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장 시적 착상의 증식화 전략] 3. 중심이미지 전개를 위한 전략

2018. 8. 9. 14:50☎시작법논리와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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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중심이미지 전개를 위한 전략


   1) 착상의 중심이미지에 낯설게 몰입하기

   관조, 명상이라는 말이 있다. 이를위해서는 사고의 자유로움, 몽상이 필요한다. 곧 어떠한 대상이든지 반응한 느낌과 사고를 자신의 내면세계로 집중시키는 정신활동이 필요하다. 중죽의 고승 임제(林悌)의 화두에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祖師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고, ...부모를 만나면 부모를 죽여라, 그리하면 비로서 해탈을 얻을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해탈(解脫), 일체의 얽매임으로부터 벗어나야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바로 시로 접어드는 길도 또한 이와 같다. 곧 시는 절대자의 부모,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마음을 바치는 양식이 절대 아니다. 시의 초보자일수록 무엇을 위해서, 누구를 위해서 쓰려가 한다. 이때 시는 천박해진다. 쓰고 싶으념 부처의 말씀을 관념의 테두리 안에 가둬버리고 실천할 줄 모르는 자에 대해 써라.


   이성복은 아버지라는 우상을 무너뜨림으로써 세계를 지배하는 폭력적 질서를 전복코다 했다. "아버지, 아버지‥‥씹새끼, 너는 입이 열이라도 말 못해" (<그래가을>)라면서 권위와 상징이 횡행하는 아버지의 세계를 비꼬고 풍자하고 있는데 관습적인 관계 설정을 의도적으로 파괴함으로써 시적 정장성을 확보하고 있다.


온몸이 입이다


 한 잎에 우겨넣은 붉은 모 한 다발, 부르르 꽃잎이 떨리낟. 잘린 발목에서 쏟아지는 비린 수액, 입안 그득 핏물이 고인다. 소링 없이 생피를 들이키는 저 집요함, 허기진 구멍으로 한 아름 허무를 받아 먹는.


 식욕과 배설뿐인 캄캄한 구멍은 입이고 항문이다.


  시한부 목숨들, 나, 나 얼마나 살 수 있지? 물컹물컹 썩어 가는 발목을 담그고 일제히 폭소를 터트린다.

아름답다 저 구멍


   위 마경덕의 시는 '꽃병은 온몸이 입이다"라는 중심이지에서 출발한다. "꽃병"을 "입"으로 보는 임의적 시안 자체가 매우 낯설지만 남다른 정감이 간다. 평소 우리는 꽃병에 꽃대들을 잘라 집어놓고 무심코 지나친다. 하지만 시인의 눈은 그런 사물 속에서 생명적 존재의 미학을 발견해 낸다. "잘린 발목에서 쏟아지는 비린 수액"의 모습이며, "입안 그득 핏물이", "소리 없이 생피를 들이키는 저 집요함"의 속성을, 그러나 그것은 "허무를 받아먹는 "것에 불과하고, 다만 "식욕과 배설뿐인 캄캄한 구멍은 입이고 항문"이라는  꽃병이 지닌 생리, 사물 존재의 의미를 확장해 간다. 이렇게 낯설게 보는 데서 상상력은 발동되는 것이고, 사물 존재의 모습은 더욱 신비롭게 다가 온다.

   시를 빚을 때 그립다고 그리움이란 말을 쓴다든가, 슬프다고 슬픔이라는 시어를 글에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말라. 사라에 대해 쓰려면 '사랑'이라는 마을 아예 잊어버리는 것이 좋다. 가령 그리움에 대해 쓰려면 이런 관념을 대요할 '섬'을 빌려다 쓰는 것이 환기력도 높아지고 상상의 힘도 생긴다.


   2) 일상사에 대한 남다른 해석으로 다가가기

  작가로 산다는 것은 세상에 대한 깊은 관심과 애정을 갖는다는 일이다. 곧 의미 있는 시 쓰기는 의미 있는 소재 찾기에서 온다. 소재가 보이지 않는다고 좌절할 필요는 없다. 평소 주위에 있는 대상에 대해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관찰하고, 의미를 부여하고, 눈여겨 보면 시적 소재를 얻게 된다. 하찮은 주변의 일상사도 애저의 눈으로 깊이 사유하고 교감하면 새롭게 해석되고, 남다른 세계가 드러난다. 그러한 작가의 태도가 소재를 증식시키고, 여기에 정신의 옷을 입히려고 노력할 때 시적 착상은 이루어진다.

   문학적 소재는 어차피 해석의 대상이다. 해석의 안목과 사유의 심도에 따라 소재는 성장한다. 또한 너무 큰 것을 잡지 마라. 사소한 것. 보잘 것 없는 것을 소재로 삼아라. 일상사에서 사소한 것이지만 의미 있게 남다른 시안으로 다가서는 남다른 시안으로 해성을 내리면, 그 어떤 것보다도 의미 있는 글이 되낟. 그래서 글쓰기는 의미 있는 소재 찾기에서 온다. 인생사른 것이 살아가면서 깨닫고, 까댈으면서 인생의 묘리를 알아가는 것처럼 소재를 찾아가는 마음의 눈, 또한 작가의 프로의식이며, 이 안목도 성장해 가기 마련이다.


어느 해 나는 아름다운 책 한 권을 읽었다

도서관이 아니라 거리에서

책상이 아니라 식당에서 등산로에서 노래방에서 찻집에서

잡지 같은 사람을

시집 같은 사람을

한 장 한 장 맛있게 넘겼다

아름다운 표지와 내용을 가진 책이엇다

눈으로 읽고

혀로 넘기고

두 발로 밑줄을 그었다


책은 서점이나 도서관에만 있는 아닐 것이다

최고의 독서는 경전이나 명작이 아닐 것이다


사람, 참 아름다운 책 한 권

공광규<아름다운 책> 전문


  위의 시에서는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아름다운 책 한 권"으로 의미화하고 있다. 그렇다. "책은 서점이나 도서관에만 있는 게 아닐거"이고, 또 "최고의 독서는 경전이나 명작"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을 "한 장 한 장 맛있게 넘"겨 읽음으로써 "참 아름다운 책 한 권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살마을 책으로 읽는다는 사람을 포함한 모든 존재에 대한 관심과 경애심, 사랑의 발로이다. 그래서 <논어>에서도 "세 사람이 가면 반드시 거기에 나의 스승이 있다"고 하지 않았는가. 또 고영민의 <독서>라는 시에서는 하늘에서, 나무에서, 귀뚜라미에서서, 그리고 둥근 애기무덤에게서, 찬비를 머금은 이른 저녁에게서 책을 빌릴 수 있다'고 햇다. 그래서 이런 것들을 바당 적어 시를 쓴다는 시인들도 많다. 문제는 시인의 감석적이고 사유적인 눈에 달려 있다는 점이다. 시인이 일상사를 어떻게 해석하며 살가는가. 그 시인의 안목고 심도에 따라 소재는 성장한다고 볼 수 있다.


 백운산에서 만난 고목 한 그루. 밑둥에 큼직한 물통 하나 차고 있었다. 물통을 반쯤 채우다 말고 물관 깊숙이 박힌 플라스틱 호스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누군가 둥치에 구멍을 뜷고 수액을 받던 자리 . 시림시름 잎이 지고, 발치의 어린 순들, 마른 잎을 끌어다 푸른 발등을 덮고 있었다.


  주렁주렁 링거를 달고 변기에 앉은 어머니, 기저귀를 갈아주는 자식놈에게 부끄러워 얼름 무릎을 붙이는, 옆구리에 두개의 플라스틱 주머니와 큼직한 비닐 오줌보를 매단 어머니, 호스를 통해 세 개의 주머니에 채워지는 어머니의 붉은 육즙(肉汁). 오신 년 간 수액을 건네준 저 고로쇠나무.

마경덕 <고로쇠나무> 전문


  위 시는 시제이기도 한 "고로쇠나무"에 대한 화자 나름의 독특한 시선이다. 전반부 연에서는 고로쇠나무에 대한 묘사요. 후반부 연은 그 소재아 관련한 화자 내면의 회석, 곧 비유에 의한 의미부여의 상상력으로 처리되고 있다. 고로쇠나무에서 수액을 받고 있는 모습이
큼직한 비닐 오줌보를 매단 어머니"와 일체시킴으로써 깨달음 내지 인간 행위에 대해 고발하고 있다. 단풍마무과의 고로쇠나무는 원래 물이 많아 이른 봄이면 따에서 빨아올리는 수액이 줄기 껍지르이 틈으로 흘러넘친다. 하지만 그 물은 고로쇠나무의 유일한 식량으로, 탈진을 모면하기 위해 한시가 급하기에 나무는 물을 빨아 올리는 것이다. 꼭 자신에게 필요한 물이다. 그걸 사람들이 빨아내는 것이다. 시의 착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대상의 가치화, 곧 한 개인이  겪는 정서체험의 내면적 가치화의 여부에 달려 있다.  


  4) 순간 체험 깊은 인상 살려내기(NO:3이어야함)

  시는 발명하는 게 아니다. 자신의 실제 체험에서 그 무엇을 발견하는 지혜가 있다면 어디서라도 시의 꽃을 피워내기 마련이다. 시는 순간의 예술이다. 시의 글감은 일상의 소소한 체험속의 순간에서 싹이 튼다. 일단 체험을 살려라. 특히 강한 인상, 첫인상을 깊게 각인시켜라. 밝은 시안(詩眼)만 있다면 좋은 시는 어디에서도 탄생한다.


농협에 돈 찾으러 갔다 온 아내

불현듯 자전거를 끌고 다시 나선다

인출기 안에 돈은 그냥 두고

통장만 들고 나왔단다

혹시나, 혹시나, 부르르 다녀와서는

나도 이젠 늙었나봐, 다 됐나봐,

가슴 퍽퍽 쳐댄다

그 한숨 너무도 깊어

술이나 한잔 사주마고 나갔다

맥주 두 병에

소주까지 한 병 잘 섞어 마시고 돌아와

그 돈,

없는 사람한테나 갔으면 좋겠단다

이게 웬 돈이야! 동그래진 눈으로

쌀 사서 한 상 잘 먹었으면 좋겠단다

하느님 있어

기부 한 번이라도 쳐줬으면 좋겠단다

고증신 <어떤 기분> 전문


  우연히 당한 일, 처음 가본 곳의 강한 인상, 처음 먹어본 음식의 맛, 처음 난난 사물, 자연, 사람의 인상, 처음 잡아 본 이성의 손, 처음 맞대본 입술, 결혼 첫날밤의 기억은 오래 남을 것이다. 소재가 보이지 않는다고 좌절하지 말라. 하나하나 관심을 가지고 관찰하고 눈여겨보면 조재를 얻게 된다.


  5) 소소한 일상의 에피소드, 재미있게 쓰기

  시의 소재는 주방의 ㅅ긱탁에 오른 한 마리의 생선부터 어느 혁명가의 파란만장한 삶에 이르기까지 소재의 범위는 다양하고 폭이 넓다. 이러한 모든 시 소재의 원천은 작가의 개인적 체험의 결과이다. 특히 현대시는 거시적인 관점보다는 미시적인 개인적 삶의 편린을 소재로 끓어오는 경향을 보인다. 가령 윤동주나 김소월, 그리고 청록파의 박두진, 박목울 등 옛날의 시인들은 자연적인 소재를 많이 다루었다. 그러나 요즈음 시인들은 자연 경도에서 벗어나 일상의 잡다한 소재를 채택하여 노래하는 일이 많다. 가령 80년대부터 일기 시작한 일상시, 도시시의 경우가 그러하고, 소소하고 하찮은 사물과 생활 주변의 사소한 것을 잡아 노래하는 경향을 보인다.

  다음의 시는 동창 모임이라는 사소한 일상사의 순간을 잡아 쓴 글이다.


내 친구들은 가난한 예술가 늙은 거미들

정모 날이면 피맛골로 모여든다


소주를 빨대로 빨아먹는 빨대가 먼저 와 있다

동그란 탁자에 눌어붙은 낙지발,

벽 쪽 노백은 비스듬하다

삼천 원 커피 값 이십 년째 수표를 내미는 만년수표 교수는 매번 늦는다

호시탐탐 내 주머니를 노리는 그들은 나를 봉새라 부른다


오늘도 늙은 거미에게는 아침이슬이 그만이다

꼬깃한 비상금은 회비로 가고

흐름 밖에서 서성일 때면 들었던 뻔한 레퍼토리

이번엔 LA에서 온 가물치가 육연발총을 들었다

여자 몇을 죽였고 아직 총 맞을 여자들이 즐비하단다

죽은 여자는 울지 않는데 이야기 속 여자들은 매번 울었다

낙지발이 회오리친 소주를 시계방향으로 돌리면

벙속 바람이 잠잠해지고 술의 종족은 주류와 비주류로 갈라진다

간암 수술한 벽치기는

곰쓸개를 한 입 넣고 칠 년째 술을 즐기고 있다

오늘은 뻘덕게가 산다고 게거품을 내더니 삼십육계를 했다


땅거미가 진 지 오래 새벽이 걸어오면

꿈도 지워진다는데 그들은 그늘이 없다

총알은 헛방르 날리고 여자에서 정치로 바뀔 때쯤이면

패팽한 풍선에서 바람 빠지듯 모두 가버리고

두 달 전 상처한 지점장만 혼자 앉아 있다

집까지는 꽤 먼 길이 남았다

최태랑 <오늘은 정모 날> 전문


  시인이 직접 체험한 학교 동창 모임을 잡아 쓴 시인데, 퍽 재미가 있고 정감이 넘친다. 아마도 70년대 초반이 된 예술고등학교 동창생들인 것 같다. 화자는 동창들마다 묘하게 붙여진 별명 하나씩을 열거하면서 끈끈한 우정을 과시한다. 별명하면 누구든지 학창 시절이 생각날 것이다. "빨대", "낙지발", "만년수표", "봉새", "가물치", "뻘덕게" 등 별명만 들어도 친근감이 들고, 아득한 학창시절의 과거로 시간 여행을 하게 한다. 그래서 지난 일들은 소중하고 아름답다.


  6) 천상과 지옥을 넘나들여 상상하기

  인간은 무의적으로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충동(id) 의 세계와 이상적인 초자아(super ego), 나아가 이 둘을 통어하여 조정할 수 있는 자아(ego)로 서 살아간다. 그래서 자아로서의 실존은 양 극단에 욕망으로 가득한 짐승의 속성과 이를 뛰어넘는 천사 기질의 속성을 지닌 양면적인 인간성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혹자는 도플갱어(doppelgahger)로서의 인간, 잔인성과 연민을 지닌 양면적인 존재, 수성(獸性)과 신성(神性), 곧 천사와 악마가 동시에 존재하는 이중적 인간으로 규정한다.

  그래서 시인(작가)은 일상적으로 세 가지의 삶을 상정할 수 잇다. 첫째는 '일상생활ㄹ과 밀착하면서 평범하게 살아가는 나"(일상적 자아 혹은 현실적 자아), 둘째는 '시를 쓰는 사람으로서 예술적인 나'(서술적 자아 혹은 시 쓰기의 나), 셋째로는 '시를 쓰는 내 자신을 통재하는 나'(메타적 자아 혹은 초월적 자아, 비평적 자아)를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다.

  한 예로 김영승 시인은 시 창작의 순간에서 의식적으로는 본능(id)의 세계에서 초자아(suoer ego)에 이르기까지 광활한 길항의 셰와 장자의 <逍遙遊>에서처럼 곤(崑)이 대붕(大鵬)이 되는 무한한 자유의 상상력을 발휘한다.


  저의 시는 본능(id)이며 초자아(suoer ego)입니다 공자는 "군자는 위로 뻗치지만, 소인을 아래로 뻗친다(君子上達小人下達)고 했지만, 아래가 없는 위가 없는 것이기에 저의 시는 늘 하의상달(下意上達)이며 상명하복(上命下服)입니다. 물론 그 역(逆)도 성립하는 수직의 랑반데룽(Ringwanderung)이며 그 본능과 초자아의 양 극단 사이의 화엄삼매(華嚴三昧)로서의 수평의 소요유(逍遙遊)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중략> 믿거나 말거나, 저는 분명 제 인생의 어느 한 기간 동안은 해탈과 그 해탈의 법열을 경험한 명실상부한 자유인이었으니까요.


  그가 말하는 시 창작의 순간에 예술적 자아는 '본능이며, 초자아', '양극단의 소요유', '해탈의 자유인' 등이 공존하는 세계를 보여준다. 우리라고 하는 것도 기실 "복수화 된<나> "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암울한 현실에 탈렌트처럼, 성자의 역할로 살아야 하는 실존의 처지, 가식과 허위의 세상이 역겹다는 부적응아의 삶을 토로한다. 그러기에 극단의 서정으로 자신의 시가 "악마적인好色漢과 聖子의 기질이 저의 의식과 무의식이 교직하는 일상에 장 원융" 되어 있다는 것이다.


  나는 이미

  도립倒立 금동미륵반가사유상이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발길로 툭툭 치면

옆으로도 그러고

있다

 

아직

추워서 그런

것이다


죽을 때까지

사랑하겠다 기다리겠다 공부하겠다

하지말고

그것도 좋지만

죽을 때가지는 일단 죽어야야 하는 것이다


그 밖에 생각은 다

雜念인데

생각은

잘 때나 하는 것

무슨 심사숙고며

天思 만려인가

생각은 잘때나

죽을 때

잠깐 하면 된다


금동미륵반가사유상이나


다들 뭔가를

窮理하는 거겠지

가슴이 아프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다


死刑 직전도

그런 표정과 자세며

性敎中에도 그렇다

김영승 <죽을 때까지> 전문


  그의 시에서 죽음(靜)은 곧 삶(動)이고, 성속(聖俗)은 같은 것이다. 시 <죽을 때까지>는 바로 일상의 서정적 충동을 불교적 사유로 전환시키는 즉, 생활의 일상성을 선적, 불교적 초월성으로 비약시킨 작품이다. 그리고 시 <죽은 너에게>에서 "죽은 사람을 먹고 산다 맛있다"라는 표현에 주목한다. 죽음을 통한 생명의 인식, 곧 실존의 조건으로서 역동적 길항작용은 작품도처에서 드러나는데, 실존적 세계에 대한 하나의 속탈의식이라고 보고 싶다. 그래서 그의 시마다 불교적 사유나 선적 비약의 언어는 대개가 유희적 사상으로 전개되는데, 이러한 현상은 작품 곳곳에서 드러난다.


  7) 보이지 않는 숨은 비의(秘意) 드러내기

  보이되 보이지 않는 것을 써라. 보이는 것을 그대로 쓴다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따라서 보다 미학적으로 형상화하기 위해서는 다소의 고민이 필요하다. 사실대로 진술하는 묘사는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것이기에 아무리 그럴싸하게 보이게끔 썼다하더라도 이는 창조가 아니다. 시는 보이되 보이지 않는 것. 감추어진 것. 숨어이는 비의(秘意)를 드러내는데 묘미가 있다.


산을 사람과 친하고 싶어서 ----------(감정) 의인법

기슭을 끌고 마을에 들어오다가도 ----------활유법

사람 사는 꼴이 어수선해서 ----------(판단) 의인법

달패이처럼 대가리를 들고 슬슬 기어서

도로 험한 봉우리로 올라간다. -------------활유법

김광균 <산> 부분


   글의 힘은 언어에서 오는것, 보이지 않지만 활유법이나 의인법을 적용해서 쓰면 훨씬 강령성과 환기력, 생동감을 얻을 수 있다. 바로 시가 구체적 이미지의 언어로 감동과 재미의 효과를 보는 연유가 여기에 있다. 보이지 않지만 상상과 연상하도록 써야 할 것이다.

  시적 발상, 착상은 가시적인 것을 비가시적으로, 비가시적인 것을 가시적으로 드런나는데 묘미가 있다. 매미 소리를 들었을 때, 나비를 보았을 때 한번쯤 이런 생각에 잠겨보라. 감나무에서 우는 매미 소리가 내 귓가에 닿기까지의 길, 나비가 날개를 너울거리며 날아가는 허공의 길 등, 또한 감자씨눈 트는 소리, 피라미 지느러미 터는 소리, 장미 꽃잎이 열릴 때 나는 소리, 단풍이 햇볕에 빨갛게 물드는 소리등, 바람이라는 것도 주이 깊게 살펴보면, 바람에게도 색깔이 있고, 성깔이 있다. 나아가 배가 고플때도 있을 것이 아닌가. 이럴 때는 "바람에게 밥 좀 주라, 얼마나 힘들겠니?" 하면서 떠오르는 상상의 세계에도 몰이할 수 있어야 한다.

  "밤은 어둡다", "한얀 눈", "노란 개나리", "아름다운 꽃 등과 같은 문장은 고정관념이 만들어낸 표현이고, 모두 설명적 문장이어서 아무런 느낌, 감흥을 얻지 못한다. 자기만이 발견한 것, 내면화되거나 상상한 것, 강렬한 인상을 받아 감각정 이미지로 구체화하거나 비유를 쓰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양말 한 켤레를 빨아

빨랫줄에 널었다 양명한 날이다

빨랫주은 두말없이 양말을 반으로 접었다

쪽쪽 빨아 먹어도 좋을 것을

허기지 바람이 아, 하고 입을 벌려

양말 끝으로 똑똑 듣는 젖을 받아먹었다.

양말 속 젖은 허공 한 켤레가

발름발름 호흡을 하기 시작했다

바지랑대 끝에 앉아있던 구름이

양말 소게 발목을 집어넣어보겠다고 했다

구름이 무슨 발목이 있느냐고 꾸짖었더니

원래 양말은 구름이 신던 것이라고 했다

아아, 그동안 구름의 양말이나 빌려 신고 다니던 나는

차마 허공이란 거을 알게 되었다.

안도현 <露宿> 전문


  안도현의 <露宿)은 참신한 착상을 보여주는 시이다. 보통"露宿"을 말할 때 인간을 중심축에 놓고 시상을 전개해 나갈 것이다. 하지만 시인의 눈은 낯설고 엉뚱하다. 인간만이 지나도나 역사(驛舍) 등에서 노숙하는 것이 아니라, 빨래줄에 걸린 양말도 노숙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바람""구름"등이 의인화되거나 활유법으로 처리되면서 그야말로 엄청 재미있는 상상력을 보여준다.

  시인은 일상 체험에 대한 순간의 느낌과 생각에 있어서도 남이 했던 항용의 생각을 벗어난다. 그야말로 아무도 발견할 수 없는 것을 깨달음이나 통찰했을 대 비로서 그 생각은 참신한 감동을 준다. 따라서 늘 '창조적 발상'을 시도할 필요가 있다. 흰 백합꽃을 보고도 평범하게 "아 곱다. 아름다다"로 한정하여 머무를 것이 아니라. "왜, 고운가, 무엇이 아름다운가"에 대한 깊은 사유, 상상력이 발동해야 한다.


  8) 연상과 상상적인 비유로 전개하기


키 작은 선풍기 그 건반 같은 하얀 스위치를

나는 그냥 발로 눌러 끈다


그러다 보니 어느 날 문득

선풍기의 자존심을 무척 상하게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로 나는 성풍기한테 미안했고

괴로웠다


- 너무나 착한 짐승의 앞이빨 같은

무릎 위에 놓인 가지런한 손 같은


<중략>


무얼 도와줄 게 있다고 왼쪽엔

타이머까지 달고

좌우로 고개를 흔들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 더운 여름

반 지하의 내 방

그 잠수함을 움직이는 스크류는

선풍기


신축 교회 현장 그 공사판에서 그 머리 기름 바른 목사는

우리들 코에다 대고

까만 구두코로 이것저것 가리키며

지시하고 있었다


선풍기를 발로 눌러 끄지 말자

공손하게 엎드려 두 손으로 끄자


인간이 만든 것은 인간을 닮았다

핵무기도 십자가도

콘돔도


이 비오는 밤

열심히 공갈빵을 굽는 아저씨의

그 공갈빵 기계도

김영승 <반성743> 부분


  시인이 현실과 사회를 바라보는 눈은 날카롭다. 평소 누구나 선풍기를 끌 때는 발로 스위치를 눌러 끈다. 하나의 습관이다. 사물이나 인간을 대할때 그런 관습들이 몸에 배어 있다. 그런데 화자는 반성적 자아가 되어 자신의 행동을 순간 놓치지 않는다. 선풍기에만 미안한 것이 아니다. 그런 권위적이고 거만한 부류는 여기에 등장한 목사를 비롯하여 우리 사회 도처에 깔려 있다는 것이다. 선풍기를 다루는 화자나 공사장에서 인부를 부려먹는 권위적 인간 행태에 대해 반성적 사유와 더불어 세태에 비판적 의식을 깔 고 있다.

  시적 발상에서 시인의 눈은 예리하다. 때로는 '뒤집어서 생각하고, 낯설고 엉뚱하게 바라보고, 남다른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2차원, 3차원의 또 다른 대상의 의미가 전도되고 사로잡는다. 평범한 발상의 그 반대를 생각하라


꽃창포와 수성화가 늘씬한 몸매를 도도하게 뽐내고 있다. 그 옆에 있는 제비꽃과 패랭이는 귀엣말로 속다거리고 있다. 엄지손통만한 수국 꽃송이들은 오밀조밀 모여 우애를 과시하고 있으며, 소원이 많은 비비추들은 한창 기도중이다. 노루오줌은 빈뇨로 인하여 연신 화장실을 들라거리고, 그 모습을 무심히 바라보며 개느삼이 늘어지게 하품을 한다. 입술을 요염하게 벌려 수련을 희롱하는 나리꽃을, 엉겅퀴가 조용히 나무란다. 황금꽃을 향해 호들갑스럽게 허리를 흔들어대는 개양귀비, 보라색인 너와는 맞지 않는 이름이라며 개명을 권하는 중이다. 돌담에 기댄 목단이 웅성거리는 이 정경들을 지긋이 바라본다. 백 살이 넘은 모습에서 연륜과 기품이 우러난다. 초록꽃, 부추꽃, 벌개미취, 노루귀 개망초....., 모든 들꽃이 아름답다.

김순희 수필 <낯설게 보기 부분


  김순희 수필의 한 대목이다. 야생초 군락들이 의인적 묘사로 생동감을 자아낸다. 수필에서도 시안(詩眼)의 상상력이 동원되고 있는 현장, 화자가 바라본 야생초들의 모양과 자태가 내면의 느낌(상상)에 따라 희석되고 어우러져 이다. 나아가 소설의 서사적 문장도 시안의 깊이에 따라 얼마든지 감칠맛 나는 문장을 구사해 갈 수 있다.


  9) 관찰을 넘어 생명적 시안(詩眼)

  한 학생이 어머니와 함께 활어를 파는 시장에갔다. 활어시장 수족관 여기저기에는 싱싱한 오징어가 참 많이 있었다. 그런데  옆에는 죽은 오징어도 있었다. 산 오징어와 죽은 오징어는 가격 차이가 컸다. 학생은 문득 살아있는 것과 죽은 것과의 가치를 생각했다. 그리고 나서 직관적으로 이런 시구를 생각해 냈다.


산 오징어 만 원

죽은 오징어 오천원

학생작품 <삶과 죽음 사이>


  관찰의 단계를 뛰어넘는, 내면을 투시하는, 사물(상황)들의 특성을 살려 생명적 정신(생각)의 힘을 부여하는 착상 내지 가치화하려는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나아가 생명적 관계맺기의 힘이 좋은 시를 만들게 된다.

  한 그루의 나무를 보자. 흔히 한 그루의 나무에서 인생을 느끼고, 자연의 섭리를 배우며, 우주 순환의 질서를 배운다. 하지만 이는 인간적 관점이다. 가급적 대상이 주가 되도록 바라보고, 생명적 관계맺기의 시안을 가져라. '나무들의 흔들림', '잎사귀의 모습',' 꽃의 의미' 등 나무의 생명력 다양한 접근 속에서 정신의 생명력을 발견하라 여기에서 초월적 사고나 남다른 상상력이 발동된다.


나무의 생각이 그늘을 만든다

그늘을 넓히고 좁히는 것은 나무의 생각이다

사람들이 아물리 잡아당겨도 나무는

나무가 뻗고 싶은 곳으로 가서 그늘을 만든다

그늘은 일하다가 쉬는 나무의 자리다

길을 아는가 물으면 대답하지 않고

가고 싶은 곳으로만 가서 제 지닌 만큼의 자유를 심으면서

나무는 가지와 잎의 생각을 다라 그늘을 만든다

수피 속으로 난 길은 숨은 길어서 나무는

나무 혼자만 걸어 다니는 길을 안다

가지가 펴놓은 수평 아래 아이들이 와서 놀면

나무는 잎을 내려 보내 아이들과 함께 논다

가로와 세로로 짜 늘인 넓은 그늘

그늘은 나무의 생각이다

이기철 <그늘은 나무의 생각이다> 전문


  한 그루의 나무에서 인생을 느끼고, 자연의 섭리를 배우며, 우주 순환의 질서를 배운다. 그런데 늘 우리는 인간 의식의 축에서, 혹은 문명적 잣대로 나무를 보낟. 그러니 나무의 생각, 나무의 마음을 알지 못하고, 나무의 소리도 듣지 못한다. 방법이 있다. 내가 나무가 되어 보라. 아니면 어린 아니가 되어보라. 거기에서 나무의 생각이 열리고, 나무라는 존재의 큰 뜻을 알 수 잇고, 나아가 그늘을 펼처가는 섭리를 이해할 수 잇다. 그러다보면 산과 숲, 바다 등 모든 자연을 내 안에 둘 수가 있다.


  사람한테 잡혀가도 입을 크게 벌리고 있으면 산다고 아버지한테 귀 닳도록 들었습니다. 사람한테 잡혀가도 눈만 크게 부라리고 있으면 사람들이 겁먹고 도망간다고, 눈을 똑바로 뜨고만 있으면 사람들이 무서워서 벌벌 떨며 도망 간다고 아버지한텐 귀빠지게 들었스빈다. 잘 보이지 않지만, 눈 하나 깜박대지 않고 크게 뜨고 있는 내가 무섭지요. 벌벌 떨리지요?


배우식 <북어> 전문


  위 시의 화자는 북어로 전도되어 있다. 이런 시는 북어에 자신의 생각을 투사함으로써 가능해진다. 관찰을 넘어서는 대상, 곧 북어라는 생명존재의 안으로 들어가는 데서 비롯된다.

  시 쓰기는 성숙된 사유가 요구된다. 시로 이야기할 인생의 깊이가 갖추어져야 한다. 그래서 인간탐구 작업과 동질적인 것이다. 삶의 성숙이란 폭넓고 밀도 높은 체험에서 얻어진다. 그 체험에 대해 갈등하고 고민하면서 성찰해 내는 힘이 시인의 역량에 포함된다. 여기에서 어설픈 자기주장을 내세우거나 감정의 직설적으로 표출해서는 문학이 되지 않는다. 말하마면 생에 대한 곱씹기, 존재하는 것에 대한 되새김질, 농익은 감각으로 현상을 꿰뚫어보는 시안이 필요하다. 연암 박지원은 까마귀를 검은 색깔 하나로만 파악하는 사람들을 마음에 여유가 없은 세속의 무식한 사람들이라고 질타한다. 그는 사물을 바라볼 때 관찰을 게을리하고, 고정된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을 경멸한다. 곧 일탈의 논리, 상상의 시학인 셈, 시적 착상의 비결이 어디에서 오는가를 깨닥게 해주는 말이다.


삼십년 수명인데

그 수 다 누리가 가는 놈은 없다

부화한지 6개월 되기도 전

죽어간 놈들은 탕 되고

치킨, 갈비, 깐풍기, 라조기, 팔보채,

죽, 스테이크, 샐러드, 꼬치, 강정,

계장, 생드위치, 케밥,

찜 되어 주린 입 속으로 들어가

피와 살 된다

죽어가는 놈들 내뿜는 독소

몸속 세퐁에 시나브로 쌓인다

어찌 이들뿐이랴

비명횡사한 뒤 음식 되는 것들

사람들 성정 사남게 진화시키고 있다

이재무 <폐닭> 전문


  관찰과 인식의 단계를 뛰어넘어 내면을 투시하는 생명적 시안, 사물(상황)들의 특성을 살려 정신의 힘을 부여하는 착상 내지 가치하하려는 의미부여, 관계맺기의 힘이 시맛을 결정한다. 어떤 사물이든지 상식적으로 접근 하면 시가 되지 않는다. 시인은 사물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자이며, 사물의 다른 본질을 찾아내는 자이다. 끈임없이 사물의 의미를 재해석하고, 연상확장하고, 부정하고, 역설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


  10) 연상 능력, 상호텍스트성 지식을 살려 조재를 증식(增殖)하기

  시 쓰기는 단순한 체험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사물을 연계지어 바라보고 그 의미를 추적하는 연상 작업이 필요핟. 가령 지금 서산에 절친 황혼을 복, 고양의 황을 떠올리는 일, 지금의 체험과 옛날의 경험을 연결짓는 일이 시적 발상을 촉진시킨다.

  나아가 시적 소재는 시인이 지닌 지식의 양에 따라 증식하기 마련이다. 여기에서 줄리아 크리스테바의 '상호텏그트(intertexuality)'라는 개념의 적극 적용할 필요가 있다. 상호텍스트란 사물을 연계지어 바라보고 그 의미를 추적하는 작업을 말한다. 글을 쓰면서 고사(故事)를 인용하는 일이나 소재로서 '명소'가 있다면, 그 명소와 관련하여 얽힌 이야기를 듣는 일, 도는 연관된 지식, 관계를 지어가는 일을 함께 수행하는 것이다. 나아가 여기에서 작가의 남다른 해석과 상상에 따라 소재는 성장한다. 소재는 어차피 해석의 대상이다. 해석의 안목과 심도에 따라 소재는 성장한다.


이불 밖으로 삐죽이 나온 당신 한쪽 발

엎어져 자고 있는 발바닥이 바다 위에 섬 같애

숨도 쉬지 않고 조용히 자고 있는 쓰시마섬


왜구의 노략질이 심해지자 태종은 대마도 정벌을 명하였대

토요또미 히데요시도 쓰시마에 기지를 구축하였고


왜 그 생각이 나나 모르겠네

젊어 징용 가서 다시는 모 돌아온 고모부

절벽 위에 떨어져나간 당신 발바닥이네


나라 일읋은 섦음을 안고 왜(倭)의 물은 한모금도 안 마신다며

생으로 굶어 죽은 최익현의 발자국도 그 섬에 떠돈다는데


그러고 보니 혼자 방황하는 당신 발바닥이네

당신의 몸 가장 궁벽한 곳, 가장 쓸쓸 한곳


회사는 넘어가고 친구들의 부고장은 하나둘 날아오고

술도 담배도 끊었지만 잠이 안 온다고 뒤척이더니


그 나라에서도 쫓겨나 갈 곳 없는 자들이 모여 살던 곳이 쓰시마래

작은 섬 앞바다에 역관 백여 명을 돌풍에 휩쓸려 보내고도

대마도는 우리 땅이라고 조선 살맏르은 믿었다는데


당신 발바닥은 영 딴 나라 같네

동떨어져서 낯설기만 하고

당신의 쓰시마, 쓰시마 섬

최정례 <당신 발바닥 쓰시마섬 같애) 전문


  교양과 지식이 많을 수록 상상력이 풍부하고 내용이 깊을 시를 쓸 수 있다. 위 시에서 화자는 남편의 발바닥을 통해 바다 한가운데 엎어진 배처럼 조용히 자고 있는 일본의 쓰시마(대마도)섬을 연상, 치환 동일시 한다. 여기에서 발바닥에서 연상된 쓰시마섬음은 각 장면별로 상호텍스트성이 적용되어 시간과 공간의 전위차를 보여준다. 쓰시마는 일 본 본토로부터 지정학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고, 갈 곳 없는 일본인들이 모여 살던 곳이며, 역사적으로는 토요또미 히데요시가 한국 침략의 전초기지로 삼던 곳이기도 하다. 또한 이 섬은 역사적으로 왜구의 노략질에 응징하기 위해 태종이 정벌한 섬이기도 하고, 생으로 긂어죽은 최인현의 혼이 서린 당이며, 역관 백여 명이 돌풍에 의해 죽은 곳이자, 하자의 고모부가 징용을 가서 애처롭게 일생을 마친 곳이기도 하다.

  지금 화자는 방바닥에 있는 남편의 발바닥이 마치 이러한 쓰시마섬의 아픈 내력과 같이, 소외되고 낯설고 암울한 심정을, ㅊ측은지심의 남편을 그려낸다. 그래서 이 시편이 갖는 미학은 리얼리티의 실감미가 주는 환기력과 생동감에도 있다 하겠지만, 무엇보다 폭넓은 비유의 응집력이 주는 텐션(tension)의 미학을 접할 수 잇다. 말하자면 거리가 먼 상이한 개별적 존재를 동질적인 존재로 병치시켜 심미적 경이감을 만끽하게 한다. 

 

 

문광영 지음 <시 작법의 논리와 전략>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