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좋은 시의 요건] 5. 입체적이고 함축적인 시 / 최문자<팽이>

2018. 1. 16. 17:45☎시작법논리와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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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입체적이고 함축적인 시


  언어예술로서 시란 직설적 표현의 세계가 아니다. 시의 언어는 일상적으로 관습적, 자동화되어 있는 의식의 세계를 바꾸기 위하여 의미를 전환하거나 이미지화하여 정서적 메시지를 전달한다. 가령 행복을 그린다면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임과 함께 한 백년 살고 싶네"와 같이 식상하게 가요의 노랫말처럼 드러내지 않는다. 이러한 직설적 표현은 그야말로 유치하고 진부해서 아무런 감흥이 일지 않는다. 그리고 또한 지극히 평면적이다. 

  좋은 시란 언어를 우회적으로 새롭게 비유, 반어, 역설,  상징 등의 장치를 동원하여 낯설게 표현한다. 그러하기에 시가 입체성과 함축성과 애매성을 동반하는 것이다. 입체적이고 함축적인 시편들은 이중적 의미나 다의성을 띠게 된다. 그래서 시인은 어떤 대상을 취할 때,. 그 대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않고, 인간이나 사회, 어떤 현상, 사물과 연결지어서 바라보고, 그것을 유의미하게 관련시키거나, 새롭게 인식하여 재해석하려는 노력을 기울인다. 


세상이 꽁꼴 얼어붙었습니다. 하나님, 

팽이 치러 나오세요

무명 타래 엮은 줄로 나를 챙챙 감았다가

얼음판 위에 휙 내던지고, 괜찮아요

심장을 퍽퍽 갈기세요

죽었다가도 일어설게요

빰을 맞고 하얘진 얼굴로

아무 기둥도 없이 서 있는 

이게, 

선 줄 알면 

다시 쓰러지는 이게

제 사랑입니다 하나님


최문자 <팽이> 전문


  시<팽이>는 시인의 존재와 삶을 팽이치기에 비유하여 형상화하고 있다. 화자(話者)인 "나"는 "팽이"로 전이되어 있고, 청자(聽者)인 "하나님"을 불러들인다. 그리고 "세상이 꽁꽃" 얼어붙었으니 "팽이 치러 나오세요"라고 권유를 한다. 화자인 나(팽이)는 '채찍으로 맞지 않으면 쓰러지고 마는' 성격을 지녔다. 현재 나는 꽁꽁 얼어붙은 험한 세상에 내던져 있는, 피투된 존재인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무한하다. 그러면서도 "선 줄 알면 / 다시 쓰러지는" 시인 자신 (팽이)의 나약한 현실이다. 팽이의 존재 의미는 쓰러지는데 있지 않다. 하나님의 평생 보살핌, 채찍질을 맞아야 하며 살아가는 숙명적 존재라는 것이다. 마냥 쓰러지고 다시 일어나야만 하는 인간 존재, 일어서기를 반복하는 신앙인을 노래한다. 결국 이 시는 얼어붙은 땅에 팽이가 되어 내던져지고 심장을 맞아서라도 순결한 마음을 회복하고자 하는 갈망이 서려 있다. 시인의 내면 정서가 팽이라는 객관적 상관물로 전치된 형상화에서 함축미와 입체미를 읽게 된다.  




문광영 지음 <시 작법의 논리와 전략>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