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시의 관점과 가치 기준] 4. 작품 자체의 구조론적 관점

2018. 8. 9. 12:17☎시작법논리와전략☎

728x90

01003_소백산_철쭉군락_박중서

 

 

4. 작품 자체의 구조론적 관점


  문학작품 자체에 관심을 기울여 평가의 기준을 얻르려는 이른바 형식주의비평, 신비평, 구조주의, 기호학적 비평 등이 이러한 관점을 취한다. 흔히 "내용이 풍부하다"라는 말은 가장 초보적인긴 하지만 작품 자체를 두고 하는 평이다. 그리고 "구성이 좋다", "잘 짜여져 있다", "균형 잡힌전개다"라는 말도 다분히 문학작품 자체의 구조나 형태에 관심을 두기 때문에 나오는 것이다.

  앞서 말한 모방론, 표현론, 효용론의 기준은 문학작품의 밖에 존재하는 사물((현실, 독자, 작가)에다 평가의 기준을 두는 것임에 반하여 지금 이 네번째의 기준은 작품의 내부적 구조 자체에 관심을 둔다.

  위대한 사상은 저절로 위대한 문학이 되는 것이 아니라 작품 속에서 문학의 모든 방법으로 적절히 제시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작가의 성실성도 현시에의 닮음도 다 작품 자체가 보장해야 한다. 같은 이야기도 하는 사람에 따라 재미있기도 하고 심심하기도 한 것이다.

  비평가들은 대개 작품 내부를 구성하고 있는 요소들의 다양성ㅇ에 주의를 기울인다. 좋은 작품은 우선 재료가 많다는 것은 양적인 의미뿐만 아니라 압축, 함축, 대조 등에 의한 다양을 뜻하기도 한다. 외부 사물에 대한 세밀한 묘사는 닮음의 면에서라기보다는 작품 자체에 풍부한 면에서 본다. 인물의 일면만 강조된 '평면적 성격' 보다는 '입체적 성격'에 흥미를 가지는 것은 입체적 성경이 내보하는 복잡다단한 심리 상태 대문에 작품이 다양해지는데에 공헌하는 까닭이다. 단일한 '플롯(plit)이 아니고 여러 복합적'플롯'이 전개되고 많은 인물이 등장하는 작품은 복잡다단하다. 역시 작품의 폭이 넓어지낟.

  문학의 구조이론은 언어학에 힘힙은 바가 매우 크다. 구조이론가들이 개별 작품에 대한 비평과 평가에서 문학성을 연구하는 족으로 바꾸낟는 전제부터 소쉬르(Ferdinand de  Saussure)가 밝힌 언어기호의 형식과 내용을 구분하는 양분법을 모데롤 한 것이다. 또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이 일상적 언어와 시적 언어를 구분한 방법도 언어학 이론과 관련이 깊다.

  수크로프스키(Shklovsky)는 시적 언어란 이미지에 대한 언어라는 전래의 생각을 비판하면서 시의 이미지란 최대의 인상을 만드는 방식의 하나일뿐이며 언어의 음, 문형 등 여러 요인과 대등하다고 본다. 그는 언어의 경제성을 중시하는 것은 일상적 언어의 속성이며 시적인 언어는 그 나름의 법칙에 의해 생성되며 그 결과 자동화된 일상적 언어에 축격을 준다고 했다.

  시적인 언어의 본질에 관한 연구에 초점을 맞춘 형식주의자들은 문학적 깁접의 포괄적 설명이 가능한 예로 '낮설게하기'(defamiliariszation)를 들고 있다. 우리가 처음 접하게 되는 사물은 매우 신기하여 우리에게 벅찬 감동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와 자주 접하게 되면서 처음 느낀 감동의 새로움 느낌이 사라ㅏ지고 일상적 감수성으로 편입되어 들어온다.

  문학의 언어에 있어 이러한 '낮설게하기'나 '전경화 (foregrounding)라는 개념은 문학의 방법과 관련 지지을 수 있다. 원래 은유, 상징 등의 시적 언어가 일상적인 언어에서도 그대로 사용되고 이해된다. 일상언어가 시에서 낯선 표현으로 전경화되는 것은 시의 여러 기법을 통해서이다. 이는 서사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서사체에 있는 스토리를 플롯화 할 때 낯설게 하기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서사체의 예를 들어 설명하낟면 독자가 어떤 유형의 이야기에 대해 이미 선지식을 갖고 있으므로 작가는 이야기를 낯설게 변형시킨다는 것이다. 도미부인의 이야기는 어느 정도 나이가 든 한국인라면 이미 그 내요(스토리)은 알고 있다. 같은 스토리를 가지고 작가는 이를 새로운 형태(플롯)를 부여하여 소설화하고, 그 결과  그 이야기는 낯선 형태로 독자들에게 다가오는 효과를 발휘한다.

  그러면 구조론적 관점에서 작품을 살펴보고자 한다. 아래 두 시조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이방원의 <하여가>와 정몽주의 <단심가>이다. 이어령 교수가 해석한 바와 같이 아래 시조에서 중심 소재는 칡덩쿨과 백골로 나타나고 있는데, 이들은 서로 비유적 이미지로서 대립 항을 보이며 의미의 변환 체계의 구조를 지니고 있다.


이런듯 엇더하리 저런들엇더 하료

萬壽山 드렁츩이 얼거진들 엇더하리

우리도 이같이 얼거져 백년같이 누리리라


이방원<하여가(何如歌)


이몸이 주거주거 一百番 고쳐주거

白骨이 塵土 되여 넉시라도 잇고없고

님向한 一片丹心이야 가쉴줄이 이시랴


정몽주 <단심가(丹心歌)


  이방원의<하여가>는 세상 되어가는 대로 살아가는 인간의 삶을 만수산의 칡덩굴에 비유하고 있고 정몽주의 <단심가>는 죽음을 백골과 진토로 나타내고 있다. 이들은 다같이 하나의 개념을 물질적인 감각을 통해 기호화하고 있는데, 정반대의 대립을 통해서 의미소들을 보여주고 있다. 곧 <하여가>의 시조를 구축하고 있는 이미의 동위태는 덩굴의 속성으로서 뻗어가는 것, 정몽주의 그것은 반대로 백골이 진토가 되는 것으로 선적(線的)운동을 나타내고 있는데 대하여, 정몽주의 그것은 반대로 백골이 진토가 되는 것 같이 사람의 몸이 백골로, 백골이 흙으로, 흙이 완전히 무형의 넋으로 되고, 그것 또한 분해되어 가루가 되어 사라지는 광물적 점(點)의 소멸 운동을 드러낸다.

  그러니까<하여가>와 <단심가> 두 작품은 각각 대힙 쌍을 이루는데, 비유물로서는 칡덩굴 / 백골이, 물질로서는 식물성 / 광물성이, 형상르로는 선 / 점으로, 운동으로 서는 신장성 / 분말성이, 접촉으로 결합 / 분리로, 생으로 메타언어에 의해서 차이화 되고, 덱스트의 변별적 특징에 의해서 구성되고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