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3. 9. 14:13ㆍ☎청파산행과여행기☎
초딩 친구와 함께 오른 심학산
산행일시 : 2010년 3 월 7 일 ( 일요일) 날씨 : 흐림
산 행 지 : 심학산 194m
산행코스 : 돌곳이축제 주차장 = 수투바위쉼터 = 심학산둘레길 팔각정 쉼터 = 심학
산 정상 = 함평이씨세장산비 = 4거리이정표안부 = 군사시설지역 = 약천
사 = 주차장
교통수단 : 승용차편
산행인원 : 2명(초딩친구)
산행시간 : 2시간 반
심학산 유래
교하면 동패리에 소재하고 있는 심악산은 한강하류에 있는 산으로 동편은 동패리, 서편은 서패리, 남편은 산남리등 3개리가 둘러 있다. 가운데에 우뚝 솟은 봉우리와 동체는 마치 대호가 옆으로 누워있는 형상인 것 같기도 하고 어찌보면 물위에 떠있는 큰 군함같기도 하다. 또한 장군 영병 비룡상천형이라고도 한다.
산봉우리 주위는 바위로 둘러싸여 있으며 중심부 10여평 남짓한 편편한 곳이 있는 이 자리는 수십자를 파도 비세황토 흙이 나온다는 것이다. 바로 이곳이 풍수지리설로 천자가 나올 자리(천자지지)라 전해져 욕심내는 사람들은 밤중 남몰래 수차에 걸쳐 시체를 암매장하였다 한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이 자리에 시체를 매장하면 산이 울며 동네에서 병고가 일어나 동네 사람들을 일제히 동원하여 상봉에 올라 시체를 파헤쳤다 한다. 조선조 말 김포에 살던 예안이씨 이지열(李志烈)이 이 마을에 들어와 훈학을 하였으나 자기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이곳에 몰래 시체를 암매 장하였다.
그러자 이 동네에 사는 김면제(金勉濟) 성균관박사 댁(成均館博士宅) 하인이 일자무식한 사람인데 별안간 미쳐서 이지열이가 여기다 산소를 써서 큰일 났다며 동네를 뛰어다니자 동네 사람들이 산에 올라가 파헤쳤다. 이러한 연유로 인하여 지금은 아예 묘를 쓸 생각조차 못한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또한 이 묘자리 턱 바로 아래 발복지지 묘도 2개소가 나란히 있다 한다.
옛날에는 이 산 주위로 물이 흘러 한강 가운데 있는 섬으로 되어 있었다 한다. 그러므로 한강 물을 막고 있 다하여 당초에는 수막산(水漠山)으로 불리게 되었으나 조선조에 내려와 언제나 홍수가 있을 때에는 한강물과 조수물이 넘쳐 수막산이 물 속에 잠기게 됨으로 깊은 물에 들어갔다 하여 심악산(深嶽山)이라 불리우게 되었다,
그리고 경기 오악(송악, 감악, 심악, 북악, 관악)중에 하나로 불리우고 있다. 그후 조선조 숙종대왕 시절 왕궁에서 학을 기르다가 학 두 마리가 도망을 치자 궁궐에서는 이 학을 찾기 위해 사방으로 수소문하여 찾으러 다니다가 심악산에 와 있는 것을 보고 잡아간 후 숙종대왕께서 이 산에서 학을 찾았다 하여 심학산(尋鶴山)으로 명명하여 부르게 되었다 한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항간에는 수막산으로 불리우고 있으나 각종 문헌에는 심악산으로 명기하고 있으며 이 심악산 동편 중턱에는 유명한 법성사(法 成寺)절이 있고 위에는 속병이 잘 낫는다는 신기한 약수가 있어 많은 사람들이 수시로 모여들고 있다. 또한 이 산은 조선조에 유명했던 송구봉선생께서 이 산의 정기를 받아 탄생하여 성장하신 명산이다. 따라서 일설에는 송구봉선생이 출생할 때 정기를 흡수하여 이 산에 초목이 일시 고사(枯死)하였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온라인 자료 참고 작성)
심학산(尋鶴山)은 해발 194m 높이로 한강 하구에 접해있으며 조선말 이곳으로 천도(遷都)설이 제기될 만큼 명당중에 명당으로 꼽히는 명산이다.그런데 6.25이후 이곳 한강하구에는 줄곧 군 작전용 방책선이 설치되어 사람의 래왕이 통제되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곳은 철새 도래지가 되어 해마다 겨울철이면 수십만마리의 철새들이 심학산 바로 앞 한강 둔치에 날아들어 겨울을 보내고 있으며 이중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많은 학(두루미) 많은 학(鶴)을 볼 수 있다.
또한 매년 5-6월이면 파주시에서 심학산 "돌곳이 축제"를 개최하고 년말에는 "파주 해넘이 축제"가 열리고 최근 파주시에서 심학산 허리 중턱에 둘래길을 조성하여 (배수지와 약천사 = 약천사에서 전원마을까지 약 6.8km.) 많은 시민들의 산책로가 되어 각광 받고 있다.
초딩 친구와 함께 오른 심학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