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장 시상 전개의 형상화 논리] 4. . 시행(詩行)과 연(聯) 구성

2018. 8. 9. 15:13☎시작법논리와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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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시행(詩行)과 연(聯) 구성


  시에서 행과 연은 시의 형태를 만드는 시 구조의 기본 골격이다. 행은 단어, 구(句), 절(節) 또는 그것들의 연합으로 되어 있고, 연은 하나의 행, 또는 행의 연합으로 구성된다.


  1) 시행(詩行)과 연(聯) 구성의 의미

  시에서 행(line)이나 연(stanza)를 준다고 모두 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또 행과 연을 잘못 처리하면 시적 메시지 전달이 잘못되거나 시적 감응을 반감시킬 수가 잇다. 어떤 경우는 불필요한 행과 연을 구분해서 오히려 기형적이거나 난삽한 시를 만들수도 있다. 그만큼 시의 구조는 매우 치밀한 언어의 건축물인 것이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나태주 <풀꽃> 전문


  시<풀꽃>은 그야말로 단아한 시구로 되어 있다. 짧지만 행과 연 사이에는 무수한 빈틈을 메꿀 수 있도록 휴지가 장치되어 있다.

  말을 많이 하고자 하는 산문작가들이 확장적인 방식으로 글을 쓴다면, 말을 적게 하는 시인들은 이렇게 수렵적이고, 압축과 함축적인 진술방식으로 시를 쓴다. 그래서 스펜서(Hebert Spencer) 같은 실증주의자들은 이러한 시의 속성을 "정신적 에너지를 경제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산문은 일상적 경험데 대한 느낌과 생각을 재현하는 경향이나, 시는 보다 사물이나 삶의 세계를 새롭게 드러낸다.

  나아가 시에서 행이나 연의 연결은 연상과 상상에 의해 이루어진다. 그런데 일부 형태상으로 무조건 행과 연을 주기만 하면, 시가 되는 줄로 알고 있다. 내용상으로 보면 분명 산문인데, 행과 연을 주어 시 형태로 제시하는 우를 범하는 경우이다. 시에서 행과 연을 주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리듬의 단락', '의미의 단락', 이미지의 단락'을 주어 시적 효고ㅘ를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곧 이 세 가지 혼융되는 형상의 집합체로서 시의 맛과 멋을 내는 것이다. 또 여기에서 이 세 가지는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음보격 리듬의 단위는 느낌, 생각, 상상 등 의미의 단위와 어우러지고, 또 여기에 감각적 장면을 드러내는 이미지와 깊이 구조되어 있다. 그래서 시의 행과 연을 주는 행위는 시적 효과에서 결정적 기준이 된다.

  산문은 사고의 단위가 문장과 단락(문단)으로 계기적, 인과적, 연대기적 질서에 의해 전개된다. 하지만 시에서는 사고(정서)의 단위가 행과 연으로 되어 있으며, 연상(聯想)에 의해 전개된다. 그리고 전자의 산문이 그 내용면에 있어 사실의 객관적인 정보 혹은 실용적 가치의 내용을 담고 있다면, 시는 대상에 대한 심리적 반응 내지는 시적 명상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확연히 다르다.


날이 밝으려면 아직 멀었다. 나는 아파트 앞에서 택시를 기다려 탔다. 택시는 불을 끄고 빈 영동 거리를 달렷다. 어지러워 눈을 감았다. 제3한강교를 건널 대 나는 차를 세웠다. 문을 열고 나가자 시원 한 공기가 몽롱한정신을 일깨워 주었다.

조세희 서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일부


마른 잎 한 장이 떨어져 내린다

바람의 등에 업혀 곡선의 길을 간다.

놀라워라, 저 평생의 다이어트!

나뭇가지에 모든 걸 내려놓고 팔랑,

팔랑 마른 잎 한 장으로 돌아가는

마른 잎 장으로 친전(親庭)에 드는

어머니.

김선태< 마른 잎 한 장> 전문


  조세희 소설에서 문장의 연결은 시간적 질서를 따르고 있으며, 또 문장과 문장 사이에는 인과적 질서, 곧 계기성이 드러난다. 그렇지만 김선태 시의 연결 방식은 시간적 질서나 인과적 질서를 따르기보다는 연상의 질서를 따르고 있다. 조세희의 산문에서는 시간과 공간이 치밀하게 계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시간의 운행은 어두운 '새벽'에서 시작되고, 공간은'아파트-영동 거리- 제3한강교'로 이어지는 공간 이동의 변화를 보여준다. 그리고 서사문장 사이의 연결이 '어지러워 눈을 감았고', 그래서 '차를 세웠고', '문을 열자 시원한 공기가 들어왔고', 그래서 '몽롱한 정신을 이깨웠다'는 인과적 질서로 전개된다. 하지만 시에서는 다른다. "마른 잎 한 장"이 "바람의 등에 업혀 곡선의 길을 간다"고 개성적 느낌이 작용하고 있으며, 이를 비약하여 "저 평생의 다이어트!"라는 연상적 질서로 운행된다. 나아가 결구 부분에서는 비약적으로 치환하여 "마른 핖"이 "어머니"로 전치(轉置)되는 상상력을 보여준다. 나아가 어쩌면 이 시는 우주적 윤회(輪廻)의 관점으로도 읽힌다. 바로 "곡선의 길"과 "친정(親庭)드는 어머니"에서 보여주는 이미지인데, '내가 태어난 곳이 땅이니, 다시 새싹으로 움트기 위해 돌아간'는 무시무종(無始無終), 생즉사사즉생(生卽死死卽生)의 우주적 희귀와도 맞닿아 있는 것이다.


마을이 가까울수록

나무는 흠집이 많다


내 몸이 성하다

이정록 <서시> 전문


  이정록의 <서시>는 아주 짧은 일본의 하이쿠(俳句)시와 같다. 3행 2연의 아주 짧은 시이지만 행간에 녹아있는 깊은 의미를 읽어내야 한다. 인문학적 상상력이 풍부한 독자, 경험이 많은 유능한 독자, 유독 상상력을 십분 발휘하는 사람은 이 짧은 시구의 행간에서 보다 많은 의미를 읽어낼 수 있다. 하지만 멍청한 독자는 그저 난해하기만 할 것이다. <서시>는 성찰의 시로 ㄹ산전수전의 고뇌, 고행을 겪은 상처를 입은 자라야 진정한 사람이라는것, 성숙된 이간의 전제 조건임을 암시하고 있다.

  시의 행과 연의 처리는 작품의 미학적 전개를 위해 매우 필요한 장치이다. 해서 시를 쓰는 사람은 행과 연을 처리하는데 있어 독자를 염두에 두고 적절한 상상력의 등가성을 발휘하여(텐션(tionsion, 장력,심미적 거리)을 줄 필요가 있다. 어느 정도 행과 행, 연과 연 사이에서 휴지라는 의도된 구성을 시도하라는 것이다. 위의 <서시>에서 첫 연과 마지막 연사이에는 엄청난 텐션이 작용하고 있다.

  우리가 시를 읽는다는 것은 어떤 작업인가? 수용미학적으로 만하면, 독자의 입장에서 시 읽기란 시 텍스트의 불확정적인 함축적인 영역을 심미적으로 구체화하는 작업이다. 바로 시 독자가 향수하는 덱스트의 불확정적인 함축적인 영영을 심미적으로 구체화하는 작업이다. 바로 시 독자가 향수하는 덱스트의 의미는 시 텍스트의 구조와 독자 구조 사이에서 밀고 당기면서 의미는 구체화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시인은 하나의 시 덱스트를 의미 있게 구체화 할 수 있도록 장치해야만 한다. 다시 말하면 시인은 덱스트의 연과 행간 사이에 다 말하지 못하는 '빈자리(gaps, bkank)dhk)와 '미결정성'의 영역을 행과 연으로 처리, 적절히 구성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독자는 유는한 독자가 되어 자신의 경험을 끌어올리거나 취향, 혹은 문화적 코드에ㅏ라 상상력으로 이를 채워나간다. 그래서 시의 행간과 연의 처리가 매우 중요한 것이다.


  2) 시행(詩行) 걸침

  시행걸침(enjmbement)은 시를 창작할 때 쓰이는 기법 중의 하나이다. 시인은 시의 행과 연을 처리할 때 시행걸침의 표현을 통해 효과를 보기도 한다. 시행걸침은 우리가 통사적(統辭的)으로 사용하는 언어표현 방식을 거부하고 일탈시켜 창조적이고도 새로운 의미를 전달코자 하는 의도를 담고 있다.


꽃이 핀다. 님의 웃음이

떨어지는 곳마다 꽃이 핀다

그 꽃을 손으로 꺾었더니

꽃도 잎도 다 떨어졌다

땅에 떨어진 님의 웃음

마음속 깊이 간직했더니

그게 피어나 꽃이 되어

이 타는 속을 미칠듯이.

주요한 <꽃> 전문


  위 시에서 시행걸침은 1행의 "님의 웃음이"라는 구절이다. 통사적으로 앞은 "꽃이 핀다"와 2행의 "떨어지는 곳마다"와 사이에 걸쳐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시행걸침은 첫째로는 운율을 맟추기 위한 배려로 보이낟. 이 시는 한 행이 3음보 격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님의 웃음이"를 2행에서 표혈할 경우 3음보가 깨어지기 대문이다. 둘째 이유는 절묘한 이중적 의미를 드러내기 위함이다. "님의 웃음이"는 앞의 "꽃이 핀다"의 주어부가 되고, 2행의 "떨어ㅣㅈ는 곳마다 꽃이 핀다"라는 서술부의 주어부에고 관혀하게 되는 것이다.


그립다

말을 할까

하니 그리워,


그냥 갈까

그래도

다시 더 한번...


저 山에도 까마귀, 들에 까마귀,

西山에는 해 진다고

지저귑니다


앞 江물,ㅡ 둣 江물,

흐르는 물은

어서 따라 오라고 따라 가자고

흘러도 연달아 흐릅디다려.

김소월 <가는 길> 전문


  위 시에서 시행걸침은 1연 3행의 "하니"이다. 시에서 화자의 심경은 '피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떠나지 않으면 안 되는 자아'이다. 말하자면 떠나야만 하는 현실과 떠나고 싶지 않은 마음 사이에서 갈등상태에 휩싸여 있다. 이 시에서 "말을 할까"와 "하니" 사이는 일상 언어에서는 쉽게 뗄 수 없는 강한 통사적 연관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시행걸침에 의해 이 사이를 행간 휴지로 단절시킴으로써 "말을 할까"와 "하니 그리워" 사이에는 시간적 거리가 생기고, 이 시간적 거리는 '망설임과 머뭇거림'이라는 시적 화자의 심리를 더욱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말하자면 3행의 "하니"를 2행의 끝에 붙여 놓아야 하는데, 3행에 내려놓은으로 해서 시적 자아의 미묘한 감정의 깊이를 드러내는 것이다. 

  나아가 위 시에서 시행걸침은 통사적으로는 애매하지만 그것은 의미의 단절과 연속의 부자연스러움을 가져온다. 그 과정에서 쉽게 선택할 수 없는 이중의 의미를 형성하는 경우이다. 이중적 의미, 그 두 상충된 의미의 진동, 울림은 의미의 확산을 가져와 상상적 체험을 귿대화시킨다. 즉, "말을 할까 하니"로 읽을 있는가 하면, "말을 할까 / 하니 그리워", 곧 '그립다고 말을 하니 더 그립다'라는 의미로도 읽을 있는 것이다. 

  시<가는 길>은 화자가 표현하기 어려운 마음 속의 감정들을 섬세한 말씨와 대조적인 배경설정을 통해 노래하고 있다. 1.2연에서는 간결한 시어와 시행걸밈을 통해 시적 자아의 망설임과 머뭇거림이 나타나고 있고 3.4연에서는 시적 자아를 서두르게 하는 자연 배경으로서 까마귀 울음소리와 강물의 흐름이 나타나 있다. 얼핏 대조적으로 보이는 상황 설정은 서로의 의미를 강조해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3)시의 첫머리 쓰기

  시 쓰기에서 하나의 고심은 시인이 시의 첫머리와 영감을 어떻게 풀어나가느냐는 점이다. 오로지 시어가 갖는 의미만으로 독자와 마주 대하는 첫머리라서 더욱 심사숙고하게 된다. 시에 있어 첫머리는 독자와 마주 대하는 첫 번재 고비이다. 첫 단추를 잘 끼워야 싱의 운행도 순조로워진다. 무엇보다 시에서 첫 행은 독자들의 관심과 호기심을 끌고 흡인력이 있어야 한다. 너무 흔한 진부한 내용이거나, 장식적인 치장이거나, 식상한 내용이 들어간다면 독자는 더 이상 읽지 않게 된다. 그래서 참신한 첫 인상을 주고 낮설고 어뚱한 표현이 좋다. 앞서 로빈 스켈톤의 이미지 전개에서는 체험에 입각한 외면풍경의 직접적 이미지를 서두에 두라고 햇다. 그 다음에 오는 모든 이지에게 연결되어 그것이 이차, 3차 이미지로 전체 확산되기 때문이다. 

  시의 첫 행은 그야말로 다양한 시상으로 전개된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시작(詩作)의 첫 줄은 가급적 내면풍경보다는 오ㅟ면풍경으로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내면풍경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 경우, 시의 경직성을 띠고 전개되기 쉽고, 난해한 시가 될 수도 있다. 나아가 첫 행의 모티브에 대해 시상이 전개될 때는 점층적 전개로 점점 내면화로 심화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말하자면 시어의 의미나 단어의 형태, 화자의 정서나 의지, 시적 상황등을 점점 더 고조시키면서 시상을 전개해야 한다. 그런 다음 결구 부분에서는 수미상관의 논리를 지켜나가야 한다. 

  대체로 시인들이 즐겨 쓰는 시의 첫 행, 첫머리의 예를 살펴보고자 한다. 

 

  (1) 시간을 나타내는 시의 첫머리

  특정한 시간대는 독자의 호기심을 유발한다. 흔히 4계절이나 하루 중 특정한 시간을 제시함으로써 첫 행이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계절 가운데는 봄이, 하루중에는 밤이 첫 행에서 압도적으로 나타난다. 시간을 드러낼 대는 구체적이고 참신한 어구를 스는것이 좋다.


"늦은 밤 / 별밭을 찾아간다.               (박봉우, < 별밭을 찾아>)

"언제부터 / 이 잉걸불 같은 그리움이 / 텅빈 가습 속에 이글거리기 시작했을까"

                                                    (이가림 <석류>)


  (2) 공간을 나타내는 시의 첫머리

  시에서 대부분 공간을 설정하는 경우는 모티브가 작품 내부의 공간으로 설정되는 경우이다. 생동감 있고 구체적인 공간 제시가 바람직하다.


"브래지어가 탑처럼 쌓인 리어카 앞"     (최금진, <브레지어 고르는 여자>)

"바닷가 찬바람은 / 깨진 겨울을 생간아게 하지"   (양균원, <달빛 흉터>)


  (3) 시간과 공간이 어우러지는 시의 첫머리

  시간과 공간의 동시적 제시는 압축되고 구체적인, 그리고 인상적인 어휘 구사가 요구된다.


"늘은내들만 모여 않은 오후 세 시의 탑골공원"   (김선우, <봄날 오후>)

"경북 / 청도의 칠곡 / 속속이다. 대낮이다"         (김지하, <흰꽃>)

"시월의 보리밭보다 더 파란 바다                      (최태랑, <바다>)


  (4) 관념, 추상어로 쓰여지는 시의 첫머리

 

"멀리 있는 것은 / 아름답다"                             (오세영, <원시 遠視>)

"때로 때로 사랑은 흘깃 / 곁눈질도 하고 싶지"     (이수익, <열애>)

"사랑은 항상 늦게 온다. 사랑은 生 뒤에 온다"      (정현종, <사랑>)


  (5) 수식어와 피수식어로 이루어지는 시의 첫머리 

  제목과 첫머리의 피수식어, 혹은 수식어와 피수식어 사이에 역설적, 비유적 표현등 텐션을 주는 것이 좋다.


"이것은 소리없는 아우성                        (유치환, <깃발> )

"허리끈을 풀어놓고 누운 여자"                (박승미, <모과>)


  첫 문장과 제목 간에는 역시 텐션을 주는 것이 좋다. 위 시구를 보면, 안명옥의 시구는 가구 제작 과정을, 이성선은 화자의 행동을, 김춘수는 나와 짐승을 결합시킴으로써 새로운 긴장을 주고 있으며, 김수영은 의인화를 구사하고 있다.

 

  (7) 비유적 형식으로 처리되는 시의 첫머리

  은유는 원관념과 보조관념으로 이루어지는 시이다. 시의 첫 머리에서 비유(은유)는 두 가지 방식이 있을 수 있다. 그 하나는 아래 윤증목의 <박>처럼 첫머리에 아예 원관념과 보조관념이 모두 드러나는 경우이다.


"밥은 사랑이다"                                                           (윤증목, <밥>)

"소금이 / 바다의 상처라는 걸 /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ㅏ" (류시화, <소금>)

"아내를 들어 올리는데 / 마른 풀단처럼 가볍다"              (공광규, <아내>)

"곷이 얼음 같고 / 꽃병이 유리고기 같다"          (이향지, <꽃에서 달까지>)

"목포는 오래된 엘피판이다"                                        (이대흠, <목포>)


  비유적 형식의 첫머리에서 '설명시' 유형의 경우는 원관념이 제목이 되고, 보조관념의 서술부가 첫 행에서 나타난다. 대개 시의 첫머리 서술은 시인의 독특한 의미부여의 내용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보통이다.


"예리하지 않고서는 견뎌낼 수 없는 오기였다"            박정원, <고드름>)

"껍질을 더 벼길 수도 없이 / 단단히 마른 / 흰 얼굴"     김현승, <견고한 고독>)


  (8) 가정법으로 이루어지는 시의 첫머리


"사랑하ㅏ지 않으면"                       박용재, <사랑하지 않으면>)

"먼 훗날 당신이 찾으시면"               김소월, <먼 후일>)

"엄마가 휴가를 나온다면"                정채봉, <엄마가 휴가를 나온다면>)


  (9) 사물 묘사로 이루어지는 시의 첫머리


"연장통에 누워 있는 / 녹슬고 쓸모없던 / 작은 못 하나"                 (유용주, <못>)

"죽어서야 껴안아지고 업혀지는 걸"                         장정자, <고등어자반 한 손>)

"저기, 바위에 기대 바위처럼 변해 있는 나무가 있네"        (김신용, <바위의 첼로>)


  (10) 대화체나 인용으로 시작하는 시의 첫머리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 주머니 속의 여자가 외친다

                                                                       (유자효, <주머니 속의 여자>)

"오랜만에 아내를 안으려는데 / '나 얼마만큼 사랑해!"라고 묻습니다

                                                                        (공광규, <무량사 한 채>)


  (11)체험, 행동, 사건으로 시작하는 시의 첫머리


"해를 ㅗㅂ면 자꾸만 어지러워 / 거꾸로 매달렸다" (장요원, <드라이플라워>)

"늙은 아낙들이 김장용 새우를 사러간다"             (박홍, <만석부두 가는 길>)

"내 젊은 시절 한 짓은 / 목을 박는 일이었네"        (임보, <못>)

"때로 때로 사랑은 흘길 / 곁눈질도 하고 싶지"      (이수익, <열애>)


  (12) 낯설고 참신한 문장으로 시작하는 경우

  시의 첫머리에서 문장으로 나타내는 경우는 많다. 그러나 제목과 관련하여 본문의 첫머리가 낯설고 참식하게 쓰이는 경우는 그다지 많지 않다. 말하자면 '제목'과 '첫머리 문장'의 처리에서 텐션의 미학을 살려 쓰라는 말이다. 시의 형상화에 있어 제목과 본문 간에 밀고 당기는 긴장의 힘은 시의 미학성을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관건이 되기 때문이다.


"나는 시방 위험한 짐승이다"                                (김춘수, <꽃을 위한 서시>)

"뒤집힐 때 흙도 놀란다"                                      (마경덕, <놀란 흙>


  (13) 의문문으로 시작하는 시의 첫머리


"사랑하는 사람과의 거리 말인가?"                         (이재무, <제부도>)

"어쩌다 드넓은 허공의 배경이 되었을까>"               (마경덕, <솟대>)

"세상의 열매들은 왜 모두가 / 둥글어야 하는가?"      ( 오세영, <열매<)


  최근 우리 시에 두드러지게 보이는 현상의 하나가 시에 대한 다양한 모색이다. 그중에서도 강우식은 4행시를 보여주었고, 그밖에 산문시나 연작시도 빈번하게 나타나고 있다.

  정진규나 박제천 등 지난 60년대 시인들이 자주 써 왔던 산문형의 시 흐름은 요즘의 시인들에게 그대로 이어져서 내용의 심화를 보여주는 듯하다. 특히 요즘은 미시적 관점에서 사물을 현미경적으로 드러내거나 시인내면을 파고드는 화자의 심리, 상상에 경도된 시편들이 많이 등장하고 잇고, 더불어 시행의 첫머리가 낯설고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는 경향을 보인다.

 

 

문광영 지음 <시 작법의 논리와 전략>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