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규 교수의 "글쓰기를 두려워 말라" / 타자(打字)로 배운다

2020. 2. 4. 13:57☎박동규교수문학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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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규 교수의 "글쓰기를 두려워 말라" / 타자(打字)로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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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동규 교수님의 "글쓰기를 두려워 말라" 책을 몇번 읽었지만, 읽는 당시는 이해가 되다가도 책을 놓고 나면 멍멍하다. 그래서 이번엔 아예 교수님 저서 "글쓰기를 두려워 말라" 책 전권을 타자를 쳐, 블로그, 카페에 올려 시간, 장소 구애받지 않고 스마트폰으로 손쉽게 읽을 수 있도록 했다. 저자이신 교수님의 양해를 구합니다.


추천의 글----------------------------------------


참신한 시각, 따뜻한 마음씨의 글쓰기 지도

(박동규 교수의 글쓰기를 두려워 말라는 부친 박목월의 가학(家學)을 이어받은 것이면서 동시에 한 걸은 더 나아간 체계적 글쓰기 지침서이다.

김용직 (문학평론가 ♡ 서울대 교수)


  ▶ 1인5역, 6역에 언제나 새로운 박동규 교수

  박동규 교수는 언제나 새롭다. 그렇지만 그는 신기를 탐하는 사람이 흔히 범하는 경박으로 흐르지 않는다. 새로운 가운데도 삶의 질감을 느끼게 하는 사람이다. 그의 일상은 남보다 몇 갑절 바쁘다. 학교에 나오면 학생들을 지도해야 한다. 그리고 문단활동을 병행해야 하는 문학평론가이기도 하다. 이것만 보더라도 1인 2역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그다.

  그럼에도 그는 가업인 문예지를 손수 꾸린다. 시 전문지인《심상》을 기획 · 편집해야 할 뿐 아니라 판로와 배포, 경영을 총제적으로 다맡고 있다. 이것만 해도 여느 사람이라면 어깨가 짓눌릴 것이다. 그러나 그의 활약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여름 한철 개방시인학교를 운영하기도 하고, 철마다 공개 시학학회도 연다. 뿐만 아니라 TV브라운관의 단골이기도 하다. 특히 문예 관계 칼럼을 맡아서 그 재기발랄한 말솜씨를 휘두르는 그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이렇게 보면 그의 일상은 문자 그대로 동분서주, 혼자서 1인 5역, 6역을 하는 셈이다. 그런 그가 이번엔 체계적 글쓰기 지침서인《글쓰기를 두려워 말라》를 출간한다고 한다. 무엇보다 그의 줄기찬 활동에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다.


   ▶하늘이 동아줄로 엮어준 인연

  흔히 우리는 세상살이를 뱃길에 견준다. 또한 나날의 삶의 싸움터에 비유하기도 한다. 이런 비유가 크게 잘못되지 않았다면 박동규교수와 나는 40년 가까운 세월을 같은 항로로 바다를 거너온 사이다. 그리고 벌써 30년 가까운 세월 같은 참호, 같은 대오에 속에서 살아온 터이기도 하다.

  내가 그를 처음 만난 것을 서울대 물리대 국어국문학과 재학시절때다. 나는 재학생으로, 그리고 그는 신입생으로 봄철에 교회에서 열린 상견례 겸 환영회에서 첫 대면을 했다. 몇몇 신입생들은 입학이라는 사실에 감격한 나머지 주량이 좀 지나쳐 이른바 선배인 우리에게까지 주정을 한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그 틈새에 그는 끼지 않았다. 그때 나는 그가 차분하고 얌전한 인품의 소유자라는 걸 알았다.

  그후 우리가 다시 만난 것은 서울대학교의 강단에서였다. 마침 학교에서 학부교육을 강화하기 위해 교양학부를 독립시켰다. 거기에 그 동안 전임자리를 얻지 못해 허둥대던 내가 채용이 되었다. 이어 그도 그런 기회를 얻게 되었다(단, 그때 그는 나와 처지가 달랐다. 내 기억으로는 이미 그는 어느 교육대학의 어엿한 전임교수 신분이었다.) 그는 발령을 받자마자 자신의 집으로 같은 학과의 선생들을 초대했다. 나는 부인의 음식솜씨에 놀랐고, 특히 그의 남다른 인사범절에 적이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는 30년 가까운 세월을 같은 직장, 같은 교실을 들락거리게 된 것이다. 옷깃만 스쳐도 전생의 인연으로 얽혓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와 내 인연은 하늘이 동아줄로 엮은 것이라 해야 하지 않을까.


  ▶본격 문장론, 그 견실하고 섬세한 손길

《글쓰기를 두려워 말라》를 보면서 역시 '박동규 교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이저서에는 본격 문장론이 요구하는 문자오가 문체에 대한 감각이 잘 살아나 있다. 그 토대가 되는 말과 글, 나아가서는 글쓰기와 여러 문장이 갖는 속성, 그리고 그 관습적인 면이나 전통에 대한 인식도 저자의 듬직한 능력을 느끼게 한다.

  원래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문장론의 전통은 두 가닥으로 이야기 될 수 있다. 그 하나는 한국 고전문학, 전통문화에서 도출되어온 그것이다. 우리 민족은 삼국시대부터 이미 상당한 문장을 바탕으로 한 여러 저술을 가질 수 있었다. 특히 통일신라시대와 고려 · 조선왕조를 거치는 가운데, 원효(元曉)나 의상(義湘), 최치원(崔致遠) 등을 필두로 한 대문장가가 기라성처럼 나타났다. 이러한 문화전통은 당연한 귀결로 상당한 문장론을 낳게 했다. 지금 우리가 인식하는 한국 문장론의 가닥 가운데 하나는 바로 이와 같은 전통의 갈래를 가리킨다.

  이와 아울러 우리가 말하는 문장론에는 서구적 충격이 몰고온 갈래의 것이 있다. 여기서 말하는 서구적 충경이란 19세기 말에 이루어진 것이다. 개항과 함께 우리는 영·미·독·불·러시아, 그리고 '서구적 일본'의 충격을 받았다. 그 틈바구니에서 순수 우리말과 글에대한 감각에도 일대 변혁이 일어났다. 그리고 그 집약만으로 나나난 것이 1930년 말에 나온《문장강화(文章講話)》이다.

  이태준(李泰俊)이 저술한 이 책에는 군데군데 우리 고전이 인용되고 한문의 전고(典故)를 이끌어들인 곳이 있다. 그러나 총체적으로 본다면 이 책은 서구적인 것이었다. 특히 그 뼈대가 된 항목 설정, 체제, 문장관이 그러하다.


  대학에서의 초보적 필수과정인 문장력 기르기

  이런 이태준의《문장강화》의 지배현상에 막이 내린 것은 1960년대 부터다. 이 무렵에야 문과대학에서 영미 계통의 신비평가들이 만들어낸 수사론이 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보기로 등장한 것이 클리언스 부룩스 등의《근대 수사학》이다. 그런데 이 책을 가늠자로 한 문장론 교육에는 박동규 교수나 나도 제 나름의 역할을 했다. 앞에서 밝힌 바와 같이 박동규 교수와 내가 같은 학교에서 근무하게 된 것은 교양학부 때부터다. 그런데 막상 교양학부가 발족하고보니 학내외에서 갖가지 요구가 가해지기 시작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대학교육에 걸맞는 문장력, 논문작성 능력을 교양과정에서 습득시켜 달라는 것이었다. 이런 훈련은 그 성격으로 보아 당연히 국학과의 몫이 되었다. 그리고 그 전체 작업으로 대두된 것이 교양국어 강의 전반적인 강화·확충이었다. 그 가운데 가장 역점을 둔 것이 문장작성·작문능력의 확충이기도 했다.

  이런 상황은 그나 나같이 교양학부의 교육 담당자에게 교재 편찬의 실무자가 되도록 요구했다. 그런 서슬 속에서 우리는 부룩스나 머리 등 여러 사람의 수사학과 문장론을 검토했다. 또한 그것을 원용한 대학작문 교재에 내몰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결과로 나온것이 70년대부터 쓰여진 서울대학교의《대학작문》이다. 이제 이런일들을 회고하다보니 그의 꾸준한 행보가 새삼 실감난다.

  새롭게 《대학작문》을 개편하는 데 동원된 인원은 그때의 교양과정부 국어과 전원과 문리대 교수들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그 후 계속이 분야에 관심을 기울인 분은 별로 없었다. 특히 그 결과로 그처럼 한 권의 책으로 엮어낸 예는 더더욱 없었다. 이런 점에서 나는 다시 한 번 이 책을 통해서 박동규 교수의 진면목을 실감하게 되었다.


  ▶2대에 걸찬 문장론의 완성

  박동규 교수의 이 책에서 또 하나의 덕목으로 지적될 수 있는 것은 그 살뜰한 작업태도다. 이미 밝힌 바와 같이 우리가 쓰는 문장론이나 수사학의 뼈대는 외국 것을 빌려 쓸 수도 있다. 몇 개의 참고 서적을 보아가면서 그 항목들을 선전해내면 이런 작업의 테두리가 결정되는 것이다. 그러나 외국 참고 서적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여러 장과 절을 살리면서 글쓰기의 요체를 보여줄 수 있는 예문을 찾아내는 일이다. 이것만은 우리 글을 중심으로 뽑아야 한다. 그리고 이것은 상당한 노력과 시간이 소요되는 작업이다.

  본래 글을 쓰는 사람은 문장론의 뼈대를 생각하면서 쓰지 않는다. 그 가운데서 적절한 글을 봅아내야 하는 것이 이런 작업의 성격이다. 그리고 이걸 제대로 해나가기위해서는 방대한 양의 문장들을 검토해야 한다. 나아가 그것들을 평가하고 판단하는 예리한 눈도 있어야 한다. 그런 다음에야 이 작업이 제대로 마무리 될 수 있는 것이다.

  박동규 교수의《글쓰기를 두려워 말라》는 이런 관점에서 보아도 상당하다는 평가가 가능한 경우다. 분만 아니라 그 뼈대부터가 매우 착실해보인다. 이런 경우의 좋은 보기가 되는 것이 제1부 제2장의 각 절과 항목 설정이다.

  이 장에서 그는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요견으로 1. 독창성, 2. 충실성, 3 진실성과 성실성, 4 명료성을 들었다. 그리고 그 하위개념으로 각각 3~4개의 항목을 설정했다. 제 4절인 명료성을 보면, 그 하위개념 항목이 1)평이하게 써야 한다. 2) 간결하에 써야 한다. 3)의미의 모호성을 피해야 한다, 4)막연한 표현의 피해야 한다. 등으로 되어 있다. 이것은 이책의 뼈대인 장과 절들이 매우 꼼꼼하게 짜여진 것임을 뜻한다.

  또 하나, 우리가 간과할 수 없는 것이 이 책의 "가학(家學)'과 같은 성격이다. 박동규 교수는 널리 알려진 대로 지금은 작고한 시인 박목월 선생의 맏아드님이다. 그런데 그 박목월 시인이 한동안 정력을 기울인 일 가운데 하나가 수사학·문장론의 완성이었다. 처음 박목월의 문장론은 피난지 대구에서 준비된 것으로 기억한다. 그 후 환도하고 나서 곧 그의 문장론 개편작업이 시작되었다. 언젠가〈심상사〉를 찾아갓을 때, 1.A리처즈의 수사학에 대한 의문을 화제로 삼던 것을 들은 기억이 새삼스럽다. 그리고 그 보고서에 해당되는 문장론이〈삼중당〉에서 출간되기도 했다.

  그러니까 박동규 교수의 이번 책은 부친의 가학을 물려받은 경우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면서 그는 그의 가학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 문장론을 만들어냈다. 그 위에 시대감각, 현실적인 문맥으로 보아 적절한 보고서를 출간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두 가지 의미에서 큰 의의가 있다. 우선 한 문화적 과제가 부자 2대에 걸쳐 전착되고 있다는 것이 그 하나다. 그리고 두 번째는 단순한 답습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적어도 이 책을 통해서 박동규 교수는 그의 부친보다 한 걸을 더 나아간 면모를 보였다. 본래 역사·전통과 문화는 끊임없이 진보·발전되어야 한다. 이렇게 보면 여기서 우리가 할 말도 명백해진다. 즐겁고 반가운 마음으로 이 책을 대할 수 있다는 것이 그 모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