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5. 3. 11:16ㆍ☎시작법논리와전략☎
3. 시 소재 선택에서 고려할 사항
적절한 시적 소재의 선택은 작품 성공의 요체가 될 뿐 아니라, 시의 문학성, 작품성, 예술성과 직결된다. 시 조재를 고를 때, 우선 독자의 관점에서 생각해 보자. 독자가 작품을 읽어나갈 때 다음의 다섯 가지 중에서 하나만 있어도 좋고, 두 개 있어도 좋다. 만약 세 개 이상이 된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의 글이 될 것이다. 하나라도 드러내지 못한다면 과감하게 버려라.
1) 낯선 새로움, 참신성이 강한 소재인가? - 낯선 인식
중앙시장 순대골목 진열장에는
얼굴 가득 미소 띤 돼지머리가 수두룩하다
대웅전 부처님처럼 거룽하다
생사를 놓아버리고
모든 집착에서 벗어났다는 표정이다
웃음 직전까지의 번뇌는 생략되었기에
목을 지나간 칼날의 날카로움을
사람들은 헤아리지 못한다
두 눈 지그시 감고 골목을 내려보며
유리상자 안에서 돼지머리가 웃는다
목 잘린 무수한 여래들이 웃는다
주용일 <웃는 돼지머리> 전문
시인은 중앙시장 순대골목에서 한 편의 시를 건진다. 무엇보다 새로운 시안(詩眼)으로 사물, 곧 돼지머리를 본 것에서 시작은 이루어진다. 여기에서 돼지머리를 어떻게 무엇으로 보았느냐가 중요하다. 죽음 이후에도 웃음을 놓지 않고 어굴 환한 돼지머리, 그가 본 돼지머리는 해탈의 상태에 있다. 바로 '여래'부처님이 아니신가. 사실 돼지머리를 사다놓고 절을 하고 의식을 치루는 것을 보면 부처로 보아도 무방한 것, 새로움은 즐거움을 가져다 주는 동시에 삶의 활력을 갖게 해준다.
시인은 사물을 새롭게 태어나게 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좋은 시인들은 남들이 생각한 것을 다르게 드러낸다. 지각의 자동화와 같은 익숙한 것을 낯설게 만들고, 일반적으로 보는 시각, 생각의 방법을 달리한다. 견자(見者, voyant)의 착란(錯亂)과 같은 것, 곧 고정관몀을 과감하게 깨고 여기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 것이다. 여기에 예술의 당위성이 확보되는 것이고, 시의ㅣ 문학성이 성립된다.
시작 태도가 굳어있는 사람, 전통적인 시 미학에 얽매일 경우 오히려 좋은 시를 쓰지 못한다. 자기가 그동안 딜들어 있던 습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고루한 생각, 고정관념, 일체의 선입견과 같은 그릇된 짐을 헐어버리고 새롭게 시작해야 시의 창조가 이루어진다.
2) 재미있게 읽힐 소재인가> - 비유 혹은 언어유희(pun)
시나 수필, 소설이라는 것도 재미가 없으면 들여다보지 않는다. 시드니(P,Sidney)가 "시는 가르치고 즐거움을 주려는 의도롤 가진 말하는 그림이다"라고 했지만, 점점 '즐거움'쪽으로 취향이 기울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시의 즐거움과 재미는 어디에서 오는 걸까?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주머니 속의 여자가 외친다
좋은 조건의 대출 상품이 있다고
동창 모임이 있다고
심지어는 벗은 여자 사진이 있다고
시도 때도 없이 외쳤댄다
버튼을 눌러 말문을 막아 버리자
마침내는 온몸을 부르르 떤다
참 성질 대단한 여자
주머니 속의 여자
유자효 <주머니 속의 여자> 전문
유자효의 <주머니속의 여자>는 스카트폰을 소재로 한 시로, 위트와 재치가 넘치는 시이다. 요즈음 현대인에게 있어 스마트폰은 생활의 필수품이 되어버렸다. 매일 카톡이나 문자메시지를 통하여 외부와 소통하기에 스마트폰없이는 단 하루도 불안하다. 매일 주머니 속에서 울리는 스마트폰의 문자를 "참 성질 대단한", "주머니 속의 여자"로 의인화하여 유머의시상으로 전개한다.
시적 재미는 예기치 않은 사실, 상황, 사물 등의 언어적 조합에서 이루어지는 우연한 이미지 혹은 관념들의 연상, 상상이 환기하는 폭과 깊이, 자장의 거리에서 촉발한다. 이러한 언어적 상상놀이(연상놀이)의 정서적 즐거움은 무엇보다 비유적 표현에 있다고 할 것이다. 엉뚱하고 낯선 사물(언어)이미지의 결합에서 오는 의미론적 이동의 내용이나 전위차의 기발한 착상이 상상력을 자극하면서 시를 재미있게 만든다는 점이다.
오늘 새로이 인생의 첫걸을 내딛는
신랑과 신부에게
내가 평생 실험실에서 현미경으로
기생추을 들여다본 학자로서
짧게 한마디 하겠습니다
무엇보다도
말미잘이 소라에게 기생하듯이
그렇게 상리공생(相利共生) 할 것을
당부하고 싶습니다
개미와 진딧물, 콩과 뿌리혹박테리아
그런 사이만큼만 사랑을 해도
아주 성공한 삶이 될 것입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해삼과 숨이고기처럼
한쪽만 도움받고 이익을 보는
편리공생(片利共生) 하지 말고
서로가 서로의 밥이 되는
아름다운 기생충이 되세요
이상 ...
이가림 <어느 노(老)생물학자의 주례사) 전문
기생충 생물학자다운, 참신하고 훌륭한 주례사다. 내가 이 시를 일찍 알았더라면 멋지게 이 주례사를 써먹을 것이다. 사실 이가림 시인은 불문학 교수로 정년을 하신 부니앋. 위의 시, 노 교수의 주례사는 우선 기존의 일상화되고 관습화된, 권위적인 설교 패턴을 벗어나 있다. 탁월한 발상이다. '편리공생(片利共生) 하지 말고, 상리공생(相利共生)' 하라느내용을 요렇게 '말미잘과 소라, 개이와 진딧물, 콩과 뿌리혹박테리아'의 관계적 삶에서 찾으라는 결혼 생활의 비유적 착상에 경악한다.
이 시가 강하게 새로운 충경으로 다가서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생살이도, 자연의 삶이라는 것도 관계적 비유에 있다는 것이다. 비유로 이루어지는 재미있는 주례사로 함민복을 <부부>라는 시가 있는데, 결혼 생활을 '긴 상'을 끌어들여 '서로 맞들고 주심스럽게 움직여야 하는 부부'로 비유하고 있다 연상적 관계짓기는 하나의 상상 미학의 언어로 시를 재미있고 아름답게 만든다.
인간은 사회의 변화에 주의하고 이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긴장감과 유연성을 갖는다. 그러나 변화에 대처하지 못하고 기계처럼 반복하는 관습성이나 경직서에서 돌연 어뚱한 일탈에 놓일 때 웃음을 자아내게 된다. 베르그송(Bergson)에게 있어 웃음의 원인은 '부일치'다. 불일치는 바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비사회성'에서 비롯되거나, 엉뚱하게 사물을 연결하고, 관계를 지어나가는데서 생긴다. 바로 사물에 별명 붙이기 가튼 비유적 상상력이 하나의 재미와 웃음거리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어머니가 개밥을 들고 나오면
마당의 ㅣ개들이 일제히 꼬리를 치기 시작했다
살랑살랑살랑
고개를 처박고
텁텁텁, 다투어 밥을 먹는 짐스으이 소리가 마른 뿌리 쪽에 들렸다
빈 그릇을 핥는 소리도
들려왔다.
이 마른 들판 가운데서 서서
얼마나 허기졌다는 것인가. 나는
저 한가득 피어있는 흰 꼬리들은
뚣뚝 침을 흘리며
무에 반가워
아무 든 것 없는 나에게 꼬리를 흔드는가
앞가슴을 떠밀며, 펄쩍
단려드는가
고영민 <갈대> 전문
본문은 시종일관 마등의 강아ㅣ즐 이야기다. 그런데 제목은 갈대이다. 강아와 갈대의 유사성을 드러낸 꼬리이밎가 흥미를 유발시킨다. 이 시의 구성은 온전히 상이한 개별적 존재인 강아지가 갈대를 동질적인 존재로 치환하고, 급기야 여기에 '나는'이라는 주체를 투사시키는 작버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서정적 교감을 죤 듀이(John Dewey)는 이를 미적 체험이라 했는데, 여기에서 독자는 상상의 즐거움을 체득하게 된다. 작가의 상상력이 빈약하다면 이런 시는 도저히 나올 수 없다. '갈대'의 이미지가 '개'들의 이미지로, 그리고 그 처지가 내면화되어 '나'로 전이되는 남다른 상상의 힘이 시를 시답게 만들과, 언어적 즐거움을 안겨주는 것이다.
시에서의 즐거움, 재미는 비유적 상상력 외에도 여러 가지에서 온다. 그하나는 언어유희(pun) 와 같은 대표적인 주의적인 표현이다. 시에서 즐거움을 수반하는 언어유희는 '동음 이의어'나 '발읨의 유사성'에거 사강 많이 나타난다.
푸성귀는 간할수록 기죽고
생선을 간할수록 뻣뻣해진다
재앙을 만난 생의 몸부림
적멸의 행간은 왜 그리 먼가
여말에 요승이 임금 없고 까불 때
간 잘 맟춘 임박은 승지가 되고
간하던 내 선조 임향은 괘씸죄 쓰고
남포 앞 죽도로 귀양가 소금이 됐다
세사에 간 맞추며 사는 일
세상에 스스로 간이 되는 일
한 입에 내는 奸과 幹과 鍊 차이
한 몸속 肝과 幹 사이는 그렇게 먼가
꼴뚜기는 곰삭으면 무너지지만
멸치는 무너져도 뼈는 남는다
꽁치 하나 굽는데도 필요한 소금
과하면 짜고 모자라면 싱거운
간이란 그 이름을 세워주는 毒이다.
간이 맞아야 입맛이 도는
입맛이 돌아야 살맛 나는 세상에
그 어려운 소금 맛을 늬들이 알어?
임명조 <간> 전문
위 시<간>은 언어유희의 유머를 드러내면서도 세상살이의 진지함이 베어있다. 배추와 같은 "푸성귀는 간할수록 기죽고", 자반고등어와 같은 "생선은 간할 수록 뻣뻣해진다"라는 시구는 참으로 봄편적 삶의 원리이자.ㅡ 깊은 깨달음을 암시한다. 간(奸)한 임박과 간(諫)한 임향의 대비 결과 "남포 앞 죽도로 귀양 가 소금"으로 "세상에 스스로 간이 되는" 순리도 그렇고, "꼴뚜기는 곰삭으면 무너지지만 / 멸치는 무너져도 뼈는 남는다" 는 간(肝)과 간(幹)의 어의가 주는 의미도 깊이가 있다. 그리하여 그 참다운 진리의 이미지는 "꽁치 하나 굽는데도 필요한 소금 / 과하면 짜고 모자라면 싱거운 / 간이란 그 이름을 세워주는 毒"이라는 경구는 설득력이 있다. 그렇다. "간이 맞아야""살맛 나는 세상"이 되는 법, 그야말로 존철살인이 아닐 수 없다. 그렇게 진정한 소금의 맛, 의미를 깨달아야 한다. 이 시는 "肝", "諫", "奸", "幹"이라는 동음이의어에 의한 절묘한 사유와 위트의 서정성을 보여준다.
햇살 가ㅏ득한 대낮
지금 나하고 하고 싶어?
네가 물었을 때
꽃처럼 피어난
나의 문자
"응"
동그란 해로 너 내 위에 떠 있고
동그란 달라 나 네 아래 떠 있는
이 눈부신 언어의 체위
오직 심장으로
나란히 당도한
신의 방
너와 내가 만든
아름다운 완성
해와 달
지평선에 함께 떠 있는
땅 위애
제일 평화롭고
뜨거운 대답
"응"
문정희 <응> 전문
문정희 시 <응>은 "응"이라는 글자의 형태에 의미를 부여하여 에로틱한 장면을 이끌어낸다. "응"이라는 글자의 형태와 자의(字意)를 차용한 이 시는 시인의 날카로운 몰입과 관찰에서 이루어진 결과다. 부부간의 대화에서 쓰는 '응'과 활자가 지닌 모양으로서의 '응'이 서로 아울려 묘한 분위기를 읽게하는 시이다. 곧 "햇살 가득한 대낮 / 지금 나하고 하고 싶어?"라는 물음에 그 답변으로서의 '응' 묘한 성적인 분위기를 드러내면서, 동시에 언어가 지닌 체위로서 "동그란 해로 너 내 위애 떠 있고 / 동그란 달로 나 네 아래 떠 있는 " 것으로서의 대응적인 '응', 나아가 "해와 달 / 지평선에 함께 떠 있는" 모양새의 이미지가 어울리면서 매우 따뜻하고 평화로운 정감으로 다가온다.
그동안 문 시인은 에로틱한 시를 많이 써 왔다. 그녀는 그동안 남성중심주의적 질서가 지배하는 현실세계에서 상처 입은 여성의 실존을 누구보다 대담하고 강렬하게 표현해 냈다.
시인들에게 있어 시어, 곧 말(언어)은 사유 자체로서 그야말로 중요하다. 그 말들은 공중에서 사물 속에서, 땅속에서, 거리 사이로, 건물 사이로, 다리 사이로 수없이 떠다닌다. 말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시의 성공 여부가 결정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3) 깨달음, 그 어떤 감동을 줄 만한 소재인가? - 가치 지향
시는 독자에게 그 어떤 깨달음과 감동을 주어야 한다. 시의 행간 내면에 깊은 사유가 숨어 있어 곰곰이 곱씹을 수 있는 자양분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자신을 반추해 보거나 더 가치 있는 삶의 지편을, 궁극의 지점에 도달하도록 만들어주어야 한다.
비누는
스스로 풀어질 줄 안다.
자신을 허물어야 결국 남도
허물어짐을 아는 까닭에
오래될수록 굳는
옷의 때,
세탁이든 세수든
굳어버린 이념은
유액지르이 부드러운 애무로써만
풀어진다.
섬세한 감정의 올 하나씩 붙들고
전신으로 애무하는 비누
그 사랑의 묘약,
비누는 결코
자신을 고집하지 않는 까닭에
이념보다 큰 사랑을 안는다.
오세영 <사랑의 묘약> 전문
오세영의 <사랑의 묘약>은 '진정한 사랑'이라는 관념을 '비누'라는 사물을 통해서 나타내고 있다 임영조는 시 <비누>에서 자기를 희생하여 세상을 정제하는 '이 시대의 성자'로 보고 있지만, 오세영은그것을 "어물어짐', "애무"의 화신으로 보고, 사랑의 속성을 통찰한다. 곧 비누의 속성인 "자신의 존재를 완전히 비워서 상대에게 남김없이 스미는 존재"로 묘약이라는 것이다.
4) 통찰의 세계를 보여주는 소재인가? - 생명적 인식이나 사유의 힘
물 위에 다리가 있지요
다리 아래 물도 다리랍니다
물은 생명과 생명을 연결하는 다리지요
세상에게 가장 큰 접속사지요
사랑도
살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다리지요
접속사로 연결되는 끝나지 않는 문장이지요
그래서
사랑은 물처럼 흐르지요
함민복 <다리의 사랑.3) 전문
성투성의 껍질을 벗겨가다 보면 맛깔스런 과육, 속살이 보인다. 이것이 통찰의 세계다. 사물으 겉핥기, 외피적, 피상적으로, 보면 통찰의 세계는 드러나지 않는 법, 남다른 사유에 들어갈 수 없게 된다. 마중물을 아는가. 양질의 생명수를 얻으려면, 사물의 또 다른 본질, 의미를 찾아내려면 한 바가지, 두 바가지 마중물을 넣고 열심히 펌프질을 해야 한다. 처음에는 탁한 물이 나오게 마련, 관조와 몰일 - 상호텍스트의 관계짓기, 스키마, 연상, 상상, 비유적 상상 등에 매진하다 보면 나중에는 맑고 차가운 생수가 나오기 시작한다.
5) 상상의 즐거움을 만끽 할 수 있는가
고속돌에서 큰 트럭에 소나무 두 그루가 실려가는 장면을 보았다. 자, 어떻게 하면 시적 상상을 발동하여 작품으로 완성할까?
우선 체험한 그 대상을 샘영적(의인적)비유를 끌어다 써 볼 일이다. 그러다 보면 상상적 이야기가 만들어질 수 있고, 또 그것은 즐거움으로 발전 할 수 있다.
다음은 이를 구체적인 산문형태로 적어본 것이다.
경부고속도로, 찻길이 밀린다. 옆 차선을 보니 커다란 소나무 두 그루가 트럭에 실려 간다. 뽑혀 실려가는 소나무 두 그루를 보니, 살던 집을 버리고 이사를 가는 가난한 내외 같다. 어디로 옮겨질지 불안하다. 군데군데 잔뿌리들은 잘리고, 남아 있는 뿌리들은 마치 어린 새끼들 같다. 먼저 살던 곳의 흙도 동그랗게 얼기설기 새끼줄로 묶여 있다. 흙은 꽤 말라 있다. 트럭에 있는 흙이나 잘린 뿌리도저 나무와 함께 살던 낡은 살림도구다. 어디로 옮겨 심어질까. 그리고 어느 곳에 뿌리가 내려질까. 늦은 저녁 두 소나무, 가재도구글 정리하고 어둑한 저녁밥을 지억 먹을 것이다.
아래의 시는 위의 산문을 줄여서 시로 만들어 본 것이다. 꼭 산문을 줄여서 시가 된다는 것은 아니다. 시 쓰기의 한 방법일 수 있다.
고속도로 밀리는 찻길,
옆 차선에 커다란 소나무 두 그루가 트럭에 실려간다
짐칸에 웅크리고 있는 가난한 내외 같다
잔뿌리들은 잘리고
먼저 살던 곳의 흙을 동그랗게 함께 떼어
얼기설기 새끼줄로 묶여 있다
흙이 말라 있다
저 흙도, 잘리 뿌리도 저 나무의 낡은 살림도구다
어디로 옮겨 심어질까
근근 어느 곳에 뿌리를 내릴까
가재도구를 정리하고
어디에서 늦은 저녁밭을 지어 먹을까
고영민 <이상> 전문
이렇게 의인적인 비유를 동원한 상상력으로 시가 만들어질 수 있다 연상, 비유, 유추는 상상력의 출발이다. 그리고 여기에 생명성을 부여하면 역동적이고 친근감을 높일 수 있다. 그래서 시인은 아낌없이 언제나 바다의 물고기가 되고 산 속의 짐승이 되거나, 들판의 풀잎이 되어야 한다.
여름내 활짝 피었던 꽃이 가을이 되자 까만 씨안으로 여물고 있다.
씨앗을 털어 이빨로 깨무니, 하얀 분가루가 나온다.
분칠을 하는 까만 어머니가 나온다.
어너미는 친척 결혼식이 있어
거울 앞에서 검게 그을린 얼굴에 연신 분칠을 한다
아무리 분칠을 해도 희어지지 않는다
고영민 <분꽃> 전문
고영민 시인은 위의 시 <분꽃>의 시작 과정을 이렇게 적고 있다.
오늘 아침 출근하려고 보니 아파트 앞 화단에 분꽃 씨가 까맣게 여물고 있다. 여름내 화사하게 피었던 분꽃이 지고 까맣게 씨앗이 매달려 있다. 저 까만 씨를 이빨로 깨물면 그 속에 하얀 분가루가 나올 것이라는 생각이 들엇다. 그러자 저 씨앗 속에 얼굴에 분을 바르고 있는 어머니가 잇다고 예기를 만들어본다. 어머니가 저 까만 씨앗속에서 친척 결혼식이 있어 얼굴에 분칠을 하고 있다. 여름내 밭에서 검게 그을린 얼굴,, 아무리 분칠을 해도 분이 먹지 않은 얼굴, 희어지지 않는 얼굴, 그래도 연신 어머니는 코끝과 이마 볼에 톡톡톡 분을 두르리고 있다.
좋은 시에는 반드시 드라마틱한 장면이 있게 마련이다. 독자들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서는 착상한 내용을 드라마틱한 줄거리롤 만들어 제시하는 것이 좋다. 고영민 시인은 드라마틱한 시를 만들기 위해서 '흥미', '의미', '재미'라는 3미(美)의 창출을 강조한다. 그리하여 드라마틱한 시는 경험이고, 진실함이고, 줄거리를 각조 있어야 한다고 전제하고, 독자의 관심을 끌 수 있는 흥미, 그리고 그 안에 의미를 집어넣을 수 있는 능력, 그리고 재미를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시인은 세상 속에서 현실적 자아로 살아가지만, 소재의 선택이나, 착상, 창작 과저의 순간만큼은 시적 자아(예술적 자아)로 변신하면서 이중적 자아로 살아가야 한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자기에게 맞지 않는 것일지라도 수용할 수 있는 포옹력을 길러야 하고 보다 예민한 감각도 키워나가야 한다.
종교적 이데올로기마저도 넓은 수용이 필요하다. 이를테면 기독교 신앙을 지닌 시인이라 할지라도 불교나 유교, 도교 등 다른 종교를 수용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사물을 제대로 정관(靜觀)하기 위해서는 올바른 깨달음, 시의 정각정행(正覺正行)의 비법을 따라야 한다는 것, 구상 시인의 말대로 "영혼의 눈에 끼었던 無明의 백태가 벗겨지며 나를 에워싼 萬有一切)가 말씀임을 깨닫습니다." 라는 넓은 소통 감각도 한 번쯤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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