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서정시의 장르적 특징] 2. 서정적 자아와 정서 표현

2018. 8. 9. 13:55☎시작법논리와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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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서정적 자아와 정서 표현

 

  서정적 자아는 '자아와 세계의 동일성'을 추구한다. 이 동일성의 세계는 시인이 몽상하고 갈망하는 고향이다. 대상을 자신의 욕망과 의지대로 변형시키는 서정시의 화자, 곧 서정적 자아는 대상에 자립적 의의를 인정하고, 그 대상과 대립하는 서사적 자아와는 분명히 변별된다. 곧 서사(敍事)가 자아와 세계의 대결양식이라면, 서정(敍情)은 자아와 세계의 합일양식인 것이다.

  따라서 서정시란 듀프레느 식으로 말하면 과즙(果汁)과도 같은 것이다. 온전한 과일을 먹으려면 믹서에 갈아서 껍질이며 씨방까지 즙으로 마나들어 먹어야 과일의 총체적인 맛을 알 수가 있다. 바로 '서정'에서의 자아와 세계의 합일은 주체와 객체의 교감과 합일하므로 과즙과 같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때 서정적 자아를 메를로 퐁티(M. Ponty)의 지각의 현상학으로 풀이해 볼 수도 있다. 그는 인간이란 주체를 '세계는 나의 신체(mon corps)의 연장물'이라는 물아일체의 개념으로 파악한다. 곧 '나의 머리카락에 접하여 하늘이 시작되고, 나의 발바닥에 의해 대지는 숨을 쉬고, 나의 살갗에 접촉하여 사물들은 스스로 느끼게 된다'라는 것이다. 그러니 자아와 세계는 동일성, 일체감을 이루기 마련이다.

  이러한 서정적 자아의 시적 공간은 ㅅ계와의 대립이 없고 합일의 양식을 지향한다. 그러므로 자아와 세계란 동일성의 공간으로 상호 관계 지어진 정경교육(情景交融) 내지 감이수토(感而遂通)의 세계요. 원융회통(圓融回通)의경지이다.

  조동일의 논리에 따르면 서정적 자아는 이기철학(理氣哲學)의 '성(性)'에 해당된다. 이 성(性)은 주관과 객관, 감정과 이성이 구분되지 않는 상태이고, 세계와 접촉 없이도 존재하는 자아이다. 그런데 이'性'이 사물에 의해서, 곧 세계와 접촉을 해서 그 모습을 드러낼 때 이것을 "정(情)이라 한다. '情'은 서구식의 개념으로 '실현된 자아'와 흡사하다. 따라서 性으로서의 자아는 情의 자아를 매개로 하여 우리가 다가가 추축할 수 있게 된다. 여기에서 유교의 이념인'천일합일(天一合一)을 놓고 보면, 그 경지에 도달 하려면 '性'으로서 서정적 자아에 의해 가능해진다.

  이러한 서정적 자아는 서구에서는 쉴러(F.Schiller)의 '소박한 시인'에게서 그 원형을 찾을 수 있다. 쉴러는 시인을 둘로 나눈다. 곧 '자연으로서 존재하는 시인'과 '상실한 자연을 추구하는 시인이 그것이다. 그는 전자를 '소박한 시인'이라했고, 후자를 '감작적 시인'이라 했다. 전자의 '소박한 시인'은 시인이 순수한 자연으로서 있는 동안에는 순전한 감성적인 동일체로서 또는 전체가 조화된 존재로서 행동하며 감성과이성, 사물을 받아들이는 행동능력이 서로 불리되지 않고 대립되지 않는 상태에서 활동한다.

  그러나 오늘날 문명시대에 '소박한 시인'으로서만 존재할 수는 없다. 솝락한 시인에게는 장아와 세계의 합일이 실제하므로 '현실적인 것의 재현'이 그 임무가 되지만, '감각적 시인'의 경우는 '이상의 표현'이 그의 임무가 되는 것이다.

  오늘날 문명의 시대에 본연지성르서의 서정적 자아는 하나의 이상으로만 존재하는 것이지 실존할 수는 없다. 따라서 여기에 기질지성의 서정적 자아가 필연적으로 등장한다. 기질지성의 서정적 자아는 그가 지닌 차이와 분별을 만드는 氣의 작용에 따라 분별과 대립, 갈등을 일으키게 된다. 그런데 기질지성에서 본 세계는 대립, 갈등의 세계이지만 보편화의 원리인 理에 의해 이 대립, 갈등을 극복하여 자아와 세계의 합일을 추구하게 되는 것이다.

  본연지성의 소박한 시인, 혹은 기질지성의 감상적 시인은 궁극적으로 대립과 갈등을 극복하여 자아와 세계의 합일을 추구한다. 그래서 '서정시'는 이양자의 속성을 지닌 시인의 감정을 표현을 문학양식이다. 따라서 서정시란 서정적 자아의 감정, 곧 정서적 느낌이나 생각이 구체적인 언어로 형상화 된것이다.

  아래 우리 민족을 상징하는 노래<아리랑> 한 구절도 엄연한 서정시에 속한다. <아리랑>은 한마디로 떠나는 님에 대한 감정을 표현한 것으로, 대립과 갈등을 넘어서는 떠나는 님의 야속한 심정을 노래한 시이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난다


  위 <아리랑> 둘째 행은 화자의 감정인 '떠나는 님이 약속하다'라고 직설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십리도 못 가서 발병난다"고 빗대어 표현되어 있다. 그렇다고 화자가 현상적으로 어느 몸 한둔데 '발병'이 났으면 하는 해꽂지로 한 말은 아니다. 곧 이별의 아쉬움, 야속한 심정을 에둘러 우회적, 간접적, 그리고 구체적으로 들러냈을 뿐이다. 바로 여기에서 서정시 맛의 단초를 읽을 수 있다.

  서정시는 주관의 감정, 그것도 서정적 자아의  가치 있는 감정을 형상화한다. 주관에 비친 대상과 세계를 표현한다.

  인간의 삶은 세계존재의 이해와 교섭을 통하여 해석하고, 또 무수한 느낌을 쌓아가는 과정이다. 그런 느낌과 사유를 바탕으로 해서 가치관이 형성되고, 그런 시이안(詩眼)의 깊이로 대상을 바라본다. 또 어떤 다른 특별한 일이나 어떤 극적 사건을 경험하면서 거기서 강한 통찰과 직관의 섬광을 받아 시적 발상의 충경을 얻게 된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안도현 <너에게 묻는다> 전문


  시적 화자가 청자에게 말 건넴으로 이루어진 3행에 불과한 짧은 시행이다. 하찮고 보잘 것 없는 연탄재라는 사물에 정신의 옷 입히기, 곧 연탄재와 깊은 교감을 통하여 얻어진 서정시이다. 시의 청자인 '너'는 특정한 인물이 아니, 이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이다. 곧 인정이 메말라 버린 현대인들에게 반성과 각성을 촉구하는 강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 연탄재는 그 추운 겨울날, 할머니의 방구들을 따뜻하게 해주었고, 맛있는 콩나물국도 끓여 자신을 희생했다. 그런 뒤 자신은 재로 변해 버린 존대이다. '너에게 묻는다'는 명령문가 의문문의 문장을 통해 나눔을 ㅗㄴ 몸으로 실천하는 '연탄재'와 이기적인 현대인들의 대비를 통해, 인정이 메말라 버린 현대 사회를 비판하고 현대인들에게 각성을 촉구하고 있는 시이다.

  이렇듯 서적 자아로서 시인은 대상과 자아(주체)의 대힙과극복의 관계속에서 몽상의 세계나 합일의 존재 의미를 추구해 나간다. 그리고 그 시를 토앟여 세계와의 정신적 균형이나 욕망의 정신을 형상화시켜 나간다. 나아가 시인은 이러한 작업을 통하여 독자와의 공감을 얻어 자기만족을 얻기도 한다. 그래서 서적 자아는 세계와 동화나 투사로 자아와 타인, 자아와 세계, 주관과 객관을 연합하여 조화와 통일을 이루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