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장 시상 전개의 형상화 논리] 3. 반복(反復)과 병치(竝置)의 논리

2018. 8. 9. 15:07☎시작법논리와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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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반복(反復)과 병치(竝置)의 논리


  1) 반복(反復)의 논리

  시상 전개에서 반복을 적절히 활용하면 작품의 미학적 요소를 살릴ㄹ 수 있고 독자들에게는 심미적 효과를 높일 수 잇다. 시의 반복적 처리는 시의 운율을 형성하며, 의미의 단락, 이미지를 효과적으로 제시하고 동시에 주제 전달에도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가자

그냥


아무 말 말고


또 가자

그냥


아무말 말고


푸른 실핏줄 내비치는

투명한 가을날


가자

그냥

허영자 <가을의 행진> 전문


  위 단시 형태의 <가을의 행진>은 행간 처리가 극히 절제되어 있다. 잡풀같은 군더더기가 없이 행간에 응축된 나형(裸型)의 시 형태를 보여준다. 이것저것 잡화상처럼 주절주절 늘어놓는 난삽한 시, 무절제한 시와는 전혀 다른다. 위 시는 "가자, 그냥"을 권유적으로 반복하면서 묵언의 당당한 삶을 노래한다. 짧은 시구와 6연의 행간에 드러나는 휴지, 빈자리는 독자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도록 유도한다. 그만큼 독자의 경험과 요양 상상에 맡기는 것이다. 그래서 최소하는 문자적 의미로 최대한 상상력을 발휘하도록 장치되어 있다. 1연의 "가자 / 그냥"과 3연의 "또 / 가자 / 그냥"의 반복, 결구에서의 1연의 반복, 또 2연과 3연의 "아무 말 말고"와 같은 반복에서 또 다른 심층적 생각을 갖도록 유도한다. 이미 새으이 슬픔과 기쁨, 사랑과 미움과 용서, 한 생애의 의미와 무의미에 나름대로 달관하고 가을을 맞이하라는 것, 그 어떤 초월한 무욕의 세계, '고고한 행진'으로서의 '그냥'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사는 것에 대한 허망한 여러 가지 이유나 조건들이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봄은

처녀들의 속살 간질이는

a          바람으로 온다

나뭇가지에서

까르르 웃는 꽃


봄은

사내들의 코끝을 간질이는

향기로 온다

a'         엣취!

江心에 얼음장 깨지는 소리


몸살 앓는 바람탓이다

이렇듯 온 몸이 가려운 것은

열병 앓는 강물 탓이다

b          자꾸만 기지개가 켜지는 것은

아, 마른 大地에 버지는

流血


봄은

와장창 유리창을 깨는

b"        골목 개구장이들의 돌팔매질로 부터

온다.

나뭇가지에서 와

일제히 터지는 함성

오세영 <봄빛> 전문


  2) 병치(竝置)의 논리

  시에서 병치란 행과 행, 또는 연과 연을 병렬시킴으로써 제 3의 새로운 이미지, 의미를 창조하는 언어운용 방식의 하나이다.

  휠라이트(P. Weelwright) 는 "군중속의 얼굴들의 모습 / 촉촉히 젖은 나뭇가지에 매달린 꽃잎들"이라는 파운드E.Pound)의 시구를 원용해 병치은유의 한 예로 삼았다. 병치는 비동일성의 원리롤 병렬과 종합을 통한 새로운 의미를 창조하는 은유방식이다. 병치의 '의미론적 운동'은 실제적이든 상상적이든 시인이 자기 체험의 어던 특수한 면들을 통해서 별렬되는 요소와 그 요소의 종합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면 병치를 통해서 독자는 ㅜ엇을 얻는가? '병치'라는 언어적 조형의 방식은 우리들의 지각을 참신하게 하고 시적 텐션을 가져다준다. 그래서 일상적이과 관습적이며 자동적인 반응의 감각에 문제를 제기하고, 사물들 간의 예기된 진부한 관계를 새롭게 보다 깊은 것으로 사고하게 한다.


내용 업슨 아름다움처럼

가난한 아이에게 온

서양 나라에서 온

아르맏운 크리스마스카드처럼


어린 羊들의 등성에 반짝이는

진눈깨비처럼

김종삼 <북치는 소년> 전문


  모두 세 개의 연으로 구것되어 있는 시 <북치는 소년>은 각 연이 서로 병치되어 있다. 그래서 쉽게 의미 파악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미지로서 파고 들어가서 종합하면 그야말로 '내용 없는 읆다움'에 다가간다. 시적 화자는 눈이 오는 겨울밤에 거리에서 북치는 소년을 보고 있다. 아니 선ㅇ탄거리에서 쇼 윈도우에 있는 인형일 수도 있고, "가난한 아이에게 온 / 서양나라에서 온 / 아름다운 크리스마스카드"가 될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시는 '북치는 소년' 뒤에 숨은 이미지를 연상해서 읽어내야 한다. 어쩌면 시적 화자는 지금 서양 소년이 북치는 그림(또는 장면)을 보고, 그 생소한 "내용 없는 아름다움을"을 느끼고 있을지 모른다.나아가 완결된 문장 없이 "-처럼'으로 끝나고 있는 시 형태도 특이하다.


그대 아는가

나의 등판을

어깨에서 허리까지 길게 내리친

시퍼런 칼자욱을 아는가.

질주(疾走)하는 전율과

전율 끝에 단말마(斷末魔)를 꿈꾸는

벼락의 직립(直立)

그 위에 다시 벼랑은 손는다.

그대 아는가

석탄기(石炭紀)의 종말을

그때 하늘 높이 날으던

한 마리 장수잠자리의 추락(墜落)을.

나의 자랑은 자멸(自滅)이다.

무수한 복안(複眼)들이

그 무수한 수정체(水晶體)가 한꺼번에

박살나는 맹목(盲目)의 눈보라

그대 아는가

나의 등판에 폭포처럼 쏟아지는

시퍼런 빛줄기

2억 년 묵은 이 칼자욱을 아는가

이형기 <폭포> 전문


  시 <폭포>는 떨어지는 폭포수의 존재 이미지를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 시가 여타의 서정시와 사뭇 다른 것은 바로 병치 논리가  지배하고 있다는 것이다. 서두 부분의 "나의 등판을 / 어깨에서 허리까지 길게 내리친 / 시퍼런 칼자욱을 아는가"라는 설의법에이어 "질주(疾走)하는 전율과 / 전율 끝에 단말마(斷末魔0를 꿈꾸는 / 벼랑의 직립(直立)"과 연결해 보면 난해하다. 게다가 "그 무수한 수정체(水晶體)가 한꺼번에 / 박살나는 맹목(盲目)의 눈보라"가 나온다. 이렇게 이 작품은 부분적으로 연결하면 병치 은유가 되지만, 떨어지는 '폭포수'의 이미지와 전체적으로 보면 치환은유의 이미지로서 그 해석이 가능하다. 그러니까 병치은유와 치환은유의 결합 형태인 것이다. 왜냐하면 "시퍼런 칼자욱", "질주(疾走)하는 전율", "벼랑의 직립(直立)", "석탄기(石炭紀)의 종말", "장수잠자리의 추락(墜落)"은 전체적으로 '폭포'를 비유적으로 처리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박살나는 맹목(盲目)의 눈보라"는 바로 '폭포수'의 '물보라'인 것이고, 오랜 세월의 연륜을 지닌 폭포는 바로 '2억 년 묵을 칼자욱"의 은유인 것이다.

   병치로 이루어지는 시는 이렇게  병치 은유와 치환은유로 결합되어 있는것과 오로지 변치은유만으로 되어 있는 것이 있다. 전자의 경우는 의미망에 텐션, 심리적 거리를 준다는 점에서 바람직하다고 볼 수 잇다. 후자는 서구의 미래파시나 다다이즘시에서 볼 수 있고, 우리의 경우, 이상의 시나 조향의 초현실주의시, 나아가 김춘수의 무의미시, 이승훈의 비대상의 시에서 일부 타나나고 있다.


  3) 반복과 병치의 결합

  한 작품의 구조에서 반복과 병치를 동시에 보여주는 경우이다.


가도 가도 붉은 산이다.

가독 가도 고향뿐이다.

이따금 솔나무 숲이 있으나

그것은

내 나이같이 어리고나

가도 가도 붉은 산이다.

가도 가도 고향뿐이다.

오장환 <붉은 산> 전문


  위 시는 1행과 2행, 그리고 5행과 6행이 동일산 통시구조를 지니고 있다. ""가도 가도 ...이다"라는 시행이 4개의 행에 걸쳐 병치되고 있는 것이다. 이 동일한 통사구조를 전체로 1행과 5행의 "붉은 산"이란 시어 대신에 2행과 6행에서는 "고향뿐"이라는 시어가 표현되고 있다.

  일상언어에서 "붉은 산"과 "고향"은 밀접한 관련을 지닌 어휘가 아니다. 그러니 이 시에서는 "가도 가도 ...이다"라는 동일한 언어구조에 속에서 표현됨으로써 밀접한 관련을 지니게 된다. 이러한 형식상의 특성은 의미와 관련된다. "가도 가도 고향뿐이다"라는 시행은 앞의 시행인 "가도 가도 붉은 산이다"와 연결되어야 제대로 해석이 된다. "고향"은 "붉은 산"과 등가의 의미로, 즉 가도 가도 붉은 산으로 이루어진 고향의 모습을 발견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시에서의 "고향"의 의미는 그리움과 안온한 평화로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붉은 산 투성이의 고향이 주는 황량함'을 전하고 있는 것이다.


 

문광영 지음 <시 작법의 논리와 전략>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