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3. 23. 14:59ㆍ☎시작법논리와전략☎
2. 시미학의 원리와 탄생
문학작품에서의 미학, 곧 아르다움은 어디에서 탄생하는가?
1) 반지, 진달래꽃 아름다운 거은 감각정 질서 외에도 가치지향적인 내용 때문이다.
아름다움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어떤 사람의 마음이 아름답다'라고 하는 것은 인간미로, 윤리학적 문제와 결부되고, '어떤 정교한 물리학적 수식이 아름답다'라고 하는 것은 학문적 진리와 관계되고, '황혼, 꽃잎 등이 아름답다'라고 하는 것은 자연미로 감각에 호소하며, '회화, 음악, 시가 아름답다'라고 하는 것은 '감각과 정신' 양자의 호소력이 작용한다.
결혼반지나 커플반지, 수정 같은 보석은 실용적 목적을 지니지 않으면서도 주의를 집중시킨다. 첫째는 반지 자체의 기하학적인 질서나, 색감 혹은 나름의 정교한 인공미를 갖고 있기 때문링 것이다. 진달래꽃의 자연미도 마찬가지다. 일차적인 아름다움은 감각적 색채나 형식적 질서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무언가 부족한 것 가탇. 오히려 실용적 목적을 지니지 않는 데도 왜 우리의 주의력을 끄는지 설명해야 되지 않을까. 이 의문은 형식적 원리 외에 내용과 연관된 미학적 접근의 필요성을 암시한다. 여기에서 어떤 대상의 '감각적', ''형식적' 아름다움은 그 대상의 '내용적 측면과 긴밀히 연관되어 있음을 말해준다. 반지나 수정이 아름다운 것 역시 그 기하학적 질서나 감가적 아름다움 이전에 어떤'내용'이란 것을 환기시켜주기 때문이다라고 할 수 있다. 가령, 어머니가 생일 선물로 마련해 준 반지가 있다. 그 반지 속에는 어머니의 마음, 기원, 보호 등 여러 가지 의미(내용)가 담겨 있다. 만약 이 반지를 잃어버리고 다른것으로 대체하면 가치가 떨어진다. 다시 말하면 감각적 시각의 아름다움과 동시에 내용적 측면이 환기하는 그 정신적 무엇을 의미하는 요소가 있기 때문에 반지가 아름다운 것이다.
그러면 진달래꽃의 아름다움은 어떻게 이해할까. 진달래꽃도 1차적으로는 꽃잎 모양이며, 색깔 등 감각적인 아름다움에서 출발한다. 그런 다음 저마다 진달래꽃을 보는 순간, 과거의 경험을 환기한다. 고향의 뒷동산을 연상하거나 사춘기 때 받았던 한 다발의 진달래꽃 뭉치를 회상한다든가, 화전이람 음식 등 나름대로 꽃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떠오르게 된다. 이런 것들이 진달래꽃을 보는 순간 함께 촉발되어서 아름다운 것이다. 황혼도 그렇고, 누런 들판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시적 소재를 선택했을 때 순간 떠오른는 어떤 내용, 정신은 그 어떤 실용적 목적을 넘어설 정도의 어떤 가치를 담고 있기 말련이다. 바로 그 때문에 우리는 실용적 목적을 넘어설 정도의 어떤 가치를 담고 있기 마련이다. 바로 그 때문에 우리는 실용적 목적이 별로 벖는 반지나 수정, 진달래꽃을 소중히 여기게 되는 것이며, 곧 그 속에 환기하는 내용들이 있어 어떤 막연한'이상'의 가치를 지니는 것이다. 그래서 반지, 수정, 진달래꽃, 황혼 등 자연은 관찰자의 정신적 내용이 가미되어 더욱 아름답다.
꽃잎 속에 감싸인 황금벌레가
몸 오그리고 예쁘게
잠들 듯이
동짓날 서산 위에
삐죽삐죽 솟은 설악산 위해
꼬부려 누운
초승달
산이 한 송이 꽃이구나
지금 세상 전체가
아름다운 순간을 받드는
화엄의 손이구나
이성선<한 꽃송이> 전문
위 시에서 시인이 본 것은 "삐죽 삐죽 속은 설악산" 위의 "꼬부려 누운 초승달"이다. 시인은 이를 내면적 직관으로 '산'을 "한 송이 꽃"으로, '초승달'을 "꽃잎 속에 감싸인 황금벌레"로 새롭게 치ㅗ한한다. 하나의 견자(見者)로서의 인식이다. 시인의 이러한 감가적인 형상은 그대로 머물지 않고 화자의 정신, 곧 가치지향적 내용이 부여되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세상 전체가"가 곧 "아름다운 순간을 받드는 "화엄의 손"이라는 절대 긍정의 깨달음의 세계에까지 환기시킨다.
미적 대상이 실제 삶과 유리된다는 측면에 초점을 둔 것이 칸트의 "무목 적성의 목적성" 원리이다. 우리가 어떤 대상을 보는 그 자체에 있는 경우, 우리는 어떤 쾌감을 느낀다. 가령 골동품, 수석 설치 미술, 쇼 윈도우의 멍성, 꽃밭으로 만들어 놓은 승용차 등, 이런 것을 '오브제(objet)라고 하는데, 곧 실용적 목적, 일상에서 일탈한 사물들에서 아름다움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이를 오브제의 미학이라 할 수 있는데, 현실에 밀착된 실용적인 목적으로부터 해방된으로써 오히려 자유스러움과 즐거움을 만끽하게 되는 것, 여기에서 미학이 탄생되는 것이다. 낯설게 하기의 미학도 이와 마찬가지다.
2) 현실의 모습을 진실하게 그려내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도 있다.
보편적으로 인간은 무질서하고, 불쾌하고, 더러운 것보다는 질서 있고 쾌적하고 깨끄한 것에 더 가치를 부여한다. 수정이 아름다운 것은 그 형식적, 감각적 질서와 함께 내용이 환기하는 어떤 이상적 가치의 정신이 있기 때문에 아름답다고 했다. 이런 원리에 의해서 수정, 꽃잎, 황혼 등의 자연물은 감각적인 형상 자체가 이상적인 상태나 연상으로 환기키켜줄 때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그런데 소설이나 시 장르에서 많이 보이는 비참한 현실이나 고통을 형상화시킨 작품에서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원리는 무엇일까; 헤겔이나 루카치같이 인식적 측면을 중시하는 미학자들은 그 작품들이 "질실하기 때문에 아름답다"고 말한다. 다양한 인생에서 때로 아름다운 미담보다 고통스런 삶을 진실하게 형상화한 작품이 더 감동을 주는 경우가 허다하다. 여기에서 알 수 있는 사실은, 아름다움이란 오직 이상적인 가치를 형상화 할 대 생겨나는 것만은 아니며, 현실의 모습을 진실하게 그리는 일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현실의 진실성은 아름다움의 문제와 어떻게 연관되는 것일까. 이상적 지향은 현실의 진실성과의 연관 속에서만 들러날 수 있다. 왜냐하면 이상이란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실재보다 더 나아지려는 열망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실'을 진실하게 형상화하는 작업과 '인간'의 가치 지양(이상)을 드러내는 일도 예술작품의 한 축이 되는데, 자연주의 소설이나 민중시 등은 바로 '진실함'을 파고들어 '라므답게' 느껴지는 작품들이라 할 수 있다.
전쟁 같은 밤일을 마치고 난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거운 소주를 붓는다
아
이러다간 오래 목 가지
이러다간 끝내 목 가지
설은 세 그릇 빰밥으로
기름투성이 체력적을
전결을 다 짜내어 바둥치는
이 전잭 같은 노동일을
오래 못 가도
끝내 못 가도
어쩔 수 없지
<중략>
늘어쳐진 육신에
또다시 다가올 내일의 노동을 위하여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거운 소주를 붓는다
소주보다 독한 깡다구를 오기를
분노와 슬픔을 붓는다
어쩔 수 없는 이 절망의 벽을
기커코 깨뜨려 소구칠
거치를 땀방울, 피눈물 속에
새근새근 숨쉬며 자라는
우리들의 사랑
우리들의 분노
우리들의 희망과 단결을 위해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거운 소주잔을
돌리며 돌리며 붓는다
노동자의 햇새벽이
속아오를 때까지
박노해<노동의 새벽> 부분
위 작품은 전체 5연으로 구성되어 있다. 노동이 끝난 후에 피곤함을 달래기 위해 소주를 마시며 이러다간 오래 못갈 것이라는 위기감을 느끼는 1연 현실에 대한 체념과 현실을 벗어나려는 욕망과 현실 사이의 숙명적 갈등을 드러낸 2,3연, 그리고 현실에 대한 체념을 넘어 4연에서는 그 분노가 확산 된다. 곧 여기까지는 가난 속에 살아가야 하는 운명과 질긴 목숨 때문에 마치 목숨을 걸고 싸우는 전쟁 같은 노동일을 어쩔 수 없다고 노동자의 '현실적 치지'를 실랄하게 토로한다. 하지만 5연에서는 이러한 현실을 극복하고자 하는 '이상적 지향 의지'가 서려 있다. 곧 "햇새벽이 / 솟아오를 때까지" 희망과 단결의 의지를 다니는 화자의 모습으로 변모된다.
한 마디로 문학작품에서는 '현실'을 진실하게 드러내는 일과 '이상'을지향하는 미적 정황이 불가피하게 얽혀 있다. 이상을 상실한 채 어두운 현실을 암울한 그대로 드러내는 것은 결코 진실하지 않으며, 또한 아름 답지도 않다. 반대로 현실을 무시하고 이상적인 모습으로만 치장하는 것도 절대 아름다울 수 없으며 진실하지도 않다.
이처럼 예술작품에서는 인식론적 측면(현실의 진실한 인식)과 가치지향적 측면(이상적 가치의 지향)이 긴밀하게 맞물려 있다. 곧 진실을 드러내는 예술작품의 아름다움이란 현실과 이상의 긴밀한 연관성, 혹은 상호침투적 '변증법적 관계' 속에서만 실현된다고 할 수 있다.
3) 시의 미학은 외면풍경의 내면적 의미부여에서 온다.
산에는 반드시 언덕이 있다. 언덕을 만나면
누구나 넘어보려 한다. 그것이 인간이다.
강우식<언덕> 전문
우리 주변의 현실에서 존재하는 것들은 모두 존재의 의미를 품고 있다. 그것들이 의미 있게 다가 오지 않는 것은 평소 그 존재에 대한 관심, 사랑, 의미부여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고 겪은 것에 대한 남다른 깊이의 의미부여 정신, 혹은 연상의 관계짓기나 상상적 정감을 가져야 한다. 여기에서 시 미학이 탄생되고 결국 울림, 감동을 받게 되는 것이다. 곧 대상에 대한 자기 내면적 사유(思惟)의 되새김질과 상상, 이것이 시 작품의 조형미를 결정한다.
시골집에서 박스에 찰옥수수를 담아
소포로 보내왔다
포장이 단정하다
옥수수를 내려다 보니
옷수수는 단단히 스스로를 포장하고 있다
몇 겹 포장지에 겹 싸여 있다
포장지를 벗기니
그 안, 다칠까
또, 실뭉치가 가득하다
자신이 얼마나 귀하여
옥수수는 이토록 스스로를
꼭 감싸 안았을까
나는 나를
이만큼 사랑하지 못했다.
고영민 <푸른 고치> 전문
위 시에서의 외면 풍경, 곧 시인이 본 것은 '시골집에서 소폴로 보내온 찰옥수수'이다. 화자는 단정하게 옥수수가 포장된 박스를 본 다음, 옥수수를 들여다보며 스스로 몇 겹 이파리로 포장된 옥수수, 그 다음 도 실뭉치로 둘러싸인 옥수수 몸통을 관찰한다. 표제가 "푸른 고치"로 붙여 있듯, 누에 고치를 연상하리만큼 자신의 몸을 보호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나는 나를 / 이만큼 사랑하지 못했다"는 깨우침의 결구를 얻는다. 바로 화자 시점의 내면적 의미부여다 자기를 사랑하지 않은 사람은 타인의 사랑도 못받고 나아가 타인에 대한 사랑은 물론, 대인관계도 원만치 못하다. 특히 시인은 자기 자신뿐 아니라 세계존재의 모든 것을 사랑하고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그래야지 좋은 시도 얻을 수 있다.
다음은 '개똥'을 소재로 한 시이지만, 부처의 참석까지도 연상하게 한다.
개똥도
찬밥처럼 식는다
내리는 눈을 핥아 먹고
찬 속이 얼어붙는다
몸을 움직여 앉은 자리를
바꿔 보고 싶지만
집이 먼저 몸을 묶어버린다
제 있는 곳이 집이지 싶어
자꾸만 바닥으로 뛰어내리는 개똥,
마당 귀퉁이에 바위 절벽처럼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다
개똥은 오늘도 철학을 한다.
유강희 <개똥철학> 전문
개똥, 이 더럽고 냄새나는 물건에서 무슨 철학을? 그러나 시인은 견자(見者)의 눈을 통해 통찰의 세계로 우리를 이끌어 간다. 먼저 시에서 말하는 '눈오는 개똥'의 모습을 바라보자. 겨울날 길바닥에 '찬밥처럼 식어가는 개똥'이 있다. 식어갈 때 개똥은 점점 내려앉아가며 자리를 잡는다. 차갑다고, 눈이 온다고 젼혀 옮겨갈 생각이 없다. 오히려 숙명적을 제 집인 양 주어진 눈을 핥아먹으면서 내면까지 얼어붙는다. 그리고는 부처님처럼 가부좌를 틀고 앉아 참석을 하는지, 무슨 깊은 사유의 명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무슨 권력과 욕망이 있겠는가. 아니 무소유의 길을 숙명처럼 받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런 보여주기를 통하여 오히려 시인은 반문한다. 하찮은 개똥도 자기 본분을 지키며 철학(?)을 하고 있는데, 그대라는 존재, 21세기 우리 군상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화두를 던지고 있다
반 평 조립식 건물
검은 뿔테안경의 송씨가 문자를 발굴하고 있습니다
반창고 감긴 손으로 문자의 골격을 마춰 나갑니다
고분에서 나온 뼈를 다루듯 조심조심
후욱 숨을 불어 넣습니다
그가 새긴 이름들이 종이 위에서 일제히 살아 움직입니다
첫 이름을 가진 여학생의 두근거림
직인 한 방에 집 날린 사내의 눈물
2년 전 가출한 아내의 악다구니도 있습니다
그 잔소리 여지껏 파내지 못해 가슴 깊숙이 박혔습니다
벼락 맞은 대추나무에 수없는 복을 새기느라
그의 뼈가 덜거덕거립니다
어느 틈에 함박눈 한 장이 땅에 깔렸습니다
가게 앞으로 목도장과 뿔도장을 같은 사람들이 바쁘게 지나갑니다
발자국을 꾹꾹 찌는 행인들
편의점 아저씨가 빗자루로 크고 작은 발도장을 지우고 있습니다
송시의 가게 앞 차디찬 백지 한 장도 순식간에 구겨졌습니다
봄이 오면 건너편에 컴퓨터 도장집이 생긴다고,
육교가 철거되기 전 마지막 겨울
오늘만은 불빛이 뜨겁습니다
어둠이 소복소복 내리는 저녁
뼛가루 같은 글자들이 하늘에서 쏟아집니다
그는 육교 밑에서 낯선 이름들을 발굴 중입니다
이해원 <육 교 밑 고고학자> 전문
이시는 도장집 풍경을 섬세하게 묘사하면서 의미부여의 진술로 입체적인 시를 만들어내고 있다. 외면 풍경과 상상력이 개입된 의미부여 부분으로 나누어 살펴보기 바란다.
도장집 풍경에는 고고학자로 볼 만큼 도장을 파는 화자의 현미경 같은 심성이 깔려 있다. 먼저 "후욱 숨을 불어 넣"는 카롤 새긴 이름들에는 "첫이를 가진 여학생의 두근거림"의 환희가 있고, "직인 한 방에 집 날린 사내의 눈물"이거나 "2년전 가출한 아내의 악다구니"도 있다. 그래서 화자는 "그 잔소리 여지껏 파내지 못해 가슴 깊숙이 박혔습니다"라고, 도장집 송씨의 안타까운 마음을 토로한다. 함박눈 내리는 거리를 백지로 본 비유, 금방행인들의 작은 발도장이 지워지듯 순식간에 구겨졌을 소시민의 안타까운 마음이 이미지로 중첩된다. 칼로 파고 만드는 도장집은 이제 컴퓨터 도장집이 생겨나면서 폐업을 해야만 한다. 육교도 철거가 되거 가 되고 거리가 바뀌는 시대적 변화의 아픔도 숙명적으로 감내해야만 한다. 도장을 파는 송씨를 '고고학자'로 본 시인의 착상이 너무 재미있다. 특히 눈여겨 볼 일은 사이사이에 외면풍경에 대한 화자의 상상과 의미부여가 곁들여서 비빕밥처럼 시가 정감 있게 엮여지고 있다는 점이다.
4) 비유로 낯설게 처리하여 새로움의 미학을 형성한다.
원래 예술의 목적은 일상의 습관 같은 자동화되어 낡아버린 사물이나 행동을 낯설게 함으로써 제 본래의 모습을 회복시켜 충격과 신선함을 주고, 새로운 생각으로 확장시켜 주는데 있다. 그리하여 예술은 생의 감각을 되찾게 해준다. 곧 이와 같은 예술의 기법은 사물을 낯설게 하고, 형태를 어지럽게 하고, 지각에소요되는 시간을 연장시킴으로써 한 대상이 예술적임을 의식적으로 경험케 한다.
낯설게 하기의 한 방법으로 주어진 대상의 고유한 속성을 비유적으로 전이, 의미를 확장시켜 전혀 다른 대상으로 만들어 갈 수 있는데, 여기에서 새로움의 미학을 얻을 수가 있는 것이다. 가령, 아래의 시에서 '머루'를 '유두'의 이미지로 비유하여 새롭게 이미지를 확장, 상상의 세계를 맛보게 하는 장치 같은 것이다.
새끼를 두 번 지우고 유두가 검어졌대지
유두가 검은 년은 남자 복이 없다는데,
봐라 네 년도 나처럼 남자 복은 글렀네
넝쿨에 기대 앉아
눈 감고 생각하건대
한 때 네 눈(目)이 생기던 그곳을
머루라 하고,
아예 캄캄한 네 이름을 머루라 하고
너도 나처럼
유두가 검고,
머루는 익고,
나는 새끼를 두 번 지우고
유두가 검어졌다지
고영민 <머루> 전문
시의 미학을 탄생시키는 비결은 상큼한 비유에 있다. 보시라. 검은 머루가 애를 낳은 여자의 유두와 같지 않은가? 분홍빛 처녀의 유두와 달ㄹ, 검은 유두엔 일종의 한과 서글픔이 서려 있다. '사람'을 그냥 사람이라고 하면 낯익은 인식이나 "나룻배"라 하면 이는 분명 낯설은 인식이다. 또 '거리의 가로수'는 뿌리, 줄기, 잎으로 되어 있는 단순한 나무가 아니라 "늘상 누워 만 있는 땅의 입부가 그 지루함을 견디다 봇해 어느 날 벌떡 일어선 모습"으로 볼 수 있다.
길가 축대를 기어오르다 말고 담쟁이가 물들어 가고 있었다. 석양이 비껴가는 넝쿨 끝에서 이 계절을 기억해 둬, 기억해 두라구!
창의 방충망까지 타고 올라와 내 책상을 들여다 보던 이파리들, 수줍게 발개지며 달라붙던 어린애 이빨 같던 것들,
인간은 자기 집을 소유할 권리가 있는 줄 알았다. 그게 아니라는 걸 가르쳐 준 집, 빚에 몰려 급히 팔아버린 집 매매계약서에 도장 꽝, 지고는 다시 안 보려고 멀리 돌아 지나다니던 담쟁이의 집.
최정례 <담쟁이의 집> 전문
시의 어느 한 부분만이라도 낯설게 장치하여 자도오하된 지각에서 비자동화된 지각으로 참신한 미학을 얻을 수가 있다. "창의 방충망까지 타고 올라와 내 책상을 들여다보번 이파리들, 수줍게 발개지며 달라붙던 어린애 이빨같던 것들"에서 보듯, '담쟁이 넝쿨의 이파리'드링 '어린애 이빨 같던 것'으로 부분적으로 치환 시의 미학을 구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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