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멜고개 넘어 백운산등산후 백운계곡에서 부평산악회 400회등반 기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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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이는 904m로, 광덕산(1,046m)·국망봉(1,168m)·박달봉(800m)의 산들에 둘러싸여 있다. 무엇보다 백운계곡이 유명하여, 여름철 피서지로 많이 이용된다. 백운계곡은 약 5㎞의 구간에 펼쳐져 있는데, 시원한 물줄기와 큰 바위들이 경관을 이룬다. 한여름에도 섭씨 20도를 넘지 않는다고 한다.
백운동 주차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흥룡사(興龍寺)가 있다. 신라 말기에 도선국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도선이 나무로 3마리의 새를 만들어 날려 보냈더니, 그 중 한 마리가 백운산에 앉아 이곳에 세운 것이라고 한다. 여러 번 중수하면서 처음의 이름인 내원사에서 백운사로 되었다가 다시 흥룡사로 고친 것이다. 6·25전쟁 때 건물이 많이 소실되어 지금은 대웅전과 요사채만 남아 있다.
산행은 흥룡사와 광덕재에서 시작할 수 있다. 흥룡사에서 시작하면 5분 정도 가서 징검다리를 건너면 오른쪽에 약수터가 있고, 다시 1㎞를 더 오르면 높이 30m 정도 되는 금광폭포를 만나는데, 이 부근이 백운계곡이다. 계곡을 따라 오르다 갈림길에서 서쪽 능선을 타고 오르면 정상이다. 흥룡사에서 정상까지 걸리는 시간은 2시간 정도이다.
광덕재는 일명 캐러멜 고개라고도 하는데, 2가지 이유가 전한다. 하나는 6·25전쟁 때 이 고개를 감찰하던 사단장이 운전병의 졸음을 쫓기 위해 캐러멜을 운전병에게 주었다는 데서 나온 이야기다. 다른 하나는 광덕재의 꾸불꾸불한 언덕이 카멜(camel:낙타)의 등같이 생겼다고 한 것이 캐러멜로 바뀌어 전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광덕재는 해발 660m 정도라서 산행이 힘들지 않아 등산객들이 이곳에서 많이 출발한다. 광덕재에서 완만한 경사길을 따라 3㎞ 정도 오르면 정상이다.
여러 봉우리를 오르내려 정상에 오르면 북쪽으로 광덕산, 남쪽으로 국망봉, 동쪽으로 명지산(1,267m)과 화악산(1,468m)이 보인다. 하산할 때는 정상에서 서쪽 능선을 따라 내려간다. 참나무와 소나무 숲을 지나면 다시 광덕재로 가는 길과 백운동계곡으로 가는 길이 나온다. 이곳에서 백운계곡 방향으로 하산하면 흥룡사에 이른다. 산행거리는 약 9㎞로, 3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
교통편은 상봉동터미널에서 사창리행 직행버스를 타고 백운산 입구나 광덕재 휴게소에서 하차하면 된다. 주변에는 1925년 조성된 산정호수, 일동유황온천, 국립수목원 등의 유원지가 많다. 숙박은 백운계곡 입구에 있는 민박이나 이동면 도평리의 숙박 시설을 이용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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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산 |
광덕고개 왼편
능선을 따라 오르면 억새풀밭이 나온다. 완만한 경사길을 따라 능선을 타고오르면 백
운산 정상이 보인다. 봉우리를 두어개 넘고 싸리나무가 있는 길을 지나 다시 두 개의
봉우리를 넘으면 정상에 이른다. 북쪽으로 광덕산이, 남쪽으로는 국망봉이, 동쪽으로
는 명지산과 화악산이 뚜렷하게 보인다. 하산은 서쪽으로 뚫리는 능선길을 따라간다.
오른쪽으로 흥륭봉을 바라보며 참나무, 소나무숲을 지나면 곧 광덕고개와 백운계곡으
로 갈라지는 길이 나온다. 계곡에서 흥룡사를 지나 주차장까지 내려오면 총 4시간 30
여분이 걸린다.
등산코스 : 1) 광덕재 - 정상 - 서능 - 흥룡사 (10 km, 3:30)
2) 광덕재 - 정상 - 백운골 - 흥룡사 (7 km, 3:00)
3) 백운동 - 주차장 - 흥룡사 - 백운계곡 - 남쪽능선 - 우산동굴 - 삼각봉 - 우산동
굴 - 남서능선 - 흥룡사 - 주차장 (10 km, 4:30)
4) 흥룡사 - 약수터 - 금강폭포 - 백운폭포 - 선녀탕 - 금병암 - 왼쪽계곡 - 능선 -
정상 - 백운골 - 흥룡사 (7 km, 3:00)
교통안내 : 구리시, 퇴계원 -> 47번 국도 -> 포천군 일동 -> 화대삼거리 직진 -> 사직리 -> 포천
군 이동 -> 4.4km -> 47번국도와 316번지방도의 갈림길에서 오른쪽 선택 -> 2.4km ->
흥룡사 주차장 -> 5.0km -> 광덕고개
현지교통 : 상봉시외버스터미널에서 사창리행 버스를 타고 광덕고개 마루, 또는 흥룡사 입구에서
하차(소요시간 약 2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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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일시:2004년 8월 8일 일요일
산행지:경기포천 이동, 강원 화천 사내면
산행코스:광덕재 - 정상 - 백운골 - 흥룡사
산행인원:부평산악회회원 55명
산행시간:3시간

산행기 본문

오늘은 내가 소속하여 활동하고있는 인천 부평산악회 창립 20주년이 되는 해로서 산악회가 400회 산행 행사를 치른 기념 산행일이다 그런데 이날따라 마지막 핏치를 더하고 있는 복중 무더위와 또한 휴가기간과이 겹쳐 회원님들이 산행에 많이 참석을 할 수 있을까 염려를 하며 출발시간 아침 6시에 마추어 집결장소에 도착을 하고보니 어라! 이건 나의 우려와는 상이하게 의외로 많은 회원님들이 참석을 하시어 45인승 버스 한대에 회원들을 태우고도 자리가 부족하여 봉고 한대를 이용하여 총원 55명이 경기포천에 있는 백운산을 향하여 새벽공기를 가르며 달려가고 있다
산행일이면 늘 근무관계로 퇴근시간이 새벽 2시이니 집에 들어와 씻고 잠을 들려면 2시반이고 게다가 산행을 하는날이면 새벽 4시 50분에 기상을 하여 준비를 하여 배낭을 메고 나서는 일이 반복이되다보니 산행을 하는날은 겨우 2시간여 토끼 잠을자고 산행길을 나서야 하는 입장이 반복적으로 적체가 되다보니 늘 잠이부족하여 이날도 차에 올라 출발 5분여 지나서부터 차창에 기대어 잠이들고 만다 얼마쯤을 달렸을까 눈을 떠보니
눈을 떠보니 나를 싫고 달리고있는 차가 자유로를 달리고 있는것이 아닌가 사람들마다 모두다 그렇겠지만 난 늘 다니는 길인데도 자유로를 달려 갈때면 항상 두고온 고향에 대한 그리움때문인지 가슴이 두근거리는 증상이있다 뭐라할까 못다한 농촌에대한 꿈을 실현하지못하고 내뜻과는 전혀다르게 도심생활을 시작한것이 이제는 잊어버릴 시기가 지나버렸는데도 아련히 청춘의 꿈을 키우던 농촌으로 향하는 마음이 늘 나를 가슴앓이를 하게한다
일찍 차를몰고 달려가는 자유로길은 휴가기간 중이라 하여도 차량 정체로인한 염려를 하지않으며 제한속도대로 잘도 달려간다 문산을 지나고 적성을 지나 감악산 인근을 지나갈땐 멀리 차창밖으로 내다보이는 청년시절 둘이 함께 앞서가는 우리나라의 낙농업자가 되어보자고 5.16혁명이후 우리나라 농촌의 근대화를 부르짓을때 낙농을 하는 농민이 되기를 꿈을꾸며 농촌진흥청에서 주관하는 농업기술생 훈련이란 훈련을 모두다 섭렵을 하고
국가에서 장려하는 낙농업자 대부금도 수여받고 당시에 호주에서 처음으로 들여오는 젓소도 배정 받기로 지정이 되었었는데 친구는 장남이되어 줄기차게 청년시절을 꿈을 일구어 지금은 감악산 기슭에 [은잔디 목장]이라는 농장을 경영하는 친구의 목장을 바라보면서 휴대폰으로 전화를 하니 막 젓소들 아침 착유를 마치고 정리하는 중이라며 전화를 받는다 그러면서 왜 올 여름은 한번도 다녀가지 않는것이냐고 채근을 하며 더위가 다가기전에 수일내 한번 다녀가라고 신신당부를 한다
친구의 반가운 목소리를 들으며 계속하여 달려가는 차창밖을 내다보고 있노라니 나의 큰 아들을 군대보내 사단에서 훈련을 받고 배치를 할때 첫 가족면회를 하던 28사단 신병교육대앞을 지나고 있다 내속으로 난 새끼를 처음으로 군대에 보내놓고 가슴을 반쯤은 도려낸듯한 아픔을 실감하며 밥을 먹어도 먹는것 같지도 않고 즐거운 일을 보아도 즐겁지않게 생각하며 단단히 가슴앓이 하며 보내다 첫 면회장소인 28사단 신병교육대에서 새까맣게 탄 아들아이모습을 보고 돌아와 또 다른 가슴앓이를 하였던 그날이 엇그제 같은데
그 아이가 전역을 하여 결혼을 하고 손자를 안기워준 할아버지가되어 아들아이의 신병교육대를 바라보면서 산행길을 달려가고 있는 마음도 아련한 추억이되어 그립기 까지하다 전곡을 지나고 포천땅을 밟아 무수히도 많이 있는 포천 이동갈비촌을 침만 흘리면 휙휙지나서 38선 휴계소에서 간단히 휴식겸 아침식사 해결을 하고 경기포천군과 강원도 화천군과 도계인 경계지점 광덕산 중턱에 반달곰 형상이 세워진 광덕재 백운산 들머리에 차량이도착 하차를 한다
그러니까 부평에서 꼭 2시간을 달려 이곳 산행들머리구간에 도착을 하니 어 이곳은 산중턱인데도 강원도산 옥수수와 감자 그리고 약초 기타 농산물을 판매하고있는 제법 큰 시장이 산 중턱에서 열리고있고 이곳에서 농산물을 구입하는 인파들이 등산객과 강원도 휴가길을 이용하는 피서객들의 주류가되어 제법 시장이 왕성하고 활기차게 열려 운영이되고있다 나는 속으로 이곳이 하산 구간이었다면 저 먹음직 스런 옥수수와 강원도 감자라도 한자루 사서 가지고 오고싶은 마음이 굴뚝 같은데
우리 산악회는 이곳 광덕재에서 들머리 시작을 하여 흑룡사가 있는 백운계곡으로 하산 하여 그곳에서 400회 등반 기념식을 갖기로 하였으니 그림에 떡으로 볼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원래는 400회 등반기념식도 산 정상에서 치르는것이 의미가 클 수 있겠으나 우리 산악회는 산악회 창립멤버 어르신들이 아직도 왕성하게 활동을 하시고 계시기 때문에 부득이 하산을 하여 행사를 치르게 되어있기 때문에 늦어도 12:30~13:00시 까지는 전원 하산을 하여야 한다는 회장님의 당부의 말씀을 들으면서 들머리 구간 매표소를 통과한다

농산물 시장이선 장터모습

매표소에 요금을 지불하고 들머리 구간을 각고있는 회원님들의 모습



그동안 수도없이 산을 다니고 있었지만 근래에 들어서 포천지역의 산을 등산을 하기는 별로 없었다 그런데 이곳 백운산 산행구간은 들머리 구간부터 전형적인 육산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산행로 주위에 수려한 키다리 잡목들 때문에 좀체로 사방을 바라볼 수 있는 조망권은 거의 제로 상태이어서 한동안 지리산이다 남덕유산이다 나름대로 소문난 산들만 오르다보니 왠지 이날 백운산을 오르고있는 나의 마음은 정말 뭐라하나 재미가 없다고 하는가
그져 내려쬐이는 폭염으로 수목들도 늘어지는 현상을 보면서 땀만 삘삘 흘리며 오로지 땅만 바라보며 오르고 있다보니 정말 산을 오르는 기분이 영 밋밋하다 산은 어느곳을 다니나 마찬가지로 처음 들머리 구간을 통과하여 한시간여 산행을 할때 가장 힘이들고 어렵다는 생각을 하는데 이날 백운산 산행길은 산행길은 별로 험준하지도 어렵지도 않은데 산행길의 멋이없어 답답하고 지루하게 느껴지는 산행길이 되고있다

첫번째 깔딱고개 구간을 통과하여 잠시 쉬고있는 회원들의 모습


밋밋한 등로를 오르며 힘겨워하는 회원들의 모습


산행길이 힘이들다고 하면서도 어르신들의 음담패설은 주 메뉴가되어 오나가나 앉으나 서나 이어지고있다 그러다보니 누이동생과 동행을 하는 나의 입장에선 정말 민망스러워서 자리에 함께 있기도 민망스러워 차라리 앞으로 한창 지나서 따로 쉬어야 하는 입장이다 물론 친구분들과 재미로 하는 악의없는 대화인줄은 알고있지만 그런 이야기들이 하루이틀도 아닌 산행날마다 이어지다보니 정말 이젠 산악회에 마음을 붙이기조차 싫어지는것이 사실이다
내가 이런 이야기 하면 고상한체한다고 핀잔을 하실지 모르지만 그러나 산행날마다 그렇게 유쾌스럽지못한 이야기들을 귀가 아프도록 들어야하고 또한 여성회원들과 함께 동행을 하는입장에선 정말 난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날 내가 백운산 산행을 하면서 처음으로 만난 바위의 모습이다

드디어 백운산 정상의 푯말이 올려다 보인다


904.4미터의 백운봉


모처럼 함께 오른 기념으로 기념사진을 찍자고 회장님이 몇차례나 당부를 하여도 사진찍어봐야 빼주지도 않는것 뭣하러 찍느냐고 협조가 안된다 그러나 사진기를 든 사람의 입장에선 솔직히 산행날 사진찍은것 일일이 다 빼 드리고 싶어도 비용도 만만치 않고 빼놔도 안찿어가는 사람이 대분이고 혹시나 만나서 사진을 주인에게 주면 그냥 고맙다는 말 한마디로 끝나는것을 그동안 많이 보아온 나로선 그분들의 이야기에 이해를 하면서도 현상은 안하는것으로 맘을 정하고 실천을 하니 맘은 편하다

아래의 두분들은 70세가 넘으셨는데도 웬만한 산은 젊음이들 못지않게 청년정신으로 오르신다 그뿐 아니다 우리 부평산악회는 이렇게 나이드신 어르신들이 아직도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계시다보니 환갑나이의 내가 젊은층에 속하는 입장이고 보면 앞으로 부평산악회 진정한 발전과 번영을 위하여선 반드시 참신한 후배 산님들이 양성이되어야 할것인데 유감스럽게도 우리 산악회는 젊은층들이 버티어내지를 못하고 하나둘 모두 활동중지를 하는 형편이고 보면 앞으로 우리 산악회의 미래를 내다보고있는것 같아 입맛이 씁쓸하다
수목터널에 가리워 일체 조망을 할 수 없어 주위의 경관을 볼 수 가 없었는데 이제사 반짝 하늘이 보이고 거너편 멀리 산들이 보인다 백운산에서 하산길은 전반적인 구간에 마사토로 형성이되어 자칫잘못하면 산이 험하여서가 아니라 계속적으로 떨어져 하산을 하는구간에 있는 마사토로 인하여 미끄러져 생각치도못한 부상을 당할 염려가있다
이곳이 백운산 산행구간중 처음만나는 너덜구간이 20여미터 진행이되과 아울러 몇개의 바위를 주위를 하며 내려오면 전체적인 산행길 구간은 특별한 위험 요소도 그렇다고 주변경관을 볼만한 조망권도 별로 조치를 않어 여름 백운산을 찿는 등산객들에겐 별로 매력이 없는 산으로 기억이 될것 같은 밋밋한 산이다
이곳에서 흑룡봉으로 향하는 등산로가 있고 흑룡사로 하산을 하는 등산로가 갈라지는데 우리 부평산악회 회원님들은 400기념 제사를 드려야하기에 흑룡사길로 들어서 하산을 한다 백운산 정상을 오르기까지에는 우뚝우뚝 솟은 봉우리가 4개정도있으며 이구간을 오른땐 약간의 깔딱고개를 숨고르기를 하며 오르는것 이외 특별이 산행에 어려움이 있거나 까다로운 구간이 없다 광덕재 들머리 구간에서 이곳 백운계곡까지 꼭 3시간을 걸려 산행을 하고나니 12시 15분이 지나고있다
계곡에 넘치는 피서객들로 붐비고있다 그러나 군데군데 쌓여진 이들이 만들어 남겨놓고간 쓰레기들이 지나는 이들의 눈살을 찌프리게한다 사람들은 여름이면 피서라는 명복으로 계곡이다 바닷가다 구름처럼 몰려와 자신들로 발생된 오물이나 쓰레기를 적당이 보는 사람들이 없으면 그냥 슬쩍 버려두고 가고있다 그러면서도 아무렇치도 않게 피서지의 환경상태를 이야기 할땐 그런사람들이 더 입에 거품을 물고 아우성을 치고있는것을 볼 수 가있다 한마디로 지가 하면 로멘스고 남이하면 불륜으로 몰아가는 양심들이 있는한 우리나라 국민들의 피서문화는 후진국 수준을 면키가 정말 쉽지않을것이다
흑룡사 저 스님은 매일같이 채식만 섭취를 하셨을테네 왜 이리 몸이 부하실까? 하기야 몸이 불기시작하는 사람은 냉수만 먹어도 몸이 불어버린다니까 이부처님의 경우는 그런분이신가보다 흑룡사 경내에 살던 무슨 나무인지 죽어서 이렇게 많은 버섯들이 갑옷처럼 겹겹히 옷을 입고있는 모습이 특이하며 그 나무를 의지하여 아름답게 핀 능수화 꽃이 한결 멋스럽다 아기 동자승이 천진스럽게 나무위에 올라앉아 무언가 간절한 기도를 올리는 모습이 천진스럽다 동자승님은 좋겠다 마치 천국의 안식처에 모셔진것 같다
마침 하늘은 해가 떠있는 상태에서 소나기 비가 내리고있다 옛날 내가 어렸을땐 이렇게 해가난 상태에서 비가 내리면 여우비가 온다고 하였는데... 여우비를 피하여 대웅전 계단에 앉아 배낭에 얼려온 캔맥주를 허기를 채우기위하여 마시는 기분이 정말 묘하다 감히 대웅전 인근에서 맥주도 술인데 술을 마시고 있다니... 혹 불자 산님들이 이글을 읽으시면 한소릴 들을것은 뻔한 일임을 알면서도 비는 쏟아지고 갈증은 나는데 나로서 어쩔 수 없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불자 산님들 죄송합니다
여우비가 개이고 가랑비가 맑게 개인하늘에서 내리고있다 배낭에서 우산을 꺼내 손에 받치고 예쁘게핀 아름다운 꽃들을 사진을 찍기위하여 카메라를 우산으로 가린채 꽃에 접근을 하다 난 얼마나 기겁을 하고 놀랐는지 모른다 갑자기 난데없이 이곳에도 또 뚱보 스님이 능청스럽게 능글능글한 모습으로 미소를 지으며 떡 버티고 있는것이 아닌가 하도 예쁘게 핀꽃이기에 맘먹고 근접 촬영한번 시도하다가 정말 혼비백산이되어 혼쭐이나고 근접촬영을 포기하고 그냥 돌아선다 - 심통사나운 스님 - 정말 미워용~~~
20년전 부평산악회를 창립할땐 이곳에 계신 어르신들이 보통 4~50대의 연세들이었고 솔직히 그시절에 산악회을 이야기 한다는것 자체가 시대문명의 흐름에 마추어 레져문화를 한단계 높히 끓러올리는데 일조를 하신 어르신들이시다 그런데 그 20년이란 세월을 흐름이 오늘날 어르신 공경하는 예법은 일찍이 땅에 떨어져 굴러다니고 요지음 세상엔 젊은 사람들이 더 득세를 부리는 세상이되어버리고 말았다 오늘의 젊은이들들도 20년후엔
현재보다 더한 노인 핍박을 받게될줄은 생가지도않고 말이다 너나 나나 모두들 자기위주의 사고방식의 잣대로 세상을 잣대질하기 때문에 만들어지는 세태이고 풍조가 아닌가 생각을 한다 하지만 우리모두 절대적인 한번의 반성은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예를 들어 젊은이들이 노인들을 등한이하고 심지어 핍박을 하기까지에는 과연 노인들 자신들은 젊은 사람들을 위하여 얼마만큼이나 베풀고 때론 관용을 베풀어 주었는지에 대하여
아울러 젊은이들도 웬만한 사안에 대하여서는 가능하면 어르신들의 의견도 반영을 하고 그리고 잘못된것은 더좋은것이 될 수 있도록 서로 협조노력하려는 자세를 보였는가 우리모두 반성을 하여야 할때이낟 오늘의 젊은이들도 분명하고 확실하고 정확한것은 결국은 모두가 노인이되는것이고 이 사회로부터 소외당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400회 등반기념 제례를 마치고 더위를 피해 막걸리 한잔을 나누는 부평산악회회장(가운데)와 이사님 그리고 산악회 간사님의 모습 아이 부러워라 난 냇가에 있어으면서도 계곡아래서 목욕을 하는 사람들이 눈에 보여 발 한번 탁족한번 못하고 그냥돌아왔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아침시간과는 달리 파주 어유지리 구간에서부터 차가 도로를 메워 무려 2시간여를 걸려서 겨우 자유로에 진입을 할 수 가 있었다 그러나 밖에는 세찬 소낙비가 오락가락하며 맴돌고있고 모처럼 그리멀지않은 산행길을 나섰기에 일찍이 집에 돌아올 수 있겠다 생각하였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아파트단지에 들어서니 이곳엔 비가내리지를 않은듯 새빨갛게 널려진 태양초 고추가 밤이되어도 아스팔트위에 그대로 널려져있다













경기도 포천시 이동면 백운산(白雲山)에 있는 사찰.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인 봉선사의 말사이다. 신라 말 도선(道詵:827∼898)이 창건했을 때는 내원사(內院寺)라고 했다. 창건 설화에 따르면 도선이 절터를 정하려고 나무로 세 마리의 새를 깎아 날려보냈는데 그 중 한 마리가 백운산에 앉아 그곳에 절을 세웠다고 한다. 1950년 6.25전쟁이 나기 전까지는 대웅전 등 법당이 4동에 이르고 여러 채의 요사채를 거느린 대규모 사찰이었다고 한다.
조선 초 자초(自超)가 중창하고, 1638년(인조 16) 무영(無影)이 중건하였다. 1639년 무영의 제자 지혜(智惠)가 백수십 칸 규모의 선원인 상선암(上禪庵)을 지었으며, 1648년에는 청암(淸巖)이 50여 칸 규모의 보문암(普門庵)을 지었다. 1786년(정조 10) 태천(泰天)이 중건한 뒤 이름을 백운사(白雲寺)라 고쳤으며, 1922년 설하(渫河)가 대웅전을 중수하고 흑룡사(黑龍寺)라 고쳤다가 곧 현재의 이름인 흥룡사로 바꾸었다. 6.25전쟁 때 불에 탄 것을 1957년 관음전, 1982년 백운당, 1987년 대웅전 순으로 중건하였다. 이 중 백운당은 주지실이고, 관음전의 일부가 요사채로 쓰인다. 무영의 부도와 청암의 부도가 있다.






















































아파트단지 아스팔트위에 널려진 태양초 고추의 모습
저의 길고 긴 산행기를 끝까지 읽어주신 산님들에게도 함께 감사를 드립니다
청파 윤도균이 운영하는 카페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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