한결 강한 목소리로 독자에게 호소력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시인들은 잠재의식에 의하여 무의식적으로 원형적 상징들을 사용하며, 또 의식적으로도 원형적 상징의 세계를 작품 속에 투영시켜 시 창작을 시도 한다.
눈은 다시
부드럽게 죽는다
부드럽게 감겨 있는
눈시울의 바다,
얼굴 위에 쌓인
눈의 무게는 보지 못하지만
그의 내면에는
눈이 내리고 있다.
허만하 <데드마스크> 부분
위 시 <데드마스크> 경우, 전체적으로 "눈"의 이미지, "물'이 주된 소재로 사용되고 있다. 물이 갖는 원형적 이미지가 탄생과 소멸 등 순환론적 질서에 따른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 시는 대표적인 원형적인 모티프를 차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일반적으로 원형적 상징이 주는 의미는 다음과 같다.
① 물, 바다. 강 : 창조의 신비, 탄생, 죽음, 부활, 재생, 어머니
② 태양 : 자연의 법칙, 시간과 인생의 경과, 창조력
③ 원 : 전체성, 생산, 풍요로움
④ 대지 : 어머니, 생산, 풍요로움
⑤ 바람 : 호흡, 공포, 영감, 영혼, 정심, 비탄
⑥ 사막 : 정신적 불모, 죽음, 허무, 절망
⑦ 십자가 : 고난, 고통, 시련
⑧ 봄 : 새벽, 탄생
⑨ 여름 : 인생의 절정기, 낙원
⑩ 가을 : 몰락, 비극, 영웅의 패배
⑪ 겨울 : 밤, 혼돈의 세계
⑫ 일출 : 탄생, 창조
⑬ 일몰 : 죽음
⑭ 흑색 : 혼돈, 신비, 미지, 죽음
위의 상징들은 정신분석학의 관점에서는 집단무의식의 산물로 간주된다. 원형은 집단 무의식의 산물이지만 상징 가운데는 개인무의식의 산물, 그것도 성적 무의식의 산물로 상징 처리되는 것들이 있다. 프로이트(S. Freud)에 의하면 꿈의 상징들은 본능적 자아 id가 활동하는 소위 1차과정 사고의 산물이며, 그 의미는 대체로 성적인 것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개인적 상징 혹은 성적 상징을 몇가지 제시해 본다.
① 지팡이, 막대기, 양산, 모자, 뱀 : 남성 성기 형태
② 구멍, 웅덩이, 동굴, 항아리, 호주머니, 배, 숲, 구두, 슬리펴 : 여성 성기 형태
③ 수도꼭지, 물뿌리개, 사프펜슬, 열쇠 : 남성 성기 기능
④ 장롱, 난로, 방, 문, 입구, 입, 달팽이, 조개, ; 여성 성기
⑤ 사과, 복숭아 : 여성의 유방
⑥ 피아노 연주, 나무 뽑기, 이빠지기 : 자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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