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7~358] 제5부 글쓰기의 실제 제1장 일기문 ~ 4)성실해야 한다

2020. 5. 9. 23:45☎박동규교수문학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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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7~358] 제5부 글쓰기의 실제 제1장 일기문 ~ 4)성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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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규 교수님의 "글쓰기를 두려워 말라" 책을 몇번 읽었지만, 읽는 당시는 이해가 되다가도 책을 놓고 나면 머리가 하얗다. 그래서 생각한것이 교수님 저서 "글쓰기를 두려워 말라" 전권을 타자 쳐, 블로그, 카페에 올려 시간, 장소 구애받지 않고 스마트폰으로 손쉽게 읽을 수 있도록 했다. 저자이신 교수님께 양해를 구합니다.

 

1장 일기문

 

1. 일기문의 성격

 

1)일기란 자신을 위한 글이다.

 

일기는 하루라는 시간을 단위로 하여 쓰여지는 글이다. 하루의 시간에서 겪은 자기만의 체험을 글로 기록하여야 하는 것이다. 이 '하루를 살면서 자신만이 체험할 수 있었다'는 말에는 독특한 의미가 숨어 있다. 즉 하루가 없는 생활은 있을 수 없으며, 하루라는 계단을 밟고 올라가야 인생이 그려진다는 점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세수를 하고, 직장에 달려가서 똑같은 일을 하고, 저녁에 다시 돌아와서 잠을 잔다는 단순한 일상의 흐름이라고 하더라도 그 속에는 자신만이 느끼고, 깨닫고, 생각하는 삶의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기를 쓴다는 것은 이러한 자신의 체험을 영원히 보존하는 방법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일기라는 것은 과거를 기록해두는, 개인이 겪은 체험의 창고가 되는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삶의 충체적인 면면들을 바르게 보게하고 내일을 위한 발전의 방향을 찾아보게 하는 기록이 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일기를 쓰고자 할 때 먼저 생각해보아야 하는 것은, 일기를 쓴다는 것이 어떤 효용성을 갖고 있는지를 알고 있느냐 하는 점이다. 일기는 자기를 위한 문장이어서, 쓰지 않는 것과 쓰는 것과의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가를 알지 못하면 일기를 쓰는 버릇을 지니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 크리스마스가 되면 두툼한 일기장을 선물로 주는 것이 유행이었다. 노트 종이조차 변변치 못했던 시절이어서 노르스름한 종이에 색깔이 있는 줄이 이쁘게 쳐진 일기장을 받는 건 참으로 즐거운 일이었다. 그러나 나는 일기장을 주고받고 할 만한 여자친구가 없었다. 그렇다고 서점에 가서 일기장을 스스로 살 형편도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해 크리스마스 전날이었다. 학생회에서 밤생을 하며 친교의 시간을 갖는다면서 선물교환이 있으니 준비해오라는 것이었다. 나는 시장에 가서 여자용 톨장갑을 사서 곱게 포장을 하여 들고 갔다. 밤이 깊어 선물교환 순서가 되었다. 남학생이 가져온 것과 여학생이 가져온 것들에 따로 번호를 붙이고 제비를 뽑아 서로 바꾸어 가졌다. 나는 반짝거리는 종이에 싼 두툼한 것을 손에 잡고 책이구나 하고 생각을 했는데 뜯어보니 일기장이었다. 표지를 들치니 첫장에 "벽돌을 쌓듯이 높은 이상의 탑을 세워가세요"라는 예쁜 글이 쓰여 있었다. 집에 돌아와 어머니에게 보여드렸더니 어머니는 웃으며 "일기는 마음의 거울이 된다"라고 하셨다.

이와 같이 일기에는 하루 중에 보고 들은 것 중에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신이 한 일 가운데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 마음에 일어난 독특한 느낌 같은 것, 혼자 하루를 보내며 얻은 생각의 단편 같은 것 등 사생활의 내용이 담겨야 한다.

 

2) 솔직하게 써야 한다

 

그리고 이렇게 사생활의 내용을 담는 것이 일기이기 때문에 일기는 솔직성을 지녀야 하는 것이다.

 

일기는 그 자신의 생활이나 사상을 가립없이 솔직하게 기록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쓰게 되는 문장은 여러 면에서 사회적인 제약과 구속을 받게 되고 또한 그것을 의식하며 쓰게 됩니다.

그러므로 그 자신의 사상이나 감정이나 생활을 솔직하게 표현한다고 하지만, 그것을 전적으로 표현할 수 없는 일면을 가지게 됩니다. 그러나 일기는 남에게 보이려고 쓰는 글이 아닙니다. 자기 중심의 글로서, 남의 이목을 꺼려하지 않고 솔직대담하게 비밀을 털어놓을 수 있는 것입니다.

- 박목월, 《문장의 기술》) 중에서

 

누가 볼 것을 걱정하여 자신의 생활을 미화시킨다면 일기가 될 수 없다. 또 언젠가 누가 일기를 보고 나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어서 일기를 쓴다면 자서전적인 잔소리의 의미는 있을지 몰라도 참다운 일기가 될 수는 없다.

일기는 모든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여 스는 것이 아니라 이들의 눈을 피하여 자기만의 비밀을 간직하고 싶어하는 데 뿌리를 두고 쓰는 글이다. 그러기에 일기는 남에게 하지 못할 고백도, 남들이 어리석다고 할 느낌도, 아니면 지탄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잘못도 마음놓고 쓸 수 있는 자리이다. 따라서 이러한 자신을 보며 '도덕적 정화'를 이룰 수 있고 '고백을 들어주는 신부'의 역할을 해주며 '자신의 거울'이 되어 주는 것이다.

다음은 한 중학생의 일기이다.

 

11월 5일 날시 비옴

오늘은 비가 왔다. 아침에 학교에 갈 대는 오지 않았다. 학교가 파하여 교문을 나서니 빗줄기가 굵어졌다. 빵가게에 갔다. 친구들이 이미 자리를 잡고 있었다. 집으로 전화를 했다. 여섯 번이나 신호가 가서야 어머니가 받았다. 버스 정거장에 어머니가 노오시기로 했다. 친구들과 헤어져 버스를 탔다. 비오는 날이면 내가 전호를 하지 않아도 어머니는 나와 계신다. 버스에서 내려 두리번거릴 필요가 없다. 어머니는 항상 공중전화통 곁에 서 계시기 때문이다. 오늘도 어머니가 나오셔서 오랫동안 기다릴까 봐 전화를 했다 나는 왜 일찍 전화를 해드리는 것을 몰랐을까. 사실 아무도 모르지만 버스에서 내려 어머니가 서 계신 것을 보고 싶어서 전화를 하지 않았다. 그리고 어머니 곁에 서면 향긋한 냄새가 좋았다.

이제는 어머니가 길에 서 있는 것이 얼마나 힘이 드는 일인지를 나는 잘 안다. 새벽마다 버스 정거장으로 네 정거장이나 떨어진 교회로 걸어가서 찬 마룻바닥에 엎드려 누구를 우해 기도하는지를 알기 때문이다. 오늘은 버스에서 내렸더니 어머니가 "웬일로 전화를 했니" 하시면서 웃으셨다. 나는 어머니가 웃는 모습이 마음에 그대로 남아 있다.

 

이 일기에는 어린 중학생의 내면세계가 그대로 드러나 있다. 비가 오면 버스 정류장 근처에 있는 공중전화통 옆에 서서 기다리는 어머니를 보는 단순한 즐거움과 어머니 곁에 서면 향긋한 향기를 맡을 수 있는 이성에 대한 아련한 눈뜸이 가식 없이 드러나 있는 것이다. 언제 오려나 하고 서 있는 어머니를 걱정하는 성숙해가는 어린 학생의 마음이 전화 한 통화를 통해서 밝혀지고 있는데, 이러한 내용이 바로 일기가 지니고 있는 거짓 없는 솔직성에서 우러나오고 있다. 부끄러운 고백도 일기는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주고 있는 것이다.

내가 대학 졸업을 앞두고 쓴 어느 하루의 일기를 공개한다.

 

2월 20일

내일 졸업을 한다. 오늘 아침 온 가족이 상에 둘러앉았을 때, 아버지는 동생들을 둘러보며 큰소리로 "내일 형 졸업식이야" 하셨다. 다른 날과 달리 목소리가 크셨다. 그리고 식사를 하시지 않고 그냥 나가셧다. 그때 아우가 "엄마, 우리 집에 카메라가 없어서 어쩌지요" 하였다. 어머니는 한참 내 얼굴을 보셨다. 아무렇지도 않게 "친구들이 있겠지요"하고 물러났다.

저녁에 아버지가 '졸업식 긑난 다음 사진관에 같이 가자" 하셨다. 아마 어머니가 말씀드렸나 보다.

카메라 없는 집이 한 두 집이겠는가. 아버지는 조금 전 또 나를 서재로 부르시더니 눈가에 물기가 촉촉한 채로 "졸업하게 되서 기쁘다'라고 하시면서 내 손을 잡았다. 그런데 왜 나는 "아버지, 공부시키시느라 얼마나 힘드셨어요" 하는 감사의 말을 하지도 못하였는가. 내 방에 와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어야만 했는가. "아버지, 고맙습니다." 이 말이 그렇게 어려운 말인가.

 

부끄러운 젊은 날의 내 모습이 이 몇 줄의 일기 속에 그대로 담겨 있다. 아버지에게 이 말을 결국 해보지도 못하고 아버지는 저 세상으로 가버리셨지만 일기에 담겨진 글자들 속에 내 젊은 날의 부끄러웠던 모습은 그대로 살아 있어서 지금 내 아들이 아무 말을 하지 않아도 그 마음속에 "아버지, 고마워요"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지게 되었다.

이 일기에서 보아야 할 것은 일상생활에서 얻어진 마음의 자국들을 세밀하게 그려놓고 있는 점이다. 덤덤하게 보여지는 겉면의 세계를 그려내는 것보다 자신만이 느낀 특이한 감상을 굴절 없이 그려낸다는 것은 일기만이 지닌 특성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3) 관심사를 반영하여야 한다

 

다음은 사무적인 내용을 적은 일기의 경우이다.

 

3월 2일

오늘 입학식이 있었다. 연구실에 새로 들어온 입학생이 찾아왔다. 아버지가 찾아가 보라고 하였단다. 친구의 아들이었다. 아들도 그 아버지와 똑같았다. 점심은 봉천동에 가서 가락국수를 먹었다. 계산을 하려고 주머니에 손을 넣고 보니 돈이 손에 잡히지 않아 식은땀이 났다. 안주머니에 5,000원이 있어 2,000원을 냈다. 버스를 타고 집에 왔다. 2,000원쯤 더 있었으면 피곤하기도 해서 택시를 탈 수 있었으련만,

 

다른 이가 이 일기를 읽으면 너무나 하루의 일을 드러나게 적은것이라서 이런 것까지 적을 필요가 있나 하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지만 자세히 보면 극히 사무적인 일의 뒷면에는 하루를 어떻게 살았다는 구체적 증거들이 들어 있다. 사무적인 일상도 하루를 엮어가는 하나의 기둥이 되는 것이기에 사무적인 것이라고 해서 일기에 쓸 필요가 없다고는 할 수 없다. 가락국수값이 2,000원 하던 시절이 언제였던가 하는 증거는 역시 일상의 생활중에 극히 사무적인 데서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은 박지원의 《열하일기》의 한 대목이다

 

14일 경인. 개다

(중략)

"태종이 고구려를 치려다가 뜻을 일루지 못한 채 돌아오늘 길에 발착수에 이르러 80리 진펄에 수레가 통할 수 없으므로 장손무기와 양시도 등이 군정 1만 명을 거느리고 나물를 베서 길을 쌓으니 수레가 잇따랐고, 다리를 놓을 제 태종이 말 위에서 손수 나무를 날라서 일을 도왔고, 때마침 눈보라가 심해서 횃불을 밝히고 건넜다" 하였으니, 발착수가 어디인지 알 수 없으나, 요동 진펄 천 리에 흙이 떡가루처럼 보드라워서 비를 맞으면 반죽이 되어 마치 연 녹은 것처럼 되어, 사람의 허리와 무릎까지 빠지고 겨우 한 다리를 빼면 또 한 다리가 더 깊이 빠지게 된다. 이에 만일 발을 빼려고 애쓰지 않으면 땅속에서 마치 무엇이 있어서 빨아들이는 듯이 온몸이 묻혀서 흔적도 없어지게 된다.

- 박지원,《열하일기》 중에서

 

이글은 조선주 정조왕 때 북학파의 거두였던 연암 박지원이 압록강으로부터 요양에 이르기까지 15일 동안 겪은 일들을 기록하고 있는 일기문에서 인용한 것이다.

그의 관심은 실용적인 것에 집중이 되어 있으므로, 건설분야에 대해서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비록 일기의 형식을 지니고 있지만 연암이 지닌 관심의 표적인 건설분야 대한 서술이 과학적 보고서와 같다.

일기는 쓰고자 하는 중심적 관심사를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기에, 보고 느낀 것을 시간의 틀이나 사건이 일어난 순서에 맞추어 써야 하는 일반적인 산문보다 훨씬 자유롭게 자신의 뜻을 그대로 기록할 수 있다는 점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는 일기를 쓸 때는 문장의 짜임새나 논리적 구조가 지니는 설득력과 같은 문장의 복잡한 형식적 제약에서 벗어나서 말하고자 하는 것을 직접적으로 기록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2. 일기문 형식

 

다음으로 일기문의 구조에 대한 이해이다. 일기문의 골격이 되는 것은 ① 날짜 ② 날씨 ③ 생활 내용 ④담고자 하는 자신의 견해이다. 날짜는, 기록적인 가치를 알려주는 것이 일기이기에 필수적인 것이다.

다음은 날짜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일기이다.

 

4월 16일(1947). 맑음

할머니를 따라 어린것 건천(부모님이 계시던 큰댁) 나갔다. 제 어미곁을 떠나보기가 처음, 벌써 그만큼 자랐나 싶어 대견스럽다. 륙색을 메고 남빛 버선을 신고 갔다.

 

아버님의 일기이다. 나는 이 일기를 읽고 또 읽었다. 나의 세 살때 모습이 이 글에 그대로 들어 있었다. 아버지 눈에는 어머니의 품을 더나 할머니 곁에 갈 수 있었던 내가 대견하게 보였을 것이지만 이 일기 속에서 유독 버선을 신었다는 말은 우리 가족에게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남아 있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내가 초등학교에 처음 들어갔을 때 비단으로 만든 버선을 신겨주었다. 그런데 이 버선을 신고 학교에 가니까 아이들이 이상한 신발을 신고 왔다고 놀리는 것이었다. 나는 한 달 가까이이를 운동장에 나가서 뛰어놀 수가 없었다. 아이들이 놀렸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수업이 끝나고 쉬는 시간이었다. 교실에 혼자 앉아 창밖을 보고 있는데 선생님이 불렀다. "너는 왜 나가서 놀지 않니?" 하였다. 나는 부끄러움도 없이 "아이들이 내 신발이 이상하다고 놀려서요" 하고 대답을 했다. 선생님은 내 버선을 한참 동안 보시더니 "그 신발 어디서 났니?' 하고 물었다. "엄마가 만들어주셨어요" 하고 대답을 했다. 선생님은 다시 책상에서 가정기록부를 꺼내더니 두져보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나를 앞으로 나오게 하더니 꼭 껴안으며 "엄마가 만들어주신 것인데 얼마나 좋으니" 하면서 내 어깨 위에 얼굴을 대고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는 "내가 오늘부터 누구도 놀리지 못하게 해줄 테니 나갓거 놀아라. 내가 너를 살펴보지 못했구나"라고 했다.

나는 그날 집에 가서 아이들이 이제는 놀리지 못하게 해준다고 선생님이 약속해주어서 교실 밖에 나가 놀 수 있게 되었다고 어머니에게 말하였다. 좋아서 웃으며 말하는 나를 보더니 어머니는 얼굴을 숙이며 "그동안 놀러 운동장에 나가지도 못하고 ……" 하면서 통곡을 하였다. 나는 어머니가 왜 우는지도 모르면서 괜히 언짢아서 밖으로 뛰어나가버렸다. 아직도 어머니는 그때의 일을 기억한다.

나는 우연히 아버지의 이 일기에 적힌 날짜를 보면서 내가 세 살때부터 이미 어머니의 치마를 잘라 만든 비단신발을 신고 다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가난했기에 겪어야 했던 어린 날의 아름다운 추억이지만 날짜가 적혀 있지 않았다면 무엇으로 당시의 아픔을 생생히 떠올릴 수 있었겟는가.

 

12월 22일. 첫눈이 내림

약속한 그녀가 정말로 다방에 나옴. 난생처음의 여자와의 만남. 나는 말할 수 없었다. 눈빛처럼 순결한 여성임.

 

대학을 졸업하고 얼마 되지 않은 봄날이었다. 친구들과 어울려 조그마한 문학동아리에 참여하고 있을 때였다. 남녀가 반반씩이었다. 여학생 중에 항상 얌전하게 고개를 숙인 채 앉아 있던 그녀와 한 작이 되어 작품에 대한 연구결과를 발표하게 되었다. 우리는 도서관에서 함께 자료를 뒤졌고 점심때가 되면 함께 식당에도 갔었다. 발표가 끝난 날 저녁 나는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첫눈이 내리는 날 명동 근처에 있는 다방에서 만날 수 있겠는가고 물었다. 그러자 그녀는 "그래요" 하는 것이었다.

나는 첫눈이 올 대 원효로 우리 집에 있었다. 그런데 눈이 내리는 것을 보다가 우연히 그녀와 다방에서 약속한 일이 떠올랐다. 그때가 다섯 시였다. 만나기로 한 시간은 여섯 시였다. 내가 전차를 타고 시청 앞에서 내려 뛰어가다시피 해서 도착한 것은 여섯 시 삼십 분이었다. 그녀는 안으로 들어가지도 않고 다방문 앞에 서 있었다. 가습이 뛰는 첫 번째 만남이었다.

내 일기장에 기론된 날짜가 없었더라면 눈이 내리는 남산길을 걷다가 내가 미끄러졌던 그 우스꽈스러운 모습에 대한 추억도 빛을 잃었을 것이다.

생활 내용과 담고자 하는 자신의 견해는 동질성을 가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하루의 일 속에 자신의 중심된 관심의 표적이 무엇이었던가를 되새겨볼 수 있어야 일기를 쓸 수 있고, 이것은 생활내용을 바탕으로 하여 생겨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루를 살면서 무엇이 하루를 있께 하는가를 살펴볼 수 있게 해주는 일기는 성찰과 전망을 지닌 시간 안에 담겨진 자신의 기록이 되는 것이다.

 

제2장 서간문

 

 

1. 서간문의 성격

 

1) 형식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

 

지난 가을 네덜란드의 조그마한 도시 울데흐트에 갔을 때였다. 오래된 도시여서 고건출물들이 많아 이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 관광안내센터에 갔다. 전철역 근처라서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겨우 지도 한 장을 얻어서 앉을 곳을 찾아보니 대합실처럼 이어진 줄의자에는 젊은이들이 가득 자리를 잡고 있다.

나도 겨우 한 자리를 잡고 앉아 지도를 펼처들고 주의를 둘러보았다. 여행을 떠나온 스페인의 청소년들이 의자에 앉지도 못하고 가방을 타고 앉아서 벽에 등을 대고 무엇인가 종이에 열심히 적고 있었다. 궁금해서 지도를 접어 주머니에 넣고 그들 쪼쪽으로 가까이 갔다. 그리고 어린 소녀에게 무엇을 그렇게 열심히 적고 있는냐고 물었다. 그러자 소녀는 활짝 웃음으며 "동네 친구에게 편지를 쓰고 있어요" 하였다. 내가 "좀 보여줄래?" 하고 다가가자 소녀는 얼굴을 붉히면서 수첩을 내밀었다. 스페인어로 되어 있어서 읽을 수 없다고 하자 소녀는 영어로 번역을 해주었다.

"보고싶은 친구에게. 울테호트 시 관광센터 안의 바닥에 앉아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보고 배운 것을 너에게 편지로 알려주기로 약속했기에 나는 아무데나 앉아서 글을 써야 한단다. 이곳을 떠나면 곧 다른 세계와 만나게 되어 너에게 전해야 할 것을 잊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녀의 편지는 이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소녀와 헤어져 도시를를 돌아다녔지만 소녀가 친구에게 쓴 편지의 내용이 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 소녀는 내가 편지를 쓸 대마다 겪게 되는 어려움에서 버벗어나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당한 어려움이라는 것은 먼저 막역한 친구 사이더라도 글로써 의사를 전달하는 경우에는 상대의 체면을 존중하는 어사(語辭)를 찾아 써야 한다는 점이었다. 나 자신의 문장력은 뒤로 미루어두고서라도 만일 친구가 '그 친구 편지를 보니 아는 게 별것 없는 모양이지'하고 여기게 될까 봐 두려움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고정관념으로 해서 옛날 사람들은 펴니의 서두에 상투어를 담게 되었고, 인사말 속에 어려운 한자어가 들어 있어야 제대로 된 편지라고 여기게 되었던 것이다.

 

2)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이 선명히 드러나야 한다.

 

먼저 편지글에는 일정한 상대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용건이 담겨 있는 점이다. 다라서 용건 전달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쉽고 간명하게 전하고자 하는 내용을 글 속에 담아야 한다.

 

아버님, 그간 안녕 하셨습니까.

서울에서 객지생활도 학교에 다니다보면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집니다. 제가 글월 올리는 것은 숙비가 올라 다음 달에는 12만 원을 더 부쳐주셨으면 해서 입다. 어려운 집 형편을 알고 있지만 어쩔 수 없어 알리게 되었습다.

내내 건강하시기를 빌면서 이만 줄입니다.

 

시골에서 서울로 올라와 공부하는 어느 학생이 아버지에게 하숙비 인상을 전하는 편지이다. 우리는 고생하는 아버지에게 하숙비를 더 보내달라고 하는 것이 부담이 되어 쓸데없는 허사(虛辭)를 편지에 집어넣는 예를 흔히 부 수가 있다. 사실 고향집에 있는 어머니의 안부에서부터 동생들의 안부에 이르기까지 장황하게 집안 사정을 걱정하고는 그 다음에 하숙비 인상을 알리는 것이 좋을 듯하지만 오히려 짧은 사연에서 용건이 선명하게 드러나므로, 이 편지를 받는 아버지는 아들이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지를 쉽게 알 수 있고 또 이를 통해 조심스러워하는 아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됴히 잇느냐, 쇼복 보낸다. 네 서방도 됴히 잇느냐. 색기도 됴히 있느냐.

- 이병기 편주, 《근조내간선》 중에서

 

이 글은 이조 정종이 출가한 생질녀에게 보낸 편지이다. "잘 있느냐나, 소복 보낸다. 아이도 잘 있느냐"라는 아주 짧은 그글이다. 그러면서도 전달하려고 하는 내용이 선명하게 드러나 있을 뿐만 아니라 절제된 표현의 행간을 타고 상대방이 어떻게 지낸내는가에 대한 관심과 함께 가족 전체의 삶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그대로 풍겨나오고 있다.

 

아내에게,

당신이 말한 대로 그 집에 들러다가 왔소. 며칠 후면 돈이 도착할 것이오. 어려운 형편에 억지고 그만한 돈을 마련했으니 어머니께도 내가 말한 대로 가져다 드리시오. 곧 만나게 될 것이오.

-남편으로부터

 

직장이 지방이 있어서 그곳에 머물고 있는 남편이 아내에게 보낸 편지이다. 이 편지는 다른 사람이 읽으면 무슨 내용인지 잘 알 수 없다는 점에서 유난히 관심을 끈다.

편지는 전하고자 하는 상대가 그 내용을 온전하게 알아들을 수 있게만 하면 되는 것이기에 모든 사람들이 알아볼 수 없게 쓸 수도 있어서, 온전한 문장형태가 아니라도 좋다. 즉 편지는 수신자와 발신자 사이에서만 주고받을 수도 있기 때문에 보내는 이와 받는 이 사이의 관계가 편지글의 형태를 결정하는 데 큰 의미를 갖는 것이다. 따라서 제삼자가 알아서 안 될 일 같은 것은 이와 같이 애매한 표현을 통해서 전달할 수 있다.

 

3) 상대방에 대한 예의를 지켜야 한다

 

이러한 편지글의 특징을 생각할 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서로 예의를 지키는 일이다. 예의가 허물어진 글을 보내게 되면 상대에게 실례가 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인간관계의 기본을 벗어나는 일도 되므로 편지가 지닌 품격을 잃게 되고 받는 이를 불쾌하게 만드는 경우도 생긴다.

편지를 쓸 때는 우선 편지의 시작이 되는 상대의 호칭부터 정확하게 해야 할 것이다. 호칭이 가지는 몇 가지의 특이한 느낌을 다음의 예에서 확인해볼 수 있다.

 

선생님께

사돈님 보시유

누나 보세요

아우님 보시게

아가 보아라

어머님께 드립니다

형님께 올립니다

형 보시오

 

이들 호칭을 입 안에서 조용히 불러보면 각각이 지니는 독특한 느낌을 쉽게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선생님께'의 경우는 평범해서 특별한 사제관계라기 보다는 일반적인 관계의 스승과 제자 사이임을 느낄 수 있다. 이와 달리 '선생께'라고 바꿀 경우, 존칭인 '님'이라는 한 글자가 빠진 선생이라는 말은 존경의 느낌보다는 무엇인가 사무적인 성격의 호칭이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아우님 보시게'의 경우도 친형제간이 아니라 동서지간쯤 되는 먼 사이에 서로를 높이는 예의를 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냥 '아우 보아라'라고 하는 것과의 차이가 바로 호칭으로 해서 생겨나는 것이다. 이와 같이 호칭은 편지의 첫 시작에서부터 중요한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다음의 예들을 서로 비교하여보면 편지에서의 문체가 결정하는 상대와의 인간관계의 밀도 및 친소의 과계를 살펴볼 수 있다.

 

하노라 - 한다

하려 하노라 - 하겠다

할지어다 - 하여라

하옵나이다 - 하옵니다

하소서 - 하시기를 빕니다

 

문체의 문제이지만, 존칭을 어떻게 정확하게 그리고 오늘의 언어 관습에 맞게 골라 쓰느냐 하는 것은 생각해보아야 할 점이다. 편지에서 지나치게 예의를 지킨다고 존칭어를 남발하면 꾸며낸 얼굴로 마주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줄 수 있으므로 일반적인 언어관습을 그대로 따르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 될 것이다.

 

선생님,

겨울방학이 벌써 다 되었습니다.

그동안 아녕 하셨습니까. 한 학기도 훌쩍 지나가 버렸습니다.

학기가 끝나 선생님께 한 학기 동안 가르쳐주신 은혜에 고맙다는 인사라도 드리고 고향에 가고 싶었으나 경황이 없어 그냥 내려가게 되었습니다. 이 작은 편지로 인사드리게 된 것을 용서해주십시오.

봄 개학을 해서 다시 선생님 앞에 설 대까지 건강하게 계시기를 빕니다.

- 제자 올림

 

며칠 전 연구실 문을 열고 들었을 때 누군가 문 밑으로 집어넣은 쪽지편지가 있어서 펼처보았다. 윗글은 편지의 내용이다. 어색하고 조금 예의에 어긋나는 점도 이지만, 제자가 보낸 편지로는 무난한 편이다. 이 편지의 장점은 보내는 이의 마음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는 점이다. 이는 형식에 지나치게 얽매인 편지가 오히려 형식 없는 편지가 지니는 솔직함만 못하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다.

 

2. 서간문의 형식

 

지금까지 편지가 가지는 일반적인 특성을 살펴보았고, 이제부터는 편지가 지니는 형식적 특진을 살펴보기로 한다. 편지의 형식적 특징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⑴ 호칭

⑵ 시후

⑶ 문안

⑷ 보내는 이의 근황

⑸ 용건 또는 사연

6 끝맺음

 

편지를 쓸 때는 스스로 이들 각 부분에 대해 특별하게 어떤 방식으로 틀을 짜야 할 것인가을 생각해보아야 하겠지만, 일반적인 편지의 경우에는 위에 든 각 부분들을 순서에 따라 연결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편지를 쓰기 전에 미리 위에 든 구조에 알맞게 글을 만든 후 조립을 하여보면 몇 번의 훈련으로 쉽게 형식이 꽉 짜인 편지를 쓸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를 살펴보면 ⑴ 호칭은 누구에게 보낸다는 부름의 의미가 담겨있다 '사랑하는 OO에게'라고 하면 연인 사이인 것을, 혹은 '박형' 하고 부르면 친구 사이인 것을 알아볼 수 있듯이, 호칭은 받는 이가 누구인가를 지칭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호칭을 제대로 붙이는 일이야말로 편지를 바르게 쓰는 첫 번째 요건이다.

 

박 형,

벌써 크리스마스가 다 되어가네.

여행 한번 가지 않게는가. 눈 덮인 산록의 통나무집에서 옛날처럼 하룻밤을 보내고 오세.

비용은 둘이 나누어서 쓰기로 하지. 자네가 다 내도 말리지 않겠네.

누구도 없는 눈 덮인 산에서의 만남을 생각하게. 소식 기다리겠네.

-친구 OO가

 

이 편지에서는 '형'이라는 호칭 하나로 이것이 어떤 사이의 사람들끼리 주고받은 편지인지를 그방 알 수 있게 한다. 그리고 호칭에 따라서 그 친밀도가 두드러져보인다. 그러기에 평이한 문체도 구수한 친구 사이의 입담처럼 느껴지게 되는 것이다.

⑵ 시후도 마찬가지다. 떨여져 살아가는 이들 사이에는 날씨가 서로 살아가는 모습이 다름을 나타내는 표시가 되는 것이다.

 

오빠 보세요.

서울 날씨도 이젠 제법 추워졌을 텐데 어떻게 지내세요.

이곳은 눈이 내려 동화에 나오는 집들처럼 되었답니다. 니 눈 속에서 따뜻한 겨울을 보내고 있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오빠에게 다시 제가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는 사연을 알리고자 합니다. 미국이라는 당에 이민 온 지도 어언 10년이 넘어 다시 공부의 길로 들어서고자 하는 저를 의아하게 생각하실 테지만 공부를 다시 하지 않으면 고향에 가고 싶어 견딜 수 없을 것 같아 대학원에 진학을 하였답니다. 의욕에 찬 늙은 동생을 지켜보아 주세요.

 

미국에 이민 가서 살고 있는 여동생에게서 온 편지이다.

서울의 날씨와 그곳의 날씨를 비교하면서 추위에 어떻게 지내느냐고 묻는 것은 서로에 대한 안부와 더불어 살아가는 모습을 상상하는 매개가 되어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날씨에 대한 인사는 단순한 인사말에 그친는 것이 아니라 생활에 대한 관심으로 확대된다는 점이 중요한 것이다.

 

3. 좋은 서간문의 요건

 

지금까지 서간문이 지닌 형식적 특성을 살펴보았다 아무리 형식적으로 어그러짐이 없는 글이라고 하더라도 서간문은 일정한 상대를 대상으로 하는 글이어서, 상대에게 어떤 내용을 전달함에 있어서 문장의 기법에 따라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이 달라지게 된다.

여기에서는 서간문을 쓰는 데 필요한 기법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서간문을 잘 쓰는 방법으로 이태준의 《문장강화》에 제시된 내용을 요약하면 대체로 다음과 같다.

 

⑴ 쓰는 목적을 분명히 할 것

⑵ 편지받을 사람을 잠깐이라도 생각해서 그아 지금 마주앉은 듯한 기분으로부터 알아가지고 붓을 들것

⑶ 한문식 문구를 무시하고 말하듯 쓸 것

⑷ 예의를 갖출 것

⑸ 감정을 상하지 않게 쓸 것

⑹ 저편을 움직여놓을 것

 

이러한 요령이 지니는 의미를 포괄해서 하나의 틀로 엮어보면 서간문이 지니고 있어야 할 기본적 성격으로 다음의 네 가지 요소를 들 수 있다.

그것은 ① 간결한(shortness) ② 단순성(simpllity) ③ 역동감(strength) ④성실함(sincerity)이다

 

1) 간결해야 한다

 

물건을 고를 때 상인이 장황하게 설명하면 사고 싶은 마음이 있다가도 마음이 변하듯이 서간문의 문장이 장황하게 설명의 글이 되어 버리면 읽는 이가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의 진실성을 의심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다음은 초청의 글이다.

 

초청의 말씀

연극인 고(故) 이해랑 선생의 연극정신을 기리고 한국연극의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조선일보사와 이해랑 연극재단이 공동으로 시상하는 '이해랑 연극상'의 다섯 번째 수상자로 윤주상 씨가 선정되어 시상식을 갖고자 합니다.

1995년 3월

조선일보사 사장 방상훈

이해랑 연극재단 이사장 김천혜

 

이 짤막한 초청장이야말로 가장 간결하게 쓰여진 서간문이다. 그러면서도 초청하고자 하는 의도와 초청하는 이에게 왜 참석했으면 하는가 하는 점을 명료하게 밝혀주고 있다. 생일파티에 친구를 초청하면서 보내는 초청장의 글이 번밥하여 축하의 마음을 가지고 달려 가게 하기보다는 꼭 참석해야 하는가 하는 의구심을 가지게 하고 흔쾌한 마음으로 참석하지 못하게 한다면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무리 짧아도 그 행간 사이나 선택한 언어의미가 명료할 때는 장황한 설명이 생략되어 있더라도 참석해야 하는 이유를 찾아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꽃을 병우(病友)에게.

식물원에 가서 이것저것 고르다가 그중에서 제일 좋아보이는 것을 하나 사서 지금 인편에 보내드립니다. 변변치 못한 것이나마 나의 성심이니 받아줍소서, 그리고 병중에 있는 형의 마음이 얼마큼 위로가 된다면 형의 곁에 내가 앉아서 간호해드리는 것이나 다름이 없겠습니다. 자중하시기 비오며.

-김안서, 《서간문범》 중에서

 

위의 서간은 병중에 있는 친구에게 꽃을 보내며 마음을 적은 글이다. 이 글의 중심적 내용은 꽃을 보낸다는 것이기보다는 꽃을 보내는 것이 곁에서 간호해주지 못하는 것에 대한 답답함을 대신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그러기에 꽃을 보내는 일과 간호해주고 싶어하는 마음을 서로 연결하여 짧게 표현하고 있다.

이 글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은 찾아가서 간호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변명이 생략되어 있다는 점이다. 글쓴이는 꽃의 의미를 확대하여 간결한 멧시지로 응축하여 보여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병실에 꽂히게 될 꽃과 자신을 일치시켜 회복을 기원하는 상징적 의미도 보여줌으로써 짧은 메모와 같은 서간이면서도 끊을 수 없는 우정의 깊은 세계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간결함이 서간문에서 중요한 글쓰기의 지침이 되는 것은 말하고자 하는 내용과 최단거리에 표현기법을 마련하여 인산적인 요소를 보다 깊게 할 수 있게 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2) 단순해야 한다.

 

간결함과 단순성의 차이는 필요한 언어만으로 내용을 드러내는 것과 분명하게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드러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다나순성은 전달하고자 하는 뜻을 선명하게 상대에게 보내는 기법이다.

그러기 위해서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복잡하게 우회적인 표현을 동원하는 등의 허례적인 수식어를 과감하게 버리고 보다 선명한 언어가 어떤 것인가를 찾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다음은 아내가 남편엑 보낸 편지이다.

 

여보, 미안해요.

18년 전 음력 1월 18일. 그 해 겨울은 왜 그리 춥고 배고프고 길던지……, 가난한 신혼의 겨울은 어린 신부에게 사랑보다 배고픔이 먼저라는 사실을 실감나게 가르쳐주엇다. 만삭의 배는 한 시간마다. 진통이 오고 병원비라도 구해오겠다면 나간 남편은 통행금지 사이렌이 울려도 돌아올 줄 몰랐다. 문풍지 사이로 매서운 바람이 들어오고 진통의 아픔은 더해갔다. 원망과 미움으로 까만 밤을 하얗게 지새우게 한 남편은 통행금지가 풀리자마자 허둥지둥 달려왔다. '미안해, 돈을 빌려달란 말이 입 밖에 나오지 않아 고스톱 치는 친구 옆에서 끝나기만 기다리다. 그만 통행금지에 걸려서, 정말 미안해……," 그러나 나는 변명을 들을 시간이 없었다. 악을 쓰면서 따져볼 겨를도 없이 나는 미리 준비해둔 애기 기저귀 보따리와 미영뭉치를 챙겨들고 친정으로 갔다. 병원비가 없으니 친정으로 가는 수밖에 다른 수가 없었다.

무사히 도착한 나는 아들을 낳았다. 아이는 건강하게 잘 자라 지금은 아빠 키보다 훨씬 커버린 멋진 아들이 되어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다. 세월은 정말 빠르다. 열심히 살아가는 남편은 그 후론 단 한 번도 외박해본 일이 없지만 지금도 아들을 바라볼 대마다. 그때의 일이 문득문득 생각이 나 미워진다. 아직도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용서를 하지 못한 까닭일까?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20년의 세월 앞에서 이제는 훌훌 털어버려야겠다. 웃으면서 ……,

-최정숙 (《좋은 생각》, 1994년 11월호)

 

 

이 글은 수필형식을 빌려 남편과의 사이에 남아 있던 앙금을 남편에게 고백하고 있다.

구태여 이 글을 편지형식의 글이라고 한다면 제목은 '여보, 미안해요"라는 말이 될 것이다. 남편이 미웠던 순간을 10년이 넘게 잊지 않고 있었으나, 이제 "미안해요"라는 한 마디 함충적 사과의 말이 담긴 편지글로 모든 것을 풀어버릴 수 있다는 점이 독특하여 예문으로 들었다.

편지의 단순성은 이와 같이 얽힌 사연을 간명한 언어표현을 통해 감동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경우에 그 진가를 발휘하는 것이다. 이를 완벽한 서간체로 바꾸어보면 쑥스러움 때문에 자연스럽게 미안 하다는 말을 할 수 없는 글이 되고 만다.

"여보, 그때 당신이 얼마나 잘못했는지를 알고 계시지요. 10년 넘게 나는 이를 잊지 않고 있었지만 세월이 흘렀으니 내가 잊기로 했ㅅ급니다"라는 내용으로 변용하여보면 어색한 감정표현으로 인해 자칫 잘못을 새삼스럽게 들추어내는 듯한 인상을 남편에게 줄 수도 있고 자라나는 아이들 때문에 등이 밀려서 내뱉는 고백이라는 느낌도 줄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글은 이제는 털어버린 소상한 과정을 설명할 수 있어서 부담을 주지 않는 글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또 다른 예문이다. 1957년 정유년에 이순신 장군이 다시 삼도통제사로 부임하던 시절, 선조대왕이 피난지에 있는 딸에게 보낸 편지가 있다.

 

그리 간 후의 안부를 몰라 하노라. 어찌들 있는다. 서울 각별한 기별 없고, 또 적은 물러가니 기꺼하노라. 나는 무사히 있는다. 다시금 좋이 있거라.

정유 9월 20일

-박목월, 《문장의 기술》에서 재인용

 

이 글에서 피난지에 있는 딸을 걱정하는 마음의 표현이라고는 '어찌들'이라는 한마디뿐이다. 그러면서 마음에 품고 있는 많은 우려를 단순하게 집약시킴으로써 말하고자 하는 깊은 속까지도 품위와 위엄을 지키면서 드러내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단순성을 살리기 위해서는 이와 같이 집약시키는 기법을 익혀야 할 것이다.

 

3) 역동감이 있어야 한다

 

서간문에서 역동감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꾸민 듯한 치장으로 죽은 문장이 되게 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옛날 선인들의 글을 보면 예의에 맞는 글을 써야 한다는 것에 매달려 격식만을 차린 의미 없는 어휘들을 가져다 써서 읽을 수 없는 편지가 되는 경우도 허다했다.

다음은 아버지와 딸이 주고받은 편지이다.

 

자상하신 아빠께.

이른 아침의 찬 공기가 겨울을 계속 재촉하고 있어요. 눈이라도 포근히 내렸으면 좋겠어요.

요즘 아빠는 너무 바쁘셔요. 피곤하실 텐데 늦도록 일을 하고 돌아 오시지요. 모두 저희 3남매를 애써 키우시느라 고생하시는 줄 알요.(중략0

글을 쓰자니까 더욱 죄송한 느낌이 들어요. 아빠, 엄마께서는 속으로 무척 슬펴하셨을 것 같아요. 오빤빠나 동생과 별일도 아닌 것을 가지고 다투기도 하며, "그만 해두라"는 부모의 말씀도 잘 듣지 않고 TV나 보면서 심부름 시키는 것을 단번에 듣지 않았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참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도 이제 어엿한 여고생이 되니 더욱더 아빠 엄마를 기쁘게 해드리겠어요.(하략)

1982녀년 11월 29일

고명딸 선영 올림

 

착한 딸 귀한 딸.

나의 착한 딸, 귀한 딸 선영아. 네가 벌써 중학을 마치고 여고생이 되려고 하느냐? 앨법을 뒤적이면 그 속에 엄마 품에 귀엽게 발실웃는 표정과 오빠와 남동생 틈에서 공연히 투정하던 지난날의 네 모습이 떠올라 아빠는 저절로 피식 웃게 된다(중략)

장래에 사회에 나가 어엿한 한 여인으로서 꾸준히 발전해야 한다. 지나간 다음에 후회하지 않는 길은 자기가 처한 현재를 대한 착실하게 사는 것이다. 너의 방 벽에 걸려 있는 우리 집 가훈을 생각해 보아라. 네가 국민학교 6학년생이던 해 어린이날, 서울특별시 착한 어린이상 표창받던 날 아빠 엄마 뜻을 모아 너에게 준 글귀가 리집 가훈으로 굳어진 것을 너도 잘 알고 있겠지(하략)

-이상익·조연희, 《한 송이 연꽃으로》중에서

 

이 글은 서울사대 국어과 이상익 교수가 그의 딸과 주고받은 편지의 일부이다. 중학교를 졸업하며 아버지에게 보낸 딸의 편지에서 격동감을 찾을 수 있는 거것은, 말을 하듯이 솔직하게 자신의 심정을 드러내고 있는 부분들 때문이다. 즉 계절에 대한 자신의 느낌을 표현한 부분이나 또 자신이 잘못을 후회하는 부분 등을 토앻 손으로 모으고 아버지의 무릎 앞에 앉아 어리관을 부리는 영상이 그대로 보여지는 듯하다.

아버지의 글에서도 딸의 지난날을 회상하는 부부분 등에서 어느새 여고생으로 자라버린 딸에 대한 놀라움이 그대로 살아 있어서 이를 통해 아버지로서 세월이 빠르게 흘러간다는 서운함을 숨김없이 드러내고 있다.

일반적으로 부자나 부녀의 관계에서 편지를 주고받을 때 격식을 차려가노라면 하고 싶은 말은 숨어버리고, 하지 않아도 될 쓸데없는 미사구여구나 어려운 한자, 교훈적인 내용의 일반적 표현으로 치장되기 쉽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그그런 부분을 찾을 수 없으며 말을 하듯이 있는 그대로 드러내 보여줌으로써 역동감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

 

4) 성실해야 한다.

 

서간문에 있어서 성실함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나 표현에 있어서 깊이 생각하고 진지하게 드러내 보여주려는 흔적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다음 글은 아버지가 딸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사랑스런 나의 딸 해나야.

아버지는 너희들이 불쌍한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찾아가 하루를 같이 지내며 위문하기 위해서 노래와 연극을 연습한 줄 알았는데, 그동안 너희들의 용돈을 푼푼이 모아서 떡과 과일까지 준비했다는 얘기를 듣고 더욱 놀랐단다. 어마를 무심코 따라갔던 시장 떡집을 용케도 기억했다가 그 떡집에서 떡까지 주문했다는 얘기는 아빠로서는 믿기지 않았다. (중략)

아빠는 너희들 뒤를 따라간 것을 숨기려고 정문에서 할아버지가 문을 열어주실 때 너희들 도착 사실을 알고 양해를 구하고 식당 뒤켠의 조리실로 몸을 숨겼단다. 만에 하나라도 너희희들에게 들키기라도 한다면 아빠의 체면도 말이 아니겠지만 너희들의 당황해할 것이 제일 걱정이었단다.

간밤에 너와 전화통화를 한 책임자 아저씨를 찾는 일이 우선 할 일이었단다. 체구가 아빠만한 책임자 아저씨가 해나가 이곳에 들어온 경위와 그 뒷이야기, 인솔자가 바로 해나이고 신남성국민학교 6학년 2반 아이들이며, 그중에서 남자아이가 일곱, 여자아이가 여섯이라고 자세히 일러주시더구나.

사랑하는 해나야.

너희들의 착한 일을 마지막까지 지켜보고 칭찬도 해주고 돌아오고 싶은 마음 간절했었지만, 아빠는 아빠대로 부끄럽고 아저씨의 일이 뒤범벅이 되어 차마 너희들을 볼 낯이 없었단다.

집에 돌아온 후 하루 오온종일 기쁜 마음과 뿌듯함이 뒤얽혀 혼자 눈물까지 흘렸단다.

-채길웅, 《일출봉에 해 뜨거든》 중에서

 

이 편지는 초등학교에 다니는 딸이 불우한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이 사는 양로원에 찾아가서 선행을 하는 것을 뒤따라가서 살펴본 아버지가 딸에게 편지형식으로 그 사실을 알리는는 글이다.

성실함이란 아버지의 글에서 볼 수 있듯이 정직하게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낼 수 있는 용기를 지니고 써야만 나타나는 것이다. 적당하게 감추고 싶은 것과 자랑하고 싶은 것을 엄밀하게 구분하고 보면 성실성이 글에 드러나지 않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