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시의 언어] 1. feeling과imagination에 관여하는 언어

2018. 8. 9. 16:35☎시작법논리와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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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 시의 언어



화가가 아무리 많은 생각과 느낌을 가지고 이더라도 화폭에 옮겨 놓지 않으면 볼 수 없고, 작곡가가 아무리 아름다운 선율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악보에 옮기고 악기로 연주하지 않으면 그 아름다움을 아무도 들을 수 없다. 이렇듯 언어예술인 시도 언어로 표현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이들은 한결같이 표현매체를 통하여 모두 정고하고 치밀하게 효과적으로 형상화한다는데 있다.

  시의 언어란 단순한 부호가 아니다. '하늘'하면 저 하늘이 지닌 모든 신비를 그 말이 담아내고, '땅'하면 그 땅이 거느리고 있는 모든 비의(秘意)를 드러낸다. 그래서 낱말 하나하나가 소우주(小宇宙)다.

  문학의 꽃이라 부르는 시는 문학적 언어의 정수를 보여 준다. 따라서 시가 무엇이냐 하는 문제는 결국 시의 언어가 무엇이냐 하는 문제로부터 풀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 이를테면 시의 언어는 시인의 정서를 드러내는 기호로 정교하게 짜여진 언어의 구조물이기 때문이다.

  미묘하고 신비한 시인은 언어를 매개로 하여 자아와 세계의 죤재를 드러낸다. 따라서 시인은 언어의 마술사가 되어 언어를 마음대로 다룰 줄 알아야 한다. 그러자면 언어에 대한 탁원한 감각이 필요하다. 어떤 언어가 참식하고, 어떤 언어가 적합한지, 어떤 언어가 상상력을 자극ㄱ하고, 어떤 언어가 효과적인 것인지, 어떤 언어가 감각적이고 구체적인지, 어떤 언어가 역동적인지 등 식별할 줄 알아야 한다.


말을 고른다

고르다가 버리고

버린 뒤에 새로 얻는 말

그래, 이거다 싶은 놈만

하얀 연병자에 도열해 놓고

일개 분대씩 또는 일개 소대씩

차례로 끊어 사열해 본다

너무 순하고 긴장이 풀리고

너무 조이면 주제가 망가진다

비약이 지나치면 난해해지고

요설이 길어지면 무게를 잃어

몇 번씩 마름질한 말들이

자개처럼 붙박여

반작반짝 스스로 빛을 낸다

다시 구령을 붙여 본다

각자 헤쳐모여!

앞으로갓! 뒤로돌아갓!

(일 열 중 둘째 놈이 박력이 없다)

좌향앞으로갓!

(이 열 중 셋째 놈이 비꺽거린다)

우향앞으로갓!

(삼 열 중 셋째 놈이 리듬을 깬다)

또 빼고 더하고 갈아끼운다

제자리섯! 열중쉬어!

나도 그만 돌아와 쉰다

직성은 아직 풀지 못한 채

 임영조 <시짓기> 전문


  위 <시짓기> 처럼 시의 언어는 그저 대충 말들을 꿰어 마추어 쓰는 것이 아니라, 표현하려는 대상에 대한 시상을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는 언어, 즉 가작 정확한 시어를 찾아애어 표현해야 한다. 그리고 그 시어나 표현이 단지 기교만을 부린 것이 아니라, 거짓 없는 진실한 마음을 담고 있어야 한다. 시인은 마치 출가인처럼 수행하듯 참고 기다리며 말을 다듬는 과정의 고뇌가 있어야 한다.


1. feeling과imagination에 관여하는 언어


  시란 외면풍경과 내면풍경이 직조된 옷이다. 그래서 시의 촉발은 우선 외면풍경, 시인의 체허믈 노래한다. 그리고 동시에 내면풍경(의미부여, 깊은 사유, 혹은 상상력), 그 속에 시인의 마음, 정신이 담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표현이 아름다워도 읽는 독자를 감동시킬 수 없다.

  나아가 시의 외면풍경의 언어는 정보의 전달이 아닌 정서적으로 쓰이며, 감정이나 상상에 관여한다. 그런 점에서 시는 상상력의 건축물이다. 파격적인 비유와 몽상의 세계가 가미되어야 한다. 상상이 없는 시는 재미도 없고 무미건조하다.


산 너무 저쪽엔

별똥이 많겠지

밤마다 서너 개씩

떨어졌으니,


산 너머 저쪽엔

바다가 있겠지

여름내 은하수가

흘러갔으니,


이문구 <산 너머 저쪽> 전문


  한 중견 작가가 쓴 이 아름다운 동시는 아무런 정보 전달도 하지 않는다. 이 작품의 아름다움은 어린이의 상상력에 가하는 신선한 충격에서 온다. 그것은 과학과 상식이 설명하는 경험적 사실의 혀를 찌르는 대담하면서 그럴듯한 상상 셰계의 놀이에서 온다,

  시적 언어는 결구 허구를 만들어내는 언어이다. 그것은 시인의 개인적인 체험, 언어 안에 불씨처럼 박혀있는 상상력에 의한 영사의 환기 같은 것이다. 그래서 시적 허용이 시창작에서 정당서을 갖는다.

  시적 허용(詩的許容)은 문학에서 문법상 틀린 표현이라도 시적인 효과를 위하여 허용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머언'(먼), '노오란(노란), '어매'라는 사투리로 표현하는 것에서 볼 수가 있다. 그러나 특별한 사정이 아닌데도 시적 허용이라며 맞춤법을 무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어법이나 문법이 다르다고 모두 시적 허용은 아니기 때문이다.

  시는 참고 있어도 나오는 기침처럼 쓰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그리움이고 아픔이며, 또한 기쁨이다. 그래서 시는 때로는 그리움으로, 때로는 아픔으로 때로는 기쁨으로 우리의 가슴에 와 닿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직설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데 있다. 곧 시의 언어는 관념으로 말하지 않는다.  시의 언어는 말로 만든 그림(이미지)이고 음악이다.


썼다 지우고

지웠다. 쓴

이름 하나

말없이 가슴만 닮아버렸다

지금도 버리지 못한

보석보다 귀한

지우개 하나


박진환 <사랑> 전문


"사랑"이란 관념을 "지우개"라는 사물로 변용, 이미지화하여 눈으로 볼 수 있도록 형상화하고 있다. 그래서 시는 은유를 본련으로 한다. 어떤 시인은 소가 강아지풀을 밟고 있는 모습을 "소를 들어올린 꽃"이라 표현했다.

  시는 주관적 느낌, 대상에 대한 정서적(情緖的) 반응, 심리적(心理的) 반응만 전달한다. 보편적으로 일상적 언어가 현실적, 실용적징 정보를 묻거나 사실을 보고한다는 데 있다며며, 시의 언어는 사실에 대한 사람의 느낌, 심리적 반응, 혹은 명상이나 대상의 해설을 드러낸다.


나직하고, 그윽하게 부르는 소리 있어,
나아가 보니, 아, 나아가 보니--
졸음 잔뜩 실은 듯한 젖빛 구름만이
무척이나 가쁜 듯이, 한 없이 게으르게
푸른 하늘 위를 거닌다.
아, 잃은 것 없이 서운한 나의 마음!

나직하고, 그윽하게 부르는 소리 있어,
나아가 보니, 아, 나아가 보니--
아려-ㅁ풋이 나는, 지난 날의 회상(回想)같이
떨리는, 뵈지 않는 꽃의 입김만이
그의 향기로운 자탕안에 자지러지노나!
아, 찔림 없이 아픈 나의 가슴!

나직하고, 그윽하게 부르는 소리 있어
나아가 보니, 아, 나아가 보니--
이제는 젖빛 구름도 꽃의 입김도 자취 없고
다만 비둘기 발목만 붉히는 은(銀)실 같은 봄비 만이
소리도 없이 근심같이 내리노나!
아, 안 올 사람 기다리는 나의 마음!

변영로<봄비> 전문


  시인 혹은 시속의 화자가 여기서 노래하는 대상, 그러니까 지시물은 '봄비'이다. 그러나 화자는 '봄비'라는 대ㅎ상에 대해 어떤 객관정 정보도 알려주지 않은다. 그가 하는 말은 객관적 정보라기보다는 일종의 주관적인 느낌(대상에 대한 정서적 반응 혹은 심리적 반응)만을 보여 준다. "봄비"는 "나즉하고 그윽하게 부르는 소리"라는 특성을 객관적으로 소유하지 않는다. 또한 '봄'에는 "비둘기 발목만 붉히는 의실"같은 시각적 특성도 없다. 나아가 '봄비'는 소리도 없이 "근심같이 내리"지도 않는다. 이 이시에서 화자가 하는 말은 따라서 일종의 거지말이다. 그러나 찬찬히 다시 읽어보면 어떤 진실을 내포하ㅗㄱ 있다. 이를테면 '봄비'라는 대상에 대한 일종의 심리적 진실혹은 정서적 질실이다. 게다가 시에서 있어서는 말의 리듬(rhythm)과 이미지(image)와 어조(tone)가 보통의 언어에서보다 중요한 구실을 한다.

  결국 시인은 일상적인 언어를 사용하면서도 일상적의 의미와는 다른 차원의 언어를 구사하는 것이다. 그것은 마침내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이나 관념이 아닌 구체적인 내용을 형상화하여 설명이나 객관성을 벗어나 감각적으로 느끼도록 하는 것이다.





문광영 지음 <시 작법의 논리와 전략>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