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전선 이상무

2009. 7. 22. 00:32☎청파의사는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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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전선 이상무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JSA와 서부전선을 견학하고 왔지요 그런데 장병들 사기충천하고 화목한 모습 서부전선은 이상무 입니다
윤도균 (ydk3953)
윤도균(ydk3953)

▲ 6.25 유엔 참전국기
ⓒ 윤도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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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2개월 여전에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견학을 하기 위하여 단체 방문 신청을 한 후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있는데 별안간 지난 6월 27일 내가 살고 있는 인천 부평지역 입주자 대효회의 연합회 사무장님께서 연락이 왔다 6월 28일로 방문 일자가 정해졌다고

이렇게 시작된 부평구 입주자대표연합회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JSA 방문단은 이른 아침부터 서둘러 자유 로를 달려 통일대교 앞에 설치된 검문소에 도착하여 1차 신원 확인을 마치고 다시 버스에 올라 몇 해 전 정주영 명예 회장께서 수백 마리의 소 떼를 몰고 방북을 하시던 통일대교를 건너 캠프보니파스 부대 검문소에 도착하여

다시 한번 더 신원확인을 거치고 다시 차량으로 이동하여 영상교육관에서 공동경비구역내에서 방문단이 지켜야할 수칙과 안전요령에 대하여 낭랑한 목소리로 친절하게 브리핑 안내를 하여주는 병사로부터 영상교육을 마친 후 이곳에서부터는 판문점 공동경비구역까지 전용으로 운영되고 있는 셔틀 버스에 옮겨 타 우리 32명의 일행은 10분여를 더 달려 드디어 판문점공동경비구역(JSA)에 도착을 했다.

▲ 캐프보니파스부대 검문소
ⓒ 윤도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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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곳에서는 우리 일행을 인솔하는 병사의 안내에 철저하게 따라야 한다. 이곳 판문점 공동경비 구역을 견학 하는 도중에는 절대로 북측을 향하여 손짓을 한다거나 지정된 장소가 아닌 곳에서 절대로 사진촬영이나 불필요한 행동을 하여서는 안 된다 이는 북측 경비병들이 자칫 오인 판단하게 되면 예측하기 어려운 불상사가 발생 될지도 모르는 상황이기에 사전 이에 대한 예방차원에서 누구를 막론하고 불편하더라도 이곳의 수칙을 철저하게 따라야 한다.

우리 일행은 먼저 (구) 자유의 집 팔각정에 올라 우리를 안내하고 있는 병사로부터 판문점공 동경비구역 관광경로에 대한 설명과 북측 상황에 대한 안내말을 들은 후 이곳에서 잠시 사진촬영이 허용되어 공동경비구역 방문 기념사진을 찍은 후 다시 이동하여

▲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북측 판문각
ⓒ 윤도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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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회의실로 안내 되었다 회담장은 길다란 테이블을 사이에 놓은 상태에서 테이블 가운데 마이크가 설치되어있고 마이크를 중심 라인으로 정하여 남과 북이 경계를 정하여 남북회담을 하는 곳이다 그런데 몇 해 전부터인가 북측에서 일방적으로 회담장에서 철수한 후 현재는 우리 남측에서만 회담장 견학을 하며 경비를 맡고 있다고 한다.

남북공동경비구역 회담장 견학을 마친 후 이동을 하다보면 이곳에 근무하고 있는 JSA 경비근무병들은 하나같이 양손을 허리에 손을 대고 부동자세로 근무를 하고 있기에 안내를 맡고 있는 병사에게 이유를 물으니 이곳은 언제 어느 때 어떤 상황에서 돌발적인 상황이 발생할지 모르기 때문에

유사시 순식간에 권총을 뽑을 수 있도록 허리에 손을 대고 근무를 서고 있는 것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우리처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을 관람하는 사람들이 함부로 북측을 향하여 손짓을 하여서는 안 되는 이유를 즉흥적으로 알 수 가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멀리서 우리 남측을 바라보며 경계근무를 서고 있는 인민군 병사들의 눈에는 자칫 방문단 일원이 북측을 향하여 손짓을 하게 되면 그것을 북측을 향하여 총을 겨누는 것으로 오인할 수 도 있기 때문이다

▲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건물배치 조감도
ⓒ 윤도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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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극과극 남북 대치 상황의 현장에서 그래도 우리나라는 지극히 극소수 이지만 사전 공동경비구역 방문 신청을 받아 신원조회를 거쳐 나름대로 자유를 누리며 이곳 냉전의 현장을 방문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날 내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을 방문한 목적과 의는 이미 거두고도 남음이 있다는 생각을 하며

우리들은 다시 제3초소로 향하여 그곳에서 1976년 8월 18일 오전 11시 발생한 북한군의 도끼만행 사건 현장을 관망하였다 당시 유엔군 측이 매년 여름철이면 초소의 시야를 가로막은 미루나무를 가지치기를 실행 하려 하자 북한군이 이를 가로막으며 보니파스 대위(死後 소령 진급)와 바렛 중위를 도끼로 살해한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미군 4명과 한국군 4명이 중상을 입었던 곳이다

제 3초소에서 먼발치로 이렇게 아픈 역사의 현장을 돌아본 후 우리들 일행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 다리로 이동을 하였다 군사분계선 한가운데를 지나는 "돌아오지 않는 다리"가 있다. 이 다리의 이름이 "돌아오지 않는 다리"로 명명된 것은 1953년 휴전 후 여기에서 전쟁포로 교환이 이루어졌다. 이때 포로들이 이 다리 위에서 일단 남과 북으로 방향을 선택하면 다시는 돌아갈 수 없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회담장에서
ⓒ 윤도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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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이곳 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통하여 남과 북으로 선택하여 돌아간 포로들은 북측으로 돌아간 숫자가 월등히 많다고 한다. 지금의 상황에서 결과를 놓고 보면 북측을 선택하여 돌아간 포로들은 자신의 발로 고생문이 훤히 열려있는 북측으로 돌아간 것처럼 되어 안타깝게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은 어디까지나 나의 사견이고 당시의 상황으로는 북측으로 돌아가면 남측보다 더 어렵고 힘이 든다는 것을 일부 포로들도 알고 있으면서도 북측에서 꼭 살아 돌아올 자식을 기다리는 부모님과 형제 처자를 생각하며 북으로 돌아간 포로들의 입장을 내가 잘 헤아리지 못하고 잘못 생각 한 것이다

▲ 북측기정동 마을에 게양된 인공기 * 세계최고 높이 국기 게양대 250m
ⓒ 윤도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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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비통한 역사 비극의 현장에 내가 방문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착잡한 마음이 들며 서글픈 마음이 든다. 지구상에 유일하게 남은 냉전지대 그 대치를 이루고 있는 당사국들은 어이없게도 한겨레 한민족 같은 동포 형제들이다 그런데 그들은 서로 형제의 가슴에 총을 겨누며 한시도 눈을 떼지 않고 주목을 하고 있다

만약의 경우 누군가 먼저 양측 경비근무병 형제의 가슴에 총을 쏘았다고 가장했을 때 어느 측이 되었던 선수 쳐 총을쏜 일방이 과연 정말 승리의 축배를 들 수 있을까요? 아마 그렇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고요? 그것은 바로 우리는 형제이고 한 핏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제 더 이상 남과 북이 두 번 다시는 피비린내 나는 동족상잔의 전쟁은 그만 접어야 합니다.

▲ 도라 전망대에서 만난 장병들의 늠늠한 모습
ⓒ 윤도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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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기 위하여서는 그동안 우리가 많이 인내하며 북측을 설득하며 도움을 주어 왔는데도 북측은 고마움은 고사하고 자신들 체제유지를 위하여 우리를 역으로 이용할 생각이나 하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정말로 화가 나기도 하지요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이를 괘씸하게 생각하고 역으로 도움을 단절 하고 적대시 대치 상황으로 전환하게 된다고 가상하였을 때

과연 남북긴장 완화 상태에 도움이 될 수 있을까요? 아마 모르긴 해도 이곳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은 물론 남북 대치 상황이 훨씬 더 심각하게 돌아갈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지요 때문에 우리가 힘이 들고 더 손해를 감수 하더라도 대의적이 차원에서 우리가 한발 더 물러서 북측을 설득하고 회유해서라도 이제 더 이상 한 민족 동포 형제의 가슴에 총을 겨누는 또 다시 동족상잔의 피를 보는 전쟁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막아야 할 것이다.

▲ 제 3땅굴 관람 승객 탑승용 모노레일
ⓒ 윤도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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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동란이 발발한지 어느덧 55주년이 지나는 길목인데 서부전선 최전방 DMZ에서 이유야 어떻든 광란에 가까운 한 병사의 광기에 의거 선의의 혈기 왕성한 젊은 군인들이 무참하게 희생이 되었고 이로 인하여 군의 기강이나 사기가 저하되었음은 물론 자식을 군에 보낸 부모 그리고 군인 신분인 당사자들 국민 모두 이번일로 인하여 큰 상처를 입고 아파하고 있다

이렇게 분위기 어수선한 시기에 나는 우리나라 서부전선 최전방 판문점 공동경비구역과 도라 전망대 그리고 제 3땅굴을 방문 하면서 내 눈으로 지켜 본 현지 근무 사병들의 모습은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사 기죽어 있지 아니하고 생기발랄했으며 씩씩하고 건장한 아름다운 군인의 모습으로 근무 하고 있는 것을 보고 돌아오면서 내 눈으로 보기에는 누가 뭐라고 해도 “서부전선 이상 없다”라는 보고를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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