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좋은 시의 요건] 1.새롭고 독창적인 시 발동기<이대흠>, 문태준 <맨발>

2017. 12. 28. 21:05☎시작법논리와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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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새롭고 독창적인 시


   좋은시의 요건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새로운 상상력과 독창성이다. 시가 언어예술로서 성립이 될 수 있는 근거는 새로운 상상력과 독창성에 있는 것이다. 해서 , 좋은 시를 쓰려면 얼마나 대상을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앗고, 또 그 대상에 얼마나 가지만의 상상력을 투여해서 새로운 언어적 장치로 표현하였는가에 달려있다.

  우리 주변에는 무수한 사물들과 생명체들이 존재한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같이 고정된 이미지를 지니고 잇다. 그리고 웬만해서는 자신의 비밀, 다른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렇다면 시인의 시안(詩眼)에 의해 내용과 그 표현에서도 새롭게 달라져야 한다. 상상력과 독창성은 고정관념이나, 관습적이고 낯익은 것과는 대척점에 있다. 그래서 기존의 자동화된, 고정된 이미지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낯설게 접근하고, 재해석하고, 여기에 사유와 상상력을 동원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심안(心眼)과 영안(寧眼)을 통해 대상을 되새김질하여 깊이 촘촘하게 들여다보고, 새로운 치환의 관계짓기 등을 통하여 의미의 확산을 도모해 나갈 필요가 있다.


사랑한다는것은 누군가의 속에 들어가
발동기가 된다는 것이다
그대 내 안의 발동기가 되어
나를 살게하고

발동기 하나가 한 사람의
삶을 바꿀 수 있다

다른 세상을 만들 수 있다


발동기<이대흠>전문


  시 <발동기>는 치환의 상상력이 적용되고 있다. "사란한다는 것은 누군가의 가슴 속에 들어가 발동기가 된다"는 것으로, "사랑"이라는 추상적 관념을 구체적인 "발동기"로 전이시키고 있다. 얼마나 새롭고 신선한가. 무엇을 무엇으로 바꾼 치환의 상상력, 하나의 연상적 관계짓기의 비유 형태로 '사랑'이란 관념에 대해서 보다 깊은 생각을 하게 한다. 그러니까 시는 직설적 감정의 용출이 아니다. 그 무엇을 떠올리거나 연상이나 상상, 비유로 써지지 않으면 새로움은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요즘 세대들은 '발동기'를 본 적이 없어서 낯설 것이다. 발동기는 6,70년대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시골이나 산간지역에서 방앗간이나 양수기의 동력원으로 널리 사용되었다. 이 시는 후반에 이르면서 더욱 의미지가 발전되고 확산되는 구조를 보여준다. "발동기 하나가 한 사람의 / 삶을 바꿀 수 있다"고, 그리하여 "다른 세상을 만든다"는 것이다. 참으로 호소력 있고 공감이 가는 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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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물전 개조개 한 마리가 움막 같은 몸 바깥으로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죽은 부처가 슬피 우는 제자를 위해 관 밖으로 잠깐 발을 내밀어 보이듯이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펄과 물 속에 오래 담겨 있어 부르튼 맨발

내가 조문하듯 그 맨발을 건드리자 개조개는

최초의 궁리인 듯 가장 오래하는 궁리인 듯 천천히 발을 거두어 갔다

저 속도로 시간도 길도 흘러왔을 것이다

누군가를 만나러 가고 또 헤어져서는 저렇게 천천히 돌아왔을 것이다

늘 맨발이었을 것이다.

사랑을 읽고서는 새가 부리를 가슴에 묻고 밤을 견디듯이 맨발을 가슴에 묻고 슬픔을 견디었으리라

아..., 하고 집이 울 때

부르튼 맨발로 양식을 탁발하러 거리로 나왔을 것이다

맨발로 하루 종일 길거리에 나섰다가

가난의 냄새가 벌벌벌벌 풍기는 움막 같은 집으로 돌아오면

아..., 하고 울던 것들이 배를 채워

저렇게 캄캄하게 울음도 멎었으리라


문태준 <맨발> 전문


위 시 <맨발>은 '죽어가는 개조개 한 마리'를 매개로 하여 참신한 비유와 상상력을 펼처가고 있다. "움막 같은 몸 바깥으로 맨발"을 내미는 개조개에 대한 순간의 깊은 사유, 그 상상이야말로 한 장의 스냅사진과도 같다. 그 개조개의 생리에서 보는 순간의 살아있는 느낌의 전이적 상상작용은 매우 신선하고 활발하다. 개조개를 보고 "부르튼 맨발로 양식을 탁발하러 거리로 나왔을" 한 구도자의 모습까지 포착해 낸다는 것은 시인만이 지닌 사유의 폭과 깊에서서 오는 것이다. 시인은"개조개"의 느릿한 습성을 중생 구제를 위해 출가하여 고행의 길을 걷는 "부처"와 동일시하고 있다. "개조개"가 새끼들을 위해 희생적으로 먹이를 구하는 희생적인 삶이나 "어물전"까지 끌려가 사람들의 양식이 되는 것, 또한 인고의 삶으로 펄속에서 꿋꿋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부처'의 득도 과정을 본 것은 독창적 발상이다. 이처럼 "개조개"의 생리와 "부처"의 생애를 동일시하면서 높은 정신적 가치를 발견해 냈다는 점에서 이 시는 참신한 운행을 보여준다.

 이형권은 '시의 새로움'을 부단히 역동하는 동적 개념으로 파악한다. 그리고 시란 운명적으로 이러한 새로움을 운명으로 삼는 첨단의 언어 양식이라고 한다. 원래 시적 새로움은 아방가르드(avantgarde), 곧 전위 정신을 근간으로 삼는다. 전위 정신이란 새로운 영토를 개척해 나가는 과정에서 맨앞에 나아가는 첨병의 정신이다. 전위에서 선 시인의 임무는 관습과 객관의 고루한 메커니즘을 배격한다. 그래서 시인은 화가 칸딘스키(W.Kandinsky)가 말한 '정신의 삼각형')이란 극점에서 살아가는 존재이다. 또한 들뢰즈(Gilles Deleuze)가 말한 유목민의 노마드(nomad) 정신의 소유자)로 '기관 없는 신체' 이기도 하다. 시 정신은 기존의 가치나 관념에 의해 구체화되지 않은 새로운 그 무엇을 지향하는 마음의 자세이다.)

  좋은 시를 창조하여 독자들로부터 사랑받는 시인이 되려면 시인은 숙명적으로 기존의 시인과는 다른 '새로움'을 확보해야 한다. 그것이 시인의 주어진 운명이다.




문광영 지음 <시작법의 논리와 전략>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