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서정시의 장르적 특징] 5. 순간의 장르, 압축성의 시론

2018. 8. 9. 14:13☎시작법논리와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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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순간의 장르, 압축성의 시론


  서정시는 하나의 생각, 하나의 비전, 하나의 무드, 하나의 날카로운 정서로 순간적 사상이나 감정을 표현한다. 서정시에서 순간, 압축의 원리는 누르는 힘을 이용하는 프레스 기계와 같다. 입보 시인의 시의 본질이 창조성, 유미성, 압축성, 감동성에 있다고 하였다. 바로 이 가운데 시의 압축성은 시 장르의 특성을 잘 보여준다.

  시는 산문과는 달리 분행과 연 처리 등의 형식을 보이고, 상징이며 은유, 역설 등 다양한 수사적 기법들로 농축되고, 간결하며 압축된 의미의 결정체에 있다. 마치 산문이 '무'라면 시는 '인삼'에 비유될 수 있다. 곧 산문에서는 '축적의 원리'에 의한 호흡이 길고 사건의 계기성에 의해 연속적으로 이루어지는 줄거리가 중심이 되지만, 시라는 것은 '압축의 원리'에 지배되는 암시성을 본질로 하여 대상에 대한 순간의 인상적인 체험이나 직관, 감정등이 최대한 집중되어 하나의 결정체로 드러나는 장르인 것이다.


봄에

가만 보니

꽃대가 흔들린다


흙 밑으로부터

밀고 올라오던 치열한

중심의 힘


꽃 피어

퍼지려

사방으로 흩어지려


괴롭다

흔들린다


나도 흔들린다


내일

시골 가

비우리라 피우리라

김지하<중심의 괴로움> 전문


화자는 하나의 봄꽃 '꽃대'라는 소재를 바라보며, 하나의 비전으로 순간적인생각을 농축해서 담고 있다. 역시 압축성과 간결성의 시어로 외면 풍경을 내면화하여 서정시의 극치를 드러낸다. '흙 밑으로부터 / 밀고 올라오던 치열한 / 중심의 힘'인 꽃대는 흔들린다. 꽃이 피어 사방으로 흩어지는 것은 중심에 서있는다는 것의 어려움을 보여 준다. 중심을 지키고 굳건하게 서 있다는 것은 괴로운 일이고, 그래서 때때로 흔들리기도 한다. 그 흔들림이 없다면 꽃은 피우지도 퍼지지도 못할 것이다. 중심의 분산, 그 흔들림이 틈, 여백, 공간을 생겨나게 한다. 그 중심과 탈중심이 서로 버티어 대결함으로 사물과 인간은 존재할 수 있는 것. 그래서 화자는 꽃처럼 '비우고', '피우리라'고 다짐한다.


닻을 주고 밧줄을 맨다


부두에 부딪히지 않게

썰물에 목매달지 않게


배가

파도를 넘을 수 있도록


느슨하거나

팽팽하지도, 않게


바람 불면 말뚝 꽈 조여야 하는

떠날 때 단숨에 확 풀려야 하는


밧줄


아버지는

닳아

부드러워진

길을 부두에 맨다

김두안<밧줄> 전문


  시 <밧줄>은 언어가 아주 간결하고 절제되어 있고, 내용도 순간적으로 압축되어 있다. 부두에 밧줄을 매는 아버지의 깊은 노하우 속에 세상살이의 이치, 삶의 지혜가 녹아 있는 것이다. 배의 밧줄은 너무 힘껏 단단히 붙들어 매면 옴짝달싹 못 하겠지만 바람 살짝만 불어도 배가 부두에 부딪쳐 파손될 수 있다. 또 너무 헐렁하게 묶어두면 썰물 때에 배가 물을 따라 멀리까지 나갈 수 있다. 그런즉, 나중에 사람들이 배에 오를 때 힘이 든다. 또한 배를 알맞게 매어야 다가오는 파도를 타고 넘을 수 있어 배를 안전하게 지킨다. 그러니 밧줄이 느슨하지도 않고 팽팽하지도 않아야 하는데, 그것 오랜 과정으로 익힌 노하우, 생의 처세술인 것이다. 김완하 시인은 이 시를 놓고 '밧줄의 경제학', '밧줄의 경영원리', '경영마인드'라고 말하면서 예술과 과학이 합쳐지는 경게에 바로 시의 존재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문광영 지음 <시 작법의 논리와 전략>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