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아내의 꿈 * 은 이루어진다

2011. 6. 30. 21:46☎오마이 뉴스 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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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꿈 * 은 이루어진다
50 세된 아내가 늦게 중학교를 다니고 있습니다
02.09.03 23:09 ㅣ최종 업데이트 02.09.04 12:40 윤도균 (ydk3953)
도영이 할머니 힘내요. "화이팅!"

아내는 금년 50세이며 손자를 둔 평범한 가정 주부이다. 아내는 연초 모 방송국 라디오 프로에서 나이 먹은 주부들이 늦깍기 공부를 시작하여 제2의 인생을 활력있게 살아가는 모습을 소개한 방송을 듣고, 무슨 생각에서인지 나더러 인터넷으로 방송에서 소개한 학교의 연락처를 알아봐달라고 사정을 했다.

아내는 어렸을 때 친정의 여의치 못한 가정 형편으로 인하여 초등학교 졸업만 하고 더 이상 공부를 하지 못했다. 아내는 어린 나이에 서울에 있는 인쇄소에 출근을 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얻어지는 얼마 되지 않는 봉급을 생활비에 보태거나 아내의 동생들을 공부시키는 데 사용했다. 그런 까닭에 정작 자신은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중학교 과정도 공부를 하지 못했는데 아마 아내는 이에 대한 한을 가지고 있는듯한 느낌이 든다.

아내에게 말은 하지 않았지만 나는 가슴이 찡해오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아내 말대로 인터넷상에서 일성여자 중고등학교와 양원 주부교실에 대한 연락처를 찿아냈다. 그리고는 "당신? 늦게 공부하고 싶은 생각이 있느냐"고 물으니 아내는 조금은 겸연쩍게 내 눈치를 보고 웃으며 "여보! 나 공부하면 안될까?"하고 말했다. 미리 예상을 하고 있던 나는 "정말 당신 할 수 있을 것 같은 각오가 되어 있는 거야요?"하고 다시 물었다.

아내는 상당히 겸연쩍어 미안해하는 표정을 지으며 그럴 수 있다고 머리를 끄덕였다. 마침 우리 부부에게는 큰 아들 내외가 따로 세간을 내서 살고 있는 실정이고 작은 아들은 군복무중이어서 내 동의만 있으면 아내의 공부는 그 누구도 신경쓰지 않고 할 수가 있는 여건이 조성된 입장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래요. 그럼 당신 소원대로 한번 공부를 해봐요"라고 말하고는 미리 준비해둔 구비서류 준비물과 등록절차에 따르는 비용, 학교의 위치, 연락처, 교통편 같은 필수 사항을 아내 앞에 내놓았다.

아내는 놀라는 표정에 홍조를 띠우며 자신이 정말 학교를 다니면 현재 내가 운영하고 있는 독서실을 도와주지 못해 당신 혼자 힘이 들어 어떻게 하느냐는 걱정을 하였다. 나는 흔쾌히 당신이 보통 사람들 같았으면 생각하기 힘든 결단을 내려 공부를 하려 하는데 남편인 내가 짐이 되어 아내의 소망과 꿈을 이룰 수 없게 할 수는 없으니, 당신도 내게 한 가지 약속을 하라고 했다.

아내는 무슨 약속이라도 다들어줄 터이니 말해보라고 했다. 나는 아내에게 앞으로 학교를 다니게 되면 생각보다 어렵고 힘든 일들이 무수히 많이 있을텐데 그때 절대로 중도 포기를 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아내는 마치 그 정도의 약속은 '누워서 떡먹기식'으로 아무 것도 아닌것처럼 흔쾌히 약속을 했다.

나는 그러면 당장 내일 학교 가서 등록을 하고 오라고 말하고, 입학에 필요한 비용과 서류일체(현재는 중학교 의무교육되어 무료)를 준비하여 부평역전까지 아내를 태워다주고, 가서 찬찬히 잘 등록을 하고 오라고 당부를 하였습니다.

이렇게 얼떨결에 시작한 아내의 늦깍이 중학교 공부가 이제는 제법 아내에게 어느 정도 탄력이 붙어 공부에 재미를 붙인 것 같다. 아내는 학교 등교 시간을 오후반으로 선택해 이곳 부평에서 매일같이 정오 12시 전후하여 학교에 등교를 한다.

그리고 오후 2시부터 시작한 공부를 마치고 평균 오후 8시나 되어 집에 도착을 하게 되는데 아내는 그때도 집으로 가지를 않고 내가 운영하는 독서실로 바로 오곤 한다. 이 무더운 여름날에 무거운 가방을 한짐이나 짊어지고 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돌아오는 아내의 파죽음이 된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내 속은 비록 말은 하지 않았지만 애처로워 까맣게 타는 듯한 심정이다.

그렇게 지친 몸으로 돌아와 이곳 독서실에 미리 준비해 놓은 저녁 식사를 대충하고 나면 아내는 잠시 숨돌릴 틈도 없이 책상에 앉아 숙제를 하고 한문 쓰기를 한다. 특히 영어 공부를 할 때 모르는 것이 있으면 부끄러움도 무릅쓰고 독서실에 공부하러온 학생들에게 중학 과정의 교과서를 펼쳐내 놓고 질문을 하곤 한다. 그런 아내의 진지한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남편의 입장에선 코끝이 찡하다.

이렇게 남달리 힘든 공부에 도전을 하고 있는 아내에게 무엇보다 반가운 것은 아내가 학교를 다니기 전에는 한글 이외에는 일체 까막눈이어서 신문도 전혀 읽지를 못했는데, 이제는 신문도 어느 정도 떠듬떠듬 읽고 있으며 또한 어디를 지나가다도 영문으로 된 상호의 간판들이 있으면 아예 그것은 전혀 읽지 못하던 아내가 이제는 웬만한 상호의 영어들을 읽으며 자신이 스스로 만족해 한다는 것이다.

그런 모습을 볼 때면 내가 좀더 일찍이 아내에게 신경을 썻었으면, 아내의 답답한 벙어리 냉가슴을 좀더 일찍이 열어줄 수 있었을 텐데하는 때늦은 후회를 하곤 한다.

이렇게 공부에 대한 집념이 남달리 강한 아내는 매일같이 새벽 2시까지 이곳 독서실에서 공부를 하다 나와 함게 퇴근을 한다. 그때가 새벽 2시 30분 정도인데도 아내는 그 시간에 또 다시 상을 펼쳐놓고 앉아 공부를 시작을 하여 보통 새벽 4시에 잠을 자곤 한다.

그런데 요즘은 시험기간이라 심지어는 새벽 5시까지 잠을 자지 않고 공부를 할 때가 있어 혹시 건강에 무리가 오지 않을까 염려가 된다. 그렇치 않아도 영어 공부에 약점을 보이던 아내가 며칠 전부터는 전역을 하여 대학 복학을 한 작은 아들을 귀찮케하고 있다. 지각생 공부에 혼신의 정열을 바치고 있는 엄마의 모습을 보며 마침 대학교 복학을 한 작은 아들애도 스스로 심각성을 느꼈는지 공부하는 자세가 예전보다 더 진지해졌다.

이렇게 되다보니 우리 집은 아내의 늦깍이 지각생 공부가 시초가 되어 너무도 많은 변모를 하고 있다. 지금 욕심으로는 대학까지 간다는 목표를 두고 집념을 불태우고 있는 아내의 모습을 보면서 내일모레면 60이 다된 내 나이 내 인생이 혹시나 아내의 공부하고 싶은 꿈의 욕망에 덫이나 볼모가 되지나 않을까 염려가 되기도 한다.

아내를 생각하는 내 마음은 오직 지난 6월 월드컵에서 붉은 악마 응원단이 새겨놓은 카드섹션에 새겨놓은 "꿈*은 이루어진다"란 글뜻처럼 아내의 꿈이 차곡차곡 이루어지기를 바랄 뿐이다. 나는 그 동안 내가 행해오던 모든 사회생활 취미활동 같은 것들 모두를 접고 살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아내가 수십년 동안 눈뜬 장님이 되어 벙어리 냉가슴 앓이를 하듯 답답하게 살아온 것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그 동안 얼마나 아내에 대해 무지하고 무관심했는지, 후회가 된다. 

 

 

출처 : 사람사는이야기속으로
글쓴이 : 청파 윤도균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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