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일시 : 2010년 2월 17일 (수요일) 날씨 : 흐림 강추위
--> -->--> --> --> -->-->
산 행 지 : 북한산 영봉 시산제 산행
산행코스 : 우이동 = 코끼리바위 = 영봉(시산제) = 하루재 = 백운산장 = 산악인추모비
= 도선사 = 우이동원점회귀
교통수단 : 전철
산행인원 : 24명
산행시간 : 6시간 |
2010년 2월 17일은 지난 한해동안 무탈안전 산행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신령님께 감사를 드리며 2010년 새해도 우리 회원들은 물론 전국 산악인들의 안전산행을 기원하는 우리산내음 카페 시산제를 "세계에서 가장 방문객이 많은 수도 서울의 삼각산 영봉에서 모시기로 한 날이되어 사업장 업무로 1년간 거의 정기 수요산행을 거의 못하였는데 이날 만큼은 무슨일이 있어도 꼭 참석하여 시산제를 모시기 위하여 몇 일동안 골돌히 생각하여 시산제 축문을 지어 이날 시산제 산행에 참석을 한다.
이날 산행은 일행들과 지하철 4호선 수유역 3번 출구에서 만나기로 약속이되어 부평역에서 1호선을 타고 서울역에서 다시 4호선을 갈아타고 수유역에 도착하니 이날도 여지없이 또 40여분이나 일찍 도착하여 일행들을 기다려 버스 정류장에서 다시 121번 마을버스를 갈아타고 수유리 종점에 도착을 하니 이곳 종점으로 시산제 제물을 준비하여 도착한 일행들 포함 24명의 회원들을 만나 영봉을 향하여 산행을 시작 하는데
금년 겨울은 시도 때도 구분하지 않고 자주내린 눈 덕택에 이날 시산제 산행지인 영봉을 오르는 코스가 줄기차게 암릉코스를 동반하고 있어 결코 만만치 않다.
일행들이 공터에서 가벼운 회원 상호간 인사를 나누고 이날의 산행대장이신 칸보이님으로 부터 시산제
산행에 대한 안내를 듣고 아이젠 착용을 하고 이날의 본격적인 삼각산 영봉 시산제 산행이 시작된다.
들머리 초입은 산행하기 그만 하지만 오르면 오를 수 록 가팔라지는 코스에 눈이
쌓인데다 암릉구간을 동반하고 있어 모처럼 오랫만에 땀을 흘리며 애를 쓰고 오른다.
코끼리 바위 인근 전망처에 오르니 멀리 인수봉과 백운봉 만경봉이 보인다.
우이동 들머리 초입에서 볼뗀 이 바위가 거대 맘모스 코끼리를 닮은 바위인데 가까이에 다가와 보니 그 코끼리바위 귀 부분인데 이렇게 엄청나게 크다. 저렇게 거대 바위가 서로 다른 개체로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것이 신기하다.
멀리 줌으로 당겨본 도봉산 오봉
아래로 내려다 본 맘모스 코끼리 바위
대장이 가라면 간다. 바위건 얼음벽이건 그건 상관하지 않는다.
눈길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암릉 구간도 오르고
뒤에 삼각산이 보이는 전망처에서 가던길을 멈
추고 남자 일행들 끼리만 기념사진을 찍어둔다.
이번엔 또 여성회원님들끼리만 찰칵
멀리 도봉산 일대 조망
살아천년 죽어천년을 산다는 주목이 아니라
영봉 인근 지역에 산불로 불탄 노송 모습이다.
언제나 그 위풍당당함을 자랑하는 인수봉 그리고 좌측으로
망경봉이 보이는데 가운데 백운봉은 인수봉에 가려 보이질 않는다.
하루재(영봉)에 이정목
드디어 일행들이 영봉에 도착하여
서둘러 시산제 제물을 모시는데
이날의 시산제 제물은 우리 회원님들 각자 정성으로 누구는 무엇을 또
누구는 무엇을 시산제에 제공하겠다고 주문이 쇄도하여 차려진 제물이다.
우리산내음 카페지기인 산초스님의 초헌에 이어
파랑새님의 진행으로 (국민의례, 산악인의 선서, 시산제)순으로 진행이 되었다.
산행대장 이신 칸보이님의 축문 낭독에 이어
연장자 운영자 순으로 (아헌 종헌 헌작)을 마치는 순서로 진행이 되었다.
2010년 삼각산 (영봉) 시산제 축문
유세차
경인(庚寅), 정월(正月), 을미(乙未), 삭, 초나흘(初四日), 무술(戊戌),
전지전능(全知全能)하신 삼각산 신령님 전에 고합니다. 지구 상에서 탐방객이 가장 많은 삼각산은 대한민국 수도 서울을 품에 안고 민족정기를 지켜온 명산으로 (백운대(白雲臺, 836.5m), 인수봉(人壽峰,810.5m),만경대(萬景臺,787.0m)등 빼어난 기암 절경과
아름다운 사계의 모습을 자랑하며 전국 각처의 많은 산악인의 발길을 불러 모아 거친 숨소리와 함께 하며 국민 건강을 지켜온 보은의 명산으로 늘 기쁘고 즐겁고 행복한 안전 산행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이에 머리를 숙여 감사드리며….
우리산내음 카페 회원 일동은 오늘 수도 삼각산 영봉에서 우리 회원들과 가족, 그리고 한국의 산하 많은 산악인의 “무사 안전 산행”을 기원하는 시산제를 올리고 있습니다.
삼각산 신령님 특히 이곳 영봉은 전국의 많은 산악인이 산행 중 뜻하지 않은 불의에 사고로 유명을 달리하고 그 영령들이 잠들어 계신 장소에서 우리 회원들의 “무사 안전” 산행을 축원하오니 삼각산 신령님 굽어 살펴 주시옵셔서….
우리는 해마다 봄이면 꽃향기 그윽한 전국 팔도강산이 천변만화하는 아름다운 자연의 섭리를 지켜보며 감사하는 지혜를 깨우치게 되었고,
땀 냄새 함께하는 여름철이면 어깨 펴고 전국 명산 기암 절경을 오르내리며 때론 암벽 자락에 매달려 사람과 자연이 하나 되는 이치를 깨우치며 인내를 배웠고,
화려한 단풍과 오곡백과 무르익는 가을이면 고고함을 자랑하던 날들의 덧없음을 깨우치며 새로운 만남과 이별의 소중함을 가슴 깊이 새기게 되었으며,
혹한 겨울에도 억세게 살아 숨 쉬는 자연의 도도함을 보면서 “생명과 자연의” 소중함을 깨우치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산에 들면 “산이 곧 나, 이고 내가 산이 되는” 일치감을 배우게 되었고, “사람과 자연이 하나 되는 참으로 소중한 윤회 과정을” 깨우치게 되었습니다.
전지전능하신 삼각산 신령님 비록 오늘 저희의 정성이 소례이지만 대례로 생각하시고 이 한 잔의 술을 흔쾌히 흠 향하시며, 날마다 이어지는 우리 산행길에 삼각산 신령님의 은총이 함께 할 수 있도록 굽어 살펴 주시옵셔서….
단기 사천삼백사십삼 년 (서기 2010년) 정월 (2월) 초나흘 (17일)
우리 산내음 카페 회원일동
시산제를 마치고 점심식사후 기념 사진을 찍고
우리들은 다시 멀리 인수봉에 가려 보이지 않는 백운봉을 향하여 암릉구간을 오르내리게 되는데
영봉에서 인수봉을 배경으로 필자도 한컷 찰칵
암릉구간 바닥은 얼음판이지요 심지어 로프도 얼어 있기도 하여 이날은 산행길 내내 얼마나
서로 안전을 위하여 신경을 쓰며 서로돕고 산행을 하는 모습이 얼마나 조화롭게 보이던지요
인수봉 코바위
(재작년 여름 어느날 갑자기 목민님, 빛도리님, 뭐야님, 마음고요님) 도움으로 내가 저 인수봉
"고독길" 코스 암벽에 매달려 낑낑대며 코바위를 지나 인수봉 정상에 올랐던 기억이 새롭다.
옛날 대피소 자리
북한산장 대피소
백운산장 오름 가파른 구간은 전 구간이 내내 마치
빙벽 훈련에 참여한듯 얼음판을 걸어 오르게된다.
멀리 올려다 보이는 인수봉 코바위를 내가 "데스까부다"라거 우스게 소리를 하였더니 선착순님
무슨 해석을 했는 지 혼자 얼마나 ㅋㅋㅋ 거리며 웃어 대는지 말한 내가 다 민망할 정도네요 ㅎㅎㅎ
등산로인지 빙벽 훈련장인지 구분이 쉽지 않다.
등산복 대신 하얀 파카만 입었으면 마치 공수부대 월동훈련 하는줄 알정이다.
냐옹!
갑작스럽게 백운산장 인근에 나타난 세마리의 고양이들이 나를보고 꼬리를 흔들고 있다. 아마 짐승들도 동물 좋아하는 사람을 알아보는 모양이다. 나는 개 고양이를 둘 다 좋아하는데 그 중 고양이를 더 좋아한다. 개는 사람에게 순종할 뿐 자기 표현이 부족한데 고양이는 개 보다 훨씬 지능이 발달 되었으며 자기 표현이 아주 대단하다.
옛날 옛날 아주 옛날 내가 어려서 우리집에 키우던 고양이는 우리 가족들이 농촌 일을 마치고 늦어지면 심지어 먼 발치에 있는 밭 인근까지 배웅을 나와 주인 가족을 기다렸다가 만나면 얼마나 꼬리와 엉덩이를 사람에게 비비며 반가운 표정을 짓던 고양이다. 그런데 나의 아버님께는 이 고양이를 얼마나 사랑 하셨었는데 불행하게 우리 아버지께서 갑자기 돌아가시고 삼오제를 모시고 오니 세상에 이 우리집 뒷방 굴뚝밑에 죽어 있었다.
그때 우리 가족들 아버지 잃은 슬픔도 슬픔이였지만 그 영악한 고양의 우리 아버지에 대한 충성심에 감동하여 죽은 고양이를 아버지 묘소가 멀리 보이는 장소에 묻어 주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런데 이날 만난 고양이 어쩌면 그리도 살이 토실토실찌고 깨끗하게 털을 잘 가꾸어 윤이 나는지 그 모습 보니 더욱 그 옛날 아버지 따라 죽은 고양이 생각에 눈 잠시 눈시울이 졌는다.
백운의 혼 위령탑
백운산장 대피소
이곳에서 일행들이 가던길을 멈추고 잠시 토론 애초에 목표하였던 백운봉 코스를 수정하여 백운산장에서 하산을 하면서 산악인 추모비 방향으로 하산 하기로 한다. 코스를 변경하게된 이유는 이어지는 산행코스가 거의 암릉구간에 얼음을 동반하고 있어 당초 목표하였던 산행 시간보다 훨씬 더 많이 걸리기 때문이다.
백운산장 벽에는 소중한 서예 작품 한 점이 걸려 있는데 이 글은 일제 치하에 마라
톤으로 우리나라 국민들을 감동케 하였던 손기정옹께서 직접 휘호를 하신 작품이다.
백운산장과 고드름
고드름 보니 그 옛날 생각이 납니다. 울덜 어렸을때는 초가지붕 아래 요즘처럼 눈이 내리고 날씨가 추운 날이면 초가 지붕 아래 양지바른 벽에 햇볕을 쪼이다. 누구랄것도 없이 너도 나도 고드름을 따서 우드득 우드득 씹어먹곤 했는데 아마 요즘 울 손자아이 도영이란넘 이런 이야기 하면 기절 초풍을 할지도 모를일이다. 그러고 보니 어영부영 내가 산행기 쓸때마다 거의 동원하던 울 손자넘 도영이 이야기 해본지도 벌써 꽤 오래 되었네요
손자넘이라 귀여워 그 아이 어려서 자주 도영이 할아버지란 이름을 써 많은 분들이 울 도영이 기억을 해 주곤 하셨는데 그 아이가 지금은 어느덧 초등학교 3학년이 되면서 어찌나 말도 잘 안듣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할아버지도 옛날과 달리 잔소리를 하고 때로는 매를 들곤 했더니 이놈 누굴 닮아서인지 말은 청산유수이고, 어찌나 아는척을 하는지 너무 나대는것 같아 이놈이 누굴닮아서 이렇게 말도 안듣고 꽤가 많은지 모르겠다고 하면서 한번 맘 먹고 패려 하면
이넘 한 수도 지지 않고 "할아버지 닮은걸 어떻게 하란말이냐고" 들이대는 아이로 변해 요즘은 그렇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던 손자 아이와 완전 라이벌 관계로 발전하여 할아버지는 감시자로 그 아이는 할아버지를 오죽했으면 전화기에 "무서운 할아버지"로 채널을 정해놓을 정도이니 나참 요즘 아이들 상대로 할아버지 노릇 해먹기도 정말 힘이 드네요. 그런대다 왜 그리도 궁금한것은 많은지 아마 이넘이 할아버지 밑천(실력) 딸리는 약점이라도 잡을량인지 하루종일 아마 보통 2-30여건은 질문을 하여 이아이 질문에 땀을 찔찔 흘려야 한다니까요
으이그 증말 요즘 울 손자넘 같아선 정말이지 할아버지 노릇 정말 힘들어 못해먹겠다. 언날 날잡아서 이 아이와 단판이라도 지어야겠다, 너가 말 잘 듣지 않으면 할아버지도 더 이상 힘들어서 할아버지 사표내야 겠다고 ...아마 만약 내가 그 소리 하면 이넘 얼씨구 절씨구 쌍수를 치고 좋아할지도 모를 일이니 나참 정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어떻게 처신을 해야 유능한 할아버지 되는길인지 알송달송 하기만하다.
울려고 내가 왔던가? 웃으려고 왔던가? 어이 여울님 그래도
탈영은 하지말아 잘못하면 남자 신세 조지게 되 ㅋㅋㅋ
아니 그런데 백운산장에서 하산길이라 널널 하산길이라 생각을 하였는데 세상에 칸보이 대장님 이날 산행 나서시기전 혹시 집안에서 안존일 있으셨는지 ㅎㅎㅎ 아니면 우리들 애시당초 맘먹고 월동 산악훈련이라도 시킬 맘으로 작정을 하고 나스셨는지 세상에 맙소사 세계에서 가장 탐방객이 가장 많다는 북한산 하산길에 눈이 무릅까지 빠지는 암릉구간 코스로 럿셀 산행과 이 꽁꽁언 동절기에 암벽 릿지까지 시키며 마치 우리 회원들을 지옥문으로 유도하시려는듯 인정사정없이 험난한 코스로 안내를 하는데,
세상에 그러다 보니 어영부영 중간탈줄로도 없고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꼼짝없이 따라 가는데 이건 완전히 군인들 월동산악 훈련은 저리가라인것 있지요 그런데도 설마 대장이 울덜 잡아먹으랴 생각을 했는지 세상에 시흥에서온 조은비님은 캄보이 대장님 뒤를 얼마나 추격을 하는지 그러다 보니 캄 대장은 어영부영 또 내빼기에 바쁘고 하여간 대장님 의도인지 아님 대장님 뒤만 따라 붙는 조은님 유도작전에 말린것인지 그날 모처럼 시산제 모시고 널널 산행한다고 생각했다 울덜 을매나 허벌나게 고생을 했던지... 아! 옛날이여...
암릉구간에선 그 누구보다도 바위치인 산초스아운 이날 암릉구간 지나며 날아가는 새 거시기를 보았는지 하산길 내내 웃기는 와 그리 웃어 대던지 그러다 보니 난 또 그 모습보고 웃게되고 이래저래 하루종일 웃음꽃이 피고 그런가 하면 여기 저기서 넘어지는 소리 꽈다당 소리에 또 허벌나게 배꼽잡고 웃고 그러다 보니 모처럼 수요산행에 참석하여 하루종일 맘껏 웃을 수 있는 기쁘고 즐겁고 행복한 잊을 수 없는 추억 산행이 된날이지요.
차라리 스키를 가져왔으면 더 좋았을텐데... 아 집에 두고온 스키생각 난다. (유니님) 하여간
유니님도 가끔씩 코미디 잘 하시네요 아니 정말 스키를 타긴 타시는거 맞으시는지요? ㅎㅎㅎ
소원봉앞에서
겨울에 더 푸르른 소나무여...
앞에 족두리봉 뒤에 멀리 백운봉이 보인다.
우와! 난 이렇게 겨울 삼각산이 아름다운지 몰랐어유 지두 그래유 언니도 어
빠도 너도 나도 모두 입을 다물지 못하고 그 기암절경에 넋을 잃고 말았시유
으이그 차라리 대장님 날 잡아 잡슈 증말이지 죽어도 못 가갔슈 ㅋㅋㅋ
뇨자이건 미인이건 고랑거 가지고 울 대장은 안통혀요
한결님 미소 짓지말아요 해봐야 맨날 헛겅휴 소용없이유
으이그 저넘의 배낭무게만도 얼마인디 가느다란 외줄에
생명을 걸다니... 미련 곰탱이 착순이 어빠 조심혀여...
소원바위 누군가 바위에 "소원바위"라고 써 놓았지요
대원들이 거의 초죽음 상태이지요 그러다 보니 어떤 뇨자 회원님들은 아예 동계올림픽 봅스레이 경기하듯 그냥 앉아서 내려 꽂는데 그 광경이 하도 웃겨서 을매나 배꼽 잡고 웃었던지 더 힘이 빠지지요 ㅎㅎㅎ 그 모습 보니
몇 년전 선자령 산행후 하산길에 을매나 많은 사람들이 앉아서 봅슬레이타듯 내려 오는데 어떤 서툰 뇨자 산님 시상에 쏜살같이 기냥 두 다리 벌이고 달려 내려오다 운전 잘못하여 가운데 우뚝선 나무를 피하지 못하고 기냥 다리 벌리고 들이박는데 이 광경보고 웃어야 할지 구호작전을 하여야 할지 을매나 난감하던지요 ㅋㅋㅋ 겨울철 뇨자 산님들 눈길 봅슬레이 타실때 각별히 조심하시길 당부 드립니다. ㅎㅎㅎ
드디어 산악인 추모비 앞 안전 지대에 도착하였어요
이곳 산악인추모비는 전국의 산악인들이 산행중 불의에 사고로 유명을 달리하신 산악인들을 영봉 인근 곳곳에 흩어져 개인 추모비석이 세워 있던것을 모아 이곳 "산악인추모비" 안장을 하고 추모비 둘레에 먼저간 산악인들에 대한 이름이 새겨넣어 고인들의 넋을 달래는 위령탑이다.
먼저간 산악인들의 이름이 새겨진 동판 그런데 의아한것은 이 추모동판이 각양각색이 되어
보기가 좀 그렇지 않은가 생각이든다. 어떤 순성에 의하여 동판의 크기가 선별되는것인지 ...?
얼마전에 히말라야 낭가파르밧 등정후 하산중 실족
으로 사망한 여성산악인 고미영님을 기리는 위령패
고미영(高美英, 1967년 7월 3일 ~ 2009년 7월 12일, 전북 부안 출생)은 대한민국의 산악인이다. 작은 체구임에도 2007년 여성 산악인으로는 최초로 8,000 미터급 산 3개 등정에 성공하는 등 대한민국 내 여성 산악인의 대표주자로 꼽혀 왔다.
고미영은 2009년 7월 10일, 히말라야 낭가파르밧 산 등정에 성공함으로써 2009년에만 4개 봉우리를 오르는 등 총 11좌 등정에 성공했다. 다음날 11일 낭가파르밧에서 하산하던 중 해발 6,200 미터 지점 '칼날 능선'에서 실족하여 목숨을 잃었다.[1] 그녀가 추락한 장소는 눈사태와 낙석이 자주 발생하여 대원들끼리 로프로 몸을 묶을 수 없는 곳이었기 때문에 변을 당한 것으로 추측된다.
그는 사고 직전까지 또다른 산악인인 오은선과 함께 8,000 미터급 14좌 등정 기록을 놓고 경쟁을 벌여 왔다. 그런데 둘 사이의 과도한 경쟁이 이번 사건의 원인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워키백과사전참조>
우리 일행들도 먼저가신 산악인들에 대한 묵념과 기도를 드리고
이어지는 도선사로 이어지는 하산길은 모처럼 널널 코스로 이어진다.
도선사에 도착하여
다시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 통곡의벽 기도원을 지나 우이동 버스 정류장 인근에 도착하여 이날 시산제를 모신후라 일행들 "두부마을"에서 가벼운 뒷풀이를 하는 도중에 나는 늘 바쁜 업무 관계로 산초스 아우님 차를 타고 방학역에 도착하여 1호선 전철을 타고 거의 40여개 역을 지나는동안 내내 (한시간 반) 꿈나라 여행을 하고 부평역에 하차하니 머리가 날아갈듯 맑고 깨끗하다. 그리고 다시 업무 인계받아 새벽 2시까지 서부전선 이상없이 근무를 마치고 귀가를 할 수 있었다.
아니 근디 요즘 서부전선 이야기 하니 불쌍한 북한 김정일이 성님 생각 많이 나네 그 성님인지 인간인지 나 보다 딱 한 살 위인데 그렇게 권세 다 누리며 세계인들은 불안케 하는 위험 인물이 와 몰골을 그 모양 그꼴로 되어 가지고 게다가 한 수 더떠 요즘 우리나라가 지 맘대로 응해 주질 않으니 서해 지역에 자꾸 위화감 조성하고 있는데 그 친구 생각하면 정말 가슴 아프네요 막상 전쟁나면 누가 더 손해볼것 뻔한대도 공연한 똥 고집으로 일관하는 모습보면 정말 안?다는 생각드네요
그러다 보니 그 옛날 라디오 방송으로 매일 11시 55분이면 수년간 이어지던 "김삿갓 북한 방랑기" 생각나네요 그 내용중 "어찌타 북녁땅은 피빛으로 물들었나?" 하던 그 라디오 프로그램이 아련한 향수처럼 김정일만 생각하면 그리워지는것 있지요. 어이 김정일이 성님 "지발 어찌타 북녁땅 피빛으로 불들지 않게" 지금이라도 건강할때 굶어죽는 북한동포 위하여 우리나라 원조 받아 그 우리 형제들에게 이밥이라도 싫컷 드실 수 있는 세상 만들어 보이소. 아마 그럼 이담에 죽어서 꼭 천당에 갈 수 있을겁니다.
http://cafe.daum.net/salamstory
주소를 클릭 하면 이동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