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의 쓸쓸한 '미리 크리스마스'

2009. 7. 22. 00:37☎청파의사는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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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의 쓸쓸한 '미리 크리스마스'
도영이 할아버지가 쓰는 육아 일기
05.12.23 15:36 ㅣ최종 업데이트 05.12.23 17:03 윤도균 (ydk3953)
▲ 쓸쓸한 크리스마스 트리
ⓒ 윤도균
연말이 다가오고 있다. 덩달아 크리스마스도 따라오고 있다. 아이들의 가슴엔 이미 산타 할아버지가 한 보따리 선물을 보내 주겠지 하는 생각으로 각인된 지 오래인 듯하다. 그런데 연말이 되어도, 그리고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있는데도 왜인지 내 마음은 자꾸 깊은 늪으로 빠져들 듯 허우적대며 갈피를 못 잡고 방황을 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다.

그러니까 2년 전 일이다. 자기 배 아파하며 자기 속으로 난 어린 자식을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팽개쳐두고 아이를 떠나간 손자 아이의 어미를 대신하여 할아버지, 할머니가 손자 아이의 어미가 되고 아비가 되어 아이를 키운 지도 어느덧 2년여가 지나고 있다. 그런데 다행히도 아이는 자기 맘 속으론 어미를 그리고 있는지는 몰라도 적어도 외형상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활달하게 잘 크고 있어 안심이 되었다.

▲ 선물받은 케이크에 촛불을 켰어요
ⓒ 윤도균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지금까지 어린이 놀이방을 다니던 손자 아이가 새해부터는 유치원에 입학하게 된다. 어린이집에 다니는 2년여 기간은 다행히 할아버지의 사무실과 멀지 않은 곳에 놀이방이 있어서 늘 할아버지가 아이의 어미가 되어 놀이방엘 데리고 다니면서 나름대로 기죽지 않고 클 수 있도록 혼을 쏟았는데….

새해엔 아이가 유치원엘 간다고 하니, 그때도 할아버지가 또 아이의 어미 역할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왜 그런지 요즘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손자 녀석의 모습이 왜 그리도 안쓰럽고 아이에게 미안한 생각이 드는지 모른다. 너무도 가슴이 답답하고 미어질 것만 같다.

아직은 철부지라 아무것도 모르고 구김살 없이 커온 손자 아이가 유치원을 가고 학교를 가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될 어미 없는 슬픔을 생각하면 할아비의 가슴이 너무도 아리고 아프다. 저 어린 것이 무슨 죄가 있다고….

오늘은 아이의 할머니 친구가 크리스마스를 축하하는 케이크와 샴페인을 보내 주셨다. 그런데 손자 녀석이 하루를 참지 못하고 크리스마스 케이크에 불을 켜고 축하를 한다고 할아버지 빨리 오시라고 전화한다. 그때 시간이 밤 10시 반, 잠시 시간을 내어 집에 도착하니 아이는 벌써 케이크에 불을 켜고 마음이 들떠서 노래를 부르며 좋아하고 있다.

그런 아이를 보는 순간, 왜 내 가슴은 그렇게도 미어지는지…. 아이의 어미 대신 옆에는 내복을 입고 있는 할머니의 모습도 흉해 보이고 케이크에 불을 켜고 혼자 좋아하는 아이의 모습도 왜 그렇게 예쁘지 않고 보기가 안쓰러운지 모르겠다.

하지만 밝게 웃는 아이에게 기념이라도 만들어 주리라는 생각에 디카를 들고 아이에게 포즈를 요구해 보지만 평소 때 같았으면 하지 말라 하여도 척척 알아서 포즈를 취하여 주던 아이가 이날은 왜 그런지 미운 짓만 하면서 할아버지의 마음을 외면하며 자기 고집대로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이래저래 심기가 불편한 마음이 된 할아비, 평생 처음 아이를 나무라며 손으로 엉덩이를 두어 대 때리며 야단을 치니 아이의 눈에선 구슬 같은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다. 그러면서 아이는 '할아부지 잘못 했어요'하며 가슴에 안긴다. 가슴에 안긴 아이의 눈물을 닦아주며, '도영아 이제 앞으로는 그러지마'하고 타이르니, 아이는 언제 울었냐는 듯 해맑은 얼굴로 머리를 끄덕인다.

그런 아이의 밝은 모습을 보는 순간 그런데 할아비의 마음은 왜 그렇게 아이에게 미안하고 부끄럽고 가슴이 아픈지…. 도무지 아이를 더 이상 바라볼 수가 없다. 그런 할아비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는 어느새 한편으론 케이크를 자르며 '할아버지 드시라'고 접시에 받쳐 들고 오는 손자 아이를 외면하고, 나는 더 이상 아이를 바라볼 수 없어 성난 듯 현관문을 쾅 닫고 흰눈이 내리는 싸늘한 겨울밤 자전거 페달을 밟아 사무실로 달려왔다.

그리고 '컴' 앞에 앉으니 저 어린 것이 무엇을 안다고, 철부지 어린 아이에게 할아비가 성깔을 부린 것 같아 너무도 가슴이 아프고 괴로워 가슴으로 울고 있다. 어린 것이 케이크를 보고 좋아서 한 짓을 몰라주고 공연히 할아비가 되어 아이에게 상처를 준 것 같은 마음이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아이에게 미안하다는 말이라도 해야겠다 생각이 들어 전화를 하니 밤 11시 반인데 아이는 잠이 들었다고 한다.

평소 같았으면 12시까지도 할아버지를 기다리며 잠을 안 자는 아이인데….

도영아, 할아버지가 미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