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좋은 시의 요건] 4. 찐득한 교감의 시 / 권혁소<곰배령>, 박형진<사랑>

2018. 1. 9. 21:47☎시작법논리와전략☎

728x90


14007_우수상_경주_천년의밤_박건태_D



4. 찐득한 교감의 시


  '서정(敍情)'은 문자 그대로 감정의 감정 표현을 주로 하는 문학 양식이다. 감정 속에 용해된 우리의 인간적 조건 전부를 통해 사물과 세계를 바라보고, 느낌, 심리를 드러내는 것이다. 그렇게 인간의 삶이란 살라만상 속에서 무수한 느낌을 쌓아가는 과정이다. 여기에서 그 심리적 느낌, 시적 사유등은 자아가 세계와의 교감, 곧 도오하나 투사(감정이입)의 시적 세계관에서 비론된다. 시인의 대상과의 동화나 투사, 일체감의 동일성을 지향하면서 자아와 세계와의 합일을 추구한다. 그래서 시 작품에서 자아와 세계는 완전한 합일 하나가 된다. 이른바 주객일체의 경지, 몽상의 경지라 할 수 있는데, 이때 가치 있는 감정을 형상화한다. 죤두이(J.Dewey)는 이를 미적 체험이라고 했다.


점봉산 가는길

오늘은 곰배령까지만 간다 거기

지천으로 피었다 동자꽃

동자꽃 안주하여 술 한잔 마신다.

나도 마시고 안개도 마신다

물봉선도 취하고 노루귀도 추하고 바람꽃도 취한다

문는다. 세상은 왜

감탄만으로 살 수 없는 것이냐고

없는 것이냐고


마을로 내려와 안개를 토했다.


권혁소<곰배령> 전문


  너무 달콤하고 감칠맛 나는 시이다. <도화원기>에 나오는 무릉도원이 따로 있는가. 여기 곰배령 풀밭이 바로 천국이다. 화자는 동자꽃을 안주하여 술 한 잔 마신다. 안주는 동자꽃만이 아니다. 촉촉하고 싱그러운 안개도 있다. 이제 술 마시는 나는 내가 아니다. 술 마시는 나는 흔들거리는 꽃이 되고, 지천에 흔들거리는 물봉선과 노루귀, 바람꽃도 술에 취한다. 이생진의 시집<그리운 바다 성사나포>의 시구, "술은 내가 마시는데, 취하는 건 바다"라고 한 것처럼, 곰배령 언저리가 모두 취해 있는 것이다. 청초한 바람에 산들거리며 움직이는 야생초들의 모습이 술에 취한 이미지와 교묘하게 얽혀 서정시의 참맛을 우려낸다. 시인의 감흥은 아주 단순하며 직설적이다. "세상은 왜 / 감탄만으로 살 수 없는 것이냐고 / 없는 것이냐고" 라고, 점봉산은 강원도 인제군에 있다는데, 곰배령 일대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야생화가 많이 피는 곳이라고 한다. 술에 취한 동자꽃, 물봉선, 노루귀, 바람꽃 등을 보러 가보고 싶은 마음을 일게 한다.





풀여치 한마리 길을 가는데

내 옷에 앉아 함께 간다.

어디서 날아왔는지 언제 왔는지

갑자기 그 파란 날개 숨결을 느끼면서

나는

모든 살아있음의 제자리를 생각했다


풀여치 앉은 나는 한 포기 풀잎

내가 풀잎이라고 생각할 대

그도 온전한 한마리 풀여치


하늘은 맑고

들은 햇살로 물결치는 속 바람 속

나는 나를 잊고 한없이 걸었다


풀은 점점 작아져서

새가 되고 흐르는 물이 되고


다시 저 뛰노는 아이들이 되어서

비로서 나는

이 세상 속에서의 나를 알았다

어떤 사랑이어야 하는가를

오늘 알았다.


박형진<사랑> 전문


  위 시에서는 '사랑'이라는 추상적이고 막연한 개념을 시인만의 새로운 시적 정의를 내린다. 시인은 아주 구체적인 대상인 '풀'과 '여치를 통해 '사랑'은 이런 것이다'라고 답변을 내래는 것이다. 교감의 시는 합일의 과정을 거쳐 자아와 세계를 전도시킨다. '풀여치가 날아와 내 옷에 앉으면 나는 풀이되는' 그런 '합일의 사랑'인 것이다. 그리고 거기엔 또 하나 내가 있으되, 옛날의 나가 아니다. "새가 되고", "물이 되고", "뛰노는 아이들이" 되기도 하는 나, 그렇게 동화되고 세상과 합치되는 자신의 변화된 모습이 '사랑'이고, 그걸 이제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여자를 통해서..., 이렇듯 세상과 합치, 동일성을 이루는 서정시는 하나의 생각, 하나의 비전, 하나의 무드, 하나의 날카로운 정서로 이루어지면서 가치 있는 감동을 자아낸다.



문광영 지음 <시 작법의 논리와 전략>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