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 장릉(坡州 長陵)​… 조선 16대 인조와 인열왕후의 陵

2023. 1. 2. 15:58☎청파산행과여행기☎

728x90

https://youtu.be/Ha4x9ZA51m8

파주 장릉(坡州 長陵)​… 조선 16대 인조와 인열왕후의 陵

 

인조(仁祖/1595~1649, 재위1623~1649)는 제14 대왕 선조의 손자이자 추존 원종의 아들이다. 1623년에는 광해군과 당시 집권당인 대북파를 반정으로 몰아내고 왕위에 올랐다. 재위 중에 이괄의 난(인조 2년, 1624년)을 수습하였고, 정묘호란(인조 5년, 1627년)과 병자호란(인조 14년, 1636년)을 겪었다. 

 

이후 군제를 정비하여 총융청과 수어청 등을 신설하였고, 북변(함경도 변두리)과 연해(육지 가까이 있는 바다)의 방위를 위하여 여러 곳에 진 (鎭)을 설치하였다. 인조 27년 (1649년)에 세상을 떠났는데 본래 묘호를 열조(熱祖)라 하였다가, 최종적으로 인조(仁祖)라 하였다.​

 

인열왕후(仁熱王后/1594~1635)는 서평부원군 한준겸의 딸로 광해군 2년(1610년)에 인조와 혼인하여 인조 1년 (1623년)에 왕비가 되었다. 6남 1녀를 낳았으며, 인조 13년(1635년)에 산후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출처] 파주 장릉(坡州 長陵) 소개 팜플렛(pamphlet) 참조

 

이 건물은 인조(仁祖)와 인열왕후 한씨(仁熱王后 韓氏)의 제향을 준비하는 재실이다.

재실은 왕릉의 수호와 관리를 위하여 능참봉 (陵參奉)이 상주하던 곳으로 제례를 할 때에는 제 관들이 머물면서 제사에 관련된 전반적인 준비를 하던 공간이다. 능참봉의 집무실인 재실, 향과 축문을 보관하는 안향청(安香廳), 제기(祭器)를 보관하는 제기고(祭器庫) 와 그 외 부속 공간인 행랑(行廊)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조선 후기의 문헌인 춘관통고(春官通考)에 의하면 장릉의 재실은 전사청 8칸, 제기고 2칸, 안향청 6칸, 재실 5칸으로 구성되어 있었다고 한다.

 

 [출처] 파주 장릉(坡州 長陵) 소개 팜플렛(pamphlet) 참조

 

조선 왕릉 (파주 장릉)은 세계문화 및 자연유산으로 보호에 관한 협약에 따라 인류의 문화유산으로서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세계유산 조선왕릉은 조선시대 왕과 왕비의 능(40기)으로 우리의 전통문화를 담은 독특한 건축양식과 아름다운 자연이 어우러진 신성한 공간이며 지금까지도 이곳에서 제례가 이어져 오는 살아있는 문화유산이다. 등재일 2009년 6월 30일

[출처] 파주 장릉(坡州 長陵) 소개 팜플렛(pamphlet) 참조

 

인조는 추존 원종(元宗)과 인헌왕후 구씨(仁獻王后 具氏)의 아들로 1623년에 반정으로 왕위에 올랐다. 

 

재위기간 동안 이괄의 난(1624년), 정묘호란(1627년), 병자호란(1636년)을 겪었으며, 군제를 정비하여 총융청과 수어청을 새로 만들었다. 인열왕후는 한준겸(韓浚謙)의 넷째 딸로 1623년에 왕비가 되었으며 6남 소현세자, 효종, 인평대군, 용성대군, 그 외 2 남/1녀)을 낳았다.​

 

장릉은 처음1635년(인조14)에 인열왕후가 세상을 떠나자 이듬해 파주 운천리에 능 조성하였고, 1649년(인조이27) 인조가 세상을 떠나자 쌍릉의 형태로 능을 조성하였다. 이 후 뱀의 피해가 있자, 1731년(영조7)에 현재의 자리로 옮겨 이장하면서 합장릉으로 조성되었다.

[출처] 파주 장릉(坡州 長陵) 소개 팜플렛(pamphlet)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