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 16. 22:45ㆍ☎시작법논리와전략☎
7. 상상력이 풍부한 시
상상력이 없으면 시의 존재, 시의 성립은 불가능하다. 좋은 시는 체험과 상상력이 조화를 이루면서 경험이나 감동의 영역을 무한히 확장시켜주는데, 바로 상상력은 시의 맛을 내주는 핵심이 된다. 시가 체험에 대한 '정신의 옷 입히기'라고 한다면, 그 정신, 사유는 바로 시인의 상상력인 것이다.
나의 부실한 연상력, 상상력을 어떻게 키워나갈 것인가? 우선 내 마음을 리모델링할 필요가 있다. 일체의 선입견이나 고정관념, 아집과 고집을 아낌없이 헐어내고 새롭게 하기 위해서는 지각의 갱신화, 착란의 눈을 가진 견자가 되어야 한다. 말하자면 시인으로서의 또 다른 마음의 눈을 가져야 한다는 것, 곧 자기로부터의 혁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시즌 대 바겐세일!
농산물 판촉 전단지가 곳곳에 뿌려진다.
예년에 없었던 풍작으로
백화점 판매대는 색색의 과일들로
넘처나고 있다.
가을
오세영 <낙엽> 전문
시 <낙엽>는 순전히 연상적 비유로 이루어진 시이다. 순간의 착상을 카메라로 잡은 것처럼 생동감이 넘친다. 시인이 가을 거리에서 본 것은 대 바겐세일을 알리는 "농산물 판촉 전단지"들이다. 거리에서 나부끼는 이 농산물 전단지 이미지는 판매대의 '색색의 과일"로 전이된다. 결국 울긋불긋한 "낙엽"들로 치환된 풍성한 '가을'의 이미지를 읽는 것이다.
14012_장려상_설악산_울산바위와은하수_김대호_D
산과 산 사이에는 골이 흐른다. 오른쪽으로 돌아가는 골과 왼쪽으로 돌아가는 산이 만나는 곳에서는 눈부신 햇살도 죄어들기 시작한다 안으로 파고드는 나선은 새들을 몰고 와 쇳소리를 낸다 그 속에 기름 묻은 저녁이 떠오른다 한 바ㅏ퀴를 돌 때마다 그 마큼 깊어지는 어둠 한번 맞물리면 쉽게 자리를 내어 주지 않는다 마지막까지 떠올랐던 별빛마져 쇳가루로 떨어진다 얼어붙어 녹슬어간다 봄날 빈 구멍에 새로운 산골이 차 오른다.
송승환 <나사>전문
위 시는 낯설고도 엄청난 상상력이 개입되어 있다. 제목에 드러나 있듯 중심 이미지는 '산골과 나사'이다. 나사의 모양은 골이 파여져 무수한 원 운동으로서의 속성, 기능을 한다. 산과 산 사이에는 골이 흐른다. 오른쪽으로 돌아가는 골과 왼쪽으로 돌아가는 산이 마나는 곳에서는 눈부신 햇살도 죄어들기 시작한다. 안으로 파고드는 나선은 새들을 몰고 와 쇳소리를 낸다. 화자는 "나사"에서 그런 "산골"을 본다. 그리하여 시인은 여기에 "봄날 빈 구멍에 새로운 산골이 차 오른다"고 치환시킨다.
산골은 형태상 나사의 요철이며, 나사의 골짜기인 것이다. 그래서 겨울이 지난 봄날의 빈 구멍들은 하나 둘 진달래꽃이며 푸른 새싹들이 돋아나면서 산골을 점령해 나간다. 본문과 제목 사이의 텐션, 발칙한 상상력이 개입되어 있지 않은가. 이 간극의 심리적 거리를 독자의 입자에서는 상상력을 발휘하여 메워 나가야 한다.
시인은 상상력으로 남이 보이지 않는 세계, 남이 들리지 않는 세계를 자기만의 촉수로 보여주는 사람이다. 그것은 시인이 절대적으로 창조적인 상상력을 지녔기 때문이다. 창조적인 눈으로 세상을 보면 일상적이고 관습적인 눈으로 보이지 않는 것까지 보인다(박남희). 이런 것을 '발견의 눈', '통찰의 눈', '마음의 눈'이라고 할 것이다. 여기에서 발견의 눈은 '새롭고 다른 것'을 찾아낸다는 것이고, 통찰의 눈은 '현상과 사물을 깊이 꿰뚫어보는 순수 직관의 시각'일 것이며, 마음의 눈은 '심리적 감흥'으로서 내면을 드러낸다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러한 시인의 상상력은 바다 밑의 모래알부터 광활한 우주까지의 공간을 넘나들 수 있고, 신라시대에서 미래의 세계까지 시간적으로 응축할 수 있고, 이불 속에서 삐죽하게 나온 남편의 발바닥에서 쓰시마섬을 넘나드는 상상을 전개시킬 수도 있다.
문광영지음 <시 작볍의 논리와 전략>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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