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 18. 17:53ㆍ☎시작법논리와전략☎
14017_장려상_지리산_뱀사골가을_옥맹선_D
10. Tension의 미학을 보여주는 시
시에서 텐션(tension)이란 '외연(extension)과 내포(intension) 사이에서 벌어지는 탄력, 긴장감, 장력, 심미적 거리'를 말한다. 신비평주의자 테이트(Tate)는 좋은 시의 의미구조를 바로 "텐션"의 작용 여부에서 찾는다. 곧 그는 시라는 것을 관념이나 사상, 감정을 전달하는 도구로 생각지 않았다. 만약 그가 시를 전달의 한 수단으로만 생각했다면 외연의 결합으로 이루어지는 단순한 의미망의 구조가 보다 능률적이라고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데이트는 시의 언어를 도구로 보지 않고 하나의 사물로 생각했다. 그래서 좋은 시의 의미 구조를 '내포와 외연의 가장 먼 양극에서 모든 의미를 통일한 것'으로 보았다. 그러니까 이상적인 텐션이란 외연과 내포가 주는 보다 넓고 큰 입체적인 의미망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데이트가 말하는 좋은 시의 의미구조로서 텐션은 쉬클로브스키(Shklovsly)같은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이 말한 '낯설게하기'(defamiliarization)나 신비평주의자인 리차즈(I.A.Richards)의 "포괄의 시"(inclusive poetry)와 맞닿아 있다. 곧 상사성의 시어들이 충돌과 갈등을 일으키는 체험의 내용들을 포괄 종합해야 한다는 이론과 그 맥을 같이한다. 이러한 이론의 시적 적용의 배경에는 현대인의 복잡한 심리 표현에 근거한다. 곧 20세기 이후 도시문명 속에서의 현대 시인은 누구보다도 심리적 갈등과 모순 충돌의 의식을 체험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현대 시인이 그러한 내면세계를 표출하는 방식으로 시적 텐션을 주는 것이 적절하다고 본 것이다.
나무속에
보일러가 들어있다 뜨거운 물이
겨울에도 나무의 몸 속을 그르렁그르렁 돌아다닌다
내 몸의 급수 탱크에도 물이 가득 차면
詩, 그것이 바람난 살구꽃처럼 터지려나
보일러 공장 아저씨는
살구나무에 귀를 갖다대도
몸을 비벼본다.
안도현(시인) 부분
시를 쓰는 사람은 세상의 아무 것이나 될 수 있다. 시인 특유의 상상으로 세상의 모든 사물과 동화될 수 있고, 갖가지 직업을 다 섭렵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시에서 시인은 보일러 공장 아저씨가 된다. 그리고 겨울나무 속에서 보일러를 발견하는 사람이 시인이다. 시 또한 죽어 있는 듯한 겨울나무 속을 그르렁그르렁 돌아다니다가 봄이 되면 기어이 그 따뜻한 색깔의 살구꽃을 피운다. 그렇게 이 시는 이중적 의미의 탄력, 긴장을 보여준다. 일차적인 텐션은 본문 속에서 벌어지는 "나무 속에 / 보일러가 들어" 있어 "뜨거운물"이 "나무의 몸 속"을 돌아다니기 때문에 겨울나무가 죽지 않고 견딘다는 시적 장치이다. 나아가 이차적 텐션은 제목의 "시인"이라는 존재와 본문에서 볼 수 있는 겨울나무 속에서도 늘 뜨거운 정신을 발휘"하는 존재 사이에서 드러나는 탄력, 긴장감이다. 그래서 이 시에서의 '시인'의 존재는 매우 낯선 상상의 포괄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시적 텐션은 그 전위차가 상상력의 등가성을 벗어나지 않는 것이 좋다. 그래야 텍스트와 독자의 상상력과 밀고 당기는 관계에 놓여 시적 효과를 증대시킬 수 있다.
봄날
지표로 솟아나온 새싹은
불꽃이다
흙 속에서
겨우내 지열(地熱)로 달아오른 밀알들이
일시에 터지는 폭발
신(神)들의 성냥개비다.
오세영 <봄날> 부분
시인은 '봄날' 지표를 뚫고 올라오르는 흙 속의 씨앗들을 본다. 순간 시인의 눈에는 그 씨앗들이 "겨우내 지열(地熱)로 달아오른 밀알들이 / 일시에 터지는" 폭약이라고 생각한다. 이어서 그 상상은 "신(神)들의 성냥개비"라고 비약적으로 전개된다. '싸앗'과 '폭약' 사이, 그리고 "신들의 성냥개비"라는 전위차의 이미지에서 강렬한 텐션, 탄력의 미학을 읽게 된다. 이들 원거리 이미지에서 독자로 하여금 심리적 거리가 생겨 환기력과 상상력, 호소력을 배가시켜 준다.
부들레르(Baudelaire)는 "미(美)란 언제나 엉뚱하다"고 했다. 그러니까 낯선 사물 인식의 확장적 비유는 텐션을 형성하는 주범이 된다. 텐션의 시를 쓰기 위해서는 사물을 반듯하게 보지 말고 거꾸로 보라. 아름다운 곳에서 추함이나 치열함을 들여다보는 것도 좋은 일이다.
이렇게 시의 참맛을 얻기 위해서는 긴장관계에 있는 서로 다른 상황, 사물, 사실 등 예기치 않은 대상을 의미 있게 만드는 언어적 조합, 혹은 조화에서 가능하다. 연관되는 우연한 이미지 혹은 관념들의 연상, 상상이 환기하는 폭과 깊이, 자장의 거리에서 촉발하는 것이다. 이러한 텐션의 언어젹 상상놀이(연상놀이)에 의한 정서적 즐거움은 무엇보다 의미 있게 연상되는 서로의 대상, 혹은 비유적 병치, 치환에 있다고 할 것이다. 엉뚱하고 낯선 사물(언어)이미지의 ㅣ결합에서 오는 의미론적 이동의 내용이나 전위차의 기발한 착상이 상상력을 자극하면서 시를 재미있게 만든다.
문광영지음 <시 작법의 논리와 전략> 발췌
'☎시작법논리와전략☎'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3장 시의 언어] 2. 불완전한 언어로 완전한 효과를 보는 언어 / 서정주<菊花 옆에서> (0) | 2018.01.30 |
---|---|
[제2장 시의 관점과 가치 기준] 1. 현실 반영의 모방론적 관점 (0) | 2018.01.20 |
[제1장 좋은 시의 요건] 9. 통찰의 세계를 보여주는 시 / 함민복 <나사못> / 김선태 <卒> (0) | 2018.01.18 |
[제1장 좋은 시의 요건] 8. 깨달음과 감동을 주는 시 / 김종철 <고백성사> (0) | 2018.01.18 |
[제1장 좋은 시의 요건] 7. 상상력이 풍부한 시 / 오세영 <낙엽> 전문 (0) | 2018.01.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