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 보약이다…훠이훠이 봄바람 훈풍타고 아차, 용마산 진달래 산행

2022. 4. 8. 09:27☎청파산행과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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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83hIpTOa99s

 

 

22-04-06 산이 보약이…훠이훠이 봄바람 훈풍타고 아차, 용마산 진달래 산행 
 

요 며칠사이 살랑살랑 불어오는 봄바람이 늙은 사내들 가슴을 파고든다.’ 그런데 이때다. 늘 나와함께 산행을 하는 동심회 파랑새 대장이 형님 금요일은 형님과 일행들 48일 금요무박 해남 달마산 7부 능선 달마고도 종주 투어 트레킹을 떠나는 날이지요.

 

하며 묻는다. 그래서 말씀인데 이번주 목요일(4/7) 산행을 하고 무박산행을 떠나면 힘드실 것 같아. 이번주는 목요 산행을 하루 앞 당겨 수요일 진행하면 어떨까요. 하며 산행지를 어디로 정할까요? 한다.

 

그래서 얼핏 생각하니 어디로 갈까, 그냥 ‘[발길 닿는대로 물결 치는대로 떠날까 하다, 아니다. ‘이왕이면 창덕궁, 같은 값이면 검정 소 잡아먹는다라고, 작년(47) “봄바람 꽃바람 따라...아차, 용마산 역사 기행을 했던 아차산, 용마산으로 산행지를 결정한다.

 

작년 이맘때는 아차산 들머리 초입부터 각종꽃 꽃양귀비, 수선화, 팬지, 돌양지, 복숭아, 그 외 이름모를 여러종의 꽃들이 한창 곱게 피었었다. 특히 고구려정 오름길에는 먼발치 건너편에, 한창 싱그럽게 물오른 산하에 여기저기 산벗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장관이었다.

 

~~~~1 그런데 이 웬말이란 말인가. 금년봄은 예년보다 날씨가 따뜻해서 분명히 꽃이 일찍 핀다고 했다. 그런데 이날 본 아차, 용마산 산벗꽃은 아직 십여일은 더 기다려야 할 듯, 아직 몽우리가 겨우 눈을뜨고 있을뿐이다.

 

그런데 진달래는 의외로 산행길 요소요소에 만개해, 진달래꽃(꽃말 : 절제, 청렴, 사랑의즐거움)을 발산하며 요염한 윙크를 보내는가 하면, 영락없이 제주의 유채꽃 방불케 땅바닥에 붙다시피해 다닥다닥 핀, 작은 꽃다지꽃들의 풍경이 산객들의 눈길을 끌며 봄바람에 하늘하늘 살랑이며 헤픈 미소를 짖는다.

 

그런가 하면 보루성 마루 잔디밭에는 울긋불긋 색동 때때온 입고, 봄나물 캐는 아낙들의 모습이 정겹다. 그길을 따라 훠이훠이 흥바람 스텝을 밟으며 우리는 구름에 달가듯 산행을 이어간다.’

 

웃기는일은 나와 함께 산행을 하는 일행들 얼마전 끝난 대선 이후, 누구도 주눅들거나 스트레스 받는 모습들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편안한 하다. 이유는 결과에 만족한다는 뜻일게다. 친구들이 좋으니 덩달아 나도 좋다.

 

이날 아차, 용마산 산행길 풍경을 사진 영상에 담아 소개를 합니다

 

아차, 용마산 

 

서울과 구리시에 걸쳐 있는 아차산은 한강과 어우러진 도시 풍경을 즐길 수 있는 명소로, 40분 정도의 등산로를 오르면 정상에서 보이는 잠실부터 남산, 북한산과 도봉산까지 360도 파노라마 영상처럼 펼쳐진 장관이 특징이다. 또한 해발 295.7m의 야트막한 산으로 산세가 험하지 않아 구리와 인근 시민들이 가벼운 산행을 위해 자주 찾는 곳이다.

 

조선 시대에는 지금의 봉화산을 포함하여 망우리 공동묘지 지역과 용마봉 등의 광범위한 지역 모두 아차산으로 불렸던 것으로 추정된다. 삼국시대, 백제의 도읍이 한강 유역에 있을 때 우뚝 솟은 지형적 특성으로 인해 일찍부터 이 아차산에 흙을 깎고 다시 돌과 흙으로 쌓아 올려 산성을 축조함으로써 고구려의 남하를 막으려는 백제인의 노력이 있었다.

 

한강을 사이에 두고 맞은 편 남쪽에 있는 풍납동 토성과 함께 중요한 군사적 요지로서 백제의 운명을 좌우하던 곳이기도 하다. 아단성(阿旦城), 아차성(阿且城), 장하성, 광장성 등으로 불리우기도 하여 백제, 신라, 고구려가 한강을 중심으로 공방전을 장기간에 걸쳐 벌였던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명칭 유래 

 

아차산(阿嵯山·峨嵯山·阿且山) 기슭에 사는 사람들은 아차산을 아끼산·액끼산·에께산·액계산·액개산 등으로 다양하게 불렀다. 옛 기록을 보면 삼국사기에는 아차(阿且)’ 또는 아단(阿旦)’으로 언급되며, 조선시대에 쓰인 고려사에는 아차(峨嵯)’가 처음으로 나타난다. 특히 태조 이성계의 휘가 ()’이기 때문에 이 글자를 신성하게 여겨 이 들어간 이름은 다른 글자로 바꾸면서  대신 이와 모양이 비슷한 ()’로 고쳤는데, 이때 아차산도 음은 그대로 두고 글자만 고쳤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아차산·용마산·망우산 등을 모두 아차산이라고 불렀던 것으로 보인다.

 

온달장군과 평강공주의 전설이 전해지는 아차산에는 아차산성을 비롯한 많은 문화유적들이 있다. 1960년대 이후 서울의 인구가 급증하면서 아차산 중턱까지 주택들이 들어서게 되었다.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산책과 운동을 위해 찾는 명소로 널리 알려져 있다.

 

아차, 용마 산행길에 만난 풍경 1

 

아차, 용마 산행길에 만난 풍경 2

 

아차, 용마 산행길에 만난 풍경 3

 

아차, 용마 산행길에 만난 풍경 4

 

아차, 용마 산행길에 만난 풍경 5

 

아차, 용마 산행길에 만난 풍경 6