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요산 큰불 언제 잡힐지 몰라 발동동 … 진화 열흘은 더 걸릴듯 1편

2022. 11. 4. 19:26☎청파산행과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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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D7A39hIq4Z4

 

 

 

소요산 큰불 언제 잡힐지 몰라 발동동  진화 열흘은 더 걸릴듯 

가을이 깊었다. 설악산에서 시작한 단풍 소식이 벌써 저 아랫녘 지리산까지 갔다는 소식이 들리는데, 지난 일요일이다. 서울한양도성 순성길을 걸을때다. “동심회 산행대장 파랑새 아우가 묻는다.

형님 이번 목요일은 어느산으로 갈까요?’

갑자기 기러기 울어 예는 / 하늘 구만리 / 바람이 싸늘 불어 / 가을은 깊었네 / 아아 너도 가고 / 나도 가야지.’ “박목월(朴木月) 작시, 김성태(金聖泰) 작곡의 가곡이 생각난다.

 

하지만 나이먹었다고 내 주장대로 정하는 것이, 썩 내키지 않는다.  그냥 아우가 일행들 의견들어 보고 결정해 했는데, 속깊은 파랑새 아우가 내 마음을 읽었나보다.

 

다음날이다. 카톡 동심회 공지에 소요산 단풍산행 공지가 올랐다. 이를본 순간 마음은 벌써 추색이 새빨갛게 물든 소요산에 가있다. 소요산은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소금강이라 불러도 손색없을 정도로 가을 단풍이 붉게 탄다. (그때문인지 소요산 입구에는 소방서가 자리잡고 있다.)

 

27일 이른 새벽 새벽운동을 접고 우리집 애완견 일명똥개를 산책을 시킬겸 단골 김밥집에서 김밥 두줄을 사들고 서둘러 걸망을 챙겨메고 부평역으로 간다.

 

부평에서 소요산까지는 급행, 완행 전동열차가 다닌다. 그바람에 일찍암치 자리를잡고 2시간넘게 달리는 동안 설친 새벽잠을 보충해주며 고향친구, 그리고 후배와 도착해 일행들을 기다리며, 들머리 입구에서 단풍을 보니 기대에 못미치는 것 같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잠시 포장마차에서 어묵 한꼬치에 구수한 국물한컵 마시고 나니, 몸이 풀린다. 그러자 뒷차로 온 네명의 일행들이 도착해 곧바로 산행 시작이다

 

요석공주의 설화를 간직한 소요산

원효대사의 부인 요석공주는 신라 제29대 왕인 무열왕의 딸이다. 요석공주는 일찍이 홀로 된 몸으로 요석궁에 머물렀다. 이때 원효는 당으로 가려던 유학길을 포기하고 신라로 돌아온다. 그리고 자유롭게 떠돌아다니며 많은 사람들을 만나 불교의 교리를 전파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원효가 이상한 노래를 부르고 다녔다. ‘그 누가 자루 없는 도끼를 내게 빌려주겠는가? 나는 하늘을 떠받칠 기둥을 찍으리라’. 원효의 노래는 무열왕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무슨 말인지 도통 의미를 알 수 없는 노래였다. 무열왕은 스님이 슬하에 아들을 보고 싶어하는구나 짐작했다.

 

이때 무열왕은 나라에 큰 현인이 있으면 좋을 것이라 생각하며, 원효를 궁으로 부른다. 그런데 궁으로 가는 길에 원효가 냇물에 풍덩 빠지게 된다. 원효는 옷을 말린다는 핑계로 궁에 며칠이나 머문다. 그리고 요석 공주와 사랑에 빠진다. 그 후 요석 공주에게 아기가 생겼고 그렇게 태어난 아이가 설총이랍니다.

 

이후 원효는 파계승이 되어 전국 곳곳을 돌아다니던 중 소요산 원효대에 정착하여 수행에 전념하였다. 요석공주는 원효를 사모하는 마음에 아들 설총을 데리고 와 소요산 아래에 조그만 별궁을 짓고 살면서 아침저녁으로 원효가 수도하는 원효대를 향해 예배를 올렸다고 한다.

 

구절터는 이런 원효대사와 요석공주의 고귀한 사랑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원효대사가 요석공주를 두고 이름을 지었다는 공주봉은 소요산 일주문에 들어서서 우측 능선으로 오르면 첫 번째로 만나는 봉우리다. 높이는 526m이며 공주봉을 지나면 소요산의 최고봉인 의상대와 만난다.

 

매월당 김시습 또한 소요산을 자주 거닐었다고 한다. 그만큼이 산은 경관이 빼어나고 휴양하기에 좋다. 공주봉 정상은 마당처럼 넓어 앉아서 쉬기에 좋다. 하지만 공주봉은 급경사 암석 지역이 많아 지형이 험준하고 미끄러워 추락 및 낙석 위험이 높으니, 지정된 등산로를 벗어나는 위험한 행동은 삼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