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2. 5. 11:27ㆍ☎박동규교수문학실☎
제1장 좋은 글을 낳게 하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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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규 교수님의 "글쓰기를 두려워 말라" 책을 몇번 읽었지만, 읽는 당시는 이해가 되다가도 책을 놓고 나면 멍멍하다. 그래서 이번엔 아예 교수님 저서 "글쓰기를 두려워 말라" 책 전권을 타자를 쳐, 블로그, 카페에 올려 시간, 장소 구애받지 않고 스마트폰으로 손쉽게 읽을 수 있도록 했다. 저자이신 교수님의 양해를 구합니다.
1. 좋은 글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1) 글쓰는 것에 도 법이 있는가
초등학교 4학년에 올라갔을 때였다. 자그마한 키의 처녀 선생님은 날마다 등교하자마자 일기장을 선생님의 책상 위에 올려놓게 했다. 선생님은 점심시간에 우리 일기를 읽고 공책에 동그라미를 그려주었다. 다섯 개의 동그라미가 그려지면 잘 쓴 일기였다.
선생님은 다석 개의 동그라미를 받은 아이의 일기를 낭랑한 목소리로 읽어주었다. 우리는 어떻게 해서 다섯 개의 동그라미를 받을 수 있었을까를 생각하면 숨을 죽여 듣곤 했다. 그러나 우리는 선생님이 읽어주는 일기가 왜 다섯 개의 동그라미를 받게 되었는지를 잘 알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종례시간에 한 아이가 용감하게 손을 들고는 "선생님, 잘 쓴 일기를 나ㄹ마다 읽어주셔도 무엇이 잘 되었는지 알 수가 없어요."하고 말했다. 선생님은 한참을 웃더니 칠판에다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⑴ 아침에 일어나 세수를 하고 밥을 먹었다. 책가방을 가지고 학교에 갔다. 수업이 끝나서 집으로 왔다. 숙제를 하고 저녁을 먹고 놀다 잤다.
⑵ 학교에 갔다. 수는 시간에 나는 축구를 하고 놀자고 하고, 근일이는 야구를 하자고 하여 의견이 맞지 않아 말다툼을 하고 집으로 왔다.
⑶ 학요서 있었더 일이다. 점심시간이 되어 운동장에서 노는데, 나는 축구를 하자고 하였지만 근일이는 야구를 하자고 하여 입씨름을 하였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근일이에게 화해를 하자고 했다. 그러자 기다리고나 있었던 듯이 근일이는 웃으며 내 손을 잡았다.
그때 선생님이 쓴 글은 대충 이런 것이었다. 선생님은 이 세 글을 소리내어 읽게 하였다. 그리고 첫째 글은 누구나 학교에 다니며 해야 할 일들을 생각 없이 써놓은 것이고, 둘째 글은 학교에서 일어난 자신의 이야기를 슨 것이지만 말다툼한 일만 있을 분 자신의 심중이 드러나 있지 않은 점이 부족하고, 셋째 글은 학교에서 일어난 자신의 이야기를 쓰면서도 이 일을 겪고 난 다음 자신의 마음이 어떠했는가를 솔직하게 드러낸 점이 돋보인다고 설명하셨다. 다섯 개의 동그라미가 그려지려면 셋째 글을 닮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선생님의 말을 듣고 나서 집으로 돌아와 일기장을 펼처들고 않았을을 대, 비로서 글이라는 것은 말을 아무렇게나 그대로 옮겨놓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지금도 이 어린 날의 일을 기억하고 있는 것은, 자신이 일상생활에서 겪는 일들을 아무렇게나 언어로 기록하는 것만으로는 의미 있는 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을 갖게 해준 최초의 경험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이것으로 해서, 글은 마치 우리의 얼굴처럼 어떤 사실을 드러내고자 하는 이의 정신을 담고 있는 것이며 글의 성향에 따라 언어로 기록한 글의 모양이 달라진다는 점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2) 글의 성격에 따라 글의 모양이 달라진다.
실제로 글은 언어를 문자로 기록한 것이면서도, 그 언어의 기록을 어떤 소용에 알맞게 빚어서 만들어내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현대에 있어서 시가 세계적으로 쇠약했다는 것은 근대사회 이래 지금까지 눈부신 발전으로 현대인의정신을 지배하고 있는 과학정신과 그에 의거하는 산문정신의 주도성이 현저한 그 전단적인 성격을 발휘함으로써 대세가 도리어 시를 귀족적인 상아탑에 몰아넣기 때문이다. 시가 다시 상아탑 속으로 들어갈 수도 없고 현대의시인이 또 그길을 택하여 안주할 수도 없는데 불구하고 시의 가장 순수한 형태는 역시 서정시요. 서정시의 구경(究境)은 역시 소설의 번영에 대항하여 일어난 상징시라는 데 현대시의 모순과 고뇌가 비롯되는 것이다.
- 조지훈, <시와 인생>(《방황하는 시정신》) 중에서
모화는 사람을 볼 대마다 늘 수줍은 듯이 어깨를 비틀며 절을 하였다. 어린애를 보고도 부들부들 떨며 두려워했다. 때로는 개나 돼지에게도 아얄을 부렸다. 그의 눈에는 때때로 모든 것이 귀신으로만 비친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사람뿐 아니라 돼지, 고양이, 개구리, 지렁이, 고기, 나비, 감나무, 살구나무, 부지껭이, 항아리 섬돌, 집세기, 대추나무가지, 제비, 구름, 바람, 불, 밥, 연, 바가지, 다래끼, 솥, 숟가락, 호롱불······이러한 모든 것이 그와 서로 보고, 부르고, 말하고, 미워하고, 시기하고, 성내고 할 수 있는 이웃 사람같이 생각 되었다. 그리하여 그 모든 것을 '님'이라 불렀다.
- 김동리 <무녀도> 중에서
배턴을 든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는 찬란한 존재다. 그러나 토스카니니 같은 지휘자 밑에서 플루트를 분다는 것은 또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가. 그러나 다 지휘자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다 콘서트마스터가 될 수 없는 것이다. 오케스트라와 같이 하모니를 목적으로 하는 조직체에 있어서는 멤버가 된다는 것만도 참으로 행복된 일이다. 그리고 각자의 맡은 바 기능이 전체 효관에 종합적으로 기여된다는것은 의의 깊은 일이다. 서로 없어서는 안 된다는 실뢰감이 거기에 있고 칭찬이나 혹평이거나 '내'가 아니오 '우리'가 받는다는 것은 마음 든든한 일이다. (중략)
자기를 향하여 손을 흔드는 지휘자를 쳐다볼 때, 그는 자못 무사으이 환희를 느낄 것이다. 어렸을 때 나는 공책에 줄치는 작은 자로 교향악단을 지휘한 일이 있었다. 그러나 그 후 지휘자가 되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다. 토스가니니가 아니라도 어떤 경경받는 지휘자 밑에서 무명(無名)의 플루트 플레이어가 되고 싶은 때는 가끔 있었다.
- 피천득, <플루트 플레이어>중에서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 김춘수, <꽃> 중에서
9월 29일 오후 네시
며칠 전부터 어린것이 연필을 들고 끼적거리기 시작하였다. 이름자를 쓰도록 가르쳐주었다. 그리고 어디 써봐, 하고 씌어본 것이 아래 슨 글자이다. 그가 출생 후 처음으로 배운 글자가 "박(朴)' 자이다.
그는 성 자 외에 또 하나 쓰기 좋아하는 것이 있다. 동그라미이다. 쓰는 그 자신에게는 무심한 장난에 부로가한 것이지만, 꿈 많은 부모에게는 하필 동그라미를 그리기 좋아하는 것이 신비스럽게 여겨진다. 우리 내외는 원을 철학적인 의미로 풀이해보는 것이다.
성 자 두어 자 쓰고 나서 한다는 말이······아이, 팔 아파 더 못 쓰겠단다.
- 박목월, <일기>중에서
위의 글은 각각 평설, 소설, 수필, 시, 일기다. 이들 모두는 여러 사람의 얼굴과 같이 모양을 달리하고 있다.
먼저 평설의 경우를 보면, 논리의 체계가 살아 있어서 이것과 저것의 구분이 정확하게 이루어져 있다. 소설의 융성과 관련하여, 상대적으로 시의 영역이 왜소해지고 있는 까닭이 무엇인가를 밝혀나가고 현대시가 지니고 있는 모순을 객관적으로 드러내려고 애쓰고 있다. 이와 같이 평설은 말을 그대로 기록하는 것에서 출발하고 잇으나 탄탄한 논리적 구조를 가진다는 표션상의 특징이 있다.
둘째로 소설의 인용문은 김동리의 <무녀도에 나오는 모화라는 여주인공을 그린 부분이다. 쉽게 '모화는 모든 사물을 사람과 같이 생각하였다'라고 하면 될 것을 김동리는 그렇게 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거추장스러울 만큼 많은 사물을 등장 시키고 있다.
왜 그렇게 표현하였는지를 알아보려면 조용히 입 속으로 말하듯이 이 글을 읽어볼 필요가 있다. 부재깽이, 섬돌, 짚세기 등 우리가 친숙하게 시골의 집 뜰 안에서 찾을 수 있는 것들과 만나게 되면 곧 이들이 모화가 만나게 되는 모든 것들 중의 하나고, 이들 속에서 모화가 살아가고 있다는 점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잇는 것이다.
김동리가 이 수많을 사물들을 지루하게 늘어놓고 있는 것은, 소설에서는 무엇보다도 인물의 성격을 보다 선명하게 드러내는 일이 소중하기에, 보다 인물을 잘 표현하고자 하는 의도에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소설이라는 글쓰기는 또 다른 형식을 가지고 있을을 보여주는 것이다.
셋째는 수필이다. 윗글은 오케스트라의 연주회에서 지휘자와 그 한 단원이 된 연주자가, 하나의 목표를 향해서 조호로운 화합을 이루는 멋진 장면을 마주하고 느낀 자신의 간명한 인상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인간이 개체적인 삶의 세계에 갇혀 있으면 스스로 사회에 어떤 역활을 하고 어떤 기여를 하고 있는지를 잊고 지낼 때가 많다. 또 일상의 생활에 매달려 있으면 화려한 각광을 받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에 허무감을 느낄 대도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것들은 삶을 영위해 나가는 누구나가 느낄 수 있는 것이고, 독툭한 체험에서 우러나오는 것은 아니다. 사물이나 생할에서 느낀 특이하지도 않은 일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이 글의 특징이다. 이렇게 사물을 보고 느낀 점을 솔직하고 간명하게 글로 표현하고 있는 점은 바로 수필이 지니고 있는 독특한 산문형식이다.
네째는 시다. 시는 말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행을ㄹ 바꾸어가는 사이에 자리잡고 있는 느낌의 공간이 바로 특이한 시의 모양을 만들어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라고 하지 않고 "전에는 / 그는 다만 / 하나의 몸짓"이라고 행간을 뛴 사이를 잠시 호흡을 끊고 읽어보면 신기하게도 '그'라는 대상이 독립해서 떨어져 있음을 의미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다만" 하고 한순간 끊고 있는 동안 '다만'이라는 말이 발이 달린 짐승이나 되는 듯이 살아서 강조의 손짓을 보내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는 시가 말로 이루어진 것이라면서도 독자적인 의미의 표현을 위해 그 표현의 방식을 특별하게 가지고 있다는 점을 나타내는 것이다.
마지막의 일기도 말을 그대로 문자로 기록해놓고 잇지만 몇 가지 특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 일기는 내가 태어나서 얼마 되지 않은 시기에 아버지가 쓴 글이다. 벌써 세월이 흘러 50년이 지났지만 나에게는 독특한 아버지의 사랑을 느끼게 하는 일기다.
이글을 쓸 당시 우리는 경주에 살아었다. 아버지는 첫아들인 나를 낳고 기대가 컸던가 보다. 연필도 제대로 잡지 못하는 아들에게 성급하게 글을 가르치려고 했던 아버지의 모습이 이 글을 통해 그대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아무 의미도 모르고 동그라미를 그렸어도 이를 나의 운명을 예고하는 상징으로 생각하려고 했고, 그리고 어머니와 함께 자식이 그린 동그라미를 먼 내일의 아들의 삶과 연결된 의미체로 보아, 둥글고 모나지 않고 끊어지지 않는 영속의 세계를 그려나가고자 하는 아들이 뒤기를 바라는 마음까지 내비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느낌을 가지게 하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생생하고 정직한 아버지의 일기가 가지고 있는 성향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일기는 생활을 문자로 기록하는 것이면서도 진실하고 솔직한 생활의 이야기를 그대로 드러내놓아야 보는 이가 그 시기에 무엇이 일어났으며 무엇 때문에 그와 같은 일기를 썼는지를 알 수가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글은 말을 그대로 옮기면 되는 것이면서도 각기 그 소용의 성향에 다라 그 모양과 쓰는 법이 달라지는 것이다. 이를 알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바로 글쓰기의 방법이다. 그러기에 글을 쓰기 위해서는 쓰는 법을 익혀야 한다.
이태준은 글쓰기의 방법을 익히는 데 있어서 중요한 지표로 명필 완당 김정희의 말을 인용하고 있다. 즉 "난초를 그림에 있어 법이 있어도 안 되고 법이 없어도 또한 안 된다."는 말이 그것이다. 이 말은 글을 쓰는 법은 법만을 쫓아 굳어진 방식으로 남과 똑같은 글을 쓰는 것이 목표가 될 수 없고, 그렇다고 해서 남이 알아볼 수 없는 독창적인 법을 마련하여 개석적인 글을 쓰는 것도 옳은 방식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다.
이는 과학적인 이론을 근거로 해서 글을 스는 법을 익혀서 이를 토대로 개성적을 써야 한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3) 타고난 소질보다는 글쓰는 법을 착실히 익히는 것이 중요하다.
말은 잘하지만 막상 종이에 글을 쓰려고 하면 글자 한 자도 적지 못하는 이들이 더러 있다. 아니면 글을 쓰는 이는 특별한 재주를 날때부터 타고났다고 생각하여 아예 글쓰기를 포기 하거나 글쓰는 일을 두려워하는 이를 보게 된다.
집이나 사무실, 길에도 전화가 있어서 말로 의사를 소통하는 일이 많아졌고, 자신의 의사를 녹음 하여 테이프에 남길 수 있게까지 되었으니 이제는 글쓰는 일을 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말과 글은 같은 속성을 지니고 있기는 하지만 서로 다른 면을 가지고 있다.
언젠가 길을 가다가 우연히 친구를 만났는데 그 친구는 반갑다는 인사를 하고 난 다음 불쑥 이렇게 말했다.
"며칠 전 한 친구를 만났는데 고민이 많은 얼굴이더라, 속이 썩나봐".
나는 친구가 무엇을 말하는지를 알고 있었기에 아무렇지도 않게 이렇게 대답하였다.
"그래 그 친구 좋은 곳에 가서 쉬어야 해."
친구와 헤어져서 집으로 돌아오면서 몇 번이나 친구와 나눈 대화를 되씹어보았다. 분명 다른 사람이 들었다면 서로 암호를 주고 받는 것처럼 무슨 뜻인지를 알지 못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말은 글과 달라서 설혹 상대에게 한 구절이나 단어 하나만을 내놓아도 소통이 된다. 그러나 글은 이와 달라서 체제(體裁)를 갖추어야 정확하게 상대와 소통이 되고 의미전달에 어려움이 없게 되는 것이다.
체제를 갖추어야 한다는 것은 하나의 완결된 구조를 가지고, 자신이 품고 있는 뜻을 문자로 표현하기 위해서 그 뜻을 담아줄 그릇을 먼저 짜서, 이에 적절한 단어를 선택애 총체적으로 의미를 제대로 전달할 수 있도록 글의 조직을 야무지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러한 글과 말의 차이 때문에 말로써 표현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이도 글로 표현할 대는 미흡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글쓰기 위해서는 말을 하듯이 할 수는 없다. 물론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이는 소질이 뛰어난 사람일 수 있지만, 평범한 사람도 글쓰는 훈련을 쌓으면 글을 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는 글의 범위가 대체로 실질적인 생활의 영역에 자리잡고 잇고 자신의 의사를 정확하게 전달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논설문을 예로 들어보자. 논설문은 독창적인 의견이 아니라 평범한 내용을 담고 있어도 논리의 체계만 정확하고 객관적이면 훌륭한 글이 될 수 있다. 날마다 신문에 실리는 논설의 경우,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결론을 끓어내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지 독창적인 해결방안을 마련하고 이에 대한 결과를 논니화해놓은 것을 발견하기는 힘들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은 이 논설을 가치 없는 글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글을 쓰기 위해서는 글에 대한 자신의 열등감을 버려야 한다. 이 열등감이 글이란 아름답고 매끄럽고 많은 지식이 담겨져야 한다는 식의 생각을 가지게 하는 것이다.
내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였다. 교련을 맡고 있던 교관이 어느날 게시판에 다음과 같은 글을 써붙여 놓은 적이 있었다.
"목요일 교련수업은 금요일 7시로 이동한다. 예정은 미정인 고로 수시로 변동할 수 있다. 고로 착오 없기를 바란다."
우리는 이글을 읽고 한참 동안 웃었다. '목요일 교련수업을 금요일 7시에 한다. 잊지 말아라' 하면 될 것을 너무 유식한 한자어를 넣고 글을 써놓았기 대문이다.
이와 같이 글을 쓰기 위해서 쓸데없이 어려운 단어를 가져오는 것은 글이 가지고 있는 속성을 익히지 않은 데서 생기는 것이다.
말은 살아가는 동안 사람과 만나서 익힐 수 있으나, 글은 표현의 모든 것을 스스로 익혀야 한다. 그러기에 소질보다는 글쓰는 법을 착실히 익히는 것이 좋은 글을 쓰는데 있어서 필수적인 방법이라 할 것이다.
4) 글쓰는 법은 시대에 다라 달라진다.
글을 쓸 때면 누구나 어떤 모범적인 형태의 글을 보면서 그와 비슷한 문장르 찾아내려고 할 때가 많다.
고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나는 원효로의 전차 종점 부근에 살았다. 캄캄한 밤 종점 근처의 공터에는 검은 가죽장갑을 낀, 힘깨나 쓰는 청년들이 모여 있었다. 어쩌다 학교에서 늦게 파하여 이를 앞을 지나 집으로 가려고 하면 나는 겁이 나서 주츰거리기 일쑤였다.
어느 날 밤 겁을 먹고 조슴스럽게 그들 앞을 지나가는데 한 청년이 나를 보더니 "너 어느 학교 다니지?" 하는 것이었다. 내가 놀라서 "네?" 하고 되물으니까 내 손을 잡아끌며 한강 둑 아래로 끌고 가는 것이엇다. 그들이 가끔씩 동네 아이들의 돈 몇 푼을 빼앗는다는 말을 들었기에 돈을 달라고 하지 않을까 싶어 주머니에 손을 넣어 보았지만, 손에는 동전 한 푼 잡히지 않았다.
그런데 캄캄한 둑 아래 모래사장으로 나를 끌고 가더니 청년은 갑자기 부드러운 얼굴로 주머니에서 흰 종이를 꺼내더니 "야, 이 이름으로 근사한 연애편지 하나 써 와"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내등을 치면서 "잘 써 와, 그러면 잘 봐줄게"했다 그날 밤 집으로 와서 책상앞에 앉았으나 생전 처음 써보는 연애편지라 제대로 되지 않았다.
나는 이광수가 쓴 《춘원 문범》이라는 책을 펼처 서간문의 골격을 어떻게 짜야 하는지부터 보아야 했다.
① 호칭
② 시후(時候)
③ 문안
④ 자기의 근황
⑤ 사연
⑥ 끝맺음
이런 순서로 편지를 써야 한다고 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 순서에 맞추어 써보니 아버지께 올리는 글 같아서 만나달라는 간절한 듯이 전달될 것 같지 않았다. 할 수 없이 내 마음대로 써보기로 했다. 난생처음 써본 연애편지라서 지금도 대충의 내용을 기억하는데, 아마도 다음과 같은 것이었으리라.
알지도 못하는 여성에게 편지를 올려 죄송합니다. 평소에 멀리 길에서 보면서 꼭 만나서 대화를 하고 싶었습니다. 오늘 밤 창밖을 보니 비가 내리듯이 달빛이 온 지붕의 기와들을 덮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대를 보고 싶은 마음에 메마른 논처럼 속이 타고 있습니다. 토요일 오후 전차 종점 가나안 빵집으로 꼭 나와주시기 바랍니다.
대충 이런 글이었다. 다음날 저녁 전차에서 내리니 기다리고 있었다. 밤새 걱정하며 쓴 이 편지를 내밀자, 보안등 아래로 가져가더니 한참을 보다가 "야, 유명한 사람의 글이 없잖아. 한자도 듬뿍 넣어서 유식하게 만들어야지"하는 것이었다. 그는 남의 좋은 글과 과장된 표현을 넣어서 감동적인 글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며 고쳐 써달라는 주문을 했다. 이 청년은 이미 규정되어 있는 문장의 형태에 맞춘 문어적이며 과장된 글에 익숙해 있어서 진실하게 쓰려고 한 내 편지는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할 수 없이 이상화의 시 <나의 침실로>에서 "마돈나! 별들의 웃음도 흐려지려 하고, 어두운 밤 물결도 잦아지려는도다. / 아, 안개가 사라지기 전으로 네가 와야지, 나의 아씨여 너를 부른다'는 구절도 넣고 쓸데없이 한자도 넣어 다음과 같이 써서 전해주었다.
미지의 여성에게 서신을 올립니다. 본인은 평소에 노상에서 귀양을 목격하고 대화를 앙망한 바 있어 귀양을 사모하니, 금일 월색이 고요하여 이 시가 생각이 납니다. 마돈나 별들의 웃음도 흐려지려하고 ······이러한 고백을 드리게 됨을 송구하게 여기며 토요일 오후 6시 전차 종점 가나안 빵집에서 상면의 영광이 있기를 기원하며 오매불망 소원성취를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그는 내 등을 치면서 "바로 이거야"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속으로 얼마나 웄었는지 모른다. 국어사전을 뒤져가며 나도 알 수 없었던 단어들을 찾아내어 이렇듯 청첩장처럼 만든 글을 보고서야 좋아라 하는 모습이 우스웠기 때문이었다.
흔히 한자가 많이 들어가야 글이 돋보인다든지 아니면 유식한 옛날 명인들의 글을 몇 구절 인용해야 글의 품위가 높아진다고 생각하는 것들은 바로 옛사람들이 지니고 있던 문어체의 글쓰기를 그대로 본받아야 좋은 글이 된다는 생각에서 생긴 것이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여 본디 변론에 뿌리를 내린 수사의 한 형태였던 문장은 그 성격이 많이 변하게 되었다. 출판문화의 발달로 인해 말과 달리 공간적으로 넓게 퍼질 수 있게 되고 시간적으로도 오래가게 되었으며, 이에 따라 글쓰기의 방법도 달라지게 되었던 것이다.
《춘향전》에서는 이도령이 춘향을 처음 대면하는 자리에서 춘향의 아름다움을 찬양하며 이렇게 말하고 있다.
어와 네 인물(人物), 네 태도(態度)는 세상(世上)의 무쌍(無雙)이라, 절묘(絶妙)하고 어여쁘다 매화월미(梅花月尾)의 두루미"도 같고, 줄에 앉은 조록 제비도 같고나, 무한(無限)한 너의 인물 상주(商紂)도 한 번 보면 소닭긔(?己) 무색(無色)할 것이오. 하걸(夏榤)이 너를 보면 미희(未喜)도 흙이로다. 하아왕(項王)이 너를 보면 우미인(虞美人)이 박색(薄色)이오, 여포(呂布)가 너를 보면 초선(貂蟬)이도 또한 돌이로다. 당명황(唐明皇)이 너를 보면 양귀비(楊貴妃)도 한데 되고 짆루주(陳後主)가 너를 보면장여화(張麗華)가 용납(容納)하랴? 일월(日月)이 무광(無光)하고 백화(白花) 가 탈색(脫色)이라.
이 도령이 춘향의 인물을 찬양한 글을 보면 그 과장의 정도가 어떠했는지를 알 수 있다. 아무리 춘향이 예뻤다고 해도 역사의 주인공들이 한결같이 춘향의 아름다움에 반하여 기절할 정도가 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와 같은 과장된 표현 때문에 춘향의 개성적이고 참된 아름다움은 전혀 보이지 않게 된 것이다.
그러나 한수산의《해빙기의 아침》에서 현준이라는 인물이 한 여성을 만났을 때를 그린 글을 보면 이와 얼마나 다른가를 쉽게 알 수 있다.
지하를 처음 만났을 때, 현준은 그녀가 자기의 생애 속으로 걸어오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아무 저항 없이 그녀를 위해 마음 한쪽의 자리를 비워놓는 스스로를 보아야 했다. 아름다운 여자였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에는 어딘가 무너져가는 듯한 허무감이 있었다. 차갑도록 하얀 얼굴이 주는 잊기어려운 인상은 그녀가 돌아간 뒤, '정교한 유리 그릇 같은 여자구나' 하는 느낌을 남아 있게 하였다.
여자의 아름다운 모습이 정교한 유리그릇으로 그려져 있어 독특하고 확연한 아름다움을 떠올릴 수 있는 것이다.
위의 두 글을 비교하여보면 역사에 나오는 고전적 인물의 이야기를 빌려 그 인물이 지닌 특징만을 따다가 엮어놓고서 아름답다는 개념만을 세워보려고 한 점과, 개성적인 인상을 골라 표현하여 아름답다는 것의 의미를 독특하게 그려내보려고 한 점이 다른 것이다. 여기서 옛날의 수사라는 것은 자기의 창작적 개성적인 표현의 문장으로 만들어내기보다는 전고(典故)에서 많은 좋은 문자을 따다가 이를 활용하는 방식이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방식은 결국 과장된 표현을 더하게 되어 문장이 지녀야 할 개성을 없애는 폐해를 낳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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