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2. 6. 12:14ㆍ☎박동규교수문학실☎
제1장 2. 좋은 글이 되기 위해서는 갖추어야 할 조건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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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규 교수님의 "글쓰기를 두려워 말라" 책을 몇번 읽었지만, 읽는 당시는 이해가 되다가도 책을 놓고 나면 멍멍하다. 그래서 이번엔 아예 교수님 저서 "글쓰기를 두려워 말라" 책 전권을 타자를 쳐, 블로그, 카페에 올려 시간, 장소 구애받지 않고 스마트폰으로 손쉽게 읽을 수 있도록 했다. 저자이신 교수님의 양해를 구합니다.
2 좋은 글이 되기 위해서는 갖추어야 할 조건들이 있다.
1) 어떤 글이 좋은 글인가
좋은 문장이 되기 위해 갖추어야 할 조건을 찾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태준의 《문장강화》는 호적*好適이 그의 <문학 개량주의>에서 밝힌 '좋은 문장을 쓰기 이해 지켜야할 여덟 가지조목'을 보여주고 있다.
그 항목을 보면 ① 언어만 있고 사물이 없는 글을 짖지 말 것 ② 병 없이 신음하는 글을 짖지 말 것 ③ 전고를 일삼지 말 것 ④ 난조(難調), 투어(套語)를 쓰지 말 것 ⑤ 대구(對句)를 중요시 하지 말 것 ⑥ 문법에 맞지 않는 글을 쓰지 말 것 ⑦ 고인을 모방하지 말 것 ⑧ 속어, 속자를 쓰지 말 것으로 되어 있다. 이 항목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면 글을 쓸 때에 지켜야 할 것임에 틀림이 없다.
몇 년 전에 어느 학생이 자신의 앞날을 밝히는 글에 "광활한 지식의 창고에서 성취해야 할 거대한 성공은 나의 인생을 승화시킨다'라고 쓴 것을 본 적이 있다. 웃지 아낳을 수 없었다. 그냥 '지식에 대한 열망으로 살아갈 힘을 얻게 되는 것만도 성공이라고 생각한다.'라고 표현하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럽고 정직한 글이 되지 않겠는가, 학생은 무엇인가 의미 있는 말을 써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지 않나 여겨진다. 이뿐만 아니다. 감탄사를 아무러게나 글 가운데 넣어서 공연히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처럼 아무런 효과도 없이 문장을 가볍게 만드는 경우도 흔히 볼 수 있는 것이다.
▶ 진실이 담겨야 한다
지난 크리스마스에 한 제자로부터 다음과 같은 편지를 받았다.
선생님 한 행 동안 편안하셨습니까? 선생님은 새해보다 크리스마스가 더 좋다고 강의시간에 말씀하신 적이 있으신지요. 그래서 신년인사를 이때 올립니다. 2학년 대 등교길에 우연히 선생님과 함께 걷게 되었을 대 제 어깨에 손을 올려놓으시고 '어머님 병세가 좋아지셨냐?"며 물으시던 일이 지금도 눈앞에 선하게 살아있습니다. 저는 그 말씀 한마디로 자취방에 혼자 않아 있는 외로움을 털어버릴 수 있었습니다. 오는 새해 선생님 가족이 축복받으시길 빌며 곧 찾아가 뵉겠습니다.
나는 이 편지를 몇 번이나 읽었다 그의 편지에는 진실함이 드러나 있었다. 오래 전 선생님과의 우연한 만남을 그가 잊지 않고 있다는 기억력의 특출함보다 자취방에서 외롭게 지낼 때, 선생으로서 건네준 몇 마디의 위안이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가를 가슴 깊이 느낄 수 있게 적어놓았기 때문이다. 해마다 연말이면 수많은 카드를 보내기도 하고 받기도 하지만 그 카드에 적힌 몇 마디의 글을 읽어보게 되면 보낸 이의 마음속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문장에는 진실성이 담겨 있어야 읽는 이가 감동을 느낄 뿐 아니라 글이 지니고 있는 의미의 깊은 세계를 살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내가 교환교수로 캐나다 토론토에 가 있을 때였다. 회갑을 넘긴 어머니는 대학교수로 가 있는 나에게 1주일이 멀다 하고 원고지에 횡서로 쓴 편지를 보내곤 했다. 그때 모아놓은 편지 중에서 하나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동규야, 이국에서 서양아이들 가르치느라고 얼마나 고생을 하니, 새벽마다 교회에 가서 너와 네 식구들을 위해서 기도를 한다. 어디를 가도 남을 먼저 생각하고 나를 낮게 여기는 것을 잊지 말아라. 어제는 김장을 하다가 네 생각이 나서 손을 놓앗다. 네가 어렸을 대 김장을 준비하러 시작에 가서 배추를 실어올 대 너는 시래기감을 주워 짐수레에 얹으며 "엄마, 이것도 버리면 안되지" 하고 말해서 나를 울렸지, 가난해서 푸른 배추도 가지고 와야 했던 에미를, 너는 알아주는 자식이엇다. 네가 대학을 졸업하고 유학을 가고 싶어해도 집안 형편이 되지 않아서 보내주지 못하여 아버지가 마음 아파하던 일을 너는 잊지 않았겠지, 이제 이국땅에 간 것만도 에미는 기쁘기는 하다만 꼭 물가에 보내놓은 것 같아 마음이 불안한 것을 어쩔 수 없구나. 비록 멀리 있지만 에미가 하루도 빠지지 않고 너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을 잘 알 것이다. 며칠 전에 집에 전기가 나가서 깜깜한 방에 앉아 있으려니 누구를 불러야 할지 몰라서 답답하더라, 너만 있으면 그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데, 그리고 캐나다는 춥다고 하는데 꼭 내복을 입어라. 또 눈이 오늘 날 차를 몰고 다닐 대는 특히 주의해라, 힘이 없어 네가 좋아하는 음식도 만들어 보내지 못하고 있다. 나는 하늘을 봐도 캐나다가 어느쪽인지 알 수 없지만 같은 하늘 아래 살고 있으리라고 여기면서 내 아들도 에미와 같이 하늘 보겠거니 하면 마음이 조금은 풀린다.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며 하나님이 꼭 우리 가족을 지켜주시리라고 믿는다.
비록 내용이 중복되는 곳도 있고 문장의 흐름도 끊어져서 말하고자 하는 점들이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은 곳도 있었지만, 나는 이 편지를 읽고 혼자서 가슴 아파하였다. 내가 가슴 아파한 것은 다름아니라 어머니가 내게 보내고자 하는 글의 내용이 진실하기에 한마디 한마디마다 마치 손을 잡고 말하는 듯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문자의 진실성이라는 것은 꾸미려고 하지 않고 솔직하게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 보여주는 것이며, 또 진지하게 추구된 진리를 그 내용으로 하고자 하는 성실함이 있어서 이 성실이 감동을 자아내게 하는 것이다. 즉자신이 바라본 세계나 현상에 대해 얼마나 진실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느냐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 개성이 담겨야 한다.
공문서와 같이 주어진 틀에 마춰 글을 쓰는 것을 누구도 글쓰기라고 하지 않는다. 문장의 최고봉은 바로 마치 전화를 걸어 "여보세요"하고 부르면 금방 "너, 누구지"하고 알아보듯이 자신의 채취와 정신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왜 개성적이어야 하는가'라는 물음을 가질 수 있으나 문장은 글쓴이의 사상과 감정을 드러나게 하는 도구이기에 개성적이 되는 것이 정당한 것이다.
해방 후 이승만 대통령의 담화문은 특이했다. 한글로 말하듯이 써내려간 그 글은 이승만 대통령이 지니고 있었던 성품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으로도 유명한 것이었다. 뿐만 아니다. 지금까지 역대 대통령들이 국민에게 보내는담화문을 비교해보면 곧 그 대통령의 철학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글을 쓰는 사람에 따라 특이한 어휘를 번번하게 사용하거나, 독특하게 긴 문장을 쓰거나, 아니면 마치 번역체의 무장을 쓰거나 하는 버릇이 있다. 이러한 일들은 문장을 구성하는 데 있어서 언어의 배열이나 문장 구조에 대한 나름대로의 숩관이 작용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습관이 자신의 개성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남들의 문장에서 그대로 익혀온 것일 대는 표현의 독창성이 없기 때문에 개성적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텔레비젼에서 코미디언이 이상한 말을 자기의 전매특허인 양 만들어서 유행어가 되도록 하려고 애쓰는것을 흔히 볼 수 있다. 실제로 몇몇의 말들은 유행이 되어 어린이들이 즐겨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 말은 한정된 의미로만 쓰여지는 것이지 코미디언의 정신 셰계를 보여주는 단서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하겠다.
그러므로 문장에 있어서 개성이라는 것이 쓰는 이가 지니고 있는 독특한 말하기의 방법을 나타내 보여줄 수 있는 것이면서 나아가 이를 통해 쓰는 이의 정신세계와 세계를 바라보는 눈의 초점이 어떤 것인가를 알 수 있게 하는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대학에 다닐 때였다. 한 친구가 아침에 학교에 와서 게시판에다 친구와의 약속을 위해 몇 자 적어놓을 때마다 "친구, 오늘 낙산 다방에 나오시오. 여섯 시"라고 쓰는 것이었다. 내가 하도 이상해서 "여섯 시에 나오라는 거야, 아니면 여섯 시에 적어놓았다는 거야?" 하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웃으며 "바로 그런 의문을 가지라"고 이렇게 적었다는 것이었다. 후에 그는 여섯 시까지 다방에 앉아 있겠다는 뜻이라고 해명을 했다. 이와 같은 경우에서 보듯이 특이하게 표현한다고 개성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꼭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전달하면서 자신의 향기나 체취가 문장에 배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 향기는 바로 글을 쓰는 이의 인격이 담겨 있는 정신이 묻어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개성은 자신이 지닌 독특한 감성의 더듬이로 건져올린 소탈한 표현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주제가 분명히 드러나야 한다.
앞에서 좋은 문장이 되기 위해서는 진실성 있는 내용과 개성적인 표현이 있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이어서 생각해야 할 것은 표현의 정직성에 관한 문제다.
이 세상에 살면서 항상 정직하게만 말하나면 아마 어떤 사람들과도 함께 살 수 없을지 모른다. 묻는 대로 정직하게 대답한다는 것이 어떤 때는 너무 어리석게 보이는 경우가 있다.
고등학교 2학년 때의 영어선생님은 참으로 멋지셨다. 홈스펀으로된 구식 윗도리를 입으시고 한 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고 서 있는 모습은 외국의 영화배우 못지않게 근사해보였다. 우리는 간혹 영어시간이 끝나가면 "선생님, 첫사랑 이야기 좀 해주세요"하고 소리를 질러댔다. 학습 진도에 매달려 지내다가 잠깐 내는 틈은 장마에 얼핏 파란 하늘을 보는 것과 같이 우리에게는 신선한순간이었다.
선생님께서 마지못해 눈을 지그시 감고 "열네 살인가 다섯 살 때 쯤이었지"하고 시작을 하면 우리는 숨을 죽였다. 그리고 얘기가 잘나가다가 "통학시간에 멀리 이른 새벽기차 속에서 그녀를 보면서 그냥 미소만 짓고 있었지" 하면 우리는 "에이"하며 싱겁다고 소리를 지르곤 했다.
나는 1학년 때도 같은 영어선생님 밑에서 배웠기 때문에 선생님의 첫사랑 이야기를 달달 외우고 있었다. 그런데 이야기가 그전과 달랐다. 그때는 틀림없이 '버스 속'에서였다. 아침에 학교 갈 때마다 매일 같은 버스에서 만났다고 했던 것이다.
나는 큰소리로 "그전에는 버스에서 만났따고 하셨잖아요"하고 따졌다. 그러자 아이들은 "야 버스서 만나나 기차에서 만나나 첫사랑 애인은 같잖아" 하고 조용히 하라며 내 입을 막았다 나는 잠자코 있을 수 밖에 없었고 선생님은 내용이 조금 달라진 첫사랑의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계속하셨다.
하지만 마지막은 항상 똑같았다. 피난길 눈보라 속에서 손을 잡고 가다가 서로 자기 가족과 함께 가기 위해 손을 놓았고, 눈보라 속에서 사라져가는 애인의 뒷모습을 향해 "순이!" 하고 목이 터져라 불렀던 것이 영원한 이별이었다는 것이었다. 이 마지막 이별의 장면에 이르러서는 훌쩍거리며 우는 아이도 있었다. 그리고 나 역시 1학년때와 마찬가지로 눈가에 눈물이 고이는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나는 선생님의 첫사랑 이야기를 믿지 않았다.
졸업을 하고 얼마가 지난 후 우리 중 한 친구가 우연히 영어선생님과 만났을 때 "선생님, 그때 저희에게 들려주신 얘기가 정말이었습니까? "하고 첫사랑 이야기를 여쭈어보았더니 선생님은 "그럼 정말이고말고, 너희들 재미있으라고 배경이나 사소한 장면만 바꾸었지, 어디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하며, 눈물을 글썽이더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한동안 가슴이 아팠다. 쓸데없는 군더더기에 매달려 그 아픈 사랑의 진실을 알지 못한 것이 속상했다. 선생님께서 보여주려 하신 슬픈 사랑이야기와 표현이 방식을 제대로 가늠할 수 없었던 탓에, 나는 선생님의 이야기를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던 것이다.
말하고자 하는 주제는 같지만, 표현의 방식은 다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글을 써놓고 보면 실제 마음과는 전혀 다른 글이 되는 경우도 있고, 자신의 뜻이 제대로 드러나 있지 않아서 답답한 경우도 있는 것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먼저 주제를 드러내는 표현은 어떠해야 하는가를 찾아보는 일이 필요하다. 한 예로 다음의 신문기사에서 나타내고자 하는 내용과 전달방식 사이에 기사가 의도하는 점이 무엇인가를 알 수 있다.
생수 상당수 수돗물만 못해
감사원 42개 업체 중 11개 업체 수질 미달
시중에 유통되는 생수의 상당수가 수돗물에 적용되는 수질기준에도 못미치고 있는 것으로 감사원 감사 결과 밝혀졌다. 감사원은 지난 2월 16일부터 26일까지 14개 허가업체 중 11곳과 31개 무허가업체 등 42개 업체의 생수를 각 시·도 보건환경연구원에 의뢰해 표본조사를 한 결과, 이중 허가업체 한 곳을 포함한 11개 업체의 생수에서 일반 세균이 기준치보다 초과하거나 대장균에 감염되어 있는 등 음용수로서 부적합한 것으로 판명되어다고 14일 밝혔다. 감사원 관계자는 이번 감사는 1백여 개 생수업체 중 30억원 이상의 시설비를 투자한 업체만을 대상으로 삼았다고 말했다.
-《조선일보》(1994년 4월 15일)
윗글은 날로 심각해지는 수질오염을 보다못해 시판을 허용하게 된 생수가 과연 맛길 만한가 하는 문제를 다룬 것으로, 생수의 수실을 검사한 감사원의 결과를 기사화하여 보도한 것이다.
이 기사의 표제를 보면 "상당수"의 생수가 수돗물보다 나을 것이 없다고 되어 있다. 그리고 부제에서는 '42개 업체 중 11개 업체의 생수가 수질이 미달'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런데 기사의 본문 내용을 익어보면 허가된 업체 중 한 곳의 생수만이 문제가 있고 나머지 대다수인 열세 개 업체의 생수는 기준에 벗어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수질에 문제가 있는 무허가 업체도 서를한 개의 무허가 업체 중 열 개 업체다.
따라서사실을 정확하게 말한다면 '허가업체 중 한 개 업체, 무허가 업체의 3분의 1이 수질에 문제가 있다'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왜 '상당수'라는 표현을 써서 유통되고 있는 대부분의 생수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도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길 수 있다.
바로 여기에 기사가 나타내고자 하는 주제가 숨어 있다. 물은 국민의 건강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허가된 것이든 아니든 우리는 물을 마실 때 '생수'라는 이름만 붙어 있으면 안심하고 마시는 경우가 허다하다. 뿐만 아니라 아직까지 상당수의 소비자가 생수의 제조회사 이름을 확인하는 판별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기에 '상당수'라는 말을 씀으로써 보다 강한 경각심을 표현하과, 생수를 고르는 데 올바른 시각을 가져야 함을 알리고자 한것이다.
통계 숫자만을 나열하여 이를 기사화하는 것보다는 주제, 즉 감사원의 발표 내용을 왜곡하지 않으면서 소비자에게 생수에 대한 경각심을 심어주는 데 더 효과적인 방법을 사용한 것이다. 이렇듯 다른 방식의 표현을 통해 내용의 진실성을 왜곡하지 않으면서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바르고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
여기서 유의해야 할 점은 내용을 잘못 전달하는 표현양식은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말하려는 뜻을 그렇지 않았는데 듣는 이가 오해를 해서 곤욕을 치른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이는 대부분 내용을 전달할 때 그 도구로 사용하는 표현법이 정직성을 가지지 못한데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정직성이라는 말은 나타태고자 하는 주제와 가까운 표현법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직한 글은 보다 선명한 표현의 틀에 드러내고자 하는 내용을 담아야 한다.
이를 의해서 글을 쓸 때 꼭 지켜야 할것은 ① 주제가 확실하고, 이 확실한 주제를 명쾌한 초점으로 맞추어야 한다는 점이다. 횡설수설이야말로 글쓰기에 있어 가장 큰 잘못이다. ② 짜임새가 명료해야 전달이 정확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 논리구조가 허물어져 있으면 내용이 산만하게 펼처지게 마련이어서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모르게 된다. ③ 쉬운 표현을 써야 한다. 숩다는 말은 읽기에도 쉽다는 것을 뜻한다. ④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에 알맞는 언어를 구사하는 일이 중요하다. 글을 쓰다보면 멋을 부리고 싶어지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푸른 하늘에 큰 비행기가 지낙ㅂ니다'라고 밋밋하게 표현하는 것보다 '창공에 비행기가 비행한다.'로 바꾸게 되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그러나 바뀐 글에서는 푸른 하늘이 주는 상쾌함이 반감되고 나이 든 사람이 쓴 것 같은 고루한 인상이 풍긴다. 따라서 멋을 부리는 것도 정확한 전달과 표현의 정직성을 바탕으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2) 시 한편도 좋은 글쓰기의 표본이 된다
▶ 개성적이고 독창적인 시각이 효과적인 표현을 낳는다.
같은 사물이라도 글로 써보면 사물의 본체가 잘 드러나는 것과 그렇치 않은 것의 차이를 느낄 수 있다. 봄을 노래한 시인들의 시를 보면 어떻게 다양한 봄이 있을까 하고 참으로 신기하게 느껴진다.
꽃가루와 같이 부드러운 고양이의 털에 / 고운 봄의 향기가 어리우도다. // 금방울과 같이 호동그란 고양이의 눈에 / 미친 봄의 불길이 흐르도다. // 고요히 다물은 고양이의 입술에 / 포근한 봄 졸음이 떠돌아라
- 이장희, <봄은 고양이로소이다> 중에서
밤이도다 / 봄이다 // 밤만도 애달픈데 / 봄만도 생각인데 // 날은 빠르다 / 봄은 간다 //깊은 생각은 아득이는데 / 저 바람에 새가 슬피 운다.
- 김억,<봄은 간다> 중에서
누구나 / 인간은 / 두개의 음성을 들으며 산다 / 허무한 동굴의 / 바람 소리와 / 그리고 / 세상은 환환 사월 상순
- 박목원, <사울 상순> 중에서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피우며 / 추억과 욕망을 뒤섞고 / 봄비로 활기 없는 뿌리를 일깨운다. / 차라리 겨울이 우리를 따뜻하게 했었다. / 망각의 눈으로 대지를 감싸고, / 마른 구근(球根)으로 갸냘픈 생명을 키웠으니
-T>S 엘리엇, <황무지> 중에서
위에 인용한 것은 봄을 대상으로 한 시들이다. 시인이 봄에 느끼는 감각은 개성적이고 다양하다.
이장희는 봄이 고양이의 나른한 몸 위에 내려앉아 있는 모습을 그려내어 봄이 지닌 정취를 그러내 보여주고 있다. 이 시에서는 촉각, 시각, 청각, 후각등 섬세한 감각이 여러 가지 이미지와 결합하면서 봄이 지닌 생동적인 정서를 효과적으로 조형해주고 있다. 꽃가루와 봄의 향기가 고양이의 털과 연결되고, 금방울과 봄의 불길이 고양이의 눈과 연관되고, 고요함과 봄 졸음이 고양이의 입술과 연관되어 있다.
이와 같이 효과적인 표현의 방식은 사물이 지니고 있는 독특한 정서를 창조적인 시각으로 잡아 이를 드러나게 한다.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고양이의 털과 눈과 입술 위에 내려앚은 봄을 그려내어 눈에 환하게 보이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 시는 봄을 노래하고 있으면서도 봄을 맞은 인간의 서루움을 그려내고 있다. 만물이 생동하며 일서서는 약동의 계절에 오히려 세월의 흐름을 아쉬워하는 인감의 감상이 드두러져 있다. 그리고 화려한 의상으로 인간을 슬픔에 빠지게하는 봄의 힘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점이 바로 김억 시인이 지닌 독특한 개성이다. 한 사물과 대비되는 요소를 갖져다놓음으로써 오히려 사물이 두드러질 수 잇음을 보여준다. 하얀 눈 위에 까만 까치가 앉아 있을 때 눈의 순수함이 더 두드러지듯이 표현의 효과는 이처럼 다양한 것이다.
이는 앞서 김억의 시에서 나타난 표현과 비슷하게 보이지만 자아의 중심이 우선이고 환환 봄의 세계가 배경화되었다는 점에서 다르다. 봄이 온 것을 느끼는 것은 마음이며, 세월이 가져다주는 봄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깔려 있는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이는 마음에 들어온 봄과 밖의 봄을 제시하여 봄이 지닌 의미를 확산시키는 표현이 되는 것이다.
엘리엇의 <황무지> 역시 봄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여기서 그는 봄 보다는 겨울을 따뜻하게 여기고 있는 이늘 역설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보이 주는 생동의 힘으로 해서 만물의 활기가 드러나는 것보다는 그것이 꽁꽁 얼업줕어 드러나지 않고 있었을 때가 더 좋다는 것이다. 이는 곧 봄에 대한 또 다른 표현의 한가지인 것이다.
이와 같이 효과적인 표현의 세계는 개성적이고 창조적인 시각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문장에 있어서 효과적인 표현은 일률적인 법칙을 따르는 데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나타내고자 하는 사물의 의미를 충실하게 바라보고 이를 적절히 형상화해서 잘 나타나게 하는 데 달려 있는 것이다.
3) 소설을 통해 배우는 좋은 글쓰기
▶ 내용에 어울리는 형식을 지녀야 한다.
지금까지 시를 중심으로 어떻게 사물의 의미를 효과적으로 드러내며 그 속에 개성적인 향기를 담아낼 수 있는가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시가 압축적이고 내표적인 형식을 가지고 있는 괏과는 달리 산문은 표사적이고 서술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산문에서 효과적인 표현방식을 찾을 대 꼭 마음에 두어야 하는 것은, 전달하고자하는 내용이 정확하게 드러나게 해야 한다는 점이다.
표현하고자 하는 내용을 어떤 형식을 글에 담느냐에 따라 쓰는 법도 달라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내용과 형식이 제대로 맞지 않아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알 수 없게 된 글을 흔히 볼 수 있다.
내가 대학에 입학해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한 친구가 소개를 해서 어느 여대생과 만나게 되었다. 나는 부끄러움이 많아 이 여대생 앞에서 제대로 내 마음에 있는 이야기를 할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대학노트를 한 권 사서 그녀와 만나기 전에 내 마음에 있는 이야기를 적어서 들고 나갔다. 앉아서 노트를 건네주면 그녀는 마치 꿈에 취한 듯 내 글을 읽고 그녀도 이 노트를 가지고 가서 다음에 만날 때 자신의 이야기를 적어 건네주는 것이었다.
나는 그녀와 헤어진 후부터 그녀를 다시 만나는 날까지 생각이 날때마다 노트를 꺼내어 글을 적어나갔다. 그런데 이 글들은 한낮에 대학 캠퍼스에서 쓸 때는 대체로 줄거리가 있는 사연이 담긴 글이 되었지만, 한밤중에 홀로 깨어 창밖에 별들이 반짝이고 있을 때 쓰이게 되면 단상들이 많아서 시의 형태를 띠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녀가 나의 글을 읽고 나서 적어놓은 글을 보면, 낮에 쓴 글에는 논리적인 혹은 내 이야기와 대응하는 이야기를 찾아 쓰고 있었고, 시처럼 순간적인 느낌을 단상으로 적은 글을 읽고 난 다음에는 그녀 역시 알 수 없는 암호와 같은 몇 마디의 글을 암시적으로 적어놓고 있었다. 지금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는 몇 가지 글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오늘 우리 대학에서 학과 대항 축구시합이 있었어, 우승한 학과에는 격려금이라고 해서 상금도 걸려 있는 경기였어, 나는 1학년이었지만 선배들이 나가라고 해서 레프트 윙을 맡았어. 공격진었지. 우리 학과는 결승에 올랐는데 결승전에서 중어중문학과와 싸워서 1대 0으로 지고 말았어. 지금 난 대학 운동장 옆 마로니에 그늘에 앉아 이 글을 쓰고 있어. 왜 졌는냐고 묻고 있는 너의 눈동자가 보여. 그래서 이글을 쓰는 거야. 진 이유는 하나야. 너는 축구를 모르겠지. 그렇지만 이일은 말하지 않을 수 없어서 해야겠어. 후반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어. 나는 참으로 운 좋게 페널티 에어리어 근처에서 공을 잡았어. 수비하는 상대를 제치고 골문을 향해 내닫자 키퍼가 놀라서 나에게 다가온는 것이었어. 키퍼는 내 앞에서 내가 공을 차는 줄 알고 앞으로 엎드려서 살짝 옆으로 따돌려놓고 보니까 골문이 훤하게 비어있는 것이야. 그냥 슛을 했으면 틀림없이 들어갔을 텐데 골대 옆에 나와 동학년으로 붓단에서 온 친구가 서 있는 것이 보였어. 그에서 공을 패스했어. 그가 나보다 더 확실하게 슛을 성공할 수 있는 거리였기 때문이야. 그냥 발만 가져다 대면 들어가게 되어 있었어. 어린아이를 세워 놓아도 몸으로 굴러오는 공을 밀어도 되는 그런 형국이었어. 그런데 이 부산 친구가 구두를 신고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뒷발을 가져다 대는 것이었어. 공은 살짝 골문 옆으로 비껴나가 들어가지 않았어. 나는 하도 이상해서 게임이 끝난 다음 그에게 왜 바르게 발을 대지 않고 뒤축을 가져다 댔는냐고 추궁을 하니까, 그는뒤통수를 긁으며 "아버지가 대학 입학을 했다고 사주신 구두라서 앞코가 까지는 것이 마음에 걸려서 어차피 들어갈 공이라는 생각에 뒤축을 대었더니 안들어가잖아" 하고 말했어. 나는 화가 나서 한참 입을 다물고 있다가 웃고 말았어. 어쩌니, 아버지가 사준 구두인데, 우리는 아직도 부모의 손끝에 매달려 있나 봐.
그 당시의 글을 다시 쓰다보니까 좀 길어졌다. 학과 대항 축구시합에 어이없이 진 것이 원통하다는 내 솔직한 마음이 담겨 있기는 하지만, 이보다는 구두쇠인 부산 친구가 왜 구두 뒤축으로 공을 차서 우리를 실망시켰는가 하느 사건 속에 아버지가 입학기념으로 사준 구두에 대한 그의 애착과 그 또래들이 아직도 지녀야만 했던 부모 그늘 밑의 생활에 대한 나의 의견이 중심된 내용이었다. 며칠 수 이 글을 읽고 난 그녀가 노틍에 다음과 같을 글을 적어서 내밀었다.
너무 재미있었어. 내 친구 중에도 그런 구두쇠가 있어. 얼마나 구두쇠인지 말도 못 해. 그저께 친구와 학교 앞에 있는 양장점에 갔어. 여름이 다 되어서 원피스 한 벌을 맞추려고 갔던 거야. 친구와 나는 이것저것 고르다가 흰색 바탕에 꽃무뉘가 있는 면으로 된 옷감을 골랐어. 친구는 내가 골라놓은 옷감을 보면서 "참 잘 고랄ㅆ구나' 하고 칭찬을 해서 기분이 좋았어. 그런데 내가 양장점 주인과 한참 동안이나 값을 흥정해서 겨우 얼마를 깎아 결정을 하고 치수를 재고 있을때였어. 친구는 마음에 맞는 것이 없다면서 옆에 서 있기만 하더니 갑자기 양장점 주인에게 "이 옷 할 벌 더 하자면 얼마나 주면 되지요?" 하고 묻는 것이었어. 나는 이미 게약금까지 주고 났는데 말야. 그러자 양장점 주인은 "두 벌을 하면 조금 덜 받아야지요" 하면서 내 옷감보다 훨씬 싸게 값을 부르는 것이었어. 나는 화를 낼 수도 없고, 기분이 나빠져서 나오고 말았어. 시내로 나 혼자 나오려고 하자 친구가 따라 오면서 "우리 집에 놀러오더라도 엄마한테 절대 내 옷을 더 싸게 했다고 말하지 말어" 하고 말하는 거야. 얌체지. 이런 친구도 있쟎아. 엄마도 속일 줄 알아야 용돈이 생기지. 실속이 없으면 언제나 손해뿐이지 뭐.
그녀의 글 또한 얌체인 친구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지만 그 속에 담긴 핵심은 나와 다른 것이었다. 이를 서로 비교해보면 첫째, 부모의 영향권에 들어 있는 것에 대해 내가 순종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는데 비해서 그녀는 부모의 영향권을 대로는 벗어나는 것이 그렇게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둘째, 구두코가 까질까 봐 겁을 낸 친구는 부모를 생각해서 한 일이랄 생각하고 난 너그럽게 보아주고 있는 데 비해서, 그녀는 자신의 옷보다 싸게 하는 지혜를 가진 친구에 대해서 현실을 살아가는 필수적인 요령을 지닌 영리한 친구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 등을 알 수 있다. 이 두 가지 외에도 짧은 글 속에서 나와 그녀가 현실을 어떻게 보며 친구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느냐 하는 점 등이 드러나 있다.
나와 그녀가 이야기 형식을 빌려 사건중심으로 서로의 견해를 밝히고 있는 것은 사건을 담고 있는 글을 어떻게 쓰느냐 하는 점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글을 썼기 때문이다.
소설이라는 산문은 바로 이와 같이 작가가 상상하고 꾸민 삶을 이야기 속에 넣어 독자에게 보여주기 때문에 이야기라는 얼굴을 가지게 되는 것이며, 작가는 이 이야기 속에 자신의 사상과 감정을 담아 주제를 만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 상징을 통해 보다 명쾌하게 의미를 전달 할 수 있다
이제 소설에서 작가가 어떻게 효과적인 표현의 세계를 만들어가고 있는가를 보기로 하자. 소설은 시와 달라서 묘사나 서술의 형식을 빌려 이야기를 그려나가기 때문에 독자들은 쉽게 이야기의 내용을 파악할 수 잇으며, 이야기나 사물의 내면을 독특하게 표현하는 개성적인 솜씨를 보여줄 수 있다.
다음 예를 통해. 우리는 작가가 하나의 상징물을 보다 명쾌한 의미를 전달하기 위한 도구로 삼고 있음을 살펴볼 수 있다.
그해에도 골짜기의 눈이 녹고 진달래가 피자 학이 왔다. 예년처럼 주지런히 집을 틀고 새끼를 깠다. 두 마리의 어미학은 쉴새없이 벌레를 물어 올렸다. 그때마다 두 마리의 새끼가 노랑 주둥이를 내둘렀다 올해도 평년작은 된다고들 하면서 우선 흉년을 면한 것을 기뻐했다. 그러던 어느 비내리는 아침이었다. 학나무 밑에[ 아주 어린 학의 새끼 한 마리가 떨어져 죽어 있었다. 아직 털도 채 나지 않은 학의 새끼는 머리와 눈만이 유난히 컸다.
"허 그참 흉한 일이로구."
과연 무서운 변이 마을을 흔들고야 말았다. 그 일이 있으 지 한 달도 채 못 되어서였다. 별안간 하늘이 무너지고 산이 온통 갈라지는 것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문을 걸고 집 안에 틀어박혔다. 덜덜떨며 문틈으로 밖의 학나무를 살폈다. 학도 둥우리 안에 들어앉아 조용하였다.
- 이범선, <학마을 사람들> 중에서
윗글은 마을 사람들과 학이 어떤 인연을 맺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부분이다.
이 소솔에서 학은 마을의 길흉화복을 알려주는 예언적 능력을 지닌 새로 표현되어 있다. 이 소설의 서두에 보면 "자동차 길엘 가재도 오르는 데 10리, 내리는 데 10리라는 영을 구름을 뚫고 넘어, 또 그 밑의 골짜기를 30리나 더듬어나가야 하는 마을이었다'라고 학마을을 그리고 있다.
이 조용하고 평화로운 마을에 학이 언제부터 찾아오게 되었는지 분명하게 드러나 있지는 않지만 여든 살이 되는 이장이 나기 전부터라 한 것을 보면 이 마을과 학은 하나의 공동생명체의 관계를 맺고 있었다는 점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러기에 독자들은 이 마을에서 일어나는 모든 행·불행의 일들이 학과 연관이 이는 것으로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학병에 끌려갔던 동네 사람이 돌아오는 것과 학의 귀환이 연결되고, 학의 새끼가 죽는 것으로 이 마을에 전쟁의 불길이 미치게 되는 것 등은 이런 맥락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작가가 학을 하나의 상징물로 선택하여 이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기에 마을 사람과 학의 관계에서 학니 지니는 고고하고 비세속적인 모습이 그대로 이 마을의 평화를 희구하는 다른 얼굴롤 보여지게 되는 것이다. 특히 여든 살 된 이장의 모습은 이 학과 흡사하게 그려져 있다. 이는 학이 인간의 한 분신이고 이 분신은 평화를 지향하는 이의 마음에 감추어져 있는 바람의 한 의미가 되어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작가는 명확한 상징물을 선택하여 그 상징물의 내포적인 의미망 속에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담아 보여줌으로써 살아 있는 이야기를 만든다.
▶ 절재된 표현으로 현실감을 더욱 강화할 수 있다
둘째로 마치 자연을 보고 그 인상을 여실하게 그려내듯이 독특한 감각으로 사물을 그려내어 현실성을 강하게 띠도록 하는 방법을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현실성을 강하게 띠도록 작가가 만들어놓은 가공의 세계가 현실에서 불가능한 것을 억지로 꾸며놓아서 독자에게 '거짓말'이라는 비션실감을 주는 것을 막아내고, 현실에서 잇을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과 느낌을 갖게 함으로써 보다 생생함을 맛볼 수 있게 하는 장치가 된다.
소녀의 입술은 파아랗게 질렸다. 어깨를 자주 떨었다. 무명 겹저고리를 벗어 소녀의 어깨를 싸주었다. 소녀는 비에 젖은 눈을 들어 한 번 쳐다보았을뿐, 소년이 하는대로 잠자코 있었다. 그리고는 안고 온 꽃묶음 속에서 가지가 꺾이고 꽃이 이그러진 송이를 골라 발 밑에 버린다.
소녀가 들어선 곳도 비가 새기 시작했다. 더 거기서 비를 그을 수 없었다. 밖을내다보던 소년이 무엇을 생각했는지 수수밭 쪽으로 달려간다. 세워놓은 수숫단 속을 비집어 보더니, 옆의 수숫단을 날라다 덧세운다. 다시 속을 비집어 본다. 그리고는 이쪽을 향해 손짓을 한다. (중략)
소란하던 수숫잎 소리가 뚝 그쳤다. 밖에 멀개졌다. 수숫단 속을 벗어 나왔다. 멀지 않은 앞쪽에 햇빛이 내리붓고 있었다. 도란 있는 곳까지 와 보니, 엄청나게 물이 불어 있었다. 걷어올린 소년의 밤방이까지 물이 올라왔다. 소녀는 얼마나 소리를 지르며 소년의 목을 끌어안았다. 개울가에 다다르기 전에 가을 하늘은 언제 그랬는 성싶게 구름 한점 없이 쪽빛으로 개어 있었다.
-황순원, <소나기> 중에서
황순원의 <소나기>는 누구나 알고 있는 작품이다. 이 소설에서 소년이 소나기가 내려서 비를 피하다가 개울 앞에 다다라서 소녀를 업고 건너게 해주기까지의 부분을 인용하였다. 이 글에서 작가는 소년과 소녀가 서로 마음을 주고받고 있는 미묘한 감정의 교류를 독자들이 충분히 느낄 수 있도록 하면서도 이러한 마음의 교류를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일은 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이러한 느낌을 주는지를 살펴보면 첫째로 소년과 소녀의 행동을 극히 단순화해서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소녀가 입술이 파랗게 되어 어깨까지 덜덜 떨고 있는 모습을 본 소년은 저고리를 벗어줄 뿐 "얼마나 춥니"하고 묻지를 않는다. 이에 응답하는 소녀 역시 "젖은 눈을 들어 한 번 쳐다보았을 뿐'이다. 소년과 소녀 사이에 오간 이 무언의 동작과 표정은 동정과 감사의 의미를 지지고 있지만 독자들이 이 장면에서 얻게 되는 것은 극도로 절제된 표현 뒤에 감추어진 사랑의 따뜻함이다.
그리고 소년은 소녀가 있는 곳에 비가 새기 시작하자 "무엇을 생각했는지' 수수밭 쪽으로 달려가서 수숫단을 다시 세워 비를 피할곳을 만들게 된다.
이때도 독자는 수수밭으로 달려가는 소년의 행동을 '무엇을 생각했는지"라는 객관적인 시각을 통해 보여주려는 작가의 손짓에 다라 그가 다시 비를 피할 수 있는 수숫단 텐트를 만들려 한다는 것을 알게 되낟. 또한 소년은 그것을 다 만들어놓고도 "이곳으로 와"하고 소녀를 부르는 것이 아니라 이쪽을 행해 손짓을 하는 것이다. 물론 대화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 표현의 기법으로 뛰어나다는 뜻이 아니라, 동작을 통해 보다 정직하게 소년과 소녀가 서로 느끼고 있는 마음의 세계를 단순화해서 보여주는 방법이 독자들에게 현실성을 보다 강하게 지니게 하는 것임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사건을 설명적인 방식으로 다음과 같이 서술하였다고 해보자.
소녀는 입술이 파랗게 되어 있었고 어깨를 덜덜 떨고 있었다. 소년은 불쌍한 생각이 들어 '춥지, 조금 기다려" 하고 윗저고리를 벗어주었다.
이들이 비를 피해 있는 곳도 엄청난 비를 막아주지 못하고 있어서 소년은 "다른 곳을 마련해야겠다" 하고 뛰어나갔다. 소년은 수숫단으로 비를 피할 곳을 만들어 소녀에게 "이리로 와" 하고 소리를 질렀다 소녀는 뛰어들어와서 소년에게 '고마워" 하고 말했다.
인용한 소설의 글과 위의 글을 비교해보면 무엇이 다른지를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생생하게 살아 있는 글을 쓴다는 것은 바로 단순화되어 있어 의미의 세계를 쉽게 알 수 있었으면서도 감동을 주는 글을 쓰는 것으로, 쓴 이가 지니고 있는 독특하고 세련된 언어표현의 개성을 맛볼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 내용과 표현의 거리가 가까워야 한다.
또 한가지 빠뜨릴 수 없는 것은 표현의 대상과 언어가 얼마나 가까운 거리에 있느냐 하는 점이다. 산문은 시와 같은 운문과는 달라서 내용을 우회적으로 드러내고 싶을 경우라도 내용과 표현의 거리를 짧게 하여야 그 효과가 극대화될 수 있다.
이태준은 그의 단편집《달밤》을 펴내면서 서문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다.
나의 조그만 경험에서는 아직 한 번도 자기의 작품을 만족하게 읽은 기억이 없다. 더구나 달포를 두고 주물럭거리다가 이 20편을 고르면서도 나는 하루 저녁도 유쾌히 잠들어본 적은 없다. 어떤 것은 문장을, 어떤것은 사건을, 어떤 것은 제목까지 붉은 작대기를 그어 집어던졌다가 이틀, 사흘씩 고쳐보았다. 그러나 하나도 만족하게 고친것은 아니었다.
당대의 문장가로 존경받던 이태준이 그의 작품에 대해 끝없이 만족하고 있지 못한 점에 대해서 지적해보이듯 소설에서는 문장이 먼저 다듬어녀야 비로서 생각과 감정의 기호가 성립이 되는 것이다. 이 첫번째 조검이 바로 사물을 그리려 할 때 사물과 얼마나 일치하는 글을 만들어낼 수 있는가 하는 점에 달려 있는 것이다.
무엇인지 안마당에서 이렇게 땅을 울리는 소리가 나는 것을 나만 들은 것은 아니었다. 아내도 눈을 번쩍 뜨더니 베개에서 머리를 들었다.
- 이태준, <어떤 날 새벽> 중에서
이글은 새벽에 마당에 도둑이 들어온 소리를 듣고 깨어난 부부를 보여주고 있다. 도둑이 들어왔다는 사실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표현의 언어는 바로 '쿵' 하는 소리로 나타나고 있다. 또 한 가지는 베개에서 고개를 든 아내가, 놀랐다는 사실을 보다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극적이 동작인데 이때 작가는 고개를 드는 동작 하나에 놀라움이라는 것을 일치시켜 표현의 사실성을 획득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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