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8. 9. 14:02ㆍ☎시작법논리와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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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세계와 자아의 동일성 회복
예술이 설립되는 희열의 원리적 근거는 대상과의 교감, 곧 합일, 일체감, 동일성을 발견코자 하는데 있다. 성경의 <창세기>에도 언급된 바 있듯이, 이 동일성을 통하여 인간과 만물 등 모든 존재세계가 희열의 대상으로 창조되었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인간은 홀로 있을 때 기쁠 수 없다. 그 기쁨이란 독자적으로 생겨나지 않ㅇ는다. 오로지 인간의 기쁨이란 어떠한 대상과의 교감을 통해서만이 가능하다. 인간의 심성은 절대자인 창조주에게서 나왔다고 보기 때문에, 신이나 인간의 기쁨은 모두 '동실의 素性의 소유자' 로서 다른 다생상과 함께 수반될 때 가능한 것이다. 사랑하는 살마들과 함께 존재해야 삶의 기쁨을 누릴 수 있지 않은가.
나아가 인간은 본성적으로 만물을 통하여 기쁨과 아름다움가 조화를 얻으라는 가치추구욕을 지닌다. 여기에서부터 예술활동은 시작되고 천태만상의 조화의 미가 탄생, 전개된다. 때문에 한송이의 꽃을 바라보는 데 있어서도 그 곷이 지닌바의 형태나 색깔이나 향기나 부드러움 등의 원형이 관조자 자신에게도 내재되어 있는 바, 그 원형과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꽃이 상호 교감을 통하여 합치되는 체험의 인식, 그 주체자(시인)와 대상(꽃) 사이의 교감을 통하여 만물을 노래하고 그려내며 쓰는 것이다.
무를 시를 쓰는 작업이란 주체와 객체, 곧 자아와 세계(시인의 정신과 사물)의 관계를 설정하는 일이다. 세계와 자아와의 관계를 성정함으로써 세계에 새로운 이름을 부여하고, 그 존재 가치를 해석하며 양자간의 가장 구체적이고도 순간적인 조우를 포착해 내는 일이다. 그리고 이러한 조우는 세계와 자아 사이의 동일성의 발전으로부터 이룰어진다고 할 수 있다.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
님 한 번 생각할 틈 없이
아주 잠깐이더군
그대가 처음
내 속에 피어날 때처럼
잊는 것 또한 그렇게
순간이면 좋겠네
멀ㄹ리서 웃는 그대여
산 넘어 가는 그대여
꽃이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건 한참이더군
영영 한참이더군
최영미 <선운사에서> 전문
위 시는 동백꽃이 피고 지는 과정에 자아와 감정을 투사, 동일성 속에서 이루어진 작품이다. 곧 사랑의 만남은 꽃이 피어나듯 지난한 과정이지만, 이별은 꽃이 지듯 순간이라는 것, 그러나 한 사람을 잊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드러낸 시이다. 선우사 대웅전 뒤편 산자락에 자생하는 동백나무 숲은 유명하다. 시인은 그 동백꽃을 봤을 것이ㅗㄱ, 시인은 동배꽃이 피고 지는 과정을 사랑과 이별로 환치시킨다. 동백꽃은 겨울 눈 속을 이겨내면서 오랜 시간을 거쳐 피워낸다. 시인은 이를 "피는 건 힘들어도"라ㅗㄱ 인식한다. 그러나 동백꽃이 질 때에는 꽃봉오리째 그냥 톡 하고 순간 떨어져 버리낟. 여기에 시인은 '그대'와의 사랑과 이별로 연결시켜 "처음 / 내 속에 피어날 때처럼 / 잊는 것 또한 그렇게 / 순간이면 좋겠네"라고 진술한다. 즉 꽃이 지는 것과 이별하는 것은 그 반대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시 속의 화자는 누군가와 이별을 하고도 아직 그를 잊지 못하고 있다. 아니 시 속의 독백처럼 ''영영 한참' 잊지 못할지도 모른다. 꽃이 피고 지는 것과 사랑과 이별을 동일화 하여 잊지 못하는 사랑을 노래한다.
시적 자아는 늘 세계 속에 있어야 한다. 그 동일성 속에서 세계 만물은 서로 조응하며 교감한다. 해서 세계(존재)로부터 자아의 동일성을 발견하여 그 개안, 시안, 몽상, 상상, 의미부여, 깨달음이 시를 만들어간다. 그래서 사물 간의 경계는 허물어지고, 오히려 사물의 내밀한 신비와 섭리의 세계가 열린다.
서정시의 장르적 특징은 무엇보다 시적 정신, 시적 세계관이나 시적 비전에서 발생할 것이다. 시정시의 시적 세계관의 서사와는 달리 '자아와 세계의 동일성'에 있다. 여기에서 동일성이란 바로 '자아와 세계의 일체감'이다.
유성에서 조치원으로 가는 들판에 우두커니 서 있는, 한 그루 늙은 나무를 만났다. 수도승일까, 묵중하게 서 있었다.
다음날은 조치원에서 공주로 가는 어는 가난한 마을 어귀에 그들은 떼를 ㅈ져 몰려 있었다. 멍청하게 몰려있는 그들은 어설픈 과객일까. 몹시 추워 보였다.
공주에서 온양으로 우회하는 뒷길 어느 산마루에 그들은 멀리 서 있었다. 하늘 문을 ㄹ지키는 파수병일까. 외로와 보였다.
온양에서 서울로 돌아오자 놀랍게도 그들은 이미 내 안에 뿌리를 펴고 있었다. 묵중한 그들의, 침울한 그들의 , 아아 고독한 모습, 그 후로 나는 뽑아 낼 수 없는 몇 그루의 나무를 기르게 되었다.
박목월 <나무> 전문
화자는 유성에서 서울로 돌아올 때까지의 여행길에서 본 나무들의 느낌을 그려내고 있다. 여행중 그가 본 나무에게서 본 것은 '수도승', '과객', '파수병' 같은 나무들의 이미지로 각각 묵중하고, 침울하고, 고독한 나무들의 모습을 읽는다. 그리고 마지만 연에서는 이들이 모두 화자의 마음속에서 "뽑아낼 수 없는 몇 그루의 나무"가 되어 인격체로 일체감을 이루고 실존적 고독을 깨닫게 된다. 화자는 먼 유성에서 서울로 되 돌아오는 길의 도정에서 세계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가진다. 유성에서 서울로 가까이 올수록 인식은 점점 명료화되고 서울의 집에서 본질적 인식에 도달한다. 이는 삶의 본질적 의미를 되찾는 구조를 가지는데, 삶의 시원적 근본으로 회귀하는 내면적 인식의 길과 합치한다.
이렇듯 서적 자아는 늘 세계 속에서 자아를, 자아 속에서 세계를 발견하려는 인간 정신의 지향성과 맞물려 있다. 그리하여 자아와 세계의 동일성, 곧 일체감은 객체인 세계와의 만만, 투사, 동화, 교감, 관계짓기, 감정이입, 물아일체적 정신의 개념과 그 궤를 같이 한다. 곧 시인이 한 편의 작품을 쓰게 되는 모티브는 외부 세계로부터 받은 하나의 충격 혹은 감동의 차원으로 승화되었을 때', 이 주객일체의 경지를 이룬 것이 서정적 자아의 시적 세계관이다.
어머니가 주신 반찬에는 어머니의
몸 아닌 것이 없다
입맛 없을 때 먹으라고 주신 젓갈
매운 고추 송송 썰어 먹으려다 보니
이런,
어머니의 속을 절인 것 아닌가
이대흠 <젓갈> 전문
위 시는 치환의 상상력으로 전개된다. 엄머니가 주신 "젓갈"이 "어머니의 속을 절인 것"이라는 화자의 교감ㅈ덕 일체감에서 대상을 보고 있다. 그 일체감의 속에서만이 "어머니가 주신 반찬"은 "어머니의 / 몸 아닌 것이 없다"라는 시적인식이 가능한 것, 여기에서 서정시의 맛이 생겨난ㄴ다. 세계로부터 자아를, 혹은 자아로부터 세계를 발견하려는 동일성 회복의 정신은 서정시의 본래 모습인 동시에 시인인 희귀하기를 갈망하는 정신의 고향이다. 이러한 상태, 곧 서정적 자아로서 세계와의 융화를 꿈꾸는 시인은 "외부세계를 자기가 갖고 싶어 하는 세계로 변용시켜 자아와 세계가 동일성을 이루도록 하는 능동적인 참여자로 보고 있다.
서성시에서 이러한 서정적 자아와 세계의 능동적인 만남으로 동일성을 이루는 것을 죤 듀이(John Dewey)는 '미적 체험(aesthetic exoerience)'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바로 이는 동양시학에서 말하는 '주객일체의 경지'에 해당하며, 나아가 바슐라르(G. Bachelard)의 '몽상의 시학' 과도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해서 자아와 세계가 동일성을 이루는 주객일체, 몽상의 경지로서 시적 세계관은'주관과 객관, 이성과 감정의 구분이 일어나지 않는 상태의 것'이다. 그덕은 이성과 감저잉 미분화된 카오스(chaos)적 합일의 상태이며 주객이 화해를 이룬 혼연일체의 경지라고 해도 될 것이다.
우리는 문명이 발달된 사회에 살아갈수록 점점 자연과 신으로부터 멀어져 세계와의 합일이 아닌 세계와 대립하여 대결하려는 의식읠 강화시켜 가고 있다. ㅅ계와 조화하고 화해를 지양하는 야아야말로 동일성의 회복을 실현하려고 하는 시적 정신의 바탕이 될 것이다.
문광영 지음 <시 작법의 논리와 전략>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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