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팔월 넷째 주일이 고향 선산에 잠들고 계신 조상님들 묘를 벌초하는 날로 정해진 지도 이미 십여 년이 넘었다. 우리 형제들과 사촌형제들은 아무리 바쁜 일이 있어도 이 날은 열일 제쳐두고 반드시 벌초에 참석하여야 한다.
조상님들의 묘가 15곳에 산재해 있고 또한 풀이 얼마나 왕성하게 번식을 하는지 벌초를 하는 것이 보통 힘이 드는 것이 아니다. 인내와 조상에 대한 경모 정신이 없으면 감히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어른인 우리들도 힘이 들어 벌초날이 되면 은근히 겁이 날 정도이다.
그런데도 십여 년 전에는 농촌에 살고 계시던 아버님과 작은 아버님 두 분께서 벌초를 모두 도맡아하시며 자식들은 바쁘니까 오지 말라고 하셔서 젊은 사람들은 가끔 참석을 하곤 했었다. 그러다 두 분 어른들께서 돌아가시고 나서 그때부터 형제들끼리 모여 벌초를 하자니 보통 힘이 드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생각을 해낸 것이 예초기를 구입하여 벌초를 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풀깎기는 힘이 덜 들게 되었지만, 어느덧 내 나이가 육십이 되었고, 형님들의 나이도 이미 육십 중반을 넘었고 나이가 제일 어린 사촌동생들의 나이도 모두 오십을 넘고 있었다.
옛날 어른들의 시대와 비교를 하면 우리 형제들 모두 이미 노인의 시기에 접어들었는데도 우리 형제들은 누구도 벌초때 아들들을 데리고 참석을 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식들이 모두 학생 신분이다보니 공부 핑계로 벌초에 참석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육칠년 전부터 나는 벌초문제와 시제 문제에 대하여 심각하게 고민해왔고, 어떻게 하면 우리 조상님들의 묘를 우리 후대에서도 지속적으로 유지관리를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왔다. 그러다가 지난 유월 우리 형제들은 난상토론을 거쳐 조상님들의 묘를 가족납골묘로 조성하기로 했다.
사촌동생들과 공동 납골묘 건립에 대한 상의를 하니 의외로 사촌형제들은 아직 화장에 대한 견해 차이가 있어 참여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래서 결국 우리 4형제 가족들끼리 합의하여 비용을 만들어 가족납골묘를 건립하여 조상님들 중 가장 윗대이신 5대조 할아버지부터 11분의 조상님 묘를 개장, 화장을 하고 새로 건립 조성한 48기용 가족납골묘에 합장으로 안장을 하게 되었다.
해마다 팔월이면 연례 행사로 곤혹스럽게 생각하며 참여했던 벌초 행사가 올해는 의외로 쉽게 할 수 있었다. 이로 인하여 벌초에 참여를 한 사촌 형제들과 시집간 누이들까지 자리를 같이 하게 되니, 그 동안 그렇게 힘들고 지루하게만 여겨지던 벌초가 즐겁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에 모여 장만해간 음식을 먹으며 오랫동안 나눌 수 없었던 가족간의 오붓하고 진지한 대화를 나누며 유익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마침 출가한 사촌 누이들이 오랫만에 오빠들과 대가족이 모인 김에 노래방에 가자고 제안을 하여 20여 명의 대가족들이 모처럼 노래방에 가서 흡족한 가족모임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반가운 일은 사촌동생들이 우리 형제들이 조성한 가족 납골묘에 호감을 갖고 자신들도 우리 형제들이 조성한 납골묘 옆에 24기용 가족 납골묘를 설치하겠다고, 나에게 설치에 따른 지원을 하여 달라고 한다. 나는 적극적으로 생각을 바꾸어준 사촌 형제들에게 고마움을 표하니 자리에 함께 한 형제들 전원이 금년 팔월 추석 차례는 아예 납골묘에서 드리자고 제안을 한다.
아울러 내친 김에 우리 가족 친목회를 만들어 자칫 핵가족화 시대에 멀어져가는 친족지간의 화목과 단합을 조성하고 이를 계기로 우리 가족의 새로운 친목의 장을 만들자는 제안이 나와 우리 형제들은 그 자리에서 만장일치로 의견을 모아 돌아오는 추석날 고향선산 우리 가족 납골묘에서 한가족 모임 친목회 발기총회를 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내년부터는 벌초일을 우리 가족 단합대회일로 정하여 지금까지 참석을 하지 못하던 아이들도 모두 참석을 시켜 조상님들에 대한 충효 경모 정신도 기리고 가족간의 화목도 다질 수 있는 새로운 가족 벌초문화를 만들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기로 굳게 약속을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시원하게 불어오는 임진강 한강 바람을 안고 확트인 자유로를 달려오는 기분이 상쾌하고 마냥 즐거워 콧노래를 흥얼거려 본다.
덧붙이는 글 | 솔직히 초로의 나이인 나도 매년 팔월에 실시하는 벌초일이 되면 그 동안 안하던 풀깎기 벌초가 힘이 들어 꾀를 부리고 싶었던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런데 지난 유월 우리 가족의 납골묘를 조성하고 처음으로 한 벌초에서 우리들은 또 다른 벌초 문화의 즐거움을 체험하게 되었다. 가족납골묘 설치 그 첫해에 뜻하지 않게 우리 가족의 단합을 마련하게 된 계기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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