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시의 언어] 4. 일상어보다 고도로 조직된 image 언어

2018. 1. 30. 18:26☎시작법논리와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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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일상어보다 고도로 조직된 image


  리차즈(I.A.Richards)가 말하는 과학적, 정보적 언어는 한 마디로 개념의 표시에 의존한다. 객관적이며, 실용적이며, 표시적이며, 지시적이며, 보편적이며, 직접적이다. 그런데 정서적 언어(문학적)는 주관적이며, 비실용적이며, 내포(함축)적이며, 특수하게 쓰이며 간접적으로 쓰여진다는 점에서 좋은 대조를 보인다. 또한 시가 보통의 언어에서처럼 말의 뜻이나 논리에 의존하는 경우에도 보통의 언어에서보다는 비약적이거나 날카로운 통찰의 세계를 보여준다.

  이와 같이 시는 언어의 몇 가지 요소에 의존하고, 그리고 그 몇 가지 요소의 유기적인 관련에 의존하는 점에서 있어, 보통의 언어보다 고도로 조직되고 내용이 형상화된 언어로 쓰여진다.


머언 山 靑雲寺

낡은 기와집


산은 紫霞山

봄눈 녹으면


속잎 피는 열두 굽이를

속잎 피는 열두 굽이를


靑노루

맑은 눈에


도는

구름


박목월 <청노루> 전문


  이 작품은 한 폭의 담수채(淡水彩)의 동양화 같은 느낌을 준다. 그러나 이 작품의 말뜻을 산문적인 보통의 언어로 옮겨 놓으면 그 느낌은 사뭇 달라진다. 


산에서 봄눈이 녹을 무렵이다. 자하산에 있는 청운사의 낡은 기와집이 멀리 보인다. 느릅나무 속잎이 피어나는 열두 굽잇길을 한 마리의 청노루가 내려오는데, 그 눈에 구름이 비쳐서 돈다. 

  우리는 여기에서 앞의 시처럼 작품이 주는 정도의 느낌이 다름을 알 수 있다. 보통의 언어가 주는 의존하는 말의 뜻은 이와 같이 시가 전달하는 의미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청노루'라는 작품을 그림에 비유한다면, 거기에 나오는 말들의 보통의 뜻은 그림의 윤곽만을 보여줄 뿐이다.

  어느 것이 상상이나 연상의 힘을, 강하게 주고 환기력이 높은가. 시에 있어서의 말의 뜻은 거의 언제나 리듬이나 이미지나 어조와 유기적으로 관련됨으로써만이 시의 의미에 이바지한다.

  시의 언어는 치밀하고 예민하고 매우 정교하다. 그래서 내용에 알맞은 적확한 낱말을 써야 한다. 프로베르Gustave Flaubert)가 "한 가지 생각을 표현하는 데는 오직 한 가지 말밖에는 없다(一物一語說) the single words theory)라고 한 것은 의미는 최후로 선택된 최상의 언어, 최적의 언어, 즉 적절한 유일어를 찾으라는 말이다. 이런 점에서 시어가 지녀야하는 정확성이란 단 하나밖에 없는 낱말을 써고 고도로 조직된 유기체적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진주(晋州)장터 생어물(生魚物)전에는

바닷밑이 까릴는 헤다진 어르름을,

울엄매의 장사 끝에 남은 고기 몇 마리의

빛 발(發)하는 눈깔들이 속절없이

은전(銀錢)만큼 손 안 닿는 한(恨)이던가

울엄매야 울엄매,
별밭은 또 그리 멀리
우리 오누이의 머리 맞댄 골방 안 되어
손시리게 떨던가 손시리게 떨던가,
진주 남강(南江) 맑다 해도
오명 가명
신새벽이나 별빛에 보는 것을,
울엄매의 마음은 어떠했을꼬.
달빛 받은 옹기전의 옹기들같이
말없이 글썽이고 반짝이던 것인가.




박재상 <추억(追憶> 전문


  위 시 <추억>에서는 화자의 가난했던 어린 시절과 어머니의 한(恨)을 섬세한 언어와 서정적 감각으로 형상화한 시이다. 이 작품에서 경상도 사투리풍의 '울엄매', '눈깔' 등의 시어는 다른 낱말로 썼을 때, 시의 맛이나 감흥이 나지 않은다. 바닷가에서 저녁 늦게 힘들게 그러면서도 생동감 있게 살아온 어머니의 모습을 생생하게 전달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적절한 시어를 선택했다고 본다. 만약 '어머니', 눈(눈알)'으로 표현했다면 이 시의 참다운 맛을 잃어버렸을 것이다.

  원래 서정시는 노래에서 출발했다. 그래서 전통적인 서정시는 리듬을 중요시 하고 언어의 음악적 성질을 중시했다. 특히 19세기 상징파들은 너무나도 시의 음악성을 강조한 나머지 시가 가지는 여러가지 의미를 망쳐버렸다. 즉 시가 무의미해졌고 장난과 놀이로 전락하고 말았다. 다시 말해 언어의 의미성이 다치지 않을 한도 내에서 언어의 음악성을 시도해야 한다.


해와 하늘빛이

문둥이늘 서러워


보리밭에 달 뜨면

애기 하나 먹고


꽃처럼 붉은 울음을 밤새 울었다.

서정주 <문둥이> 전문


  위 시는 단형의 시로 고도로 정체된 의미와 리듬으로 형상화되고 있다. 그래서 행간에는 드러나 있지 않은 깊은 의미들이 숨어 있다. 상상력이 없이는 시의 맛을 깊게 느낄 수가 없다. 이 시는 천형(天形)의 저주받은 운명을 지닌 문둥이의 모습을 빌어 인간의 본성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애기 하나 먹고"는 '문이들'이 병을 치료하기 위해 어린아이의 생간을 내어 먹는 다는 속설인데, 과감하게 채용하고 있다. 실제의 상황이 아니라 '문둥이'의 져주받은 운명의 비극성을 강조하기 위한 표현이다. "꽃처럼 붉은 울음"에서는 화자의 심정을 매우 효과적으로 처리, 처절하고 비통한 모습이 관능적으로 다가온다. 아파의 구절과 관련해서 '입가에 붉은 피를 묻힌 채 밤새워 울었다'로 해설할 수도 있다. "애기 하나 먹고"라는 끔직한 범죄적 이미지와 '꽃'이라는 심미적 대상을 결합시키는, 추와 미를 결합시킨 독특한 시적 상상력을 보여 준다.

  우리는 언어로 사고하고 언어로 삶을 표현하거나 환성한다. 그러나 시인이 표현하고 완성코자 하는 세계는 일상적인 의미와는 다른 창조의 세계이다. 언어에 종속되는 것이 아니라 언어로 다시 태어나고자 하는 것이다.

  시인은 일반인들과는 다르게 언어와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어 언어의 객관적 일반적 지시성보다는 주관적인 창조성과 음악성을 믿고 있다. 시인은 언어의 내부에 켜빈 불 뿜는 이미지를 상냥하는 사람들이다. 시인에게 있어서 언어는 도구나 수단이 아니라 목적 그 자체이다. 이 불가분의 관계에 의해 시인은 언어에 종속되지 않고 언어와 함께 숨 쉬고 살아가며 새로운 삶을 창조하는 동반자가 된다.

  그런데 시인은 이미 언어가 만들어 놓은 상황에 대해서 다시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상황을 새롭게 한다. 다시 말하면 일상적 의미와는 다른 차원의 언어를 느끼게 하는 것이다. 그것은 언어의 내포적 의미를 확산시키는 작업이다. 언어에 새로운 질서를 부여하고 일상적인 삶 또한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한다.

 


문광영 지음 <시 작법의 논리와 전략> 중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