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장 시의 어조와 화자의 설정] 2. 시적 화자(話者)의 전개

2018. 10. 25. 16:44☎시작법논리와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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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1장 시의 어조와 화자의 설정] 2. 시적 화자(話者)의 전개

 

 

 

2. 시적 화자(話者)의 전개

 

  1) 시에서의 화자

  '화자'란 시 속에서 말하는 사람, 곧 퍼소나(persona)이다. 시 창작의 상황 속에서 시인은 자신을 대신하여 말하는 사람(주인공)의 느낌이나 생각, 상황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허구적 대리인인 화자를 성정하게 되는 것이다.

  이 시적 소통의 담화에서 말하는 주체를 우리는 시적 화자(話者)), 혹은 시적 자아, 서정적 자아, 상상적 자아, 가상적 자아라고 부른다. 곧 시적 화자란 자신의 시적 생각, 시적 메시지를 효율적으로 전달 혹은 드러내기 위해 선택된 장치로 말하는 사람이다.

  시도 하나의 메시지 전달로 담화의 한 양식인 이상, 시 속에서 말하는 화자가 있고 청자가 있기 마련, 그러므로 시 창작에 있어 '화자'의 설정은 중요하다. 마치 소설가가 이야기의 주인공을 내세우고, 영화 제작자가 주인공을 설정하는 만큼 큰 고민이 필요한 것이다.

 

  2) 누구의 목소리로 창작할 것인가?

  시를 쓰고자 할 때는 첫째, 화자가 시적 대상을 바라보는 태도는 어떠한가? 둘째로, 화자는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가? 셋째로, 화자를 누구로 설정할 것인가? 넷째로는 화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인가? 등 이것이 분명해야 효과적이고 강렬한 소통이 가능해진다.

  대부분의 시인은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직접 고백하는 형식을 취한다. 곧 시에서는 주관성이 강한 1인칭 독백의 경향을 띠기 때문에 화자와 시인을 동일시하는 경향이 많다. 또 실재 시인과 시적 화자가 동등한 경우도 많다.

  하지만 원칙적으로 실재 시인과 시적 화자는 구분된다. 전자의 실재 시인은 직접적인 언술로 '나'를 설정하여 말하는 1인칭 화자의 언술방법이고, 후자의 시적 화자는 시인 자신이 아닌 허구화된 나의 목소리이다. 또 이 두 가지는 시의 문면에서 보면 '나'가 시 문장의 문면에 등장할 수도 있지만 숨기거나 생략할 수도 있다. 그런가 하면 일인칭의 화자가 없는 숨은 화자로 소설에서처럼 작가 관찰자 시점이나 일반 문장에서 처럼 화자의 인칭이 없고 대상에 대한 객관적 서술만 있는 경우도 있다.

  나아가 시 속에는 시적 청자(廳者)도 등장한다. 이 시적 청자도 시적 진술의 표면에 나타나는 현상적 청자가 있는가 하면, 그 청자가 숨겨져 생략 되거나 실재 독자를 향한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시적 화자는 싱인의 의도에 따라 시의 문맥ㅇ에서 드러나는 경우, 드러나지 않는 경우, 또 청자와 함께 드러나는 경우, 혹은 탈을 쓰고 동물이나 식물로 치환된 경우, 등 그야말로 여러 가지로 나타날 수 있다.

  따라서 시를 쓰고자 할 때는 다음 사항을 고려하여 시적 화자를 설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1) 시는 다른 장르에 비해 현저히 시를 쓴 창작 주체와 시 속의 화자가 밀착되는 정도가

         강하다. 따라서 고백적이고 자전적인 화자를 어떻게 내세울 것인가

    (2) 시는 의미를 보다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하여 수많은 '나'의 복제형을 만들어낸다.

      따라서 어떻게 화자를 복제, 변용시킬 것인가.

(3) 시적 화자는 반드시 창작 주체자가 될 필요는 없다. 동물이나 사물, 시적 대상 자체가

     되어 시적 대상 자체가 되어 시적 효과를 살려 볼 여지는 없는가.

(4) 창작의 효과적인 형상화를 위해 대상을 바라보는 화자의 태도나 속성 바꾸기를 어떻

     게,다양하게 구사할 것인가.

(5) 훌륭한 소재를 선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선택된 소재를 효율적으로 형상화하기 위

     해어떻게 화자의 어조를 선택하고, 어떻게 화법(話法)을 전개할 것인가.


 3) 시적 화자의 기능

   시적 화자가 이끌어가는 힘은 시의 전 문맥을 지배하여 시적 상황이나 대상에 대한 정보를 전달해 주고 시인의 내면세계를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말하자면 화자는 작품 속에서 가장 적절한 역할로 시적 메시지 전달의 기능을 수행한다. 그러므로 시적 화자의 기능을 알고 시 창작에 적용할 필요가 있다.


   첫째, 시적 화자는 자아 존재와 세계의 ㅐ석의 확대를 도모한다. 곧 시인이 취한 시대적 대상을 통하여 자신의 인생관이나 사물존재의 남다른 세계를 드러내는 것이다.


흙이 되기 위하여

흙으로 빚어진 그릇

언제인가 접시는

깨진다.


생애의 영관을 잔치하는

순간에

바싹 깨지는 그릇

인간은 한 번

죽는다.


물로 반죽하고 불에 그슬려서

비로서 살이 있는 흙

    누구나 인간은 한 번쯤 물에 젖고

    불에탄다.

  

흙이 되기 위하여

흙으로 집어진

모순의 흙, 그릇.


오세영<矛盾의 흙> 전문


  시인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하찮ㅇ느 '그릇'을 소재로 인간에 비유하여 존재론적 지평으로 확대하고 있다. 곧 접시와 인간은 동일체로서 존재의 파멸과 완성이라는 철학적 차원의 존재 지평의 세계를 내면화하여 시인의 인생관을 확대시켜주고 있다.


  둘째, 테마에 걸맞은 화자의 설정으로 섬세하고 미묘한 감정과 사고의 깊이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


돈 없으면 서울 가선

용변도 못 본다.

오줌통이 퉁퉁이 불어 가지고

시골로 내려오자마자

아무도 없는 들판에 서서

그걸 냅다 꺼내 들고

서울 쪽에다 한바탕 싸댔다.

이런 일로 해서

들판의 잡초(雜草)들은 썩 잘 자란다.

서울 가서 오줌 못 눈 시골 사람의

오줌통 뿔리는 그 힘 덕분으로

어떤 사람들은 앉아서 밥통만 탱탱 불린다.

가끔씩 밥통이 터져나는 소리에

들판의 온갖 잡촏르이 귀를 곧두세우곤 했다.,

김대규<야초(野草)> 전문287


  이 시는 화자가 직접 문면에 드러나고 있지는 않으나. 이야기를 전달하는 화자의 현실 심리가 깊이 투영되어 있다. 곧 작가가 바라보는 서울과 농촌의 빈부 차이로 이분화된 사회현실과 자본주의의 비인간성을 직설적으로 폭로, 비판한다. 돈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서울은 돈 없으면 생리적인 욕구도 해결할 수 없는 곳으로 설정됭 있고, 상대적으로 시골은 가난한 사람들이 원초적 사는 곳으로 되어 있다. "돈 없으면 서울 가선 / 용변도 못 본다"는 직설과 더불어 '서울 쪽에다 한바탕 싸대'는 행위를 통해 조롱과 야유가 통쾌하게 들려온다. 덕분에 시골의 잡초들은 그 오줌 덕분에 무럭무럭 잘도 자라고, 그 곡식으로 부유한 서울 사람들의 밥통은 탱탱 불어난다는 대립적 구조의 비판의식이 통일성 있게 미묘한 깊이로 다가 온다.


  셋째, 화자는 시간성과 공간성의 배경을 설정하여 시적 상황의 사실적이고 생동감 있는 구체적인 정서를 드러낸다.


산길을 걷다가 오줌이 마려워서

떡갈나누 밑에 '쉬'를 했다

철쭉꽃에 두 마리의 벌이 있었는데

한 마리도 내게로 오지 않았다

고 고추에 당분이 없었나보다

그게 섭섭했다

쉬하기 전에 네스카페 180ml를 마셨는데

그 껍데기에 이렇게 씌어 있는데도

벌이 오지 않았다


커피함량 1.02%

설탕 7.73%

제조년월이 950829

PLEASE SHAKE WELL

유통기한 : 제조일로부터 12개월

잘 흔들어 드십시오


여길 보면 분명 당분도 들어 있는데

벌이 오지 않았다

그 증거물로 나는 빈 캔을 가지고 있다

유통기한도 아직 멀었는데

오줌 줄기도 쾌 나가는데

왜 벌이 오지 않았을까

내 유통기한은 언제까지인가

그래도 잘 흔들어서 바지에 넣었다

이생진<유통기한 9605514호>전문 288

 

 1인칭 화자 체험을 쓴 위 시는 사실적인 시간성과 공간성을 분명하게 드러내주고 있다. 무엇보다 폭소를 자아낼 정도로 재미있고 생동감이 넘친다. 또한 소재를 다루는 시선이 매우 세밀하고 구체적이다. 네스카페의 함량과 제조년월일 등이 모두 숫자로 제시되고 있어 실감미를 느낀다. 특히 커피의 당분 함량고 유통기한을 화자 자신의 수명에 비유한 착상이 매우 참신하다. 마지막 "왜 벌이 오지 않았을까 / 내 유통기한은 언제까지인가 / 그래도 잘 흔들어서 바지에 넣었다"라는 결구는 저마다 생에 대한 보편적 화두로 제시되어 꽤 공감을 일으킨다.


  넷째, 화자의 깊은 개입은 시를 유기적으로 결합시켜 나가면서 신인의 현실 인식이나 세계관, 대상의 가친관으로 작품의 주제를 형성하게 해준다.


또 다른 말도 많고 많지만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게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


발구들 선득선드해지는 날부터 이듬해 봄까지

조선팔도 걸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은

연탄차가 부릉부를

힘쓰며 언덕길 오르는 거라네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 듯이

연탄은, 일단 제 몸에 불이 옮겨 붙었다 하면

하염없이 뜨거워지는 것

매일 따스한 밥과 국물 퍼먹으면서도 몰랐네

온 몸으로 사랑하고 나면

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게 두려워

여태껏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도 돼지 못하였네


생각하면

삶이란

나를 산산이 으깨는 일

안도현 <연탄 한 장>부분 289


  시인은 화자의 깊은 개입으로 세계인식의 존재관이나 가치관을 드러낸다. 화자는 연탄의 속성이 지닌 자기 몸을 태워 남을 위해 희생하고, 또 자신의 몸을 언 길 위에 뿌려 봉사하는 생명적 의미를 전하고 있다. 이러한 생명적 통찰의식은 후반부에서 대조법과 도치법을 통해 화자의 자기반성적 결구처리로 이어지고 있는데, 여기에서 외부 대상에 대한 화자의 깊은 개입이 시의 주제를 이끌어내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다섯째, 시의 배경을 정치하게 묘사하고, 작중 인물의 정보를 제공한다.


나는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엄마는 큰 가마솥에 깨를 볶으신다

아버지 송아지 판 돈 어디서 잃어버리고

몇 날 며칠 수 드신 이야기 또 하신다

한 번만 더 들으면 백 번도 더 듣는

돌아가신 아버지 이야기에

부지껭이 끝이 발갛게 달아오르는

겨울 저녁

정호승<겨울저녁> 전문

4) 시적 화자의 유형


 채트면(S. Chatman)은 한 작품이 독자에게  전달되는 구조를 ①실재작가(real author) → ② → 내포작가(implied author) → ③ 화자(narrator) → ④ 청자(narrtee) → ⑤내포독자(implied reader) → ⑥ 실재독자(real reader)로 여섯 단계로 구분한다. 이를 바탕으로 하여 시 텍스트 속에 드러나는 실재 시인의 글이 실재 독자에게 읽히는 구조를 보면 다음과 같다.




  덱스트의 메시지 전달 구조를 야콥슨(R. Jakobson)은 '화자(addresser) ― ghkwo)화재(message) ― 청자(addressee)'의 세 단계 구조로 파악한다. 따라서 시 덱스트에 있어서 화자 구조는 크게 ① 화자 지향(1인칭 '나' 중심)의 작품으로 대개 서정성이 강한 특성을 지닌다는 것이고, 다음으로 ② 청자 지향(2인칭, '너' 중심)의 작품은 계몽성이 짙은 특성을 보이며, ③ 화제 지향적(탈인칭 '그, 그것' 중심)의 작품으로 시적 대상의 정보전달에 적합한 양식으로 사실성이 강한 특성을 지닌다.

  따라서 화자와 청자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시의 화자 구조 유형을 다음의 네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1) 드러난 화자, 드러난 청자 유형

  시의 언술 문면에 '나'라는 화자가 명시되고, '너'혹은 '그'라는 어떤 대상이 명시되어 대화의 국면을 조성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 시인이 문면에서 직접 시적 화자, 청자가 나서는 경우이다. 이때 나는 고백적, 자전적, 사색적, 자기 반성적인 성격을 지닌다. 시에서 화자는 기본적으로 '나'이다. 하지만 실재 시인은 창작의 순간마다 '나'로부터 다른 배역으로 끊임없이 바뀔 수 있다. 그것은 실재 시인이 작품 속에 들어와 시적 화자의 탈을 쓰고 다양하게 나타난다. 실재 시인인 '나'로부터 작품속의 또 다른 '나', 그리고 '아이", 혹은 '어른', 성이 다른 '남자(여자)' '동물(생물)'로, '바위' 같은 사물로 등 무한한 변신이 가능하다. 또 여기에서 화자는 정조에 다라 온순한 성격의 화자인가, 사나운 화자인가, 슬픔의 화자인가, 그리움의 화자인가, 체험적 고백자인가. 진술자인가, 의미부여자인가 등으로 다양하게 설정될 수 있다.

  화자마 작품 문면에 나타나는 화자 중심 구조의 유형은 1인층 주인공 화자 유형이 가장 많다. 이런 경우는 자신의 심리나 사유, 그리고 행위 혹은 나라는 주인공을 내세워 이야기 중심으로 전개할 대 설정된다. 곧 자기 주체성을 깊이 드러내는 경우이다.


아내여 내가 죽거던

흙으로 덮지은 말아 달라

언덕 위 풀잎에 뉘여

붉게 타는 저녁놀이나 내려

이불처럼 나를 덮어다오

그리고 가끔 지나가는 사람 있으면

보게 하라

여기 쓸모없는 일에 매달린

시대와는 상관없는 사람

흙으로 묻을 가치가 없어

피 묻은 놀이나 한 장 내려

덮어 두었노라고

살아서 좋아하던 풀잎과 함께 누워

죽어서도 별이나 바라보라고

이성선<노을 무덤>전문


  위 시에서 화자 '나'는 실재 시인, 체험적 화자가 문면에 나타난다. 서정시의 경우 대부분 '실재 시인 = 시적 화자"의 양상으로 그려진다. 이러한 자기 체험의 자기인식적 시상 전개는 낭만주의 시 경향을 보이는 모든 시에 적용된다.


  (2) 드러나 화자, 숨은 청자 유형

  시의 문면에 '나'라는 화자만 명시되어 있고, 그 대상인 청자는 숨겨진 경우다. 대개 이러한 시의 유형은 주관적이거나 독백적인 서정시 경향을 보이며 철저히 화자의 감정, 화자의 주관, 화자의 입장만 표현된다.


나무잎 하나가


아무 기척도 없이 어깨에

툭 내려 앉는다


내 몸에 우주가 손을 얹었다


너무 가볍다

이성선<미시령 노을>전문


  나무잎 하나로 우주를 만들어내는 시인, 붉게 소멸하는 과정의 단풍잎을 바라보노라면 누구나 인생무상의 섭리를 느낀다. 설악을 뒤덮은 붉은 단풍들, 그는 미시령의 붉은 단풍을 노을로, 치환하여 노래했다. 단풍과 인생과 노을이 함께 우주 속에서의 벌이는 가볍고 적막한 앙상볼, 1인칭 주인과 화자의 우주가 만져진다.


한결같은 망각 속에

나는 구태여 움직이지 않아도 좋다

나는 소리쳐 부르지 않아도 좋다

시작도 끝도 없는 나의 침묵은

아무도 건드리지 못한다

무서운 것이 내게는 없다

누구에게 감사받을 생각도 없이

나는 하늘을 찌를 때까지

자라려고 한다

무성한 가지와 그늘을 펴려고 한다.

김윤성의<나무>부분


  위 시에서 화자는 실재 시인도 아니고, 또 그 시적 화자는 인간도 아니다. '나무'라는 전치, 변용된 사물화자이다. 나무화된 화자의 속성, 성질을 인격적 의미가 부여되어 전개되고 있다.


   (3) 숨은 화자, 드러난 청자 유형

  화자는 숨어 있고, 문면에 청자가 드러나는 유형이다. 대개 청자는 3인칭으로 당신, 여보, 아버지, 어머니, 순이 등 직접 듣는 청자로서의 ㅣ대상이 설정되는 경우이다. 대개 서간체 형식의 시나 권유적 진술의 형식을 갖기 마련이다. 이 유형의 시는 대부분의 화자는 문면에 숨어있고 다른 사람인 너, 당신, 어른, 어린이,  어머니, 아버지, 남성이나 여성, 여타의 대상 등 다양한 인물(사물)을 문면에 내세워 전달하고자하는 주제나 정서를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4) 숨은 화자, 숨은 청자 유형

이 유형은 화자와 청자가 동시에 작품 표면에 나타나지 않는 구조이다. 대체로 사물시, 객관적상관물에 의한 시, 그리고 묘사시로 이루어지는 시들이 이에 속한다. 나아가 화자와 청자가 모두 생략되어 버린 경우, 불특적 다수에게 말하는 객관적 언술로 이루어진다. 그래서 이러한 시들은 오늘의 이미지즘시, 주지주의시, 존재시, 모더니즘시에 두드러진 현상이다.

  요즈음 많은 현대시는 1인칭 주인공이 문면 뒤에 숨은 화자와 청자가 드러나지 않는, 이를테면 관찰자로서 자신의 정서를 드러내는 시를 많이 볼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시 속에 '나', '내'를 굳이 집어넣지 않아도, 그리고 3인칭 '그'도 드러나지 않는다. 그래서 이러한 화자 유형은 화재 중심 구조가 될 수 밖에 없다. 데생을 하듯 사물을 그리는 즉물시들이 좋은 예가 된다.


흙냄새를 맡고 나니

침을 삼키니

침이

달다!

정현종<흙냄새>전문


  생명적 "흙냄새"의 후각과 그리고 "달다"라고 하는 미각적 이미지가 생동감 있게 다가온다. 이 시는 단순한 명제지만, 그 짧은 언어가 주는 냄ㄹ한 울림은 크다. 여기에는 자연을 사랑하고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는 생명주의적 사상이 깊게 배어 있다. '흙냄새'는 '사람 냄새'가 되고, '나무 냄새'가 되기도 하며, '공기 냄새', '사랑 냄새' 등 다층적 의미를 지닌다. 흙은 생명의 근원이며, 생명이 탄생하는 쾌적함을 느낀다는데, '한 숱가락 흙 속에 미생물이 1억 5천만 마리'(시 <한수가락 흙 속에>)가 있어 그 미생물이 밀어 올리는 힘 때문에 발바닥에 탄력을 느낀다고 말한다. 그리고 흙 속에 '삼천대천세계'가 있다는 것이고 보면, 얼마나 흙에 대한 생명력을 강조하는지 알 수 있다.

  사물시나 즉물시들은 사물의 속성이나 특성을 살려 의미를 부여하는 시로 관찰자의 입장에서 진술되는데, 존재에 밀착하여 통찰하거나 시적 의미부여가 이루어지는 경우이다. 그리고 객관적상관물(Objective correlative)에 의한 시는 창작자의 어떤 정서나 감정, 사상 등이 다른 사물이나 상황에 빗대어 표현되기에 화자와 청자가 드러나지 않을 수 있다. 곧 화자나 청자가 등장하지 않고, 감정 사상 등을 상관물이라는 대체물로 사물이나 사건이 제시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묘사시는 관찰자의 시점에서 이미지 중심으로 묘사 대상이 그림과 같이 글로 표현되기에 들어나지 않는 것이다.


튼실한 씨앗의 문을 열고

씨앗 속 씨방으로 들어가 보낟

겨우내 씨방 속에서는 내림굿이 벌어진다

칼날 같은 이승과 저승의 경계 위에서

강산을 한 씨는

신의 힘을 내림 받는다

움켜쥔 주먹 부들부들 떨다

벽을 허물고 땅을 찢고 나와

외마디, 파란 비명을 지른다.

박종국 <봄이 오기까지>전문


  감각적 묘사로 이루어진 시<봄이 오기까지>에서는 봄 풍경이 그야말로 내림굿처럼 현란하게 묘사된다. 시각과 근육감각과 청각적 이미지가 매우 생동감이 있고 약동적이다.


두메산골

산자락에서

할머니 보살핌으로

꼭꼭 숨어

잘 자란

노오란

옥수수


도시로

이삿짐에 실려와

빵튀기 성형수술


영화배우처럼

몰라보게 예쁘게 변했다

이름도

세련되게

팝콘


동그란 종이 통속에

가득 담겨

극장 안으로 들어갔다.

김관식 <팝콘>전문


  김관식의 '팝콘'은 두메산골 옥수수가 팝콘이 되어 사람들의 사랑을 받게 된다는 것이 겉의 구조다. 그 안에는 성형수술을 통해 세련(?)되어 가는 잘못된 세태라는 숨은 구조가 있다. 김관식은 셩형 세태를 탓하기 위해 정색을 하고 덤비지 않는다. 두메살골, 할머니, 뻥튀기, 영화배우, 팝콘, 극장등의 비교적 저항감이 없는 친숙한 시어들로 포장하는 배려를 아끼지 않는다. 이 시도 보여주기 방식으로 화자와 청자가 개입되지 않은 관찰자 방식으로 이루어진 시이다.


엎드려 있었다지, 온 생애를 그렇게


단풍 차린 잎들이 떨어지며

느실난실 휘감겨와도

그잎들 밤새  뒤척이며 속상였건만

마른 풀들 서로 몸 비비며

바람속으로 함께 가자 하여도

제 그림자만 꾹 움켜잡고

엎드려만 있었다지


설음도 외로움도 오래되면 둥글어지는 걸까

제 속 가득 씨앗들 저리 묻어두고

밤낮으로 그놈들 등 두드리며

이름도 없이 주소도 없이

둥글게 말라가고 있었다지,


늙은 호박을 잡아

그 둥글고 환한 속을 본다

사리처럼 박힌

다ㅏㄴ단한 그리움,

이승희<호박>전문


  '호박'이란 사물에 몰입하여 "사리처럼 박힌 / 단단한 그리움"으로 의미 부여가 되고 있다. 4단 구성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이 시는 서두 부분에서 호박이라는 소재의 특성을 제시하고(起), 소재에 대한 일반적 인식(承), 그리고 작가의 새로운 인식(轉)에 이어, 의미부여의 전경호(結)로 결구 처리하여 독자에게 사물 인식의 새로움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또한 어쩌면 호박은 쓸쓸하고 가난하게 살아온 시인의 자화상일지도 모른다.


  5) 현대시 쓰기에서의 화자 문제

  일상생활에서도 소통을 위한 담화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서로 간에 담화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먼저 이야기의 소통 주체인 '화자(話者"'가 있고, 그 이야기 내용에 해당하는'화재(話題)'가 있기 마련이며, 나아가 그 이야기를 들어줄 '청자(聽者)'가 있어야 한다. 문학적 담화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시라는 담화는 '시인 - 작품 -독자'와의 관계로 일상보다 더 전략적이고, 역동적이면서도 정치하게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다.

  종래의 시에서는 대부분 작품 속에 시인이 직접 등장하여 자기의 정서나 상상한 것들을 이야기하는 방식 택해 왔다. 이와 같은 화자는 고백적 화자, 곧 자전적(自傳的) 화자로서 시인의 사상과 감정을 잘 표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남다른 의의를 지닌다. 그러나, 자전적 화자를 택할 경우, 시인의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욕망이다 갈등을 비롯하여 야유나 조롱, 비판을 가하거나 부도덕한 것, 미묘한 감정 등은 표현하기가 어려워진다. 그리하여 근자의 현대시로 접어들며서부터는 시인들이 자기가 선택한 화제에 적합한 가공적 인물, 다시 말해 상상적, 허구적 화자를 택하여 형상화하는 경우가


나는 요새 무서워요. 모든 것은 안만 보여요. 풀잎 뜬 강가에는 살 없는 고기들이 놀고 있고 江물에 피었다가 스러지는 구름에선 문득 暗號만 비쳐요. 읽어봐야 소용없어요. 혀 짤린 꽃들이 모두 고대들고, 不幸한 살들이 겁 없이 서있는 것을 보고 있어요. 달아난들 추울뿐이에요. 곳곳에 쳐 있는 細 그물들을 보세요. 황홀하게 무서워요.

황동규 <초가 楚歌> 부분


  황동규의 <楚歌>는 여성 화자인 '나'의 눈을 통하여 극한 상황을 제시한다. 전체주의적 억압에 대한 개인 내면의 굴절을 다룬 시로, 사회 비판의식이 깔려 있다. 달아나봐야 아무 소용없는 사면초가의 상황, 70년대 유신체제의 암울한 정치상황은 '혀 짤린 꽃'과"不幸한 살들"을 양산했고, 그들은 "곳곳에 쳐 있는" 가는(細) "그물"을 벗어나지 못한다. "황홀하게 무서워요"라는 말은 공포의 심리를 극대화한 표현으로 무서움을 강조닿ㄴ다.

  낭만주의 계열에 속하는 김소월의 <진달래 꽃>도 사실은 화자가 전도되어있다. <진달래꽃.의 저자는 김소월이라 실재시인으로 남자이다. 하지만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은 여성이다. 말하자면 순응하는 여성적 사랑의 정감을 드러내기 위해서 적합한 인물로 여성적 속석(anima)의 화자를 가상적으로 내세운 것이다. 이러한 실재시인이 작중의 화자로 전되되는 과정은 '실제시인'에서 '함축적 시인'으로의 전도, 결국 '새로운 허구적 화자'의 순으로 바뀌어 간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시적 화자를 양분한다면 '자전적 화자(自傳的 話者'와 '허구적 화자(虛構的 話者)로 나누어 볼 수 있는 것이다. 전자는 작품 속에 시인이 직접 등장하는 유형을 말하고, 후자는 시인의 의도에 따라 시인이 꾸며낸 유형에 해당된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자전적 화자의 작품은 회고적·고백적 어조를 띠고, 표현 기능이 강화된다는 측면이 있으며, 이에 독자들은 '시인 =화자'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독자들은 시의 내용을 시인과 관련지어 해성하고 받아들이기에 다른 유형의 화자를 설정했을 때보다 한결 더 그 내용을 신뢰하게 된다.


그가 귀가를 한다.

저 민달팽이의 등은

지나치게 가벼워서 무어워 보인다.


걷는다는 표현은

그에게 어루리지 않는다

바닥까지 처진 어깨가

천천히 길을 밀고 나간다

언제부터인가 그에게는

늘어진 양 어깨가 다리였으므로

빨래처럼 처진 몸이 조금도 어색하지 않다

어깨에 신는 신발은 없으니, 당장

닳아질 희망의 뒤축이 없어서 좋겠다. 그에게도

한때는 감미로운 집이 있었다;

아이스크림 같은 집


너무나 달콤하게 흘러내린

똥 같은 집

똥집도 안 파는 포장마차 가타ㅏ은 집

잠시 멈춘 그가 질을 지나친다

어쩌다가

아이들만 누수시켜 놓은 집


한사코 그의 목에 감겨있는

저 실없는 실어

그의 목을 한껏 조이고 있다.

박성우<민달팽이>전문


  위의 시에서 민달팽이는 실업자인 그이고, 또한 아버지이기도 하다. 곧 아버지의 삶을 알레고리화하고 있는 것이다. 박성우 시에서 사물들의 이야기에 나오는 화자들은 곧잘 '그'로 치환된다. 중층적 기법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그가 주목하는 거미, 달팽이, 망둥어, 굴비, 참새, 수박, 대나무, 빨판상어 등에는 사물의 재미있는 존재의 속성도 들어내지만, 한편으로는 시인의 내면세계나 가족, 우리들의 현실을 그대로 치환하여 반영한다.

  지금까지 우리 시에서 화자의 변이 양상을 보면 '저전적 화자에서 허구적화자로', '표층적 화자에서 심층적 화자로, 의식적 화자에서 무의식적 화자로, 그리고 '문명적 화자에서 원시적 화자로 변모되어 온 것 같다. 낭만주이 시대의 표층적 하자만 차용하던 작품에 심층적 ㅗ하자가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아이러니를 중시하는 모더니즘시의 영향이ㅗㄱ, 또 무의식적, 원시적 하자이다. 그리고 다양한 시적 인물의 해체는 고정성, 불변성에 반기를 들과 주체의 다원적 관점을 지향하는 해체주의시의 영향이라고 보고 싶다.


 6) 김소월의 시 <엄마야 누나야>의 화자 분석


엄마야 누나야, 강변(江邊) 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金) 모래 빛

뒷문(門) 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江邊) 살자

김소월<엄마야 누나야>


  이 시의 주제는 한 마디로 자연 속에 평화롭게 살고 싶은 소망을 드러낸 것이다. 각 행 모두 3음보의 리듬을사용하여 자연에 대한 순진무구한 동정을 진솔하게 노래함으로써 서정시의 완벽한 음악화를 이룬 작품이다.

 '강변'으로 대유된 아름다운 자연을 그리워하는 시인의 마음은 화자인 어린아이를 내세워 엄마와 누나와 함께 살고 싶어하는 시적 욕망을 드러내고 있다. 그가 설정한 '강변'은 그에게 평화와 행복을 보장해주는 안식처러서, 가족들과의 단란을 이상으로 하는 보금자리를 뜻할 수도 있고, 당시 현실 상황에 견주어 볼 때는 일제의 모진 압제를 벗어난 어떤 이상향일 수도 있다. 그러나 시인이 꿈꾸는, "갈잎의 노래"가 들려오고 "금빛 모래"가 반짝이는 그곳은 꿈의 세계만큼이나 도달할 수 없을 것 같은 서러운 정감도 느끼게 해준다. 그러면서도 평화로운 세상에의 동경을 노래한 이 시는 '반짜기는" 밝은 느낌도 있다.

  이런 단조롭고 평범한 내용임에도 이 작품이 매력과 호소력을 가지게 되는 것은 음악성에 있다. 1행과 4행의 반복적 행과 절ㄹ인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에서 느끼는 리듬과 내용의 정한은 민요조 서정시의 맛을 짙게 드러낸다. 나아가 자연에 대한 순수한 동경을 진솔하게 노래하여 완벽한 서정시의 음악화에 성공한 작품이다.

  이 시는 "엄마야 누나야, 강변(江邊) 살자"에서처럼 어린 아이라는 화자(발신자)를 내세워 엄마와 누누(수신자)를 향한 '살자'라는 기원적 욕망의 시점으로 이루어진 시이다. 한국말에서 '살자'라는 말만큼 강렬한 욕망과 치열한 의지를 나타내는 말도 드물 것이다. 구애를 할 대 한국 사람은 서양 사람들처럼 '아리 러부유'라고는 하지 않는다. 그냥 '살자'라고 말한다. 그리고 한국인에게 있어서 어떻게 사느냐 하는 삶의 문제는 바로 어디에서 사느냐의 삶의 장소와 밀접한 관계를 맺는다.

  욕망은 결핍과 부재에서 나온다. '엄마야 누나야 강별 살자"라는 말은 곧 화자가 현재 강변에 살고 있지 않다는 것을 진술하고 있는 말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강변의 자연 공간과는 정반대인 문명 공간일 것이며, 동시에 그것은 '멈마 누나'와 대립되는 '아빠, 혹은 형님'의 근육질의 남성 공간일 것이다. 뿐만 아니라 '엄마야 누나야'ㅏ른 말투에서 드러나 있듯이 그 욕망의 주체는 어린아이로 되어 있지만, 그 진짜 주체자는 바로 이 시를 쓴 시인 김소월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니까 이 시의 특성은 어른이 어린 시절의 시점을 통해서 즉 미래의 시간("살자"라는 미래의 바람)을 과거의 시간을 기점으로 해서 말하고 있다는 데 있다. 강변이 현실 공간이 니니듯이 화자로서의 어린이 또한 현실의 주체자가 아니다. 그러고 보면 엄마와 누나, 그리고 강변은 할할 것도 없고 '살자'라고 말하는 욕망의주체자마저도 부존(不存)한다.

  부재하는 욕망의 공간을 시적 언어로 형상화하는 것, 그것이 시인의 특권인 이미지라는 힘이다. 거기에서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 빛 /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가 탄생된다. 여기의 뜰이 전방성과 수평성을 나타내고 있다는 것은 "뒷문 밖에는"이라는 대구에 의해서 명확히 드러난다. 즉 뜰앞에는 강물이 흐르고 뒷문 밖에는 산이 솟아 있다. 앞과 뒤 수평적인 것과 수직적인 것, 그리고 '뜰'은 열려져 있는 세계를 그리고 뒤'문' 밖은 닫혀져 있는 세상을 보여 준다. 그러한 이항적 대립을 더욱 첨예하게 나타내고 있는 것이 '금모래 빛'과 '갈잎의 노래'의 대조이다. '반짝이는'의 의태어에서도 드러나 있듯이 뜰의 공간을 채우고 있는 모래는 시각적인 것이다. 그래서 모래는 금모래가 되고 빛이 된다. 또한 모래의 그 물질적 이미지의 뒤에는 태양이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뒷문 밖 산을 덮고 있는 것은 모래와 대조를 일고 있는 이파리들이다. 그리고 그것은 '금모래 빛'의 빛과는 달리 '갈잎의 노래'라고 되어 있어 청각적인 것을 나타낸다. 앞뒤로 분할되어 있던 공간은 '빛'과 '노래'의 시각과 청각의 감각 공간으로 대앵관계를 띠게 된다. 모래에서 태양빛을 느꼈던 사람들은 이제 '갈잎의 노래'에서는 숨어 있던 바람소리를 듣게 된다. 그래서 '반짝이는'의 의태어와 짝일 이루고 있는 '살랑이는' 갈잎의 의성어마져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엄마야 누나야>는 구조적으로 앞과 뒤, 개방과 폐쇄, 무기물(모래)과 유기물(이파리), 수평성과 수직성(강과 산), 그리고 시각과 청각이 각각 대립되고 있다. 마치 음악의 대위법처럼 시의 병렬법(平行對句法), parallelism)에 의해서 만들어진 공간, 대체 그 살고 싶은 그 공간이란 어떤 것인가. 20여 자의 이 짧은 시구 안에 상감되어 있는 그 공간이란 어떤 것인가. 20여 자의 이 짧은 시구 안에 상감되어 있는 그 공간은 산의 부동성과 강물의 유동성이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는 저 한국 산수화의 공간, 뒤에는 청산을 지고 앞에는 강물을 끓어아고 있는 초가삼간 몇 천 년 동안 한국인의 마음에 깊숙이 각인되어 온 그 삶의 원풍경인 것이다. 그것은 분명 엄마와 누나라는 말로 상징되는 존재의 그 시원적인 모태 공간이다. 그리고 그것은 모든 경계를 나타내는 중간 공간이기도 하다. 강변에 있는 모래는 땅과 물의 중간적인 물질이 아닌가. 모래는 한알 한알이 고체이면서도 물처럼 흐르는 유체적 성질을 갖고 있는 않는가.

  이 시의 정신은 엄마랑 누나랑 같이 사는 평화경(平和境)에 대한 갈망이다. 그것은 가족적 단란(團欒)을 이상으로 하는 가정의 표현이기도 하다. 꿈과 같이 그리운 밝은 ㅍ여화, 그것이 강변이라는 조금은 고적한 자연계와 어울려, 쉽게 도달하기 어려운 서러운 정감까지를 담뿍 담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