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장 시적 상상력의 원천] 4. 우주적 . 신화적 상상력

2018. 9. 10. 17:01☎시작법논리와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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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우주적.신화적 상상력

 

  우주적 상상력은 한 마디로 우주나 사물의 상호의존성, 순환성, 변화와 적응에 대한 이해, 자연친촤, 물아일체, 연속성, 희귀성, 동화, 합일, 감정이입 등의 시학으로 자연과의 조화와 균형을 유지하려는 생명의식에 기반을 둔다.

 

  우리의 신화는 예부터 성양신화와는 달리 '하늘=인간=동물'로 보았다. 그래서 단군신화를 비롯한 다양한 덱스트들이 우주적, 신화적 상상력을 보여준다. 하늘과 땅의 질서를 따라 신(神)도 짐승도, 자연ㄴ도 인간 사회 안으로 뛰어든 줄기찬 인간 긍정의 신화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주 속에 존재하는 사물들 간에는 높고 낮음, 성과 속, 차이와 분별이라는 경계가 없이 작품들 속에 반영되어 왔다.

  시인이 되기 위해서는 '우주적인 감각, , '우주적인 연민'을 먼저 키워야 한다. '우주적인 詩情'은 별것이 아니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자력적이든, 타력적이든 어떤 존재의 본질성에 대한 자기 나름의 발견과 놀람과 깨우침에서 참다운 시(글)는 이루어진다. 대로는 해 지는 쪽으로 가라. 나마저 없는 저쪽 산마루, 현실의 자신은 사라져도 시속의 자신은 저 광활한 우주 속에서 다시 태어날 것이다. 그럴 때, 오세영의 시구처ㅓㄻ <꽃은 별들을 우러르며 산다"는 성찰이 가능해 질 수 있다. 일상성에서 영원성, 하찮은 것에서 보석을 찾는 일이 가능해질 것이다.

 

  어렸을 때처럼

  토끼풀을 들여다 본다

  네잎 클로버를

  찾아 보려고

 

 

우주란 무엇인가

품을 들여다보는 일이여

열반이란 무엇인가

풀을 들여다 보는 일이여

구원이란 무엇인가

풀을 들여다보는 일이여

 

  풀을 들여다보는 일이여

  눈길 맑은 데 열리는 충일이여

 

정현종 <풍을 들여다 보는 일이여> 전문

 

  정현종 시인은 "우주란?", "열반이란?", "구원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시적 화두에서, 모두 "풀을 들여다보는 일이여"라고 답한다. 우주, 열반, 구원이 모두 그 작고 연약한 생명체인'풀'에 들어있다는 것이다. 문득 블레이크(W,Blake)가 "한 알의 모래 속에 세계를 보고, 한 송이 들꽃 속에서 천국을 본다" (<순수를 꿈꾸며>)고 하는 시구로, '우주적 法悅'의 세계를 보는 듯하다. 그의 시 "풀잎"을 소재로 한 시구에 "하늘이 안 무너지는 건 / 우리들 때문이요. 하고 풀잎들은 / 그 푸른 벗을 다해 / 흔들림을 다해 / 광채 나는 목소리를 뿜어 올린다"(시 <광채나는 목소리로 풀잎은>라는 시구에서도 이러한 우주적 상상력의 단초를 볼 수 있다.

  시인은 발은 비록 땅을 디디고 있을 지라도, 시선은 멀고 먼 밤하늘을 향해 있다. 인간의 뇌 크기는 축구공보다 작지만 상상의 힘으로 이 우주를 담을 수가 있는 것이다. 시가 몇 마디 언어를 조합한 것에 불과하지만, 조물주도 이런 우주적 상상력의 혀장을 보면 무릎을 치며 감탄할 것이다. 이렇게 우주적 연민 내지 우주적 상상력을 피할 수 없는 것은 내 몸이, 그리고 마른 풀잎 하나라도 그 몸이 우주의 것이기 때문이다.

 

풀잎과 마주 앉아

우주와 앉아

마음을 모은다

산이 춤추며 온다

바다가 말하러 온다

시간과 공간이 이 큰

천둥 번개가 모두 나의 집

나의 몸이다

풀잎과 앉아

벌 속에 나비로 날아

이 우주 이 무궁

삶은 신비다

세상 전체가 향기다

이성성<풀잎과 마주 앉아> 부분

 

  이성선의 시에서도 "풀잎"속에 온 우주가 들어있음을 알고 마주 앉아 대화를 한다. 이 풀잎이 주는 상상력은 그야말로 무진무궁하다. "산이 춤추며"오고, "바다가 말하러 온다"는 것이다. 그래서 풀잎은"세상 전체의 향기"가 된다. 이러한 확산적 상상력은 만유가 하나라는 서정시의 일체감, 원융화봉의 우주적 상상력에서 오는 것이다. 마치 한 송이 꽃 속에서 천국을 보는 것과 같은 이치, 자아가 우주가 합일되어 조화로운 원융을 이루는 시적 상상력이다.

  제임스 러블록(James Lovelock)의 '가이아(Gaia)'이론이다. 그에 의하면 "가이아"는 물리적 화학적 환경을 스스로 저절함으로써 지구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능력이 있는 자기 조정적 실체로서의 생물권이다. 따라서 가이아를 형성하는 각 생명체들은 우리 몸의 세포와 마찬가지로 상호 관련 내지 상호의존적일 수밖에 없다.

 

 

강물을 보세요 우리들의 피를

바람을 보세요 우리의 숨결을

흙을 보세요 우리들의 살을.

구름을 보세요 우리의 철학을

나무를 보세요 우리들의 시를

새들을 보세요 우리들의 꿈을.

 

아, 곤충들을 보세요 우리의 외로움을

지평선을 보세요 우리의 그리움을

 

꽃들의 三昧를 우리의 기쁨을.

 

어디로 가시나요 누구의 몸 속으로

가슴도 두근두근 누구의 숨 속으로

 

열리네 저 길, 저 길의 무한 -

 

나무는 구름을 낳고 구름은

강물을 낳고 강물은 새들을 낳고

새들은 바람을 낳고 바람은

나무를 낳고……

 

열리네 서늘하고 푸른 그 길

취하네 어지럽네 그 길의 휘몰이

그 숨길 그 물길 한 줄기 혈관……

 

그 길 크나큰 거미줄

거기 열매 열은 한 방울 이슬 -

(眞空이 妙有로 가네)

 

태양을 삼킨 이슬 萬有의

바람이 굴려 만든 이슬 만유의

번개를 구워먹은 이슬 만유의

한 방울로 모인 만유의 즙 -

천둥과 잠을 자 천둥을 밴

이슬, 해왕성 명왕성의 거울

이슬, 벌레들의 내장을 지나 새들의

목소리에 굴러 마침내

풀잎에 맺힌 이슬……

전현종 <이슬> 전문

 

  시의 중반부로 "나무"< "구름", "강물", "새"드의 시어가 연상의 이미지로 나열되면서, 이들의 사물들은 모두 새로운 대상을 잉태하는 우주의 우기체적 사물로 등장하고 있다. '色'은 '空'을 낳고 '空'은 '色'을 낳는다는 설법과 다르지 않다. 곧 우주의 존재하는 사물들의 유기체적 연관성, 상호의존성, 순환성이 드라나는 생명주의적, 생태학적 상상력의 전범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만물조응, 만물교융의 세계에서 존재 사이에는 변별과 차별이 있을 수 없다. 또한 그 사이에 틈이 있는 것도 아니다. 가령 사물 A와 사물 B는 홀로 차이성의 경계를 가질 수 없고, 오히려 사이(W)에 의해 틈, 구멍은 더욱 생기(生氣)로 충만해지는 것이다.

 

내가 점점 커지더니

하늘이 되더라

내가 점점 작아지더니

물이 되더라

내가 내 몸에 물을 끼얹더니

선녀가 되더라

내가 옷을 벗더니

넓어지더라

이생진 <바다에서> 전문

 

  이생진의 시에서는 바다와 섬이 빈번하게 나타난다. 그의 시는 늘 우주와 내통하는 상상력의 공간을 이룬다. 바다 앞에 서면 누구든지 변신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마치 한 알의 모래알이 나와 같은 것이고, 저 멀리 떠 있는 섬도 또 나와 무관치 않다는 관계맺음의 우주적 상상력이 발동한다. 또한 내가 갑자기 왜소한 존재로 변하거나 파도의 포말처럼 변신하거나 우주, 자연에 피투된 존재로서 무한한 존재 의미의 화두에 봉착하게 된다.

 

한 여자가 돌 속에 묻혀 있었네

그 여자 사랑에 나도 돌 속에 들어갔네

어느 여름 비 많이 오고

그 여자 울면서 돌 속에서 떠나갔네

떠나가는 그 여자 해와 달이 끌어 주었네

남해금산 푸른 바닷물 속에 나 혼자 잠기네

이성복 <남해금산> 전문

 

  시 <남해금산>은 현실의 모습을 재현한 것이 아니고, 돌과 여자와의 결합, 해와 달, 바다의 이미지가 서로 원융화통을 하는, 원형적이고 신화적인 발상의 이야기로 되어 있다. 이 시는 내용상 "사랑이 시작)1_2행)", '이별 (3-5행', '사랑의 조알 (6-7행'이라는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곧 한 여자가 있었는데,ㅡ 그 여자를 따라 함께한 내가 있다. 그런데 잘 지내는가 싶더니 여자가 떠나갔ㄲ다. 떠나간 여자를 '해와 달"이 이끌어주었고 남겨진 나는 '하늘가'에 혼자 있다. 아니 '바닷물 속"에 잠겨보린다. 사실 "금산'의 정상 보리암에는 돌이 많고 또 '상사암(相思巖)'이란 바위도 있다. 1행의 '돌'은 현실적 삶 자체의 고난을 의미하는 여성의 보편적 상황을 암시하고, 3행 5행의 '비와 해, 달'은 삶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뜻하며 이별의 운명적 속성을 부가시킨다. 그리고 6행, 7행의 푸른 하늘과 바닷물은 '남해금산' 주변 환경으로 이별 후의 주제가 소멸되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인 사랑이 완성되는 공간이기도 하다. 곧 마지막 행의 "남해금상 푸른 바닷물 속에서 나혼 잠기네"라는 이미지는 사랑의 종말보다는 내면적 사랑의 영원한 아름다운 완성을 말하는 것으로 이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