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 7. 28. 21:32ㆍ☎청파의사는이야기☎
아이 둘이라고 전세 안줘 친구와 공동으로 아파트 하나를 삿는데...
때는 1980년도 그 당시 나는 4살된 큰 아들과 1살된 둘째 아들을 데리고 신길동에서 400만원 짜리 전세를 살았었다 그런데 그렇게 우리 가족이 정 붙이고 3년이상 살아온 주인댁에서 한창 자라는 아이들이 성장을 하다보니 자연 스럽게 우리가 전세로 살고 있는 방을 사용 하여야 할 피치못할 형편이되어 어느날 주인 아주머니께서 종철엄마 아빠 어떻게 하면 좋아 하면서 난감한 표정을 지으시며 어렵게 말문을 열으신다
종철네와는 정말 오랫동안 함께 살고 싶었는데 아이들 대가리가 커지다 보니 부득이 종철네가 사용하는 방을 아이들이 써야 하기 때문에 우리가 살고 있는 방을 빼 달라는 이야기를 하시며 주인 아줌니 민철이 어머니깨서는 얼마나 미안해 하시는지 ... 너무나 뜻밖에 민철네 아주머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 부부는 난감하기도 하였지만 그런데 민철네 아줌니는 세들어 사는 우리들이 더 미안하게 생각할 정도로 미안해 하시며 어렵게 말씀을 하신다
우리가 처음 민철네 집에 세들어 갈때 수더분한 인상에 인심좋은 민철네 아줌니는 우리 두 내외 더러 열심히 돈 벌어서 집사서 이사가게 될때까지 가족처럼 마음놓고 살라고 하셨었는데 ...어느새 아이들이 커큰 딸은 고등학교를 가게되고 작은딸도 중학생이되고 그리고 민철이가 초등학교엘 들어가고 그러다 보니 자연적으로 방이 필요하게 된 원인을 우리 부부는 누구 보다도 너무도 잘 안다
다만 우리 부부가 서운했던것은 그동안 큰 형수처럼 정붙이고 민철네 아줌니와 가족들과 함께 살았었는데 불가피하게 이사를 하여야 하는 입장이되고 보니 그것이 가장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민철네 아줌니네 집에서 멀리 이사가기가 싫어서 인근에 살려고 신길동 인근을 이잡듯 샅샅이 복덕방을 뒤졌지만 그 시절 신길동에는 진로소주 공장이 있어서 근로자들로 인하여 방을 얻기가 사실 하늘에 별따기처럼 어려운 시절이었다
그러다 보니 아들만 둘인 우리 가족을 보고서는 아이들 때문에 안된다는 야속한 소리를 수도없이 듣게된다 정말 난감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었다 그때의 심정은 아늘 사람들은 알게지만 능력없는 남편만나 사랑하는 아내와 어린 철부지 아이들까지 고생을 시킨다는 자책감으로 너무도 화가나고 비애가 느껴졌지만 그렇다고 뾰족하게 어떻게 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다 하는 수 없이 그렇게 막연한 생각으로 몇일을 보내고 있는데
하루는 내가 근무하고 있는 세운상가 점포에서 신문을 읽고 있는데 인천 부평에서 삼익 아파트 25평을 분양하고 있는데 당시에 12,000 만원에 5층 짜리 아파트를 분양을 한다는 광고가 대문짝 만하게 나와 있다 사실 그시절에는 아는 사람들은 잘 알고 있는 일이지만 삼익 아파트 하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손꼽는 아파트이며 건설회사이었기에 흥분이 되었다 그러나 내 수중에 쥘 수 있는 돈은 겨우 단돈 400만원을 들고 삼익 아파트에 대한 호감을 갖고 있는것이었다
한 마디로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을 꾸고 있었던 셈이다 하지만 그런 내 입장을 알고 있으면서도 나는 삼익 아파트에 대한 꿈을 놓치를 못했다 그러다 마침 고향에서 나와는 부랄 친구로 자란 친구가 안양에 살고 있었는데 이 친구도 우리처럼 아들만 둘인데 역시 아이들 때문에 방을 얻지를 못하여 난감해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하루는 이 친구가 나를 만나러 왔고
우리들은 자연 스럽게 세상사는 이야기를 나누다 청계천에서 퇴근후 소주를 한잔 나누다 친구에게 나는 야 ! 우리 그러지 말고 이참에 아예 둘이서 아파트를 하나 사서 [방3개] 두집이 나누어 살면 어떻겠니 하고 질문을 하니 이친구 내말에 귀가 솔깃해 한다 그럼 일단은 우리들 보다는 아내들의 동의가 필요하니 자네는 현수 엄마에게 나는 나의 아내에게 이런 의견을 타진을 하니 당장 갈곳이 마땅치 않은 여자들의 입장에서 더 호응이 좋았다
그래서 나는 생각은 이렇게 쉽게 결정을 할 수 있지만 사실 두집이 함게 살다보면 뜻밖에 사정이나 문제로 인하여 난감할 일들도 있게될줄도 모르니 일단은 우리 두집 적당히 기반을 잡을때 까지는 서로 양보하고 이해 협조 하면서 살아 보자고 다짐을 받은후 이틀이 지난 어느 일요일 우리 두집 부부 가족가 부평에 있는 삼익아파트 모델하우스 현장을 방문하여 보고나니 세상에 그렇게 좋을 수 가없다
모델 하우스만 보고 우리들은 둘이 의견 일치를 모아 내친김에 삼익 아파트 25평형 즉석에서 계약을 하고 적당한 기간이 흐른뒤 1980년 7월 1일 우리 두 집은 정들여 살던 신길동과 안양을 이별하고 낱설고 물설은 인천 부평 부개동에 있는 삼익 아파트 A동 201호에 입주를 하게되었다 방 3개중 가장 큰 안방은 친구네 가족이 사용을 하고 작은방 하나와 골방 하나 그러니까 방 2개는 우리 가족이 사용을 하게 되었다
우리가 이사로 신길동을 떠나오던날 난 지금도 그날을 잊지를 못한다 누구 보다도 우리가 살던 주인댁 민철네 아줌니께서는 이삿짐을 차에 싫고 인사를 하는 우리 부부의 손을 잡고 종철엄마 종철 아빠 어떻게 하냐 서운해서 그러시면서 우시는 바람에 우리 부부도 함께 눈탱이가 퉁퉁 부을 정도로 울고 간신히 골목을 빠져 나오는데
이번에는 골목에서 이웃하여 사시던 아주머님들과 아내의 골목 친구들이 또 한바탕 울고 불고 난리를 친다 그 뿐인가 우리가 인사차 들리는 세탁소 이발소 연탄집 아줌마 아저씨들이 무리를 지어 골목에 나와 손을 흔든다 잘가요 아마 종철이 엄마 아빠는 어디 가서던지 잘 살게 될꺼라고 격려를 하여 주시며 우리 부부가 골목에서 보이지 않은때 까지 손을 흔들고들 계신다
그로 인하여 이삿짐차가 많이 지체를 하여 차에타고 맨 마지막 커브 구멍가게을 돌아 서는데 이번에는 구멍가게 아줌니가 우리 부부 두 손을 꼬옥 잡고 놓치를 않으시며 울고 계신다 어떻게 하냐 어떻게 하냐 이제 종철 엄마 아빠 보고 싶어서 어떻게 하냐 어떻게 하냐 하시며 잠깜만 있으라고 하시더니 가게에 들어가 우리 아이들 먹으라고 과자를 한 보타리나 챙겨 주신다
내가 서른둘에 늦게 결혼하여 줄곧 살아왔던 신길동 마을을 4년후 이별을 하며 떠나는 입장인데도 그동안 우리 부부를 눈여겨 예쁘게 보아 오셨던 많은 동네 분들의 환송을 받으며 막상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뒤로 하며 우리는 그렇게 아쉽게 한많고 설음많은 신길동을 떠나오고 말았다
아이들 데리고 남의집 세를 살며 전전하다 보면 주인들이 아무리 좋다고 하여도 음으로 양으로 이눈치 저눈치 보며 살아야 하는것인데 이날의 이사가 비록 친구와 둘이 합동으로 집을 구입하였지만 내집이라는 생각에 얼마나 좋은지 이사를 온후 기분이 들떠 나는 한동안은 잠을 설치는 일이 빈번하였다 그렇게 인천시 부평구 부개동 삼익 아파트 201호는 우리 두 가족에게 희망과 꿈을 안기어 주며 입주를 하게 되었다
그후 우리 두집은 서로 양보와 협조로 이해를 하며 나름대로 재이있게 서민의 애환을 달래며 잘 살고 있는데 입주후 얼마 지나 12월 쯤인가 느닷없이 우체부가 내용 증명이 왔다고 도장을 달라고 하며 내용증명을 건넨다 도대체 무슨 내용일까 하는 궁금증을 갖고 봉투를 뜯어 일어보니 세상에 친구와 내가 함께 공동으로 산 삼익 아파트 201호가 이중 분양이 되어 있으며 자신들도 피해자이고 다만 선계약자라고 하면서 계약서 까지 첨부를 하여
1981년 1월 1일부로 명도를 하라는 내용이다 그때 나는 내용증명을 받아들고 하도 기가차고 말문이 막혀 아무 소리도 할 수 가 없었다 하늘이 노랗고 앞이 캄캄하여 한 동안 정신을 잃을뻔 하였다 세상에 살다 살다 이런 변고가 다 있을 수 있단 말인가? 내가 무슨 죄가 많아서 이런 얼토당치도 않은 시련을 겪어야 한단 말인가?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묘안이 떠 오르지를 않고 건축주는 이미 한탕을 하고 종적을 감춘 상태이니 앞길이 막막할 뿐이다
그로 인하여 나는 젊은 나이에 얼굴에 근육마비 증상까지 생기고 한마디로 나의 좌절은 단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가 없었다 도무지 내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되고 있을 수 없는 일이 현실이되어 나에게 찿아 온것이다 이 엄동설한에 4살과 2살된 두집 아이들을 데리고 진부도 가리어지지 않은 생면부지 사람에게 명도를 해주고 집도 절도 갈곳도 없는 두집 식구 8명이 그냥 물러서야 하다니...
정말 그때의 심정은 죽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그러다 나는 아무래도 그냥 이상태로 물러 설 수 는 없다는 판단이 서 나는 각계에 보낼 눈물어린 진정서를 울면서 작성하여 (청아대 민원실 법무부 검찰청 경찰청 경기도경 인천시경 부평경찰서) 이제 4살과 2살이된 아이들 손도장까지 찍고 두집의 부부 손도장을 찍어 등기로 각계에 탄원서를 발송을 하였다
그 사이 이중 분양을 받았다는 원고 측에서는 나를 피고로 하여 명도소송까지 고문 변호사를 대신하여 제기를 한 상태였다 세상에 태어나 파출소 한번 안가보았던 내가 피고가 되어 법정에 선다는 생각을 하니 눈물이 앞을 가리고 어린 아이들이 눈에 삼삼이 어려 정말이지 살고 싶은 생각이 들지않고 비관만 되었다 정말이지 죽고만 싶은 심정이었다
그리고 나는 우리들에게 사기를 친 건축주 김일호(사기전과 36범)에 대한 복수심에 치를 떨어야 했다 그리고 그넘을 만약 잡게되면 칼로 배를 쑤셔버리고 나도 죽고싶은 복수심에 울분을 참기가 쉽지않았다 그렇게 선의의 피해를 당하게 되다보니 이젠 세상에 무서울것이 없다 그렇게 그 당시 내 받은 충격은 내 일생 일대 가장 큰 충격이었다
그런 와중에도 그나마 한가지 다행인것은 친구와 두 사람이 집을 살때 계약을 내 명의로 하였기에 망정이지 만에 하나 친구 명의로 계약을 하였다면 돈이 없어 변호사를 살 입장이 못되는 우리들은 불을 보듯 뻔 하게 명도 소송에서 깩 소리 한번 못하고 패할 형편이었다 왜냐하면 친구는 맘은 좋은 사람이지만 매사에 조리있게 말할줄도 모르는 순박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각계에 진정을 내는것도 내가 당사자 였기에 가능 했던 것이다
그런데 가계에낸 탄원서에 대한 답변도 이미 3개월여가 지나도록 아무런 연락이 없이 종무 소식이다 그러니 나의 마음은 정말 우리들이 집도 절도없이 거지가 되어 두집 식구 8명이 쫓겨나게 되는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에 정신적으로 심하게 흔들리고 있을 무렵 드디어 청아대 민원실과 법무부 그리고 각계에서 답장이 왔다 간단히 내용을 요약을 하면 민사문제가 되어 관에서 개입한 성질이 못된다는 내용이고 다만 법무부에서 온 답변 내용엔 담당 재판부에서 참고를 할것이란 내용이 추신으로 적혀 있었다
그후 보름여가 지나 나는 드디어 첫번째 인천지방법원 103호 법정에 피고가되어 서게 되는 출두명령서를 받았다 내용증명을 받은후 그럭저럭 6개월여가 흐른 어느날 여름 나는 법정에 피고가되어 출두를 하기 위하여 준비를 하고 있는데 법원이라고 하며 윤도균씨를 찿는 전화가 온다 내용인즉은 재판 시간보다 한 시간여 일찍와서 재판부 아무게 판사실로 오라는 내용이다
그렇치 않아도 출두를 앞두고 가슴이 떨리고 다리가 후들 거리는 상황이었는데 느닷없이 재판부의 전화를 받고 보니 다소 마음이 놓이며 은근히 어떤 기대를 갖게된다 기대를 해서는 안되는것이라는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그토록 그 당시 나의 상황은 지프라기라도 잡고 싶은 그런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서둘러 집을 나서며 나는 재판부와의 약속대로 시간보다 일찍 법원으로가서 담당 판사실을 노크를 하니
담당 판사분께서 이것은 아주 특별한 경우라고 하시며 내가 그동안 각계에 보낸 진정서 사본을 내 보이시며 진심으로 이번일에 대하여 애석하게 생각을 한다고 말씀을 하시며 이번 재판 사안이 형사도 아니고 민사이기 때문에 재판부에서 임으로 어떤 결정을 할 수 없어 안타깝다고 말씀을 하시며 대신에 윤도균씨의 진정서가 단서가되어 이번 기회에 우리 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서민침해사범을 대대적인 단속을 하게 될것이라는 말을 하며 아마 그런 맥락에서 이중 분양을 한 건축주 김일호 (사기 전과범)도 지명수배되어 수사중이라는 이야기를 해주시며
이번 재판에선 다만 양측의 신원 확인을 하는것으로 그칠것이며 다음 재판때는 다시 나를 불러 상의를 하겠다는 친절한 이야기를 해주신다 판사실을 나오며 나는 한숨을 내쉰다 그리고 드디어 한많고 설음많고 사연도 많은 이중분양 사건 재판이 개정되어 서기의 호명에 대답을 하고 나는 피고가 되어 법정에 서게 되었다 그런데 이미 맘속으로 단단히 맘을 먹었건만 재판정에 피고가 되어 선 나는 마치 사시나무 떨듯 떨고 있었다
그런데 다행이도 절차에 의하여 신원 확인을 하고 이날 재판은 싱겁게 끝이나고 다음 재판은 언제라는 날짜만 확인만 하고 법정을 나선다 그런데 아무런 죄도 없이 남편이 피고가 되어 재판정에 선다고 하니 아내는 물론 친구 부부와 아이들까지 법원에 와서 대기를 하고 있다가 내가 머쓱하게 웃으며 재판정을 나서니 모두들 달려와 어떻게 되었느냐고 궁금해 한다 (다음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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