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 7. 23. 23:00ㆍ☎청파산행과여행기☎
청파 판문점공동경비구역(JSA, Joint Security Area)에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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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문점공동경비구역(JSA, Joint Security Area)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은 경기도 파주시 진서면, 비무장지대(DMZ) 내의 군사분계선상에 있는 구역이다. 유엔사 측과 북한 ・ 중국이 군사정전위원회 회의를 원만히 운영하기 위해 1953년 10월 군사정전위원회 본부구역 군사분계선(MDL)상에 설치한 동서 800m, 남북 400m 장방형의 지대다. 북한 행정구역상으로는 개성직할시 판문군 판문점리에 해당한다. JSA는 1971년 9월 20일 열린 남북적십자예비회담을 계기로 군사정전위원회의 회담장소로 활용되어 왔다. JSA가 설치된 이후 쌍방 군정위 관계자들은 구역 내에서 자유로이 왕래할 수 있었다.
그러나 1976년 8월 18일 북측의 도끼만행사건이 발생한 이후 양측 군인들 간의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이 지역 내에 MDL을 표시하고 같은 해 9월 16일부터 이를 경계로 양측이 각각 분할경비를 맡게 되었다. JSA의 남측 경비임무는 휴전협정 이후 유엔사 경비대대에서 맡았으나, 2003년 7월 미국은 JSA 경비책임을 한국에 넘기겠다는 뜻을 밝혔으며, 2004년 10월 31일부터 한국군 JSA부대가 이를 담당하고 있다. 이후 2008년에는 모든 미군 시설이 철수하고 전권이 한국군에 넘겨졌다.
판문점은 이 지역의 이름이며 공식명칭은 공동경비구역(JSA, Joint Security Area)이다.
도영할베 청파 판문점공동경비구역 JSA에 가다
◉ 견학일시 : 2005년 6월 28일 화요일
◉ 견학 지 : 경기도 파주시 군내면 판문점 JSA 공동경비구역
◉ 견학코스 :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JSA-통일촌-도라 전망대-제3땅굴-임진각안보관광지
◉ 견학인원 : 인천부평구 입주자대표회의 연합회원 32명
◉ 견학시간 : 4시간 반 정도
지난주는 모처럼 산행을 한 주 쉬었다. 그런데 화요일은 시간적으로 약간의 여유가 있는날이다. 그 바람에 낮 시간만이라도 아르바이트 생에게 자리를 맡기고, 그동안 수없이 얼마나 별르고 벼른 철원에 위치한 금학산이나 구름처럼 소리 소문없이 다녀오자 생각을 했다. 그런데 뜻밖에 아파트 입주자 대표회장님께서, 지난번 판문점 방문 신청한것이 신원조회가 끝나 화요일 판문점 JSA를 방문 하게 되었으니 꼭 참석을 하여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그렇치 않아도 판문점 JSA는 평소 늘 한번 가보고 싶었던 곳이다. 그바람에 금학산 산행 계획은 끽소리 한번 못하고 뒤로 밀렸다. 그런데다 산행을 하려던 철원지역 모 사단GP 근무를 하던 병사가 동료 병사들을 무차별 사격해, 금쪽같은 대한의 건아들이 꽃도 피워 보지 못하고 졸지에 비명에 간 뉴스를 보고 가슴을 친다. 아! 아무리 세상이 말세라해도 저러면 안되는데 안되는데 하며 가슴만 태운다.
이번 사건으로 졸지에 같은 내무반에서 한 이불 덮고 잠 자던 전우를 잃어버린 장병이나, 금쪽같은 내 아들을 졸지에 잃어버린 부모님들을 생각하니 내 가슴이 먹먹하다. 아까운 청년들의 영전에 마음으로 명복을 빈다.
끔찍한 불의의 불미스런 사고로 전우를 잃고, 움츠런든 병사들의 모습이 눈에 어린다. 그로인한 사기저하를 생각하니, 두 아들을 군에 보내 전역시킨 애비의 마음인데도 너무 쓰리고 아리다. 동료전우들과 생떼같은 아들을 잃고 허망해하는 부모님들께 진심으로 위로의 마음을 표한다. 살아도 산 것이 아닐 것 같은 부모님들과 병사들 생각하니, 당사자가 아닌데도 내가 운다.
거듭 국방의 의무를 다 하다 졸지에 하늘나라에 간 병사들과, 동료병사들 그리고 가족들게 위로의 마음을 전한다.
2005년 6월 28일 오늘은 판문점 방문의 날이다. 이번 판문점 JSA 방문은 부평구입주자대표회의 연합회에서 주관한 행사로 여러곳 주민들이 함께 떠나는 여행이다. 집결지인 부평구청에서 참가자들이 모여 오전 7시 반 우리는 판문점을 향해 출발한다. 대성동은 행정 구역이 경기도 파주군 군내면 대성동 자유의마을이다
부평구입주자대표회연합회 회원 32명을 싫은 버스는 자유로를 달려 잠시, 자유로 휴게소소에서 휴식을 취한후 10:30분까지 캠프 보니파스(Camp Bonifas)에 도착해야 하기 때문에 일정을 서두른다.
훤하게 뚫린 자유로를 달려 판문점과 자유에 마을 대성동, 그리고 북한지역을 갈 수 있는 자유로 검문소에 도착했다. 차량을 정지하고 잠시 헌병이 차에올라 주민등록증 검사를 한후, 우리는 다시 캠프 보니파스(Camp Bonifas)를 향한다.
지금은 고인이되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님께서 이길로 소떼를 몰고. 방북 하셨던 그 길이다. 그런데 오늘 내가 그길을 지나고 있다. 감개무량하다. 정주영 명예회장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정주영회장 소떼몰고 방북
1998년 6월과 10월 2차례에 걸쳐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소떼 1,001마리를 이끌고 판문점을 넘어 북한을 방문하였다. 1998년 6월 16일 83세의 정주영 회장은 트럭 50대에 500마리의 소떼를 싣고 판문점을 넘었다. 이날 오전 임진각에서 정주영 회장은 “이번 방문이 남북 간의 화해와 평화를 이루는 초석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고 그 소회를 밝힌바 있다. 정주영 회장의 소떼 방북은 향후 10여 년간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될 남북 민간교류의 물꼬를 트는 기념비적 사건이 었다.
우리일행을 싫은 차가 캠프 보니파스(Camp Bonifas) 영내에 진입했다.
이곳 캠프보니파스에서 잠시 버스에 싫린 짐 검사를 한후, 한번더 주민등록증 검사를 한다. 그리고 판문점에 가기전 영상 교육장으로 이동하여 판문점 방문 영상교육을 받아야 한다.
달리는 차에서 캠프 보니파스(Camp Bonifas)를 촬영했다. 그래서 사진이 조금 이상하다. “캠프보니파스”란 부대 이름은 8/18미루나무 사건당시 현장을 지휘하다 북한군 도끼 만행으로 살해당한 부대 지휘관의 이름을 따 캠프 보니파스(Camp Bonifas) 한다.
캠프 보니파스(Camp Bonifas)를 출발한 차량은 우리 일행과, 서울에서 온 일행 60여명을 모아 영상교육관에서, 판문점 공동경비 구역내에서 우리가 지켜야할 엄격한 수칙과 6.25동란으로 인하여 판문점 공동경비 구역이 만들어진 경위, 그리고 우리나라가 남북대치 상황에서 국민들이 대처 하여야할 정신에 대하여 영상 교육을 했다.
그런데 이 영상 교육을 진행하는 현역 사병이 마치 아나운서 뺨칠정도다. 송상열 상병이라고 하는데 유창한 영어와 설명으로 공동경비구역 군인들의 역할에 대해 설명을 한다. 자랑스런 병사 모습을 보며 나도 모르게 든든하다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 송상병의 맨트가 머리에 인상적으로 남는다. 국민여러분! 서부전선은 저희들이 철통같이 방어 하겠습니다. 편안한 여행 되십시오. 그 한마디가....
캠프 보니파스(Camp Bonifas)
캠프 보니파스(Camp Bonifas)는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비무장 지대 남쪽 400 m, 군사분계선 2,400 m 남쪽에 있는 대한민국 육군과 주한 미군의 합동 군영이다. 2006년 대한민국에 반환되었다.
과거 캠프 보니파스에는 주한 미군 일부 요원과 중립국 감독위원회의 감시단이 주둔했었다. 그들의 주요한 임무는 1953년에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이에 체결된 정전협정을 감시하며 서로의 무력 도발을 억제하는 것이다. 이 기지 안에서 대한민국과 주한 미군 장병들은 비무장 지대 관람과 공동경비구역 관광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이 기지는 예전에 캠프 키티호크, 캠프 리버티벨로 나뉘어 있었으나, 1976년 8월 18일 판문점 도끼 살인 사건 당시 조선인민군에게 살해된 주한 미국 육군 소속의 아서 G. 보니파스 대위(사후 소령)를 기리기 위해 그의 이름을 따서 개명하고 합쳤다.
기지 안에는 인조잔디로 조성된 파3 원홀 골프 코스가 있다. 이 골프 코스의 3면은 지뢰지대로 둘러 쌓여 있기에,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트는 이 곳을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골프장"이라고 불렀으며, 최소 한번의 지뢰 폭발이 있었다고 보고되었다. [위키백과 참조]
판문점은 비무장지대 내에서는 유일한 남과 북의 대화 장소이다. 판문점은 동서냉전의 긴장과 대립의 역사현장으로서 반세기 동안 한국분단의 역사를 상징적으로 증언하고 있는 곳이다. 판문점은 비무장지대 내 한국인이 가볼 수 있는 가장 북쪽에 위치하고 있는 곳이다. 행정구역은 경기도 파주시 진서면 어룡리이며, 북한 행정구역으로는 개성직할시 판문군 판문점리이다.
북측 평화의집 전경
남측 자유의집 전경
송상열삽병 / 송상병님 넘넘 고마웠습니다. 설명도 안내도 최고였습니다.
정전위원회 사무실에서 기념사진 왼쪽 청파 윤도균
북한 기정동 마을에는 160m 높이의 국기 게양대에 인공기가 걸려있다
대한민국에서 사용하는 '인공기(人共旗)'라는 말은 '인민공화국 국기'라는 말을 줄인 것이다. 흔히 쓰는 단어 인공(人工, artificiality)과는 관련없다. 인공이라고 줄여 부르는 것은 약간의 멸칭적 뉘앙스도 섞여 있는데, 중국 공산당(또는 중화인민공화국)에 반대하는 이들이 그 당을 '중공'이라고 줄여서 부른다거나[1], 일본에서 일본 공산당에 반대하는 이들이 '일공'이라고 부르는 것과 비슷하다. 서양에서는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 당의 멸칭으로 앞글자만 줄인[2] '나치'가 사용된 바 있다.
과거에는 '북괴기'라고도 했으나 북한이 괴뢰 국가(또는 위성 국가)에서 벗어나면서 '북괴'라는 단어가 부적합해져 빈도가 줄어들었다. 북괴 문서 참조.
북한에서 부르는 공식에 가까운 명칭은 람홍색공화국기, 또는 홍람오각(紅藍五角)별기이다. 쉽게 말해 붉은색과 푸른색(남색)이 들어갔고 다섯 꼭지 별이 있는 깃발이란 뜻이다. 특이하게 '별'만 한자가 아니다. 북한 주민들은 대개 '공화국기'라고 부르는데 이는 북한 주민들이 일상적으로 자국을 '공화국'이라고 줄여부르기 때문으로 그다지 특별한 것은 아니다. [나무위키백과 참조]
jsa 근무병사와 함께 인증샷
북한지역 농장
돌아오지 않는 다리
돌아오지 않는 다리 또는 돌아올 수 없는 다리는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경계인 한반도 군사 분계선을 가로지르는 다리로, 공동 경비 구역 서쪽에 흐르는 사천에 위치한다. 1953년 한국휴전협정 체결 후에 이 다리를 통해 포로 송환이 이루어졌다. 다리의 이름은 포로들이 한 번 다리를 건너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다는 데서 유래하였다. 본래의 다리 이름은 널문다리였으며, 1953년 7월 휴전 이후 현재의 이름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돌아오지 않는 다리가 포로 송환용으로 쓰인 적은 1968년 푸에블로 호 선원들이 석방되어 다리를 통해 대한민국으로 건너간 때가 마지막이다.[1][2] 이 다리는 1976년 8월 도끼 살인 사건이 발생하기 전까지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측에서 판문점으로 들어오는 용도로 자주 쓰였다.[3] 사건 발생 이후 국제 연합 사령부는 공동 경비 구역 내에서도 군사 분계선을 구분 짓도록 하였고,[3]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72시간만에 판문점 서쪽에 새로운 다리를 만들면서 돌아오지 않는 다리는 쓰이지 않게 되었다.
한반도 군사 분계선이 다리 가운데 부분을 지나가며, 다리의 양쪽 끝부분에는 각 국가의 초소가 위치하고 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초소는 KPA#4으로 불리며, 1980년대 중반 폐쇄된 국제 연합 사령부(UNC) 검문소는 CP#3으로 불렸다. CP#3는 나무가 둘러싸여 있어서, 동계 기간에는 UNC OP#5(오늘날 CP#3로 개명) 초소에서만 관측할 수 있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인민군 (KPA)은 옛 CP#3 초소에서 UNC 병사를 납치하여 다리를 지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영토로 데리고 가려는 시도를 수없이 많이 하였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영토와의 근접성, 모든 접근 경로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초소로 에워싸여 있다는 점, 근무하는 UNC 병사를 납치하려는 시도가 반복된다는 점 때문에 CP#3를 "세상에서 가장 고립된 전초 기지"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2003년에 다리를 보수할 필요가 있게 되자 미국 정부가 다리를 보수하거나 교체하자는 제안을 하였지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측에서는 이에 동의하지 않았다. [나무위키 백과 참조]
인증샷 사진을 부탁했더니 별로 맘에 들지 않는다.
통일촌
망초꽃
흰씀바귀
계요동
민들레꽃
개느삼
지황
칼랑코꽃
오리엔탈 백합꽃
도라전망대
서부전선 군사분계선 최북단에 자리 잡고 있다. 송악산 OP(Observation Post : 관측소)가 폐쇄된 후 1986년 사업비 약 3억 원을 들여 국방부가 설치한 통일안보관광지이다. 일반인에게 공개된 것은 1987년 1월부터이다. 건물총면적은 803.31m²로, 관람석(500석)·VIP실·상황실 등으로 이루어져 있고, 망원경 수십 대가 설치되어 있다. 이곳에서는 개성공단과 개성시 변두리의 모습이 선명하게 보이며, 그밖에 송학산·금암골(협동농장)·장단역·북한선전마을 기정동·김일성 동상 등이 바라다 보인다. 전망대 바로 옆에는 제3땅굴이 있다. 1978년 발견된 제3땅굴은 길이 1,635m·높이 2m·폭 2m로, 1시간당 3만 명의 병력이 이동 가능한 규모이다. 땅굴 앞에는 분단의 역사와 자연생태계 영상을 담은 입체영상물을 상영하는 DMZ영상관과 비무장지대 관련 유물과 자료를 전시하는 전시관, 상징모형물, 기념품판매장 등의 시설이 설치되어 있으며, 모노레일을 타거나 걸어서 땅굴 내부를 관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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