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5. 15. 16:30ㆍ☎박동규교수문학실☎
[359~380] 제3장 기행문~ 3) 긴장감과 힘이 담긴 글이어야 한다
제3장 기행문
1. 기행문의 성격
1) 서술의 초점이 분명해야 한다
서사적 문장 중에서 기행문은 생활적인 멋을 가진 글의 하나이다. 일반적으로 서간문이 일정한 상대를 향한 글이라면, 기행문은 자신의 체험을 중심으로 다중적 대상을 향해 쓰는 글이다.
따라서 기행문은 먼저 대상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이 무엇인가에 대한 문제를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예를 들어 여행한 지역의 지리적 정보를 제공하느냐 혹은 그 지역의 문화적 성격에 대한 이야기를 전달하느냐에 따라서 기술의 방식이 달라져야 할 것이고, 나아가서 소재의 선택에도 효과적으로 어떤 내용을 제시하여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생각해보아야 한다.
오래 전 스위스에 갔을 때였다. 우연히 제네바에서 기차를 타고 뭔헨으로 가는 길에 베른이라는 도시에 잠시 내리게 되었다. 기차를 갈아타기 위해서였는데 문헨으로 가는 기차를 타려면 일곱 시간 가까이 베른에 있어야 했다.
기차를 기다리는 동안 시내구경을 하려고 역 광장으로 나오니까 눈이 펼펼 내리고 있었다. 광장 건녀편을 보니 마치 세운상가와 같이 빌딩들이 서로 이어져 있었고, 길과 닿은 층은 상점들이 열병을 하듯 늘어서 있었다. 시간을 보내기에는 상점구경을 하는 것이 좋을듯했고 더욱이 지붕이 길게 거리쪽으로 뻗어나와서 눈을 피할 수도 있었다.
나는 상점들을 기웃거리며 걷다가 아담하게 생긴 커퍼점에 들어갔다. 나무로 만든 의자에 앉자, 한 소녀가 다가와서 주문을 받으려고 가죽으로 겉을 싼 수첩을 펴들었다. 꽃무늬를 옷길에 얌전하게 수놓아 만든 흰 블라우스에다가 까만 통가죽으로 만든 혁대에 가죽 주머니를 차고 짧은 주름 스커트를 입고 서 있는 모습이 청초하게 보였다.
커피를 주문했다. 한참 있다가 그녀가 코피와 함께 초콜릿도 곁들여 가지고 왔다. 나는 웃으며 "초코릿은 주문하지 않았는데" 하며 그녀를 보았다. 그녀는 웃으며 "커피에 곁들어 나오는 것이니까 돈을 더 내지 않아도 된다"고 영어로 대답을 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녀의 웃는 모습이 천진하게 보여 "이 도시에서 잠시 동안 무엇을 구경하면 좋겠는가" 하고 물었다. 그러자 그녀는 스스럼없이 잠시 후면 일이 끝나니까 자기가 안내를 해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잠시 후 그녀는 스위스 전통의상을 벗고 여는 젊은이처럼 청바지에 점퍼를 걸치고 왔다. 그녀는 먼저 동물원으로 나를 안내했다. 여러 종류의 곰이 가득한 동물원이었다. 베른의 상징이 곰이었기에 곰 동물원이 었었다. 그리고 그녀는 유명 시계점이 있는 상점으로 갔다. 그리고 스위스 음악을 연주하는 조그마한 카페로 들어갔다. 뮌헨으로 가는 기차를 타기까지 그녀는 몇 군데 더 나를 안내했다. 몇푼의 안내비를 손에 쥐어주어도 그녀는 한사코 거절을 하며 내가 기차에 올라 손을 흔들 때까지 서 있었다.
한국으로 돌아온 다음 베른에 관한 기행물을 쓰려고 몇 번이나 책상 앞에 앉았다가 손을 놓곤 했다. 이는 다름이 아니라 베른에 대해서 무엇을 써야 할 것인가에 대해 나의 인상이 몇 갈래로 갈라져 있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첫째로 베른이라는 도시가 지니고 있는 고풍스러움과 도시의 상징인 곰에 얽힌 사연들에 관한 시각과, 둘째로 베른에 사는 그 소녀와의 만남에 대한 인상이 주는 한 소녀에 대한 시각과, 베른이라는 도시의 생김새와 지를 밝혀주어야 하는 시각 등이 서로 교차하고 있어서 글의 핵심이 흔들리기 때문이었다.
이 세 가지 시각에서 볼 수 있듯이 기행문은 보고 느낀 것 중에서도 무엇을 중심으로 쓰느냐에 따라서 기행문의 성격이 달라지는 것이므로 먼저 시각의 초점을 무엇에 맞추느냐의 문제를 결정해야 한다. 그리고 다음에 생각해야 할 것은 기술의 방식이다. 다음은 시비를 찾아가서 보고 느낀 것을 적은 글이다.
검은 구름이 낀 하늘이 눈이 내릴 것만 같다. 송추에서 월탄(月灘)의 묘소를 물으니 아는 사람이 없다. 의정부 벽제 간 도로를 사이에 두고 송추역 쪽이 부골리요 유원지 쪽이 울대리다. 대충 이 방면일게다 생각하면서 백석면 쪽을 걷다., 어는 촌로에게 물으니 오른쪽 야산자락을 가리키며서 외딴채 농가의 뒷산일 거란다.
나무숲 속에 '밀약박씨세장지(密陽朴氏世葬地)' 라는 팻말과 함께 월탄 삼형제의 묘표가 나란히 서 있다. 묘소에 석물을 쓰지 않는 것이 가풍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묘표 뒤로 80미터 올라가니 '월탄 추모비'가 나를 반긴다.
원형으로 다듬은 비신의 앞면에 그의 시 <청자부>의 둘째 연이 새겨져 있고 뒷면에는 그의 작품이 시, 수필, 소설별로 새겨져 있다.
비신을 받치고 있는 대석 앞쪽에 성균관대 그의 문하생 모임인 수요회원 일동이 추모비를 세운 뜻을 모임을 대표해서 윤병로의 글, 김구용의 글씨로 새겼다.
"달을 좋아하셔서 문학에 몸담으셨던 월탄 선생이시여, 그에 80평생의 보람찬 문필생활을 마치고 구름따라 가버리었습니까. 우리 현대문학사의 증인이며 문단의 거목인 월탄 박종화 선생은 그대로 천수를 마치고 가셨습니다.
비문의 첫 구절이다.
-박용화, <그리운 마음 표적삼아>《시비산책》 중에서
이 글에서 먼저 찾을 수 있는 것은 시비를 찾아가는 길이 소상하게 제시되어 있다는 점이다. 송추에서부터 시비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지도도 없이 물어서 가는 형식으로 기술되어 있다. 그리고 또한 가지는 비석의 생김새와 그 속에 쓰여진 내용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대략적 윤곽을 알 수 있게설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주목해볼 점은, 시비를 찾아간 이의 심정이나 느낌은 날씨에 관계되는 약간의 표현으로 처리되어 있어서 아무런 특징적 표현을 볼수 없는 것이다.
이 두 가지를 비교하여보면 시비를 찾아간 이가 드러내고자 하는 것은 보고 느낀 점이 아니라 시비가 어디에 있으며 무슨 내용으로 세워져 있는가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중심이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그 목적에 다라서 기행문 기술의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일 분 아니라, 쓰는 이가 어떤 목적성을 가지고 글의 방향을 성정하느냐에 따라서 기행문의 성격이 여러 갈래로 나뉘어질 수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2)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기행이라는 말이 지니고 있는 의미와 같이 '어디를 다녀와서'라는 접두어가 붙는 것이 기행문의 특징이다. 따라서 행로의 기록은 빠뜨릴 수 없는 내용이다. 물론 너무나 잘 알려진 도시일 경우나 역사적 명소로 일반인에게 친숙한 곳일 경우 지리적 요건은 생략될 수 있겠으나, 그 역시 행로의 변화가 다른 의미를 지닐 수 있는 것일 대는 기록해야 한다. 모스크바를 보고 온 기행문을 쓸 때, 볼라디보스토크에서 비행기로 시베리아를 횡단하여 모스크바에 도착하였다는것과, 시베리아를 기차로 횡단하여 모스크바에 도착하였다는 것은 모스크바에 관한 기행문을 쓰는 일이기 때문에 상관이 없다고 할 수 있으나, 실제로 이 두 경우는 모스크바를 어떻게 보느냐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시점의 단서를 제공하는 것이기에 빠뜨릴 수 없는 것이다.
또 기행지에서의 여러 가지 정보도 무엇을 보았는지에 대한 근거가 되는 것이기에 주관적인 인상을 막연하게 털어놓기 이전에 밝혀야 한다. 여름 한철에 파리를 방문한 관광객이 파리 시민이 휴가를 가고 없는 비다시피 한 도시에 관광객으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지 않고 파리 시민의 생활상을 관광객 속에서 받아들여 이를 글로 쓴다면 전혀 다른 파리 시민의 이야기가 될 것임에 들림없다. 그러기에 정보의 정확성이 밑받침이 되어야 한다.
흔히 짧은 여정에서 만난 특정한 사람의 인상을 기록하면서 자신과 만난 이가 그 지역의 전형적 인물이나 되는 듯이 기술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마드리드에서 파리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였다. 마침 한 중년의 한국 사람이 옆자리에 앉게 되어 잛은 시간이었지만 말벗이 되었다. 그는 타일을 수입하기 위해서 처으으로 스페인을 1주일 간 방문했다가 돌아가는 길이었다. 나는 마드리드 대학에 가보고 싶어서 1주일간 마드리드에 머물다가 가는 길이었다. 그는 나에게 플라멩코 춤을 추는 곳을 가보았느냐고 물었다. 호텔 사무장의 소개로 두어 군데 춤추는 곳을 보았다고 하자 그는 "춤이 엉터리지요?" 하였다. 나는 내가 가본 술집으리 이름을 말하면서 "그 술집에서 추는 춤꾼들은 이태리 사람들이라서 진짜 스페인 춤이 아니라고 합디다"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나 역시 춤꾼이 스페인 사람인지 아닌지를 확인해보지 못했기에 "누가 그럽디까" 하고 물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그는 "그 술집에서 옆자리에 홍콩 관광객이 앉았는데 그들끼리 주고받는 말을 드었지요" 하는 것이엇다.
나는 혼자 웃을 수밖에 없었다.
아주 상식적인 수준의 정보도 자세히 살펴보지 않으면 엉뚱한 실수를 하게 되는 글이 기행문이다.
3) 명쾌한 해석이 있어야 한다
다음의 예문은 프라하에 관한 기행문이다. 이 예문에서 살펴볼 점은 한 도시를 설명해가는 순서가 어떻게 되어 있는가에 대한 기술의 구조이다.
프라하. 500미터의 고원에 많은 호수와 평원을 간직한 체코의 수도. 그러나 우리에게는 1968년 '프라하의 봄'으로, 더 먼 역사에는 보혜미아 왕국의 수도로 알려져 있는 곳. 한적한 길을 따라 낡은 마차를 타고 유랑하는 민족, 보헤미안. 지금은 이들의 흔적을 쉽게 착을 수 없지만 이들 민족의 기원인 슬리브인들의 대이동과 이곳에서의 정착, 그리고 두 개의 공국으로 출발한 보헤미아의 역사를 프라하는 지금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구전에 의하면 9세기경 최초 기독교 대공이었던 보리보이가 프라하를 포함한 서부 보헤이아를 통치하게 된 것이 시초로 되어 있는데 그 이후 10세기 동안의 유럽 역사 속에서 프라하는 끊임없이 등장하고 그 흔적을 도시 곳곳에 남겨놓고 잇다. 11세기의 로마네스크로부터 18세기의 바로크에 이르기까지 모든 양식을 보전하고 있는 도시, 유럽인에게 프라하에 대해 물어보면 서슴없이 유럽 꿈의 수로라고 한다.
-김혁, <프라하>(《모닝 캄(Moming Calm)》, 1995년 3월호 중에서
윗글은 프라하라는 도시에대해서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첫째로 지형적 특성이다. 그리고 둘째로 민족의 역사, 통치자의 흐름, 이들이 일거어낸 문화적 성과, 마지막으로 유럽인들이 바라보는 프라하에 대한 인식의 순서이다. 이는 프라하라는 도시에 접근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기초가 되는 정보를 짧은 문장으로 요령 있게 기술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즉 지형, 구성원, 생성과정, 문화 등은 한 도시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가 되고 있는 것이기에 이를 적절하게 배합한다는 것은 바로 도시를 드러나게 하는 방법이 된다.
다시 프라하의 한 지역의 특징을 보여주는 장면을 인용하여보자.
또 하나의 역사적 구역으로 숙명적인 이방인의 입장을 가지고 있는 이 유태인들의 거주지 게토, 13세기경 상업의 중심지가 구 시청사 광장이 되면서 이 주변으로 유태인이 몰려들었다. 음산한 분위기의 조용한 거리들. 몇 개의 시나고그(유태인 교회)가 있는 미로에 들어서게 되면 까마귀 우는 소리가 요람하게 들리고 그 밑으로 이들의 묘지가 들어온다. 1439년 시인 아비아도 카로의 묘를 비롯하여 1만 2,000여기의 묘가 함께 있다.
표받는 노인의 창백한 어굴이 그 분위기를 더해주는 입구 쪽 건물에는 지금도 히틀러에 의해 죽어간 영혼들의 이름을 깨알같이 벽면에 새겨놓고 잇다. 다른 족 건물에는 유태인 수용소에서 중어간 사람들의 유품과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특히 어린아이들의 글림이 많이 눈에 뛴다. 유태인들의 고통과 삶과 죽음의 경계는 프르하에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텔레진 수용소 19번 구영을 가보면 쉽게 느낄 수 있다. 붉은 벽돌로 지어진 음산한 건물의 19번 지역은 삶에서 죽음으로 가는 짧고도 긴 통로였다.
이 구역에 들어서면 바로 왼편으로 목을 매달던 사형장이 보이고 옆으로 수백 명을 사살한 붉은 벽돌담이 들어온다. 시체들은 언덕에 매장되어 있는데 전쟁 후 이 장소에서만 500구 이상을 찾아냈다고 한다. 이 시체들은 수용소 앞 새로 조성된 묘지에 모두 안치되어 있고 수용소는 일반에게 공개되어 나치의 잔악함을 폭로하고 있다.
-앞의 책, 118쪽
나치 독일이 점령했던 곳이면 흔히 볼 수 있는 유태인 학살의 현장에 대한 기술이다. 이 글에서 유별난 점은 프라하 시와 시에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19번 구역과의 연계방법이다. 한 가지 역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 다른 지역들을 함께 배열하여 프라하에서 볼 수 있는 또 다른 도시의 개성을 드러나게 하는 기법이다.
기행문은 이와 같이 역사나 사실에 댛나 명쾌한 해독력이 받침이 되어야 수박 겉 핥기 식의 평범한 이야기를 벗나게 하여 자신이 특볋게 보고 느낀 점을 체계있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제4장 기사문
1. 기사문의 성격
기사문이란 '어떤 사건을 과장 없이, 장식 없이 누락 없이, 분명하고 정확하게 기록을 하는 글'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통념이다.
누구든 자신이 겪은 체험이나 견문을 정확하게 기술하게 되는 상황에 놓일 수 있다. 어떤 형식적인 틀에 매이지 않고 간단한 메모로도 남길 수 있는 것이다. 몇 년 전 일본 항공사의 비행기에 땄던 객객이 추락하는 순간에도 자신이 겪고 있는 일들을 기록하여 여러 사람들의 놀라움을 자아낸 적도 있었다.
그러나 대체로 신물기자가 쓰는 글이 기사문의 중심이 된다.
기자의 업무는 발생된 사건에 대하여 무감적적인 태도로서 구체적으로 독자에게 전달하는 일이다.
그 이상의 일을 하려 들면 위험구역으로 들어가게 된다. 왜냐하면 사실에 의거하여 독자가 자기의 새각을 결정할 권리를 기자가 간섭하기 때문이다.
-오소백, <신문기자가 되려면> 중에서
이 인용문에서 볼 수 있듯이 기자는 자신의 주관적 관심에서 벗어나서 읽는 이가 사건에 대한 판단을 할 수 있도록 기사를 서야 한다.
따라서 이러한 글을 쓰기 위해서 먼저 알아야 할 것은 기사문의 성격이다. 사건의 내용을 정확하게 담기 위해서는 사건을 기술하는 문장을 어떻게 조직해야 하는지 문장의 성격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1) 보도성을 지녀야 한다.
기사문의 성격으로 먼저 들 수 있는 것은 보도성이다. 이는 독자에게 전달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보아야 한다는 뜻이다.
흔히 자신이 체험한 것은 남들이 겪은 것에 비해 특별하다는 가치 판단을 하는 경우가 있다.
몇 년 전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였다 중년의 한 교포와 나란히 앉아서 가게 되었다. 20년 전 미국으로이민을 가서 죽을 고생을 하다가 겨우 큰 슈퍼마켓을 운영하게되어 살만하게 되자 고국에 처음 왔다가 돌아가는 사람이었다. 그는 무료했는지 미국에서의 체험담을 풀어놓기 시작하였다. 가게 점원으로 들어가서 콜라병을 나르다가 허리를 다쳐 누워 있었던 일, 그래서 며칠 간 온 가족이 굶었던 일이며, 흑인이 한밤중에 큰 트럭을 몰고 와서 상품을 싼 가격에 팔고 가기 때문에 장사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일까지를 이야기 했다. 그리고 하루에 서너 시간을 자야 가게라도 한나 살 수 있게 된다는 미국생활의 어려움도 열심히 설명하였다.
그런데 그의 쉴 사이 없는 이야기를 들어주다가 나도 모르는 사이 잠이 들어 미안하다고 솔직하게 사과를 하였다. 그는 웃으며 "다 아는 이민생활 이야기를 해서 잠이 드셨지요" 하는 것이었다. 그 역시 그가 얘기했던 것들이 미국에 이민을 가면 의레 겪게 되는 일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더니 그는 "누구에게든 내 성곡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요. 남들도 다 겪는 일이지만 나에게는 아주 중요한 체험이거든요" 하는 것이었다.
이 일은 내가 글을 쓸 때마다 두고두고 떠올려보는 체험이 되었다. 내 그링 남들이 다 알고 있어서 졸음이 오는 그런 내용을 담고 있지 않나 하는 걱정 때문이다.
신문을 읽다가도 그런 가사들을 많이 보게 된다. 석간신문에 실렸던 기사를 그대로 조간에서 보게 되면 조간신문의 기자가 아무런 생각도 없이 더 깊이 취재도 하지 않고 독자들이 이미 아는 일을 복사하듯이 써놓았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 기사에 대해 흥미를 잃게 된다. 이는 보도성이라는 참신힌 생명력이 없는 기사를 썼기 때문이라고 하겠다.
따라서 기사문에는 새로운 정보이면서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 문제를 다루거나 아니면 사실을 보다 정확하게 알리는, 보도성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또 보도성이라는 요건 뒤에, 글의 기술방식으로서 충실함이 있어야 한다. 즉 사실을 올바로 전하는 문장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2) 개관성을 지녀야 한다.
둘째로 기사문은 객관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서울시 경찰청은 17일 남자로 변장하고 백화점을 무대로 소매치기를 해오던 이모씨에 대해 절도혐으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씨는 16일 오후 3시 5분쯤 소공동 롯데백화점 지하 1층 식품매장에서 쇼핑을 하던 재일교포 정모씨에게 접근, 손가방을 몰래 열고 현금 50만원이 든 손지감을 훔쳤다. 이씨는 이날 백화점에서 잠복근무중인 경찰과 백화점 직원들이 자신의 얼굴을 알고 있을 것을 우려, 남장을 하고 범행에 나섰다가 이씨의 거동을 수상히 여기고 미행한 경찰에 검거됐다.
어느 신문에 난 1단짜리 기사이다. 이런 사회면의 짧은 기사보다는 정치면에서 객관성의 효용이 더 발휘되지만 이런 짧은 기사에서 부터 객관성의 문제는 시작된다는 점을 생각해서 인용하였다. 이 기사를 보면 남장을 한 여성이 소매치기를 하다 잡혔다는 사실과 함께 범인이 자신을 얼굴을 감추기 위해서 남장을 하였다는 사실이 담겨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범인이 남장을 하게 된 이유에 대해 자백했다는 얘기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다. 얼굴을 알아보는 경찰을 피하기 우해서 한 남장이라는 기사내용이 기자가 상상한 것인지 아니면 경찰의 조서에 기록된 것인지에 대한 근거제시가 없는 것이다.
왜 이 여성이 소매치를 하면서 남장을 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명확한 근거를 밝히지 않았기에 독자는 기자가 쓴 글에 따라서 경찰을 피하기 위해서 남장을 하였다는 사실만을 믿게 되는 것이다.
이는 애매한 표현으로 해서 범인이 남장을 하게 된 동기를 불분명하게 독자에게 전달한 결과가 되었지만, 정치적인 기사의 경우는 이 보다 더 깊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것이다.
김씨당은 이번에 국민들이 원하는 새로운 정강정책을 내걸었다. 대변인의 말에 의하면 지금까지 김씨당에서 추진해던 정책들이 국민의 생할과 밀착된 현실적 가능성보다는 이상에 치우친 감이 있다는 국민의 비판을 겸허하게 수렴코자 한 의도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또 다른 김씨당의 대변인은 현실을 제재로 파악하고 이를 바탕으로 정책을 입안해가는 능력이 부족하기에 일어난 어쩔 수 없는 방향전환이라고 논평하면서 자당에서는 보다 구체적인 정책을 이미 오래 전에 마련해 두었다는 점을 내세웠다.
흔히 신문에서 읽을 수 있는 정치기사의 형태를 만들어보았다. 이 기사는 언뜻 양쪽 당의 대변인의 발언을 근거로 객관적인 시간에ㅓ 작성한 것인 듯하지만, 자세히 보면 이 기사를 쓴 기자가 어떤 다으이 편을 들고 있는지 쉽게 식별할 수 있다. 즉 또 다른 김씨당의 대변인의 말은 새로운 정강정책을 보여준 상대당에 대한 비판을 골자로 해서 이미 오래 전에 자신들이 마련한 정책이 이 새로운 정책과 동일한 것이었다는 다분히 아전인수적인 자랑이 담겨 있는 것이다. 바로 이 점이 객관성을 잃게 하는 요인이 된다. 오래 전에 마련해 두었으면서도 이를 발표하지 않고 있다가 상대당에서 새로운 정책이라고 ㅏㄹ표하자 그제서야 내놓게 된 것을 아무 해명도 없이 그대로 받아 써 기사화한 것은 객관성을 잃은 것이다.
기사에 객관성이 있으려면 "구체적인 정책을 오래 전에 마련해 두었다고 대변인은 밝히고 있다. 아직까지 발표하지 않고 있었던 이유에 대해서는 해명한 바가 없다"라는 정독다 되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 균형 있게 양당의 말을 수용한 것이 된다.
3) 정서적 언어를 써서는 안된다.
셋째는 개인적인 취향이 담긴 정서적 뉘앙스가 묻어 있는 어휘를 써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누구나 정서적 의미가 담긴 독특한 어회들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엄청'이라는 말을 자주 쓰는 친구가 있다. 나는 그가 "어젯밤에 엄청 술을 마셨어" 하고 떠들면 웃음을 참을 수 없다. 그가 엄청 파셨다는 것은 맥주 두 병 정도임을 알기 대문이다. 그는 과장하고 싶은 일을 말할때면 꼭 '엄청'이라는 말을 집어넣곤 한다.
이 말과 같이 정서적인 언어로 기사를 스는 경우, 자칫 기사가 전달하고자 하는 정보를 과대포장해서 오히려 진실성을 훼손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것이다.
스포츠신문이 발간되고부터 요란한 색깔로 톱뉴스에 '어느 팀 해 냈어', '왜 이럴까', '깼다' 등의 감성적 언어들이 문패만한 글자로 장식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이를 볼 때마다 제목을 자극적으로 달기 위해서 또 스포츠경기를 보다 재미있게 표현하기 위해서 이런 단어를 골라 썼다는 점은 쉽게 이해가 가면서도 경기내용과 상관없는 감성적 언어들을 사용함으로써 경기에서의 승부의 세계가 마치 싸움판처럼 여겨지지 않을 걱정이 되곤 한다.
이와 같이 사실을 기술하는 이가 사용하는 개인적 정서가 담긴 언어는 독자가 사실을 왜곡해서 받아들이게 하는 원인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선거 때면 으레 등장하는 '뜨겁다'라는 말이 있다. 이 뜨겁다는 말은 유권자의 관심이 높다는 말일 수도 있고, 출마자들끼리의 경쟁이 뜨겁다는 말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말은 결코 정확한 수치로 표현될 수 있는 관심도이거나, 아니면 출마자들의 경쟁이 어떤 형태로 첨예화하고 있는지를 밝히는 말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이사에서 밝힌 기사의 성격을 이해한다면 곧 기사문의 문장형식을 이루고 있는 구성의 법칙을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2. 기사문의 형식
1) 기사문과 육하원칙
부부싸움 끝에 살인
가정을 돌보지 않고 외박만 하고 다니다가 집에 돌아와 집문서를 가지고 나가려던 중 이를 말리는 아내와 말다툼 끝에 부엌에 있는 칼로 아내를 살인한 남편이 살인협의로 구속됐다.
12일 밤 12시경 한강로에 사는 이씨(무직)는 집에 돌아와 집문서를 가지고 나가려고 하다가 아내인 조모씨가 이를 알고 말리자, 격분하여 부엌으로 들어가 식칼을 들고 들어와서 조씨를 살해하고 도주하였다. 이씨는 6세 된 아들의 진술로 청량리에 있는 정모 여인 집에 은신해 있는 것을 알고 찾아간 경찰에 의해 체포되었는데, 평소 경마장에 다니며 진 빚을 갚으려다 이와 같은 살인을 저지르게 된 것을 밝혀졌다.
이 기사를 보면 다음과 같은 여섯 가지의 틀에 의해서 작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⑴ 언제(when) - 12일 밤 12시경
⑵ 어디서(where) - 한강로 이씨의 집
⑶ 누가 (who) -이씨
⑷ 왜(why) -노름빛을 갚기 위해서
⑸ 무엇을(what) - 아내를 살인
⑹ 어떻게(how) - 부엌에 있던 식칼로
이 여섯 가지의 조건은 기사문의 기본이다. 이 조건이 기사문에서 하나의 틀이 되는 이유는 독자에게 일어난 사건을 가장 선명하고 빠뜨림 없이 논리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누구에게 말로 보고를 하는 경우에도 이 육하원칙에 따르면 듣는 이가 가장 합리적으로 사건을 이해하게 된다.
2) 오늘날의 기사문
오늘의 기사문은 점차 고전적인 객관성이나 공정성 같은 중립적인 관점에서 벗어나서 점차 쓰는 이의 판단이 섞이는 추세를 보여주고 있다. 물론 사건을 주관에 의해 마음대로 기술한다는 뜻이 아니라, 옳고 그름의 판단이 들어 있는 기사문을 쓰는 경우가 일반화되고 있다는 말이다.
전시대에 있어서는 기사문이 정확한 사실의 영역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독자들의 알 궐리를 훼손시키는 일이라는 생각이 일반적이었던 데 비해서 오늘의 기사문에는 기사를 작성하는 이의 건전하고 바른 판단이 개입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패션에 대한 기사에도 단순히 어떤 옷 형태가 오늘의 중심적 유행이 되고 있다는 사실 제시의 차원에서 벗어나서 이러한 옷 형태가 우리 실정과 맞지 않는다는 비평적 관점의 평가까지 곁들여 소개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의 원인은 여러 시각에서 살펴볼 수 있지만 글의 구성이나 언어선택의 방식에서 볼 때 저보화시대를 맞아 사건과 함께 정보를 얻겠다는 독자의 욕망에 보답하고 표현의 다양성을 가지게 함으로써 보고 아는 것에서부터 보고 알고 또 느낄 수도 있게 하는 방식이 자리잡기 시작한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육하원칙에 의한 기사문의 틀과 사건을 전달하는 데 있어서의 객관성이 바탕이 되지 않고서는 결코 사건의 의미를 독립적으로 해독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제5작 식사문(式辭文)
1. 식사문의 성격
1) 의식의 성격과 의미가 드러나야 한다
옛날에는 결혼식장에 가면 으레 내빈의 축사가 있었다. 두루마리 종이에 적어온 축사를 오랫동안 읽어서 긴장한 신부가 쓰러지는 경우도 있었다. 지금은 달라져서 주례의 말이 끝나면 축가나 부르고 의식을 마치는 것이 보편화되었지만, 경스러운 일이나 불행한 일이 있을 때면 식사(式辭)를 하는 것이 아직도 성행하고 있다.
언젠가 새롭게 회사의 문을 열게 된 친구의 초청을 받고 갔다가 갑작스레 축사를 할라는 요청을 받은 적이 있다. 그때 몇 마디 못하고 강단을 내려오면서 몹시 후회했던 기억이 있다. 그때 몇 마디 못하고 강단을 내려오면서 몹시 후회했던 기억이 있다. 글로 적어 갔더라면 식이 끝난 다음 회사 직원이 뛰어와서 "원고를 주시면 사보에 싣겠습니다"라고 했을 때 민망스럽게 머리만 긁적이고 있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요즘처럼 자연스럽게 식에 어울리는 즉흥적인 축하나 감회의 말을 하고 물러서는 경우도 있지만, 그러나 식이 있는 곳에는 그 식에 알맞은 식사를 준비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특히 의식이 공공(公共)의 성격을 띠는 경우이거나 정치적 모임인 경우 총체적 집회의 정신을 담은 식사나 선언문은 집회의 강령과 어울려 가장 두드러진 상징적 표적이 되는 것이다.
4·19당시 부정에 항거하여 일어난 시민혁명의 큰 계기가 되었던 학생들의 선언문은 일반적인 집회에서 줄줄이 읽어가는 식사문의 형태와는 달리 그 내용면에서 정통적인 것이라 할 수는 없지만, 의식이 지니는 의미와 성격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글이라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친애하는 고대 학생 제군!
한마디로 대학은 반항과 자유의 표상(表象)이다. 이제 질식할 듯한 기성 독재의 최후의 발악은 바야흐로 전체 국민의 자유와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그러기에 역사의 생생한 증언적 사명을 띤 우리들 청년학도는 이 이상 역류하는 피의 분노를 억제(抑制)할 수 없다. 만약 이와 같은 극단의 악덕과 패륜을 포옹하고 있는 이 탁류의 역사를 정화시키지 못한다면, 우리는 후세의 영원한 저주(詛呪)를 면치 못하리라. 말할 나위도 없이 학생이 상아탑에 안주치 못하고 대 사회투쟁에 참여해야만 하는 오늘의 20대는 확실히 불행한 세대이다. 그러나 동족의 손으로 피를 뽑고 있는 이 악랄한 현실을 방관하랴.
존경하는 고대 학생 동지 제군!
우리 고대는 과거 일제치하에서는 항일투쟁의 총본산이었으며, 해방후에는 인간의 자유와 존경을 사수하기 위하여 멸곤전선의 전위적 대열에 섰으나, 오늘은 진정한 민주이념의 쟁취를 위한 반항의 봉화(烽火)를 높이 들어야 하겠다.
고대 학생 동제 제군!
우리 청년학도만이 진정한 민주역사창조의 역군이 될 수 있음을 명심하여 총궐기하라.
-<고려대학교 학생회 선언문> (1960년 4월 18일)
먼저 고려대학교의 4·19 선언문을 읽거보면, 역사의 도도한 흐름을 거역하는 독재정권에 반항하여 고려대학교가 지켜온 지성의 반항과 자유라는 정신적 표상을 바탕으로 항일투쟁의 후예답게 일어서서 건전한 민주역사를 창조하는 역군으로 궐기할 것을 선언하고 있다.
이 선언문에서는 개인적인 내용의 체험이나 의견은 찾아볼 수 없고, 학생 전체가 감당해야 할 역사적 사명과 시대적 소명감을 강조하고 있다.
다음은 <서울대학교 학생회 선언문>이다.
상아의 진리탑을 박차고 거리에 나선 우리는 질풍과 같은 역사의 조류에 자신을 참여시킴으로써 이성과 진리, 그리고 자유의 대학정신을 현실의 참담한 박토에 부리려 하는 바이다.
오늘의 우리는 자신들의 지성과 양심의 엄숙한 명령으로 하여 사악과 잔악의 현산을 규탄광정(糾彈匡正) 하려는 주체적 판단과 사명감의 발로임을 떳떳이 선명(宣明)하는 바이다.
우리의 지성은 암담한 이 거리의 현상이 민주화 자유를 위장한 전체주의의 표독한 전횡(專橫)에 기인한 것임을 단정한다. 무릇 형태의 전제로 민중 앞에 군림하는 '종이로 만든 호랑이'같이 해슬픈 것임을 교시(敎示)한다.
한국의 일천한 대학사가 적색전제(赤色專制)에의 과감한 투쟁의 거획(巨劃)을 장(掌)하고 있는 데 크나큰 자부를 느끼는 것과 꼭 같은 논리의 연역에서, 민주주의를 위장한 백색전제에서의 항의를 가장 높은 영관으로 우리는 자부한다.
근대적 민주주의 기간(基幹)은 자유다. 우리에게 자유는 상실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아니 송두리째 박탈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이성의 혜안(慧眼)으로 직시한다.
이제 막 자유의 전장엔 불이 붙기 시작했다. 정당한 가져야 할 궐리를 탈환하기 위한 자유의 투쟁은 요원의 불길처럼 번젹가고 있다. 자유의 전역(戰域)은 바야흐로 풍성(豊盛)해가고 있는 것이다.
민주주의와 민중의 공복(公僕)이며 중립적 권력체인 관료와 경찰은 민주주의를 위장한 가부장적 전체권력의 하수인으로 발벗었다. 민주주의 이념의 최저의 공리인 선거권마저 권력의 마수(魔手) 앞에 농단되었다. 언론, 출판, 집회, 결사 및 사상의 자유의 불빛은 무식한 전제권력의 악랄한 발악으로 하여 깜박이던 빛조차 사라졌다. 긴 칠흑과 같은 밤의 계속이다.
나이 어린 학생 김주열의 참시(參試)를 보라! 그것은 가식 없는 전제주의(專制主義) 전횡의 발가벗은 나상(裸像)밖에 아무것도 아니다.
저들을 보라! 비굴하게도 위하와 폭력으로 우리들을 대하려 한다. 우리는 백 보를 양보하고라도 인간적으로 부르짖어야 할 같은 학구(學究)의 양심을 강렬히 느낀다.
보라! 우리는 기쁨에 넘쳐 자유의 횃불을 올린다. 보라! 우리는 캄캄한 밤의 침묵에 자유의 종을 난타하는 타수의 일익(一翼)임을 자랑한다. 일제의 철추(鐵椎) 아래 미칠 듯 자유를 환호한 나의 아버지, 나의 형들과 같이-.
양심은 부끄럽지 않다. 외롭지조 않다. 영원한 민주주의의 사수파는 영광스럽기만 하다.
보라! 현실의 뒷골목에서 용기 없는 자학(自虐)을 되씹는 자까지 우리의 대열을 따른다. 나가자! 자유의 비밀은 용기일 뿐이다.
우리의 대열은 이성과 양심과 평화, 그리고 자유에의 열렬한 사랑의 대열이다. 모든 법은 우리를 보장한다.
-<서울대학교 학생회 선언문>(1960년 4월 19일)
<서울대학교 학생회 선언문> 역시 <고려대학교 학생회 선언문>과 그 성격이 비슷하지만 그 대학의 전통과 성격을 나타내고 있다.
서울대학교 선언문 역시 극히 생생한 현실의 상화응ㄹ 보여주는 내용을 담고 있으나 개인적인 시각에서 볼 특수한 상황이 아니라 공통적인 국민 모두의 삶에 근거한 현실을 고발하고 있다.
2) 낭독에 어울리는 글이어야 한다
식사문을 쓸 대 주의해야 할 점ㅇ은 개인적인 체험의 특수함을 드러내는 내용보다는 모인 사람들, 혹은 대상으로 하는 이들이 공유하고 있는 체험에 근거한 내용을 선택하는 것이 우선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보통 낭독조로 쓰여진다. 원래 식장에서 읽어야 하기에 낭독에 알맞은 글이 되어야 하느데, 중요한 것은 듣는 이로 하여금 내용을 쉽게 알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점이다.
지난 여름 청소년 문학캠프에서 어느 시인이 개식사(開式辭)를 하였다. 이 시인은 나이가 있어서 초등학교 아이들을 만나본 지가 오래된 탓이엇는지 어려운 말로 문학창작의 의의를 이야기 했고, 그러다보니 참가한 아이들의 분위기가 어수선하게 되는 것을 보았다.
식사의 내뇽이 어려웠다는 점이 그 첫 번째 이유였지만 빠뜨릴 수 없는 것은 낭독에 어울리는 글에 대한 생각이 부족하였다는 점이다.
그 한가지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청소년 문학창작학교를 이곳에 개설하여 내외 여러 문단 선비와 청소년 제군들이 동참하여 안으로는 개성적 창조정신의 첨예한 연마와 밖으로는 공동의 생명윤리를 체득하여 민족문화 건설의 초석이 될 것을 기원하면서……,
이 글은 식사를 정당하게 요약한 것인데, 한눈에 대통령이 개천절과 같은 국경일에 연단에서 읽어가는 그런 문형의 글임을 볼 수 있다. 이를 낭독형으로 수정하여 보면,
청소년 문학창작학교를 이곳에 열어 여러 시인들과 여러분이 함께하여 창조의 정신을 키우고 닦아 인간으로 살아가는 법을 깨우쳐 우리 민죽문학을 세워가는 데 큰일을 하는 이로 자랄 것을 바라면서 ……,
이런 형태로 고쳐보면 듣기에 수월한 말이 어떤 것인지 구체적으로 알 수 있을 것이다.
3) 긴장감과 힘이 담긴 글이어야 한다.
또 한가지 식사문의 특징을 들면 내용에 마음을 움직이는 힘과 긴장감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언제나 듣게 되는 상투적 격언이나 진부한 시사적 뉴스를 인용한다면 긴장감도 없고 어디서 들어본 듯 한 느슨한 식사가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식사문을 쓸 때는 힘찬 문형을 사용하고, 하고자 하는 말의 의미가 뚜렷하게 드러날 수 있게 청유형이나 직설법을 사용한 글을 써야 할 것이다.
내가 이태준의 <재외혁명동지 환영문>을 읽을 때마다 감탄하게 되는 것은 비록 오늘에 있어서는 문장이 난삽하게 여겨질지 모르지만 이 글이 ① 정중하고, ② 낭독조로 되어 있고, ③ 지루함이 없이 긴장감을 갖게 하고, ④ 심각한 인상을 남긴다는 점에서 다시 읽어보고 깊은 식사문의 전범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전략)
오오, 굴욕의 36년! 민족의 영원으로는 일순(一瞬)이었으나, 인생 일생으로는 청춘을 오롯이 바치고도 모자라는 장기간이었다. 동지들 가운데는 이미, 가권(家眷)이 보아 모르도록 수발(鬚髮)의 빛을 달리는 한이 가마격을 기다리지 못한 채, 천추의 한을 품은 채, 수방이역(殊邦異域)에 고혼(孤魂)된 이도 한두 분이 아닐 것이다.
오오! 거룩한 동지여! 정의의 열사여, 동지들 있음으로 말미암아 오늘 이 땅에 아침이 오는 것이며, 동지들 있음으로 말미암아 오늘 이 땅에 아침이 오는 것이며, 동지들 있음으로 말밍담아 우리 민족의 명예가 세계에 유지되는 것이며, 동지들 이씅ㅁ으로 말미암아 아직 우리에게 저 화랑과 충무공의 피가 면면히 흐름을 알지로다 우리 3천만은 머리털을 깎아 동지들 말국 아래에 편들, 어찌 동지들의 위공대훈(偉功大勳)에 만(萬)에 일(一)인들 보답할 것인가!
(중략)
형제여 지도자여 어서 우리 삼천만의 앞을 서라. 우리 용렬(庸劣)하나 동지들의 끓는 의열(義烈)에 순화될 것이요. 우리 지둔(遲鈍)하나 동지들의 선혈로 편 건국대도(建國大導)를 만강(滿腔)의 존경과 신뢰로 따라 나아가리라.
-이태준, <재외혁명동지 환영문>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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