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성묘를 다녀 왔습니다

2009. 7. 21. 23:51☎청파의사는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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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성묘를 다녀 왔습니다
추석 성묘길 가족들의 이모저모
03.09.15 17:45 ㅣ최종 업데이트 03.09.15 19:26 윤도균 (ydk3953)
▲ 우리가족 납골묘(48기용)전경
ⓒ 윤도균
우리 집은 부모님 두 분께선 모두 돌아가시고 출가한 누이들을 빼고 나면 4형제 가족들이 나름대로 돈독한 가정의 우애를 나누며 살고 있다. 그런데도 매년 추석이나 설 때가 되어도 형제들이 다소의 나이 차이가 있다보니 자연스럽게 4형제의 자식들도 층층이 연령 차이가나 학교 등교 문제로 또는 군대 문제로 추석이나 명절 행사에 반드시 꼭 누구 한 두 사람은 빠지게 되었었다.

그런데 올해는 아주 오랜만에 처음으로 4형제 가족 17명 전원이 예외 없이(출가한 딸 제외) 모두 한자리에 모일 수 있는 의미 있는 추석을 맞이하였다. 4형제의 자녀들이 이젠 대충 군대도 다녀오고 대학생들이 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였다.

이번 기회를 거울로 삼아 앞으론 이렇게 열외 없는 가족모임 제도를 활성화하여 종종 우리들의 2세들에게 가족구성원간의 친목을 도모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 추석에 참석한 가족들의 신발
ⓒ 윤도균
우리 집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추석 명절이나 설 차례 제례를 우리 집안의 맏형인 큰 형님 댁에서 유교적인 절차로 지내오곤 했는데 몇 년 전 갑작스럽게 큰 형님께 우환이 생긴 후 작년부터는 큰 형님 내외분의 종교를 따라 모든 제례 행사를 기독교식 추도 예배로 대신하게 되었다.

추석날 아침 온 가족이 모여앉아 조상님에 대한 추도 예배를 드린 후 우리 가족 일행은 5대의 차량에 분승하여 조상님들의 영혼이 잠들고 계신 경기도 파주시 파평면 마산리 선향으로 성묘 길에 올랐다.

그런데 예년 이맘때쯤이면 자유로변 들녘에 가을바람에 황금물결이 출렁이고 있는 모습을 볼수 있었을 텐데 올해는 추석이 이르게 찾아왔기 때문인지 아직 들판에 황금물결은 찾아 볼 수가 없고 길가에 핀 코스모스만 바람에 하늘하늘 나부끼고 그 위로 고추잠자리가 마치 우리 일행의 자동차 행렬을 호위라도 하려는 듯 편대를 이뤄 따르며 모처럼 한가한 전형적인 가을 날씨를 보여주고 있었다.

남부지방에는 기상대 관측 이래 가장 큰 태풍으로 기록된 “매미”의 엄청난 세력으로 피해가 천문학적 숫자를 이룬다는데 다행히도 올핸 상습적인 수해지역의 중심권에 있는 파주 문산 지역에 별 수해 소식은 없다. 불행 중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 잔을 올린후 배례와 기도하는 모습
ⓒ 윤도균
운전은 항상 조심을 해야 하는 일이지만 4형제 가족 전원이 함께 동행을 하는 운전인 만큼 보다 더 각별히 안전운전을 상기하며 우리 가족일행은 드디어 조상님들의 납골이 모셔진 가족 납골 묘에 도착을 하니 12시가 지나고 있다. 도착 즉시 부랴부랴 준비하여간 간소한 성묘 음식을 차려 놓고 열한분 조상님들의 수대로 잔에 가득 가득히 술을 따라 부어놓고 아직 종교적인 통일을 이루지 못한 까닭으로 몇 분들은 기독교식으로 예배를 올리고 또 나처럼 아직 종교에 귀의를 하지 못한 동생과 조카들 일부는 조상님들께 유교적으로 두 번씩의 배례를 올린다.

▲ 잔을 올리고 난 후...
ⓒ 윤도균
혹시 남들이라도 곁에서 우리 집안의 성묘제례를 올리는 모습을 보면 저놈의 집은 국적도 불분명한 방식으로 성묘제례를 올리고 있다고 흉을 보며 폄하를 할 수도 있으리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내가 생각을 해봐도 일면에서는 조상님에 대한 결례가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어차피 현대사회에서 조상님 모시는 일을 예법 제례 형식대로 지키기는 쉽지가 않은 어려운 일이다.

만약 누가 설혹 예법대로 그대로 잘 지키고 있다고 해도 솔직히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그 제례의 형식에 대한 이해도 못하는 상태에서 예법이니까 무조건 따라 행해야 한다는 것도 따지고 보면 별 의미가 없기는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과거와는 달리 이제는 조상님을 모시는 일이 예법이 되었건 새로운 문화에 의한 방식이 되었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자손들의 정성에 있다고 생각을 한다.

그런 맥락에서 이제 격식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이런 글을 쓰면 어떤 사람들은 저 집안은 근본도 없는 집안이라고 흉을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 집안은 과거에는 여자들은 제사에 절도 올리지를 못하였었다. 그러나 지금은 여자들도 남자들과 동등하게 절도 올리고 잔도 올리며 제례행사에 참석을 하고 있다

▲ 제례가 끝난후 납골묘에 헌주를 하는 모습
ⓒ 윤도균
그런데 이렇게 납골 묘를 조성하고 보니 해마다 여름철에 하는 벌초 때만 되면 당연히 앞장서서 일해야 할 젊은 아이들은 바쁘다는 핑계로 빠지게 되고 언제나 나이든 어른들 몫이 되어 벌초하는 일에 땀을 흘리게 되어 솔직히 어른인 나의 입장에서도 벌초가 달갑게 생각되지를 않았었는데….

이제는 단 한곳에 모신 납골묘에 여러분의 조상님들을 모시고 벌초를 하게 되니 이제는 아이들은 물론 벌초 때 모습을 찾아보기 힘든 여자들까지도 거의 전원이 나서서 참석을 하는 '벌초 축제'가 되어 간단하게 벌초를 끝내고 벌어지는 가족 이벤트(회식, 친목회)에 관심을 보이며 가족지간의 우애와 친목을 도모하게 되었다.

옛 풍습도 문화도 모두가 현대사회와 공존하며 우리들의 후세들에게 자연스럽게 이어져 내려가기 위하여서는 무조건적으로 옛것만을 주장하여서는 곤란하다. 옛 풍습도 문화도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정서에 걸맞게 함께 공존할 수 있도록 개선되는 것이 발전된 문화이고 또한 미래 지향적인 전수 방법이라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