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장 시적 소재의 선택과 착상] 1. 시의 종자와 착상

2018. 5. 2. 20:23☎시작법논리와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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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의 종자와 착상

 

  1) 시마(詩魔)의 영감, 착상의 의미

  한 마디로 시상(詩想), 착상(着想)이란 창작과 관련되는 머릿속에 떠로르는 생각이다. 그 시상은 어떤 특정 대상에 대한 것이거나 막연하고 추상적인 것일 수도 있고, 혹은 시의 한 구절이나 시의 한 낱말일 수도 있다. 그 시상이 어떠한 것이든 간에 그것은 한 편의 시를 지을 수 있는, 또는 한 편의 시를 직기 위한 모티프(morif)가 된다. 그러하기 때문에 착상이 떠오르면 그 시상을 '중심 이미지'로 잡아 두고 발전적으로 구상을 해야 한다.

  그런데, 시의 종자가 영감에 의해 구축되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매우 볼완전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수원지에 찾아온 철새들은 오래 머물지 않는다. 사람이 곁에 오거나 이상한 소리가 들리거나 하면 곧바로 날아가 버린다. 또 계절이 바뀌면 아주 먼 곳으로 날아가 버린다. 이처럼 시의 종자도 바람같이 왔다가 바람 같이 사라져버리는 유동성이 강한 것이다

  우리 속담에 '시작이 반'이라는 말처럼, 잡아 둔 시상(詩想)은 한편의 시로 형상화될 수 있다. 따라서 시 창작을 하려는 분들은 항상 메모지를 휴대하고 시상(詩想)이 떠오를 때면 그것을 반드시 적어 두어야 한다. 그렇치 않으면 소중한 시적 감응을 잃어버릴 수 있다.


  2) 시상 착상은 즉물적 체험의 영감에서 온다

  라이나 마리아 릴케(Rainer Maria Rilke)는 '시는 체험이다'라고 시를 정의 하였다. 그만큼 시적 상상력의 밑바탕이 되는 것이 체험이며, 그것도 보고 겪은 직접 체험이 보다 시적 형상화의 극대화를 가져 올 수 있다.

  대체로 소재 선택의 대상들은 그야말로 다양하다. 몇 가지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다.


ⓛ 자연을 소재로 하는 시 : 권혁소<곰배령>, 기수영의 <풀>, 이재무<밤나무>등

② 일상적 사건을 소재로 하는 시 : 광광규 <담장을 허물다>, 이영광 <골때리는 어

    머니> 등

③ 역사적 사실, 인물을 소재로 하는 시 : 김남주 <학살2>, 안도현 <서울로 가는 전

    봉준>, 김명인 <심청 누님> 등

④ 주변의 대상물을 소재로 하는 시 : 김후란 <스마트폰>, 전연옥의 <멸치>, 고진

    하 <뒷간>, 허영자의 <백작>, 임영조의 <성냥> 등

⑤ 추상적 관념을 소재로 하는 시 : 유치환의 <행복., 김현승의 <견고한 고독>, 오

    세영의 <첫사랑> 등


  바로 위와 같은 소재의 남다른 체험에서 시의 종자는 얻어진다. 체험에서 얻어진 시의 종자는 시상의 핵(核)이라 해도 좋다. 착상이 생명의 씨앗이라면, 그것은 정자나 난자와도 비견될 수 있다. 정자와 난자가 만나서 생명이 수태되듯이, 시인의 시안(詩眼)에 의해 시의 씨가 착상(着想)하기 위해서는 시인만의 남다른 사유(思惟), 영감(靈感, inspiraton), 감수성(感受性, senstivity)의 작용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여기에서 영감이라는 것, 혹은 상상이라는 것은 신비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꼭 어렵게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어느 대상을 즉물적으로 체험한 순간, 사물의 본체가 환하게 드러나면서 갑자기 뇌를 스치는 특별한 생각, 남다른 느낌, 강렬한 인상 등을 영감의 작용으로 보면 될 것이다.


가지런히 쌓아놓은 무 단에서

머리마다 푸른 무청이 다시 돋네

누워서도 위로 위로 피워 올리는

저건 욕망이 아니다


쓰러져도 버릴 수 없는 희망

패배해도 멈출 수 없는 걸음

최후까지 피워올리는 푸른 목숨

하늘 향한 투혼의 기도이다

박노해 <투혼의 기도> 전문


  위 시는 밭에서 무를 수확하여 집안에 쌓아둔 무 단을 본 체험에서 비롯된다. 곧 푸른 무청이 돋아나는 모습을 본 순간, 시인의 뇌리에 스치는 영감의 강렬한 느낌, 무언가 남다른 깊은 생각이 떠올라 쓴 것이다. 그 순간의 내용은 착상이든, 상상력이든 무러 불러도 상관이 없다. 여기에서 뿌리가 뽑힌 무 단에서 무청이 다시 돋는 현상은 외면풍경이요, "최후까지  피워 올리는 푸른 목숨 / 하늘을 향한 투혼의 기도"는 시인만의 특별한 느낌, 사유로서 내면 풍경에 해당한다. 물론 좋은 시가 되려면 내면풍경이 보다 중요하다. 이때 시인의 남다른 느낌, 깊이 있는 사유 곧 내면풍경은 평소 생각하던 이성적 판단을 넘어선다. 이럴 때 특별한 생각은 어디에서 오는지 감이 안 잡힐 때가 있다. 저암ㄹ, 먼 우주의 어느 별나라에서 오는지, 무의식의 층위에 숨어 있던 어떤 힘의 작용에 의한 것인지 도저히 판단이 서지 않는다.  어째든,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특별한 이미지가 이 시의 종자로 발전한 것이다.


  3) 외면풍경보다는 내면풍경의 남다른 시안으로 다가서야

  초보자 시절에는 '인상적으로 보고, 단순하게 느끼는 것을 쓰는 게 시다'라는 선입견이나 고정관녀에 빠질 수가 있다. 그러다 보면 컽핥기로 자기 주변 친구, 부모, 어린 시절 이야기 등을 둘러대는 정도에 불과하여 참신한 맛을 얻을 수가 없다. 결국 이런 시는 그렇고 그런 이야기, 넋두리의 나열등 진부하고 피상적인 정서에 머물러 아무런 감흥을 주지 못한다. 문제는 이렇게 써놓고 스스로 훌륭한 시를 썼다고 자기도취에 빠지는 경우들을 보게 되는데, 참으로 실망하지 않을 수 없다.

  시란 '사물에 정신의 옷 입히기'이다. 외면풍경의 제시는 내면풍격을 드러내 위한 모티브에 불과하다. 그러니까시에서 보다 중요한 것은 내면풍경으로서 나만의 느낌, 깊이 있는 생각, 의미부여, 상상의 셰계가 펼처져야 한다. 시란 나만의 감수성과 시안(詩眼) 으로 남다른 깊이의 생각이나 느낌을 치밀하고 정교하게 효과적인 언어로 형상화하는 예술이다. 시를 보는 높은 안목도 중요하다. 시란 아름다운 것만을 나타내는 것인가. 아니다. '자기가 보고 느낀 것을 아름답게 표현하는 게 시이낟.'라는 고정관념을 버려야 한다. 개성적으로, 재미있게 쓰려면 아름답게 쓰겠다는 생각에서 멀어져야 한다 아니 아름다움 속에서 오히려 추한 것을 발견하거나 낯설게 보고, 그걸 드러내야 한다.

  시의 힘은 대상에서 촉발된 내면의 상상세계에서 비론된다. 또 상상의 세계에서만이 대상의 순은 비의(秘意), 이야기를 찾아낼 수 있다. 시를 힘들이지 않고 개성적으로 잘 쓰려면, 상사으로 써야 한다. 상상으로 써야 발전이 빠르고 좋은 시를 계속 양산할 수 있다. 자기가 쓰고자 하는 소재에 대해 깊이 몰입하고 부단히 되새김질해야 한다. 이것이 시 쓰기의 필요조건이고 충분조건이다.


  4) 시의 종자는 날카로운 감정, 남다른 깊이의 사고이다.

   시의 종자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일반적으로 일상생활에서 얻은 한 교훈, 자연 섭리의 비밀, 하나의 이미지, 특이한 관념 등 다양한 것으로 나타난다. 착상에서 얻은 그것들은 모두 날카롭고 남다른, 특별한 어떤 정신의 깊이를 드러내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루이스(C,D Lewis)는 어떤 감정, 어떤 체험, 어떤 관념, 혹은 하나의 이미지나 한 생의 시 구절일 수 있다고 말했다. 곧 한 편의 시란 하나의 이름 붙이기이며, 그 이름이란 사람의 감정일 수도 있고, 정신일 수도 있고 생활일 수도 있다.

  시 쓰기의 첫걸음은 이러한 시의 종자를 찾아야 하는 것이다. 사실, 우리가 너무 현실에서 일상적 삶에 메이다 보면, 시의 종자를 찾기가 참 힘이든다. 머리 속이 세속적 욕망이나 명리로 가득하면 어찌 시가 찾아오겠는가, 소위, 마을을 비워둘 때 시가 찾아오는 것이다.

  그래서 때로는 한 번씩 시를 찾아 떠나는 여행도 필요한 것 같다. 제주도라도 훌쩍 떠나서 낯선 자영풍광을 보고, 사색에 잠겨보기도 하면 세속의 때를 씻어낼 수 있을 것이고, 그러다 보면 시도 찾아오지 않겠는가. 그렇다고, 시를 쓰겠다고 화가가 스케치 여행을 떠나듯이 꼭 떠나야감 시가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먼 곳으로 여행을 따나지 않아도 평소 사물에 관심을 갖고 사유하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시는 사소한 일상 체험에서 온다. 찐 감자를 버겨먹다가 감자의 생각을 읽어낸다든가. 칼로 무를 자르다가 도마의 넉넉한 사랑을 깨달을 수도 있고, 잠시 커피를 마시다가 찻잔 속에서 바다의 이미지를 발견해 낼 수도 있다. 아니면 퇴근길 버스 속에서 바깥 풍경을 바라보다가 배고픈 바람을 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만 있어도 될 것 같다. 개인에 따라 시가 찾아오는 장소나 때는 다르기 때문에 무엇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마음 한펴에 늘 시가 찾아오도록 비워두는 것만은 필요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