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8. 9. 14:43ㆍ☎시작법논리와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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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중심이미지(preciding)의 상상적 증식
시적 대상을 통해 떠오르는 시상은 매우 단순하다. 즉 시인이 장미꽃을 보고 "장미꽃은 타오르는 한 접시 타는 등불"이라고 노래하거나 혹은 "사랑은 스스로 자신을 불살라 어둠을 밝히는 촛불"이라고 하는 식이다. 우리는 이와 같은 단순한 시적 문장 진술을 '시적 진술' 혹은 '중심이미지(preciding image)'라고 말한다. 한 편의 시는 이것으로 부터 전개, 발전한다. 그리하여 다른 이미지들을 창조해 내고 보다 풍부하고 다양한 구조체를 형성해 나간다. 물론 시에서 완성도는 시적 운행에서 결구 부분의 '견경화(前景化, foregrouding)'의 처리 등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게 마련이다.
그런데 여기 중심이미지에서 다음 단계로의 1연, 2연으로의 전개, 발전등 시적 운행에서 주동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상상력이다. 그러니까 대상에서 촉발된 착상, 중심이미지를 토대로 해서 시의 전체내용을 만들어 가는 것이 바로 상상력에 있다는 것이다.
다음의 임영조 시 (물)은 물의 속성인 "무조건 섞이고 싶다"라는 중심이미지가 어떻게 시적 상상력에 의해 전개되는 잘 보여준다.
무조건 섞이고 싶다
섞여서 흘러가고 싶다
가다가 거대한 산이라도 만나면 (무언가 섞이고 싶은 소망)
감쪽같이 통정하듯 스미고 싶다
더 깊게
더 낮게 흐르고 흘러
그대 잠든 마을을 지나 간혹
맹물 같은 여자라도 만나면
아무런 부담 없이 맨살로 섞여 (순수한 존재와 섞여 바다에 닿고 싶은 소망)
짜디짠 바다에 닿고 싶다
온갖 잡념을 풀고
맛도 색깔도 냄새도 풀고
참 밍밍하게 살아온 生을 지우고
찝질한 양수 속에 씨를 키우듯 (생명의 탄생을 키우고 싶은 행위)
외로운 섬 하나 키우고 싶다
그 후 햇빛 좋은 어느날
아무도 모르게 중발했다가
문득 그대 잠 깬 마을에
비가 되어 만날까 (참회적 정신의 생명적 순환)
돌아온 탕자의 뒤늦은 속죄
그 쓰라린 참회의 눈물이 될까.
임영조 <물> 전문
위 시에서 화자는 의인화된 물이다. 물은 아무것도 섞여 있지 않은 투명하고 순수한 존재다. 시 <물>의 중심이미지는 시의 1연 첫 행 "무조건 섞이고 싶다"이다. 물으 속성으로서 중심이미지는 2연, 3연, 4연을 거쳐 시인의 상상상력에 의해 발전, 전개된다. 2행의 '섞여서 흘러가", "거대한 山이라도 만나면 / 감쪽같이 통정하듯 스미고 싶다"라는 기원적 시점을 드러낸다. 여기서 섞이는 행위는 물이 지니는 희생적 정화 운동의 소망을 의미한다. "거대한 산"은 일종의 장애물이다. 그런 장애물을 만났을 때는 정을 통하듯 산에 스며든다. 이러한 상상력의 전개는 2연에서 "더 깊게 / 더 낮게 흐르고 흘러", "맹물 같은 여자라도 만나", "맨살로 섞여 / 짜디짠 바다에 닿고 싶다"고 한다. 곧 맹물 같은 순수한 존재와 섞여 바다에 닿고 싶은 소망이다. 나아가 그 소망, 상상력의 운행은 발전한다. 3연에서 "잡념"과 "맛도 색깔도 냄새도" 풀어내고, "밍밍하게 살아온 生을 지우고", "외로운 섬 하나 키우고 싶다"고 말한다. 바다에서 외로운 섬 하나 키우는 행위는 물이 마지막으로 생명을 탄색시키는 행위이다. 이러한 상상력의 발전은 결구의 4연엣거 '비와 눈'으로 변신 "돌아온 탕자의 뒤늦은", "참회의 눈물'이 되어 다시 내리는 물로서 생명적 순환의 모습을 보여준다.
문광영 지음 <시 작법의 논리와 전략>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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