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 보약이다...40년만에 다시 오른 고령산 꽤꼬리봉

2021. 3. 18. 20:12☎청파산행과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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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gEaoLCpgCfA

 

산이 보약이다...40년만에 다시 오른 고령산 꽤꼬리봉

 

3.28일은 내가 나가는 부평산악회에서 전북 부안 변산 쌍선봉 (459m)으로, 산행을 떠나는 날이다. 그런데 하필이면 이날 친구의 자녀 결혼에, 또 지인의 자녀 결혼, 그리고 2달에 한번 만나는 친인척들과의 모임이 있는 날이다. 그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산행을 포기해야 만 했다.

 

이런날은 몸이 두 서너개 였으면 좋을 것 같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결혼식 두곳은 아내에게 위임을 하고 산행을 포기하고 친인척 모임으로 간다. 그런데 친목회 모임 시간이 정오 12시다. 좋다. 그렇다면 좀 일찍 서둘러 친목회 참석길에 경기도 파주시에 있는 고령산(662미터) 산행을 하고, 친목회 참석을 하기로 맘을 먹는다.

 

그리고 그리 멀지 안은 이웃에 살고 있는 외사촌 동생 부부에게, 친목회 참석길에 함께 동행 할 수 있는가 뜻을 물으니, 기다렸다는 듯이 찬성이다. 부평에서 서울도심 외곽순환고속도로를 달려, 벽제시립묘지 지나 보광사가 주차장에 도착하니 오전 10시다. 그런데 보광사 사찰을 찾은 인파가 붐빈다.

 

우리는 인파를 피해 인적이 드믄 도솔암 코스로 오르는데, 들머리부터 얕으막한 골짝을 지나니 곧바로 급경사로 이어진다. 게다가 3월말이다 보니 메마른 등산로에서 폭삭폭삭 흙먼지가 피어올라 코도 쾌쾌하고 등산화에 먼지가 쌓여 경작을 해도 좋을 것 같다. 주변 하늘을 찌를듯한 잡목숲은 아직 겨울잠을 자고 있어 풍경은 삭막하다. 산행때 마다 매번 느끼는 느낌이다. 해마다 이맘때가 산행하기 제일 매력이 없는 계절이다. 이유는 폭삭폭삭 흙먼지에 목구멍이 칼칼하거나 해토하느라 땅이 녹아 등산화가 천근만근이다. 게다가 중국발 황사까지 찬조 출연하는 바람에 사진을 찍어도 회색이 되어 칙칙하다.

 

이날 고령산 산행길에 유일하게 볼 수 있는 것은, 된 비알을 고추세워 가파르게 이어지는 등산로, 우측 정상에 공군 레이다기지가 보일 뿐이다. 도솔암 입구에 도착하니 동자승 모형 아기 스님이 썬그라스를 끼고, 비스듬이 누워 졸고 있다. 그 모습 보며 주머니에서 지페 한 장꺼내 시주를 하며 한 소리 한다. ‘스님 나이도 어린신데, 그렇게 누워 폼만 잡으시면 되나요. 귀찮으시더라도 일어나, 가믐에 콩나듯 오가는 중생들 위해 불경이라도 들려 주셔야지요.’ 하며 합장을 하고 도솔암을 지나친다.

 

어디쯤일까 헉헉 거리며 급경사 코스를 오르고 나니, 핼기장이 있다. 그리고 그 기슭에서 5~6명의 등산객이 술을 따라놓고 일년내내 무탈안전 산행을 기원하는 시산제를 올리고 있다. 그중 한분이 축문대신 산행길 무운을 비는 기도 소리가 얼마나 낭낭하고 간절한지 인상적이다. 덩달아 나도 그분들 산행길에 무운을 빌며 간다.

 

그사이 이날 산행의 목적지 고령산 (앵무봉)일명 꽤꼬리봉 정상에 올랐다. 감개가 무량하다. 총각시절 그러니까 40여년전이다. 고향에서 농번기를 피해 거의 매년 또래들과 이곳 고령산을 찾았었다. 그땐 천막이 없어 마을에서 잔치나 큰일을 할때면 챌 사용하는 (차일(遮日) 햇볕을 가리기 위하여 치는 장막)을 둘둘말아 가운데 기다란 작대기를 끼어 앞뒤에서 한사람이 어깨에 메고 운반하며 몇 십리길을 걸어서 보광사 계곡에 자리잡고 캠핑을 즐겼었다.

 

그리고 이튼날 새벽 일출을 본다고 꾀꼬리봉에 오르면 아침이슬에 옷이 흠뻑젖어 비맞은 개꼴이 되었다. 그래도 월남에 다녀온 친구가 빌려준 미놀타 카메라로 폼잡고 찍은 사진이 지금까지 나에겐 아름다운 추억으로 각인되고 있다. 그런데 그 시절 함께 고령산에 올랐던 일행들중 벌써 2명이나 유명을 달리했다.

 

정상에서 먼저간 친구들에 대한 묵념을 드리고, 주변을 살핀다. 당시 정상은 군작전지역이 되어 시계청소를 하여 거슬리는 수목도 없었다. 다만 한그루 외로운 소나무가 외로히 고령산을 지키고 있었었다. 그런데 이날 40여년이 흐른 뒤 본 그 외로운 소나무는 어엿한 아름드리 노송이 되어, 그 자리를 지키며 나를 그늘에 쉬고 가라 안식처를 마련해준다.

 

소나무야 모진세월 겪으면서도 굳건히 자리 지켜주어 고맙다. 아무쪼록 자랑스런 우리나라 대한민국에 남북통일 평화 오는 그날까지 고령산을 지켜다오. 마음속으로 당부를 한다. 고령산 정상엔 군작전용으로 속빈 레이더와 속빈 탐조등이 설치되어 있다. 고령산에 다녀간 일부 사람들의 산행기를 보면, 이 빈 레이더, 탐조등을 보고 군기지 페쇄후 치우지 않은, 페기물을 방치했다고 쓴 것을 보았다.

 

그런데 그것은 그분들이 실정을 모르는 개인적 생각이다. 고령산 정상에 있는 빈 레이더, 탐조등은 우리의 주적 북한군을 유사시, 오판케 하기 위한 군작전용 설치물이다. 설치물을 둘러보는 사이 외사촌 여동생 부부가 도착했다. 그런데 영락없이 ‘수수팥떡 해먹다 불낸 사람들처럼 얼굴이 뻘겋게 달아가지고 도착했다.’ 친목회 모임 시간에 맞추기 위해, 무리를 한 것 같다. 우리는 서둘러 커피 한잔씩 나누어 마시고, 걸음아 날 살려라 올라온길 반대 방향으로 하산이다.

 

40년전 우리들은 고령산을 꽤꼬리봉이라 했다. 그런데 정상석 사진을 보니 꽤꼬리봉이 아닌 앵무봉(622미터)다. 하기사 앵무새면 어떻고 꽤꼬리면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그놈이 그놈이지, 앵무봉 정상석은 문산 자유로 산악회에서 세웠다. 하산 코스는 오를 때 보다. 경관은 수려한데 경사도는 훨씬 더 가파르다.

 

모임 시간에 쫓기다 보니, 산악 마라톤 하듯 바삐 하산을 한다. 그런데 보광사 미륵탑 앞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윤 이월달에 올리는 합동 천도제를 드리는데, 바라춤을 추며 칭, 장구를 울린다. 처음보는 천도재 풍경이라 취재를 하고 싶다. 그러나 친목 모임 때문에 마음을 접고 먼저 내려간 외사촌 동생내외를 따라 주차장에 도착했다.

 

‘오빠 미안해요. 사진 못찍으셔서 어떻게해요.’ 아냐 어쩔 수 없잖어. 여동생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고향마을 친목회에 도착하니 약속시간 보다 20여분 지각이다. 일행들이 산행을 하고서 참석했다고 반가히 맞아주며 박수로 환영을 한다.

 

그 바람에 부담없이 친목회원들과 부담없이 한잔하며 건배를 한다. 그러다 보니 분위기에 취해 몇 순배 술잔을 비웠는지 모른다. 그러자 40년만에 다시 올랐던 꽤꼬리봉 추억이 삼삼히 떠오르며 그때 함께 올랐던 먼저간 친구들 생각에 눈시울이 젖는다.

고령산은 높이는 622m로, 파주시 광탄면 기산리와 영장리, 장흥면 석현리, 양주군 장흥계곡에 걸쳐 있으며, 숲이 울창하게 우거져 있다. 높이가 별로 높지 않으나, 경기도 북서지역에서는 감악산과 더불어 높은 산으로 꼽힌다. 북쪽으로 양주군이, 남쪽으로 북한산 백운대가, 동쪽으로 불국산, 사패산, 도봉산 등의 봉우리가 있다.

 

산 아래에 있는 보광사는 894년(진성여왕 8) 도선국사가 왕명으로 창건하였고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여러 차례 중수하였다. 산기슭에는 도솔암이 있는데, 말 그대로 소나무로 둘러싸인 암자이다. 도솔암에서 조금 더 오르면 정상이다. 정상은 평탄한 공터이며, 북쪽으로 감악산이 보인다. 정상 남쪽의 봉우리는 군사 지역으로 산행할 수 없다.

 

고령산은 1634년에 주조한 보광사 범종과 조선 후기에 편찬된 (양주목읍지)에 각각 고령산(高嶺山)과 고령산(高靈山)으로 기록되어 있어 높고 신령스러운 산으로 여겼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