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좋은 시의 요건] 2. 재미있고 즐거움을 주는 시 박성우<콩나물>,김영승<반성 72>오탁번의 <잠지>

2018. 1. 9. 14:48☎시작법논리와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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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재미있고 즐거움을 주는 시


  시는 재미가 있어야 한다. 실상, 시에서의 재미나 즐거움은 여러 양상으로 나타나지만, 무엇보다 예기치 않은 신기함, 새로움과 결부되어 드러난다.

  지금 우리 시단은 과거의 치기어린 사랑 타령이나 애상적 그리움이나 이별의 정한을 벗어버리기 시작했고, 한편으로는 고상한 엄숙주의의시풍으로 부터도 서서히 벗어나고 있다. 영화의 경우, 재미나 즐거움이 없으면 거들떠 보지 않듯이, 시나 수필, 소설이라는 것도 재미가 없으면 들여다보지 않는다, 시드니(P,Sidney)가 "시는 가르치고 즐거움을 주려는 의도를 가진 말하는 그림이다"라고 했지만 점점 '즐거움'쪽으로 취향이 기울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너만 성질 있냐?

나도 대가리부터 밀어올린다.


 시<콩나물>은 1연 2행으로 되어 있지만 의미도 폭도 크고, 인간화되어 있어 재미가 있다. 우선 시제(詩題)인 "콩나물"은 "성질"이 있는 인간의 속성으로 "대가리부터 밀어올린다"고 되어 있다. 장년층들은 콩나물이 나고 자라는 특성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어릴 적 집집마다. 윗목에 콩나물을 길러 그 식재료로 삼았다. 누구든 보는 대로 자주 콩나물시루에 물을 주었고, 그 시루 밑 구멍으로 물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잠을 자야 했다. 여기에서 '콩나물'로 치환된 인간에서 원거리 비유에서 오는 장력(tension)의 힘을 발견한다. 또 2행으로 짧지만 그 의미도 만만치 않다. 시루 속에서 자라는 콩나물의 삶은 인간 못지않게 치열한 생존경쟁을 벌인다. 결코 순응하지 않고 항복하지 않으려는 결연의 한지들로 커간다. 이들 콩나물은 가난한 사람들을 상징하기도 한다. 가난한 사람들은 울분이 많고, 가난한 동네는 시끄럽다. 서로 밀치고 복작거리는 재래시장의 풍경 그들의 일상도 떠올리게 한다. 콩나물은 바로 우리들이고 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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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변을 보는 것이 아니라

밀어내기 하는 것 같다.

만루 때의 휘볼처럼

밀어내는 것 같다

죽기는 싫어서 억지로 밥을 먹고

먹으면 먹자마자

조금 있으면 곧 대변이 나온다.

안 먹으면 안나온다.

입학도 졸업도 결혼도 출산도

히히 밀어내는 것 같다.

먹고 배설해 버리는 것 같다.

사랑도 이별도

죽음도,


김영승<반성 72> 전문


   시 <반성 72>는 참다운 인생의 순리가 담겨 잇다. 인간의 생리작용의 하나인 '대변보는 일'을 '밀어내'의 속성으로 보고, 인간사 전체의 보편적 논리로 풀어낸다. 그러고 보니 온 세상이 "밀어내기"로 이루어지는 것 같다. "만루 때의 휘볼처럼" 인생의 과정에서 거쳐 가는 "입학", "졸업", "결혼", "출산", "사랑", "이별" 등이 모두 그러하다. 죽음 또한 마찬가지다. 시인은 하찮은 일상사의 대변보는 일에서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진리, 곧 순환의 질리, 순리의 섭리를 터득해 낸다. 단순한 물리적 현상을 정신적 사유의 깊이로 본 시적 행로가 돋보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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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산소 가는 길에

밤나무 아래서 아빠와 쉬를 했다

아빠 오줌은 멀리 나가는데

내 오줌은 멀리 안 나간다

내 잠지가 아빠 잠지보다 더 커져서

내 오줌이 멀리멀리 나갔으면 좋겠다

옆집에 불나면 삐용삐용 불도 꺼주고

황사 뒤덮인 아빠 차 세차도 해주고

내 이야기를 들은 엄마가 호호호 웃는다

-네 색시한테 매일 따스운 밤 얻어먹겠네

 오탁번의 <잠지> 전문


  '내 잠지의 오줌발'과 '아빠 오줌발'의 시합에서 보여주는 유머스런 이야기가 폭소를 일으킨다. 그리고 엄마의 입담도 점입가경이다. 이런 재미있는 시를 읽으면 가슴이 환해진다. 이러한 사람의 가슴마다 시가 있과, 생각들이 발효되는 이유가 있는 사회는 참으로 건강한 사회다. 위의 귀여운 시 한편에서 '아, 맞어' 하는 공감으로 소통하면서 서로의 안쪽을 들여다볼 수 있는 행복한 사회를 꿈꾼다.

 시의 재미, 즐거움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나타난다. 비유적 상상, 풍자, 아이러니, 위트, 언유희 등 다양한 색깔로 심리를 파고 들지만,동심적 상상력  또한 큰 즐거움을 안겨준다. 천진난만한 동심의 자유로운 경지, 호시심과 모험심, 판타지의 세계로 꼭 찬 동심은 우리들 모두가 지닌 원초적 감성이다. 이 도심적 착상은 판타지나 우화 짓궂거나 엉뚱한 사건이 시에서 채택되고 작용할 때 발생한다. 어리둥절하면서 유쾌한 상상이야말로 장자(莊子)의 <소요유>편에 나오는 바다의 물고기인 곤(鯤)이 하늘의 새로 변하여 붕(鵬0이 되는 통쾌함을 맛보는 체험과 같은 것이다.

 나아가 시의 재미라는 것은 현실 체험에서 촐발된 나만의 정감이나 거기에서 비롯된 상상의 깊이에서 온다 그런데 그 정감이나 상상의 재미있게 구성하여 표현하려는 언어의 리모델링 작업이 따른다. 사고의 부족, 상상의 빈곤과 더불어 재미없는 창작품들이 오늘날 시단과 수필계에 판을 친다. 상상력을 도우언하여 재구성하지 않고 본대로 적어내거나 피상적 관념만을 토로 하는 작품은 아무런 감흥도 재미도 없다.



문광영 지음 <시작법의 논리와 전략>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