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장 시적 진술의 유형』

2020. 1. 17. 12:54☎시작법논리와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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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장 시적 진술의 유형』




  일반적으로 시는 묘사와 진술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시적 묘사가 대상에 대한 '관찰(觀察)'의 축으로 하는 것이라면, 시적 진술은 대상에 대한 '해명(解明)'의 축에 비중을 둔다.

  그래서 시적 진술은 그 해명이 축이 독백의 형태를 아고 있거나 자선(自省)이라는 깨달음이 핵심을 이루고 있다. 여기에서 그 깨달음은 묘사와 같이 가시적이고 감각적인 형태의 어떤 것이 아니라. 관념적인 형태의 어떤 것이다. 곧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들려줄 수 있는 그 어떤 것이다. 그러므로 들려주는 방식의 진술은 ① 선언적 성격의 언술이나, ② 주체, 기본적 사상, 작가의 의도를 명백하고 생생하게 드러내주고 있는 작품 또는 작품의 어떤 부분, 구면이 되거나, ③ 예술적 언술의 특성  자체를 포괄적으로 지적할 때 사용한다.


    ㉠ 門을암만잡아ㅏ다녀도안ㄴ열리는것은안에生活이모자라는까달이다.

    밤이사나운꾸지람으로나를졸른다

이상 <가정> 부분


    ㉡ 누구한테 머리를 숙일까

    사랑이 아닌 평범한 것에

    많이는 아니고 조금

   벼를 터는 마당에서 바람도 안 부는데

   옥수수 잎이 흔들리듯 그렇게 조금

김수영<꽃잎1> 부분


  ㉠은 '~것은 ~이다'의 시적 설명의 진술 형식을 띠고 있다. '門을암만잡아다녀도안열리는것"은 안쪽에 문이 잠겨서가 아니라, "生活이모자라는"까닭이기 때문이다. 지금 화자는 마음의 문을 열려고 하지만 열리지 않는닥. 그건 어떤 두려운 정신의 공포, 결핍 때문인지도 모르는 이유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생활은 없는 상태이다. 문으 잠근것도 화자인 나이다. 이 사실을 나는 알고 있다. 그러므로 "암만잡아다녀도"는 '잡아당기기조차 두려운'의 반어적 진술을 하고 있다.

  ㉡은 극히 일상적인 진술의 형태이다. 시는 시인을 대신해서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 혹은 인간 삶의 어떤 진실을 독자에게 말해 주려고 계속 말을 건다. "누구한테 머리를 숙일가"라는 수사적 의문의 진술법으로 시작하여 "사람이 아닌 평범한 것에"라는 대상을 구체화하여 제시한다 바람의 고개는 누구한테 머리를 숙일까? 사람에게 숙이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것에 머리를 숙여 많이는 아니고 조금 머리를 숙인다는 것. 이것은 질술이다. 해서 "사람이 아닌 평범한 것에"라도 머리를 숙이고 싶을 만큼, 그 만큼 머리 숙일 만한 사람이 없다는 자각과 통탄의 관념을 드러낸다. 하지만 "벼를 터는 마당에서 바람도 안 부븐데 / 옥수수 잎이 흔들리듯 그렇게 조금" 머리를 숙이는 장면은 모사성에 가깝. 그러니까 시적 묘사가 가시적, 제시적, 감각적이라면, 시적 진술은 가창적, 고백적, 해석정 성향을 갖는다.

  시적 진술은 독백적 진술, 권유적 진술, 해석적 질술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독백적 진술은 스스로가 시적 대상이 되어 반성하고 기원하는 형태다. 권유적 진술은 자기의 주장을 불특정 개인 또는 다수에게 적극 동조를 요청하는 형태이고, 해석적 진술은 일정한 시적 대상에 대한 시인 나름의 해석과 비판의 형태 주조로 한다. 이러한 진술의 형태는 작가의 깨들음을 토로하는 형태로 내성적(內省的) 자각의 성격을 갖는다. 그러다 보니 묘사형의 작품보다는 주관적인 성격에 속하는 넋두리와 같은 해석적 오류를 범할 수 있다. 무엇보다. 진술은 우리들의 정서 밑바닥에 잠겨 있는 상투적인의미 체계에 새로운 충경을 줄 수 있는 깨달음을 동반하는 표현이어야 할것이다.


  1. 독백적 진술

   시라는 문학 양식이 시인의 체험 그 자체를 형식화한 것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시는 독백의 양상을 띈다. 독백(monologue)은 큰 소리로 내거나그렇지 않거나 간에 어떻든 스스로에게 말하는 형태이다. 그래서 독백적 진술은 시인(인식 주체)이 스스로에게 말하는 형태이다. 그래서 독백적 진술은 시인(인식 주체)이 스스로 대상이 되어 반성하고 기원하는 시 형태의 성격을 지닌다. 보통 이를 크게 회고적 시점과 기원적 시점의 진술로 구분할 수 없다.


  1) 회고적 시점의 진술

과거를 통한 현재를 반성하는 회고적 시점의 진술은 대개 반성, 성찰에 초점을 둔다.


박산.

자네는 날 보면 '선생님' 하고 허리를 굽히는데

자판기는 한번도 허리를 굽힌 적이 없어

용돈은 꼬박꼬박 챙기면서

하루는 이런 일이 있었지

자판기에 100원 짜리 지폐를 넣고 400원 짜리 커피를

뽑았는데 이것이 500원 짜리 동전만 내놓고

나머지 100원은 내놓을 생각을 않는 거야

그래 비상벨을 누르듯 반환배꼽을 누르고

주먹다짐까지 했다니까

챙피한 일이지

결국 내가 지고 말았어


오늘도 그 시간에 그 자판기 앞에 앉았는데

피해의식이 그대로 작용하는 거야

자판기는 전혀 모른 체하고


사흘 수 또 그 자판기 앞에 앉았는데 자판기 주인이 와서

자판기 문을 활짝 열어놓고 동전을 담고 있기에 그 이야기를 했더니

100원을 돌려주더군 그 돈을 받아 가지고 오는데

자판기가 큰 소리로 욕하는 거야

'저레가지고 무슨 시를 스느냐'고

실은 내가 매일 그 자판기 앞에서 커피를 뽑아놓고

시를 썼거든


이제 부끄러워

시를 못 쓰겠어

이생진 <나의 인격> 전문


  위 시는 시인이 자판기를 사용하다가 거스름돈이 나오지 않아 시비가 생겼던 에피소드 한토막을 삼아 소재로 쓴 것이다. 전반부와 중반부는 그 회고를 서사적으로 드러내지만, 후반부에서는 화자의 각성, 반성적 생각을 드러내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후반부에서 의인화된 자판기가 시인인 화자를 향해 큰 소리로 용하는 부분이다. "저래가지고 무슨 시를 쓰느냐", 그 말에 화자는 "이제 부끄러워 / 시를 못 쓰겠어"라고 반성하는 반성적 자각이다.

  이밖에 회고적 시점의 반성 형태로 쓴 시로 이성부의 <줄광대 金氏>, 김명인의 <동두천4> 등이 있다.


  2) 기원전 시점의 진술

  기원적 독백의 시점은 과거와 현재의 반성을 토대로 한 미래의 삶에 대한 희구를 드러내는 시점의 진술이다. 마치 유치환의 <바위>와 같이 소망에 초점을 둔다.


돌미나라 같은 여자와 살고 싶네

투박하고 작은 키에 살짝 곰보 같은 여자

먹으면 먹을수록 보기보단 싸한 향기 코끝을 자극하여

돌미나라에 붙어있는 거머리 같은 집요함으로

내 피를 빨아먹으며 아니, 내 골수까지 파고들어

나를 빨아먹는 여자랑 사랑하고 싶네

그러면 난, 어쩔 수 없이

내 모든 것을 다 내주고

쭉정이처럼 바람만 남아

이 세상 안 쏘다니는 데 없이 구석구석 애무도 해보고

아니, 바람쟁이로 충실하게 모든 같잖은 사랑도 해보고

그것도 지겨우면 다시,

돌미나리 같은 여자 옆에 붙어서

돌미나리나 띁어먹으며 살고 싶네

김영탁 <돌미나리> 전문


  이 시는 기원적 시점으로 사랑을 갈구하는 노래다. 화자는 '돌미나리'와 같은 야성적이고, 원초적 본능의 사랑을 갈구한다. 그리하여 돌미나리와 같은 야생적인 여자에게 아낌없이 사랑을 주고, 거러리같이 "여자 옆에 붙어서", "돌미나리나 뜯어 먹으며" 살고 싶다고 한다. 인생은 '사랑의 역사'다 부모님의 사랑으로 태어나서 사랑으로 성장하고, 사랑으로 결혼하며, 사랑으로 살다가 사랑이 쇠잔해지면 죽는다. 그러니 어찌 사랑이 소중하지 않겠는가. '돌미나리'는 논이나 개천 같은 곳에 저절로 나는 식물로 억지로 심어 가꾸지 않는다. 짝딸막한 키의 돌미나리는 투박하고 보잘 것 없다. 그러나 향은 진하다. 돌미나리는 그런 야생의 멋과 맛, 자연의 순박한 심성과 악조건의 기후에도 끄떡하지 않는 건강한 이미지를 지니고 있다 그런사라, 그런 야생의 여자, 건강하고 순박한 여자가 바로 화자가 소원하는 사람이다.


퐁약 아래서 마르고 말라 딱딱한 소금이 되고 싶던 대가 있었다. 세상에서 제일, 쓰고 짠 것이 되어 마대자루에 담기고 싶던 대가 있었다. 손 손 고등어 뱃속에 염장 질러 저물녘 노을 비낀 산굽이를 따라가고 싶던 대도 있엇다. 형형한 두 대 눈동자로 남아 상한 날들 위에 뿌려지고 싶던 대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 나는 이 딱딱한 결정을 버리고 싶다. 해안가 함초 숲을 지나, 유인도 무인도를 모두 버리고, 다시 물이 되어 출어이고 싶다.

이건청 <소금> 전문


  한 인강의 생애란 끊임없는 변신의 과정이다. 시인은 '소금'이라는 질료를 통하여 인생의 욕망과 해탈을 상상한다. 바닷물의 결정체인 소금, 그 소금의 류시화가 말했듯이 '바다의 눈물이요, 바다의 아픔이요, 바다의 상처"이다. 그래서 소금은 쓰고 짠 맛을 내어 모든 음식, 삶의 여정에서 간을 맞출 수 있고, 상한 날들 위에 뿌려질 수 있는 것이리라. 그런데 이제 시인은 딱딱한 결정을 버리고 싶다고 한다. 모두 버리고 다시 물이 되어 출렁거리고자 한다. 속세의 장점에서 완전한 자리로부터의 혁명이다. 탈속의 경지, 해탈을 향한 기원이다.

  김남조의<아침 所願>, 김현승의 <가을의 기도>, 전진규의<비워내기>, 유치환의 <바위> 서정주의 <푸르른 날>, 천상병의 <귀천>등은 모두 기원적 시점에서 다룬 시들이다.


 2. 권유적 진술


  권적 진술은 자신의 주장을 남에게 설득하는 내용을 갖는다. 독백적 진술의 기원적 시점이 자기 자신에게 돌아가는 언술의 내용을 갖는데 비해, 권유적 진술은 자기가 아닌 다른 사람의 각성을 유도하는 언술의 내용을 갖는다.


  1)관행적 진술의 시점

  어떤 단체나 행사의 기념시, 창간시, 축시 등이 이에 포함된다.


靑坡여

가슴이 시리도록

더 푸르러라 더 푸르러라

청파 언론이여,


푸르지ㅎ은 나무 꽃도 못 피우나니

푸르지 않은 이파리

때가 되어도 단풍을 몯 들이나니

청파여

북벅북적 왁작왁작 왁자지껄

더 푸르러라 더 푸르러라

청파 언론이여 청파 가시내들이여,

조태일 <靑坡여 더 푸르러라> 부분


  위 시는 한 대학신문의 창간 20주년을 기념하는 축시다. 이렇듯 관행적 시점의 권유적 진술은 단체나 행사가 지향하는 이상이나 목적을 염두에 둔다.


  2) 비관행적 진술의 시점

  비관행적 진술의 권유는 아무런 구속이 없는 자유로운 주장 같은 것이 이에 해당한다. 비교적 민중시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우리 모두 숨 끊고 활시위를 떠나자

몇십 년 동안 가진 것

몇십 년 동아 누린 것

몇십 년 동안 쌓은 것

행복이라던가

뭣이라던가

그런 것 다 넝마로 버리고

화살이 되어 온몸으로 가자


허공이 소리친다

허공을 뚫고

온몸으로 가자

점 캄캄한 대낮 과녁이 달려온다.

이윽고 과녁이 피 뿜으며 쓰러질 대

단 한 번

우리 모두 화살로 피를 흘리자

돌아오지 말자

돌아오지 말자

오 조국의 화살이여 전사여 영령이여

고은 <화살> 부분


  고은의 시<화살>은 혁명의 전의를 다지는 '피의 노래'로 화자의 주장이 강한 전형적인 권유적 진술의 시다. 단언적으로 뜨거운 정조가 생명까지도 용관로에 던지는 초월적 정신이 넘쳐나면서 진한 여운과 감동을 준다. 또한 이 시는 날카로운 뜻이 담겨 있으면서도 누구나 읽어서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피 뿜으며 스러져야 할 캄캄한 대낮과 과녁이 달려오고 있다는 화자 인식의 단호함, 민중시의 힘이 돋보이는 시이다. 나아가 "우리 모두 숨 끊고 활시위를 떠나자", "온몸으로 가자", "돌아오지 말자" 등에서는 순교자적 입장도 보인다.


  3. 해석적 진술


  해석적 진술은 시 창작에서 매우 중요하다. 어차피 인생의 삶이란 바로 주어진 세계에 대한 해석이고, 이를 가장 첨예하게 다루는 사람이 시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해석적 진술은 시적 대상에 대한 나름의 이해와 비판을 토로하는 형태의 진술이다. 해석적 진술은 관조적 진술의 시점과 풍자적 진술이 시점으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다.


  1) 관조적 시점의 해석

  관조적 시점의 해석적 진술은 시적 대상에 대한 의미론적 존재론적 탐구를 통한 세계의이해에 대한 해석이다. 이를테면 하나의 정중동(靜中動)의 시학으로 세계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통찰의 해석적 진술을 보여주는 형태이다.


세상의 열매들은 왜 모두

둥글어야 하는가.

가시나무도 향기로운 그의 탱자만은 둥글다.


땅으로 땅으로 파고드는 뿌리는

날카롭지만,

하늘로 하늘로 뻗어가는 가지는

뾰족하지만

스스로 익어 떨어질 줄 아는 열매는

모가 나지 않는다.


덥썩

한 잎에 물어 깨무는

탐스런 한 알의 능금

먹는 자의 이빨은 예리하지만

먹히는 능금은 부드럽다.


그대는 아는가.

모든 생성하는 존재는 둥글다는 것을

스스로 먹힐 줄 아는 열매는

모가 나지 않는다는 것을.

오세영 <열매> 전문


  오세영의 <열매>'열매'라는 대상에 몰입하여 유심히 관조의 눈으로 바라보고, 이로부터 사물존재의 깊의미를 찾아낸다. 그 시적 화두는 "세상의 열매들은 왜 모두 둥글어야 하는가"이다. 그래서 '땅으로 파고드는 뿌리는 날카롭고', '하늘로 뻗어가는 가지는 뾰족하지만' "스스로 익어 떨어질 줄 아는 열매"는 "모가 나지 않은다"는 섭리를 터득한다. 도한 능금처럼 "스스로 먹힐 줄 아는 열매", 곧 자기를 희생할 줄 아는 정신이야말로 생성하는 존재라는 역설적 진리도 발견한다. 이렇듯 관조를 통한 해석적 진술은 사물 존재의 새로운 인식과 존재론적 의미 탐구로 나아갈 수 있다.


어린 눈발들이, 다른 데도 아니고

강물 속으로 뛰어 내리는 것이

그리하여 형체도 없이 녹아 사라지는 것이

강은,

안타까웠던 것이다

그래서 눈발이 물위에 닿기 전에 몸을 바꿔 흐르려고

이리저리 자꾸 뒤척였는데

그때마다 세찬 강물 소리가 났던 것이다

그런 줄도 모르고

계속 철없이 철없이 눈은 내려,

강은,

어제밤부터

눈을 제몸으로 받으려고

강의 가장자리부터 살얼음을 깔기 시작한 것이다.

안도현<겨울 강가에서> 전문


  위의 시도 '왜 겨울강에 살얼음이 깔릴까'라는 시적 의문으로 시작한다. 그 답변은 서두에 있다. 곧 "강물 속으로 뛰어 내리는 것이 / 그리하여 형체도 없이 녹아사라지는 것이" 강은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곧 살얼음이 깔리는 이유는 눈을 오랫동안 보듬고 싶은 강물의 마음 대문에 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또 하나의 해석적 의미로는 "어린 눈발"과 "강물"이라는 시어를 알레고릭로 보는 관점이다. 지금 화자가 처한 계절은 '겨울'이라는 춥고 한난한 상황이다. 여기에서 '어린 눈발'(아이)은 연약한 존재요, '강물'(어른)은 강한 존재이다. 따라서 강물이 "가장자리부터 살얼음을 깔기 시작"한 것은 '보호의식 내지 약자에 대한 배려'라는 의미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구두 뒷굽이 닳아 그믐달처럼 한쪽으로 기울어졌다

수선집 주인이 뒷굽을 뜯어내며

참 오래도 신으셨네요 하는 말이

참 오래도 사시네요 하는 말로 들렸다가

참 오래도 기울어지셨네요 하는 말로 바뀌어 들렸다

수선집 주인이 좌빨이네요 할까봐 겁났고

우빨이네요 할까봐 더 겁났다.

구두 뒷굽을 새로 갈 때마다 나는

돌고 도는 지구의 모퉁이만 밝고 살아가는 게 아닌지

순수의 영혼이 한쪽으로만 쏠리고 있는 건 아닌지

한사코 한쪽으로만 비스듬히 닮아 기울어가는

그 이유가 그지없이 궁금했다.

허영만 <뒷굽> 전문


  한 사물 (현상) 세계에 몰입하여 관조적으로 바라보면, 그 어떤 상상이나 의미부여의 정신의 옷이 입혀진다. 화자는 그믐달처럼 한 족으로 기울어진 구두 뒷굽에 몰이한다. 그 몰입은 수선집 주인과의 대화에서 촉발된다. "오래도 신으셨네요" 하는 말이 "참 오래도 사시네요"로 드릴고 "참 오래도 기울어지셨네요" 하는 말로 바뀌어 들리기도 한다. 그러다가 '좌빨'과 '우빨'까지지로 이어질까봐 겁이났다고 하는 상상의 세계까지 확대되고, 삶의 가치관낒 저녕화(前景化)된다. "순수의 영혼이 한쪽으로 쏠리고 있는 건 아닌지", 나아가 "한사코 비스듬히 닳아 기우러가는"것은 아닌지 등 삶의 편향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양쪽 굽이 똑같이 닳는 구두는 없는 것 같다. 어쩌면 저마다 닳아가는 구두 굽처럼 우리네 일상이라는 것도 제각기 편향되어 다양하게 살아가고 있는 모른다. 사물에 대한 관조적 해석은 이처럼 정신의 풍요로움을 가져온다.

  관조적 시점의 해석적 진술로 이루어지는 시편들로 정현종의<섬>, 정희성의 <저문 강에 삽을 씻고>등이 있고, 설명시 형태의 시편으로는 김현승의 <눈물>, <견고한 고독>, 유치환의<깃발>, 이수익의 <안개꼭> 등이 있다.


   2) 풍자적 시점의 해석

  풍자적 시점의 해석적 진술은 하나의 시적 논평(論評)이라고 할 수 있다. 풍자적인 형태는 대상 자체에 대한 탐구보다 그것에 대한 '인간의 태도'에 보다 관심을 두고 해석적으로 접근한다. 풍자라는 속성이 그렇듯이 사회적이고, 윤리적인 비판, 비꼬기, 빈정대기 식의 해석이 가해진다.


한 줄의 詩는 커녕

단 한 권의 소설도 읽은 바 없이

그는 한평생을 행복하게 살며

많은 돈을 벌었고

높은 자리에 올라

이처럼 훌륭한 비석을 남겼다

그리고 어느 유명한 문인이

그를 기리는 묘비명을 여기에 썼다

비록 이 세상이 잿더미가 된다 해도

불의 뜨거움 굳굳이 견디며

이 묘비는 살아 남아

귀중한 史料가 될 것이니

역사는 도대체 무엇을 기록하며

詩人은 어디에 무덤을 남길 것이냐

김광규<墓碑銘> 전문


  위 시는 자본주의 시대의 물질적 가치가 정신적 가치를 지배하는 온당치 못한 현실을 풍자적으로 꼬집고 있다. 전반부에서는 평생 물질적 가치만을 추구해 온 '그'라를 속물적 인물의 삶과 죽음을 제시하고, 중반부에서는 이러한 속물적 인간을 미화하여 묘비명에 거짓된 기록을 남긴 "어느 유명한 문인"의 정직하지 못한 행동을 비판한다. 그리고 후반부에서는 거짓으로 기록된 사료가 진실로 통용될 현실을 개탄하며, 물질에 종속된 문학인의 자세에 반어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마지막 행의 "역사는 도대체 무엇을 기록하며 / 詩人은 어디에 무덤을 남길 거이냐"라는 극적 처리의 메시지는 강렬하다. 허위에 가린 '역사'의 진신성과 '문학인"의 역할에 대해 깊은 자성(自省)을 요구하는 시다.



한 選手의 두손을 묶어놓고 권투시합이 벌어졌다

묶인 한 選手가 손이 있는 選手의 불알을 더 힘껏 걷어찼다

페러리는 게임을 중단시키고 불알을 걷어찬 選手의 불알을 힘껏 걷어찼다.


- 이런 비겁한 자신, 게임의 기본적인 룰도 몰라?


3

한 選手의 두 손을 묶어놓고 두 選手가 더 올라오 두들겨대기 시작했다.

손이 묶인 選手가 도망다니자 페퍼리가 두 발마져 묶어버렸다


관중들은 더욱 열광했다


4

 두 발마져 묶인 選手도 잊는 이판사판이었다 : 죽을 힘을 다하여 온몸으로, 온몸으로.....


링 바닥을 굴러다녔다


아아, 우우리 대한 민국,


5


아아, 영원토록


6

사아랑 하아리라......


터지는 함성 : 관중들의 피범벅 : 터지는 함성 : 관중들의 피범벅 : 환호성


사아랑 하아리라......


9

게임이 끝나고 관중들은 돌아가고 : 관중들은 집에 가고 : 어어터진 選手는 병원에 가고


사아아라앙하아아라아라아아......


텅 빈 경기자 : 오로지 이긴 選手들만 남아있다 : 이긴 選手들만 남아있다 : 가슴엔 상처들을 안고 : 텅빈 경기장 : 레퍼리는 돈 헤러 가고,


                                                                      l위대한 자본주의l

박남철 <권투> 부분


  위 시는 권투시합 장면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공정하고 정상적인 경기가 아니다. 한 선수의 두 손을 묶어놓고 시합을 하거나, 레퍼리가 두 발마저 묶어버리고 경기를 진행시키는 등 실제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그러니까 여기에는 80년대 독재 군부의 정현실을 실랄하게 비판하는 깊은 우화가 담겨있는 것이다. 그리고 행산 사이에 정수라가 불렀던 "아아, 영원토록", "사아랑하아리라아..." 등이라는 < 아! 대한민국>의 놸가사를 집어넣어 극적인 풍자적 효과를 살려내고 있다. 이 가요는 그 시절 정권의 강요에 의해 디스크 앨범마다 삽입시켜 전 국민이 부르도록 한 바 있다. 이 시의 후반부는 경기가 끝난 장면인데, 부정한 방법으로 '오로지 이긴 選手들만 남아" 있고, "레퍼리는 돈 헤러 가고" 등 부당하고 암울한, 그리고 자본에 양심을 저버린 정치, 사회 현실을 풍자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리고 고딕체의 뒤집어놓은 활자나 "|위대한 자본주의"라는 앞뒤가 부호로 막힌 활자 배치도 풍자적 시점의 해석을 강화하는 장치라고 볼 수 있다.

  이밖에도 풍자적 시점의 해석적 진술의 시들 가운데는 김영승의 <권태>, 유하의 <武歷> 18에서 20년 사이-무림일기1>등을 들 수 있다.


  4. 시적 진술과 시적 묘사의 구성

 

  일반적으로 시 창작에서 시적 진술로만 이우어지지 않는다. 또한 시적 묘사로만 이루어지는 시도 드물다. 다시 말하면 시적 진술과 시적 묘사가 어우러져 형상화되는 것이 시의 일반적인 모습이다.

  시적 진술은 '말하기' 방식의 대상에 대한 '해석(解釋)', '해명(解明)'으로 어떤 판단이나 상황을 진술하기 때문에 과념적으로 드러난다. 따라서 여기에는 묘사를 적절히 끌어들어 사용한다. 이를테면 시적 진술을 이끌어가는 과정에서 서경적 요소나 시사적 요소가 필요할 대나 또는 대상을 구초ㅔㅗ하하여 들려주고 싶을 대믄 묘사가 필요하기 대문이다. 또한 반대로 묘사적 양식의 '보여주기'로서 서경이ㅏ 서사 등 감각적 이미지를 제시하는 경우, 이에 대해 시인의 해석이 필요할 대는 진술을 끌어들여 해석을 내려야 한다.


㉠ 저기, 바다는 묘지처럼 배를 부풀리고

    해변의 떼찔레꽃은 바닷새처럼 떨어진다.


㉡ 그대, 바다로 오라

    누구나 바다에 닿지는 못하지만

    옷 벗을 사람을 만나리라,

오규원 <바다에 닿지는 못하지만> 전문


  위 시에서 ㉠의 두 행은 완벽한 묘사로 이루어지고 있다. '바다는 묘지처럼 배를 부풀리고", "해변의 떼찔레곷은 바닷새처럼 떨어진다"에서 보듯 직유법을 써서 감각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하지만 ㉡에서는 청유형의 진술로 이루어진다. 결국 ㉠의 관찰을 바탕으로 한 묘사의 공간 속에서 ㉡의 진술을 끓어내어 한 편의 시로 형상화한다. 따라서 ㉠의 묘사와 ㉡의 진술이 어울려 시인의 정서를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짝짝인 신발 벗어 들고 산을 오르던 사내

내 마음아 너도 보았니 한 족 신발 벗어

하늘 높이 던지던 사내 내 마음아 너도 들었니

인플레가 민들레처럼 피던 시절

민들레 꽃씨처럼 가볍던 그의웃음소리

이성복 <내 마음아 아직도 너는 기억하니> 부분


  위 시도 시적 표사와 시적 진술을 매우 효과적으로 살려 쓰고 있다. 회고적 독백적 진술로 이루고 있는 부분은 앞의 5행, 그리고 6행과 7행에서는 각각 직유라는 베타포를 구사하여 묘사적으로 처리하고 있다. 어렸을 적 "개를 끌고 玉山"을 오를 대, 어디 개 한 마리뿐이었을까. 창공을 향해 피어 오르던 청춘의 꿈, 열망은 "인풀레가 민들레처럼 피던 시절"에도 그의 웃음 소리는 "민들레 꽃씨처럼" 가볍고 훨훨 날랐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