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장 상상력의 미학적 형상화] 3. 상상력의 유형

2018. 9. 28. 15:07☎시작법논리와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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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상상력의 유형

 

  1) 재생적 상상력(repoductive imagination)

  사람은 외계의 어떤 사물로부터 자극을 받게되면 감흥이 일어나고, 그 자극이 물러간 뒤에도 원래의 작극과 같은 감각적 경험이 남게 되는데, 이를 잔상(殘像, after image)이라고 한다. 가령 꽃망울을 본 뒤에 꽃망울이 시야에서 사라져버려도 그에 대한 잔상은 계속 남는다. 하지만 한 달, 1년이 지나면 원래의 사물의 모습은 그대로 재생되지 못한다. 앞서 일어났던 감각적 경험이 다소간 확실성을 가지고 재생되는 것을 기억(記億 memoty)이라고 하고, 이를 심리학에서는 재생적 상상력(再生的 想像力 reproductive imagination)이라고 한다. 이재생적 상상력은 상상력의 제1단계이다.

  

  2) 연합적 상상력(asociarive imaginarion)

  연합적 상상력은 재생적 상상력보다 좀 더 복잡하고 폭넓은 것인데, 이전에 경험한 원물이 각 요소로 분리되었거나, 이전에 경험한 여려 가지 복수(複數)의 원물들이 어울려 재생되는 경우를 말한다.

   R.G. colling wood는 상상력의 접근반응(接近反應), 접근연합(接近聯合)으로 보고 있는데 아마도 연상 작용으로 사물을 끌어오는 것으로 이해된다. 가령 '낙엽 →시제 → 흙 → 새싹 → 나무 → 바람'등으로 이어지는 연상작용 같은 것이 이에 해단될 것이다. 

 

오 아니에요

우리가 둘이서 빵에 바르는

이 쨈은 쨈이 아니라 과수원이에요

우리는 과수원 하나씩을

빵에 얹어 먹어요

 

전봉건 <과수원과 꼼과 바다이야기> 부분

 

  연상은 1차적인 상상에 해당한다. 대개 연상은 기본적으로 유사성, 인접성, 인과성에 의해 이루어지는 유추에서 시작되는 것으로 이보다 더욱 확대되는 과정을 거친다. 가령 "우리가 바르는 이 쨈은 쨈이 아니라 과수원이에요 / 우리는 빵에 과수원 하나씩을 얹어 먹어요"는 인과성에 의한 연상작용에 의한 시이다.

  그런 점에서 아래 윤동주의 <소년>이나 임동윤의 <나무 아래서>는 순전히 유사성을 통한 연상작용으로 이루어진 시라고 할 수 있다.

 

 여기저기서 단풍잎 같은 슬픈 가을이 뚝뚝 떨어진다. 단풍잎 떨어져 나온 자리마다 봄을 마련해 놓고 나무가지 위에 하늘이 펼쳐있다. 가만히 하늘을 들여다 보려면 눈섭에 파란 물감이 든다. 두 손으로 따뜻한 불을 씃어보면 손바닥에도 파란 물감이 묻어난다. 다시 손바닥을 들여다 본다. 손금에는 은 강물이 흐르고, 강물 속에는 사랑처럼 슨픈얼골 -아름다운 순이의 얼골이 어린다. 소년은 황홀이 눈을 감어 본다. 그래도 맑은 강물은 흘러 사랑처럼 슬픈얼골 - 아름다운 순이의 얼골은 어린다.

윤동주 <소녀> 전문

 

  윤동주의 <소년>은 표면적으로는 단풍잎이 떨어지는 가을날에 사랑하는 순이를 생각하며 슬퍼하는 화자의 마음이 드러나 있는 시이다. 이 시의 시상 전개는 연상으로 되어 있다. 곧 "파란 하늘 → 파란 물감이 든 눈썹과 볼 → 파란 물감이 묻어난 손바닥 → 손금에 흐르는 맑은 강물 → 강물 속의 슬픈 순이의 얼골  → 아름다운 순이의 얼골"로 이어지고 있다. 그러므로 이 시는 1차적으로 사랑하는 소녀, '순이'를 향한 그리움을 드러낸 것이지만, 상징체계로 해석하면 '하늘'은 '희망, 꿈, 이상'으로 '강물'을 '역사의 흐름'으로, '순이'를 '잃어버린 역사'로 보고 시대 상황과 결부시킬 수도 있다.

 

 

아버지는 죽어서도 여전히 키 큰 나무다

피가 돌지 않는 아랫도리는 썩고

그 곳으로 벌레들이 몰려와 집을 짓지만

아버지는 한 번도 고통을 호소한 적이 없다

가지마다 연두빛 자식들을 올망졸망 매달고

크고 탐스러운 열매들을 키워내는 가을이면

아버지는 한 그루 풍성한 세상의 나무였다

그러던 나무가 갑자기 잎을 떨궈버렸다

ㄱ자지런히 물 뽑아 올리던 뿌리도 말라버리고

햇빛 맘껏 끌어당기던 연두빛 눈들이

시들시들 땅으로 떨어져 내린 것이다

바람 많은 세상의 무수한 죽음 중에서

모든 소임을 다하고 눈을 감은 아버지

그 성스런 최후가 무척 평온한 듯 보였다

아버지를 닮는 것이 소원이지만

나는 안다. 아버지의 행적을 따라가자면

비바람 모 진 세월 오래 견뎌야 한다는 것을

임동윤 <나무아래서> 부분

 

  임동윤의 <나무아래서>는 "아버지는 죽어서도 여전히 키 큰 나무다"라는 의인적 은유로 이루어진 시이다. 화자는 연상의 방법으로 '나무'가 지닌 속성과 '아버지'와의 유사성을 동일화시켜 시상을 전개해 나간다. 시인은 아버지를 "한 그루 나무' 곧 생의 거목(巨木)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에게 "아버지는 죽어서도 여ㅕ전히 키 큰 나무"였던 셈이다. 아버지는 투병의 과정에서 "한 번도 고통을 호소한 적이 없"으시고, 오직 "가지마다 연두빛 자식들을 올망졸망 매달고 / 크고 탐스러운 열매들을 키워내는" "한 그루 풍성한 세상의 나무였다". 여기서 "자식 / 열매"로 상징되는 아버지의 생의 결실들은 마치 나무의  생애를 기술하듯이 '잎'과 '뿌리'와 '눈'의 소진으로 아버지 생의 마지막을 연상적 은유로 처리하고 있는 것이다.

  T.C Winchester나 J. Ruskin 같은 이들은 과겨의 체험적 욧고의 연쇄적인 결합체로 상상력을 중시한다.

 

이 지방에서 담배를 피울 대

라이터를 쓰지 앉죠 햇빛에 스윽 - 그으세요

나는 성냥불이 되어 당신을 태우겠어요

활어횟집 옆에 바짝 붙어 있는 커피 자판기처럼

종일 80도 이상의 사랑을 따라 내겠어요

당신은 나를 훌훌 불며 마시고 종이컵처럼 버리겠죠

그러면 나는 갈매기가 되어 날아가겠어요

오늘 밤에 여인숙이 되었다가

내일 아침엔 추잉껌이 되겠어요

유금옥 <성냥> 부분

 

  위 시의 중심 소재의 이미지는 카페라는 탁자 위의 '성냥' 있는 공간이다. 무심코 내려다 본 탁자 위의 '성냥'의 영상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종횡무진 상상의 파노라마를 연출한다. 곧 "지느러미 달린 찻잔들이 헤엄쳐 다니고", "랩 스커트릉 입은 해변이" 나오고, "활활 타오르는 소파"가 있고 화자가 "갈매기가 되어 날아가"기도 하는 풍부한 자유연산의 모습도 보여준다.

 

  3) 창조적 상상력(creative imagination)

  가장 고차원적 상상력으로 창조적 상상력(創造的 想像力, creative imagination), 혹은 생산적 상상력(produtiv imagination)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시 창작의 참된 에너지, 근원적인 능력이 되는 상상력이다. 여기에서는 이미 경험했던 사물이 각 요소로 해체되었거나 분리되었을 때 그것을 다시 연합할 뿐 아니라, 여기에 다른 경험의 사물을 덧붙여서 새로운, 혹은 실재하지 않는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상상력이다.

  시는 비유와 상상의 덩어리이다. 곧 상상이 없으면 시가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다음의 시는 하늘의 '품질검사제도'라는 중심이미지에 초점을 두고, 깊게 파고들어간 작품이다.

 

하늘을 쳐다보면 웃음이 난다

그 나라에 품질검사제도가 있었다면

는 통과할 수 없었기 때무닝다

그 쪽이 허술한 게 고마워서

하늘을 쳐다보면 웃음이 난다

 

이상구구 <하늘을 쳐다보면> 전문

 

  웃음이 절로 난다. 아마도 허술하게 보았기 때문이지, 제대로 품질 검사를 했더라면 나도 이 세상에 태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세상은 바라보기에 따라 신브스럽고 비밀스럽다. 나를 둘러 싼 세계는 그만큼 비밀스런 이야기, 신비스럽고도 의미 있는 세계로 가득 차 있다. 그래서 시인은 심안(心眼), 영안(靈眼)이 중요하다. 아마 죽을 대도 천당이란 관문이 있어 그곳에서도 품질 검사를 할지 모른다. 그래서 장의사가 염을 할 때 전신의 몸을 알코올로 닦고 얼굴을 화장시키는지도 모른다.

 

석이를 물에 불리니

천수를 다 산 것처럼 야들야들 순해져

담아둔 소라를 꺼내 놓는다

산꿩 울음소리, 도토리 구르는 소리

달빛을 걷는 소리 흘러 나온다

 

저 귀에 저장된 하늘은 얼마일까

쫑긋 세운 배곯은 귀

명절이 되어도 연락이 닿지 않은 오라버니가 생각난다

 

평생 절벽에 붙어 마른 목을 축이며

기다림에 검게 타버린 시간들

허약한 오라버니가 줄을 타고 따던 석이

줄을 잡던 손이 떨리기도 했었다

 

마른 귀를 물에 담그니

반백이 된 오라버니 목소리가 들려온다

조경숙 <절벽의 귀> 부분

 

  시인은 깊은 산골 절벽에 피어있는 '석이(石耳)버섯'을 '절벽의 귀'라 했다. 그리하여 '석이'와 연사오디는 고향의 산정 풍경과 생계를 잇다가 집 떠난 오라버니에 대한 생각들을 정감잇게 그려낸다. 석이를 오리하려면 물에 불려야 하는데, 여기에서 시인은 자기체험을 몽상적 상상력으로 풀어낸다. 곧 석이의 '마른 귀'를 물에 담그면 "ㅅ만꿩의 울음소리, 도토리 구르는 소리, 달빛을 걷는 소리"는 물론 오라버니의 "쫑끗 세운 배곯은 귀 / 명절이 되어도 연락이 닿지 않은 오라버니"의 애잔한 목소리도 들려온단다. 그 연상과 착상적 상상이 교집된 시간이 얼마나 참신한가. "허약한 오라버니가 줄을 타고" 따던 석이 속에는 애상적이고 고난한 삶의 풍경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김춘수는 '보이지 않는 그쪽'을 보는 눈, '보통 사람이 못 보는 눈'이 시인의 시안(詩眼))이라고 했다. 바로 랭보의 '견자(見者, La voyant)의 시학으로, 보이지 않는 세계를 그려내어 낯선 체험을 갖게 해주는 것이 시작 행위다.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는 상상의 힘, 영안(靈眼)을 가진 시인은 천상과 지상을 오고가는 존재이다. 그래서 시인은 우주와 소통하며 영성적 메시지로 우주의 비밀을 들춰내는 영매(靈媒)이다.

 

 4) 통찰(洞察) insight)

 통찰(洞察)은 통관(洞觀), 예리한 관찰력으로 사물을 환히 꿔뚫어 보는것을 말한다. 그러니까 시 창작에서 통찰이란 자기를 둘러싼 내적·외적 전체 구조를 새로운 시점(視鮎)에서 파악하고, 대상을 새롭게 인식, 참신한 의미를 발견해 내는 일이다. 따라서 시적 통찰력은 기존의 방식을 깨뜨려 새로운 관점에서 접근하게 한다.

 

해바라기의 올곧은 열정이

해바리기의 목을 휘게 한다

그렇다. 고추도 햇살 쪽으로

몸을 디밀어 올린 것이다.

<중략>

물고기가 휘어지는 것은

물살을 치고 오르기 때문이다

그래, 이제, 말하겠다.

내 마음의 꼭지가, 너를 향해

잘못 박힌 못처럼

굽어버렸다

 

이정록 <구부러진다는 것> 부분

 

  위 시에서 "굽어진다는 것", "휘어지는 것"은 어쩌면 막연한 개념적 현상에 불과하다.그런데 이제까지 전체적인 연관을 갖지 않던 막연한 사물이 새롭게 다른 사물과의 연관을 가지고 하나의 체계적인 맥락, 분절된 전체로서 파악괴도 있는 것. 이것이 바로 통찰에 해단한다. 위 시에서 별개의 구체적인 현상들, 곧 해바라기의 목, 고추의 몸, 물살을 치고 오르는 물고기의 현상에서 "구부러진다는 것"의 보편적 진리를 깨닫고, "내 마음의 꼭지"도 그러하다는 것의 시적 논리, 시적 통찰을 제시한다. 이 하나의 참다운 진리로 발견되는 것처럼 통찰의 명명에 의해 사물(관념)이 존재하는 의미가 구체화 형상화되어 있다.

 

  5) 직관(直觀, intuition)

  직관은 곧 철학, 감각, 경험, 연상, 판단, 추리 따위의 사유 작용을 거치지 안니하고 대상을 직접적으로 보는 것을 말한다. 직관은 순식간의 상상력, 영감으로 시를 시답게 만드는 하나의 요인이 된다.

  직관은 낭만적 사고를 가진 시인들에게 시를 구성하는 원동력으로 인정되어 왔다. 직관은 자신이 처한 세계 속에서 한나의 대상 또는 다수의 대상을 바라볼 때, 영감처럼 떠오르는 시적 발상을 의미한다. 곧 사건이나 대상을 보고 즉각적으로 떠오르는 생각 내지는 그것의 이미지와 곤련하여 다른 이미지를 떠올리는 사고 작용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그래서 이러한 직관은 시인의 시적 자질과 직결된다. 그런데 시인의 직관은 언제, 어느 곳에서나 일상적으로 발생하지 않는다. 다라서 직관에 의해 시를 쓰려면 생각과 메모할 준지를 하고, 일상생활 송으로 들어가 몰입해애 한다.

  베르그송(Bergson)은 생을 파악하는 기능으로서 그는 지성(知性0 대신 '직관(intuition)'의 기능을 매우 중요시하였거니와 이때의 직관이란 어떤 신비적 직관과 같은 것이 결코 아니었으며, 그것은 시간 속에 있어서 '생의 악동(elan vital)' 을 그대로 표현한 것이라 하겠다.

 

너무 어두워

밭솥을 열어보니다

하얀 별들이 밥이 되어

으스러져라 껴앉고 있습니다

별이 쌀이 될 때까지 쌀이 밥이 될 때까지 살아야 합니다.

 

그런 사랑 무르익고 있습니다.

김승희 <새벽밥> 전문

 

  새벽에 별들이 밥이 되어 껴앉고 있는 밥솥을 직관의 눈으로 본다. 화자는 별이 쌀이 될 때까지,  쌀이 다시 밥이 될 때까지는 온몸으로 '살고', '살아가고' 있음을 발견한다. 여기에서 별이 밥이 되는 삶의 연금술에서 필요한 것은 오직 하나, 으스러져라 껴안는 사랑뿐이다. 껴안는 사랑은 타인의 고통, 고충마져 감싸 쥐는 것, 그런 사랑을 통해 별과 쌀을 결합시키며 타인과의 거리, 장벽을 해체한다. "쌀이 밥이 될 때까지"그런 사랑을 위해 '별이 밥이 될 때까지', "살아야 합니다"라고 설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