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서정시의 장르적 특징] 4. 동화와 투사의 시학

2018. 8. 9. 14:07☎시작법논리와전략☎

728x90

 

14002_최우수상_설악산_환상적인설악산_남택근_D

 

 

4. 동화와 투사의 시학

 

  시인이 의식적으로 자아와 세계의 동일성을 추구하는 방법에는 두 갖디가 있는데, 하나는 동화(同化, assimilation)이며 다른 하나는 투사(投射, projection)이다.

  여기에서 '동화(同化)'는 시인이 외부 세계를 자신의 내부로 끌어 들여서 그것을 인격화하는 작업이다. 시인이 처한 자아와의 갈등, 대립의 관계에 있는 세계를 자아의 욕망, 가치관, 주체의 감정에 맞도록 변용, '세계를 끌어들여 자아화'하는, '세계의 자아화'이다.


冬至ㅅ달 기나긴 바믈 한 버리를 버혀내어

春風 나블아래 서리서리 너혔다가

어른님 오신날 밤이여든 구븨구븨 펴리라

황진이


  위 시조에서 화자는 님과 보내는 동짓달 봄밤의 짧은 상황에 처해 있다. 곧 자아와 자연세계와의 대립, 갈등의 생태에 있다. 하지만 동짓달 긴 밤을 둘로 잘라내어 "어른님 오신날 밤"에 굽이굽이 펼쳐낸 경지는 자연 세계와 일체감을 이룬 동일성의 세계이다. 이렇듯 세계가 자의 의지, 욕망에 의해 자아화된 것이다. 여기에서 일체감은 대상이 화자의 마음에 동화가 된 것이다. 또 한 예로, 화자 이별, 슬픔 상태에 젖어 있어 '하늘을 보니 먹구름이 끼어있을 경우, 하늘도 슬퍼 곧 눈물을 흘릴 것이다. 라는 내용으로 시를 썼다면 세계를 주관대로 해석, 변용한 일체감의 동화라 할 수 있다.

  아래 이향아의 시 <달팽이>는 자아와 갈등 관계에 있는 '달팽이'를 시인의 내부로 끌어들여 시인의 감정, 가치관에 맞게 동화ㅏ시킨, 외부셰계를 자아화 한 도오하에 해당한다.


아침 풀밭을 걷다가

달팽이를 밟았습니다.


크레카 부서지는 소리

흙발로 밟아 죄짓는 소리


우주의 천장이

내려앉았습니다


벗겨진 하늘

드러난 맨몸둥이

쏟아지는 빛이며 아우성이며

나는 춥고 어지러워

몸을 움츠리었습니다


동서남북 어디로 갈까

그 자리에 눈 감고

주저앉았습니다

이항아<달팽이> 전문


  노천명의 <사슴>에서 화자는 세속에 영합하지 못하는 고고한 삶의 자세와 비애를 사슴에 투사, 곧 감정이입하여 일체감을 이룬다. 이는 세계 속에서 자아를 발견하는 방법이다. 화자는 사슴이라는 대상을 놓고"冠이 향기로운 너는 / 무척 높은 족속"으로서, "물속에서" "선설을 생각해 내고는", "슬픈 모가지를 하고 / 먼 데 산을 쳐다본다"는 자아의 심리적 감정이 투영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동화니 투사니 하는 분류는 편의상 동일화의 성격을 논의할 때에 필요한 것이고, 동일화의 작업으로 동화와 투사는 완전히 분화되지 안하은 상태로 실제 시에서 교차되어 일체를 이루는 경우도 있다. 그러하기 때문에 서정적 자아는 어디까ㅣㅈ나 '단일한 목소리', '단일한 시적 비전, '단일한 의미자'로 이루어지는 한 목소리의 독백시가 된다. 그래서 자아와 세계의 일체감 속에서 동화에 의한 것이든 혹은 투사에 의한 것이든 간에 자아는 세계와의 관계에서 소외되거나 세계를 초월하지 않고 연속되어 드러나는 것이다. 이것이 서정시의 원초적 모습이다.

  이처럼 시작품에서 자아와 세계가 서로 투사되거나 도오하되어 자아와 세계는 하나가 된다. 이른바 주객일체의 경지, 몽사의 경지로, 이러한 자아와 세계의 동일성이 곧 서정시의 원래의 모습이자. 시인이 갈망하고 몽상하는 고향이다.

 

 

문광영 지음 <시 작법의 논리와 전략>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