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좋은 시의 요건] 9. 통찰의 세계를 보여주는 시 / 함민복 <나사못> / 김선태 <卒>

2018. 1. 18. 12:51☎시작법논리와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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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통찰의 세계를 보여주는 시


  이 땅에 존재하는 것들은 자신만의 존재 이유와 이야기를 지니고 있다. 그들이 생물이건 무생물이건 간에 식물이건 동물이건 간에 자신만의 비밀, 자신만의 존재방식, 내력과 이야기를 지니고 있다.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이 신의 피조물이라고 한다면, 시는 시인이 창조해낸 새로운 언어의 피조물이다.

  시의 본령이란 이러한 존재하는 것에 대한 존재 의미의 새로움, 낯선 비밀의 아름다움, 그들의 깊은 이야기를 끄집어내어 언어적 아름다움으로 드러내야 한다. 여기에서 통찰(insight)이란 어떤 사물이나 생물을 바라보고 그 사물(생물)의 속성, 성질, 모양 등을 직관을 통해 낯설게, 의미 있게, 정신의 옷을 입혀가는 일이다.


조임과 풀림이 한 길이라니!

같은 길이라도 방향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결합의 길과 해체의 길로 나눠지는구나.

풀림과 조임이 한 길이라니!

만남과 이별이 한 길이라니!


함민복 <나사못> 전문


  시 <나사못>은 '못'이라는 사물이 지닌 의미를 천착해 나간다. 통찰에 의한 정신의 옷 입히기이다. 하찮은 나사못이라는 사물에서 시인은 "만남과 이별"이 한 길에 있다는 삶의 섭리를 발견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화자는 못이라는 사물이 지닌 속성을 미시적으로 꿰뚫어 거시적인 담론으로 나아간다. "길의 방향"에서 "결합고ㅘ 해체"를 유추해 내고, 결국 "풀림과 조임이 한길"이고, 그것은 "만남과 이별이 한 길"이라는 사물의 전신화를 꾀하고 있다. 아주 미시적인 관점에서 사물을 접근하고 있지만 거기에서 얻은 정신, 통찰의 시는 정호승의 <못>이나 윤효의 <못>, 김종철의<못>등이 있는데, 이들은 "못을 박고, 빼고, 구부러지고, 녹슬고' 하는 못이 지닌 속성이나 기능, 행동에 의미를 부여하거나 비유적으로 상상하여 화자의 남다른 통찰의 세계를 보여준다.

  상투성의 껍질을 벗겨가다 보면 맛깔스런 과육, 속살이 보인다. 이것이 통찰의 세계다. 사물의 걷핥기, 외피적, 피상적으로 보면 통찰의 세계는 드러나지 않는 법, 남다른 사유에 들어갈 수 없게 된다. 상투성을 벗기는 밥법으로 관조와 몰임-상호택스트의 관계짓기, 스키마, 연상, 상상, 비유적 상상 등이 필요하다.

  통찰은 마중물을 퍼올려 깊은 생수를 얻듯이 대상의 깊은 비밀을 캐내는 직업이다. 현실적 실용적, 일상적, 논리적 관찰을 거부하고 그 안에 잠재되어 잇는 새로운 의미를 읽어내려고 하는 노력에서 비롯된다는 것, 이럴 대 비로서 그 대상은 자신의 비밀을 열고 우리에게 다가 온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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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묘소에 큰절하고 비석 뒷면을 살펴보니

생몰연월일 앞에 한자로 生과 卒이 새겨져 있다

生은 그렇게 치고 왜 死가 아닌 卒일까 궁금해 하다

인생이 배움의 과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사람은 태어나자마자 이승이라는 학교에 입학하여

인생이라는 기나긴 배움의 길에 오른다

하지만 우여곡절과 신산고초의 과정 속에서

희, 로, 애, 락, 애, 오, 욕까지를 제대로 익히고

무사히 졸업을 한다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어떤 이는 못 견디고 너무 일찍 자퇴하거나

어떤이는 불성실하여 퇴학당하기도 한다.


그러니 내 어머니는 그냥 사망하신 게 아니다

여든 해 동안 인생의 전 과목을 두루 이수하시고

이승이라는 파란만장한 학교를 졸업하신 것이다

무덤 옆의 저 비석은 자랑스러운 졸업장이다.


김선태 <卒> 전문


  김선태의 <卒>은 통찰의 묘비를 보여주는 시이다. 어느 날 ㅗ하자는 성묘를 갔다가 우연히 빗걱의 뒷모습을 들여다 본다. 누구든지 이런 경험을 했으리라. 그런데 시인은 이곳에서의 순간적인 경험을 시론 만들어낸다. 그 착상은 '死'가 아니"卒'로 새겨진 의미에 있다 자의(自意)에 대한 시적 화두, 곧 의미부여의 시적 상상력이 이러한 시를 만들어낸 것이다. 여기에서 남다른 자기만의 시상이 전개된다. 언어에 대한 깊은 사유, 되새김젤에서 '참으로 그렇구나'라는 시적 진리를 얻어낸 것이다.

  어떤 사물이든지 상식적으로 접근하면 시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시인은 견자(見者)요, 사물의 이면(裏面)을 들여다보는 자이며, 사물의 다른 모습으로 또다른 본질을 찾아내는 천기를 누설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문광영지음 <시 작법의 논리와 전략>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