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9. 10. 17:22ㆍ☎시작법논리와전략☎
5. 생명주의적 상상력
자연 친화적 인간상 혹의 자연 재해에 대하여 응전력을 보이는 인간강, 생명주의적 창조적 인간상은 우리 문학이 지향할 과제이기도 하다. 그래서 최근 기술 권력의 맹위에 가위눌렷던 우리들 본연의 생명적 상상력이 문학적 감수성에 실려 이제 회생의 조짐을 보니는 것은 다핼스러운 일이다.
생명주의적 상상력은 동양인의 생명원리인 범신론, 에니미즘, 노장사상, 불교, 흰두고, 사사상과 점목되어 있다. 가령 푸나무가 신이 되고, 새가 사람이 되며, 사람이 개도 되는 '일체무차별상(一切無差別相)'이나 윤회전생(輪回轉生)의 존재과', 노자의 '무위자연(無爲自然)', '장자의 '물아일체(物我一體)'등의 사상은 자연과 인간을 하나로 보는 생명적 상상력의 전범인 셈이다.
원래 동아시아 문학의 전통은 자연친화, 생명주의적인 것이었다. 이완수의 <고향의 봄>, 도연명의 (挑花源記), 정극인의 (賞春曲), 박목월의 (山挑花) 등의 시가(詩歌)가 그렇고, 산수화, 서화, 시조 등에서도 그런 생명적, 자연친화적 요소가 주조를 이루어 왔다. 나아가 중구의 한시(漢詩)나 일본의 하이쿠(徘句)시 에서도 모두 자연친화적, 생명적 소재를 다루고 있다.
뒷산에 올라가 삭정이로 흙을 파헤치고 거기 코를 박는다. 아아 이 흙냄새!
이 깊은 향기는 어디가서 닿는가, 머나멀다. 생명이다. 그 원천, 크나큰
품 깊은 숨
생명이 여기 다 모인다. 이 향기 속에 붐빈다. 감자처럼 주렁주렁
달려 올라온다.
흙냄새여
생명의 한통속이여
정현종 <흙냄새>부분
정현종 시인이 '흙'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나아가 얼마나 흙을 고귀하게 생명적 대상으로 여기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그에게 있어 흙, 혹은 흙냄새란 "크나큰 품'이며, "깊은 숨"이자, "생명이다. 모이는' 우주의 근원으로서 생명적 핵이다. 이는 남다른 자연친화적인 시관에서 오는 것이다. 그의 시 <섬>에서도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 그 섬에 가고 싶다"고 했는데, 그 '섬'은 바로 우주적 생명을 지칭하는 상징물로, 인간의 꿈이며, 생명체들의 그리움이며, 생명체의 욕맏르로 인식된다.
흙고 가려울 대가 있다
씨앗이 썩어 싹이 되어 솟고
여린 뿌리 칭얼대며 품속 파고들 때
흙은 못 견디게 가려워 실실 웃으며
떡고물 같은 먼지 피워올리는 것이다
눈밝은 농부라면 그걸 금세 알아차리고
헛청에서 낮잠이나 퍼질러 자는 갈퀴 깨워
흙의 등이고 겨드랑이고 아랫도리고 장딴지고
슬슬 제 살처럼 긁어주고 있을 것이다
또 그걸 알고 으쓱으쓱 우쭐우쭐 맨머리 새싹은
갓 입학한 어린애들처럼 재잘대며 자랄 것이다.
가려울 때를 알아 긁어주는 마음처럼
애틋한 사랑 어디 있을까
갈퀴를 만나 진저리치는 저 살들의 환희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은
사는 동안 가려워 갈퀴를 부른다.
이재무 <갈퀴> 전문
이재무의 시 <갈퀴>에서도 의인화된 흙을 통하여 자연의 생명력을 노래한다. 흙과의 내적 교감- 내마음 속에 흙이 있고, 풀과 나무가 자라는 경이감의 의식지향을 통하여 충만한 공존의 세계를 지향한다. 이는 우주적 친화력을 바탕으로 자연의 경외감, 섭리, 신비에 대한 소중한 통찰 의식에서 비롯되는 상상력이 없으면 불간능하다.
생명주의적 상상력은 작금의 문명시대의 시단에 생기를 불어넣어줄 수 있는 매우 의미심장한 상상력이다. 그러면 생명주의적 상상력의 핵심적 개념을 대략 몇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고자 한다.
① 상호의존성의 생명적 상상력
느티나무 둥치에 매미 허물이 붙어있다
바람이 불어도 꼼짝도 하지 않고 착 달라붙어 있다
나는 허물을 떼려고 손에 힘을 주었다
순간
죽어 있는 줄 알았던 허물이 갑자기 몸에 힘을 주었다
내가 힘을 주면 줄수록 허물의 발이 느티나무에 더 착 달라붙었다
허물은 허물을 벗고 날아간 어린 매미을 생각했던 게 분명하다
나는 떨어지지 않으려고 안간 힘을 쓰는 허물의 힘에 놀라
슬며시 손을 떼고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를 보았다
팔순의 어머니가 무릎을 고추세우고 걸레가 되어 마루를 닦는다
어머니는 나의 허물이다
어머니가 안간 힘을 쓰며 아직 느티나무 둥치에 붙어있는 까닭은
아들이라는 매미 때문이다
덩호승 <허물> 전문
② 순환성의 생명적 상상력
처마 끝에 매달린 마른 옥수수
봄볕에 슬몃슬몃 눈을 뜬다
질끈 머리를 틀어 올리고
알몸으로 겨울을 버틴 씨옥수수
따순 바람에 발이 가렵다
쟁여둔 욕망들
웃자란 몸 속의 뿌리들
봄을 향해 발을 뻗는다
알리는 신호를 기다린다
딱딱한 알갱이속,
저푸른 불씨들
들판에 확, 불입 붙겠다
마경덕 <씨옥수수> 전문
③ 변화와 적응에 대한 생명적 상상력
벌겋게 녹슬어 있는 철문을 보며
나는 안심한다
녹슬 수 있음에 대하여
냄비 속에서 금세 곰팡이가 피어오르는 음식에
나는 안심한다
썩을 수 있음에 대하여
썩을 수 있다는 것은
아직 덜 썩었다는 예기도 된다
일종의 무릎 꿇음이다
나희덕 <부패의 힘> 부분
④ 상호친화적 삶의 생명적 상상력
풀이 벌레에게
- 내가 널 굶기는 일을 없을 거야
벌레가 풀에게
- 죽을 때까지 네 곁에 있어줄게
유강희 <만일 풀과 벌레가 프러포즈를 한다면> 전문
⑤ 물아일체, 교감의 생명적 상상력
보글보글 냄비 속
바지락 조개,
'말 시키지 마세요.
불이 터질것 같아요'
옹알옹알 몸으로 말하는
아기 바지락.
'소풍인 줄 알고
진흙 도시락.
싸 왔단 말이에요'
이정록 <입 다물고 말하기>전문
⑥ 동심, 동화적인 생명적 상상력
거창 학동 마을에는
바보 만득이가 사는데요.
글세 그 동네 시내나 웅덩이에 사는
물고기들은 그 바보한테는
꼼짝도 못해서
그 사람이 물가에 가면 모두
그 앞으로 모여든대요
모여들어서
잡아도 가만 있고
또 잡아도 가만 있고
만복이 하는 대로 그냥
가만 있다지 뭡니까
올 가을에는 거기 가서 만복이하고
놀다가 나는 그냥 물고기가 되구요!
정현종 <바보 만복이> 전문
우주적 상상력은 동화적 상상력까지 지배한다. 만복이는 어느 마을에나 한 사람쯤 있는 명물 반푼이다. 그런데 이 반푼이도 고기잡는 데는 이골이 나 있다. 사람이 석탄이 되고 물고기가 되는 동화적 상상력을 우리는 또 동심이라 부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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